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 리 프리들랜더의 [결정적 순간] 비교
새로운 '결정적 순간'의 모색을 위하여
글쓴이 : 박기준 (포토트립 작품연구4기)
2006.7.29
1. 서 언
1952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 출간된 이후 ‘결정적 순간’이란 용어는 스냅사진, 길거리 사진미학의 확고한 공리가 되었으며, 나아가 사진 예술의 기념비적인 교과서로 자리매김 되어 수많은 후학들의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미국 뉴 다큐멘터리의 기수인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는 대상에 대한 순간적 반응, 치밀한 구성과 계산을 통한 셔터 찬스의 포착으로, 한편으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독특하고 차별화된 시각과 기법을 통해 ‘새로운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결정적 순간’은 공간성에서 시간성으로, 묘사에서 표현으로, 휴머니즘의 소멸, 추상화?비현실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진의 다양한 변천 속에서도 여전히 사진미학의 중요한 전형으로 살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거장의 ‘결정적 순간’을 비교?검토해보는 것은 사진탐구에 있어서 흥미로운 일이며, 이를 통해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보고, 앞으로 전개될 사진 미학에 있어서 보다 새로운 ‘결정적 순간’의 미래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2.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삶(개관)
1908년 프랑스 샹툴로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앙드레 로테(Andre Lhote)에게서 미술(회화)을 배웠으며, 1931년 라이카(35mm)를 구입하였다. 2차 대전 중이던 1940년에는 32세의 나이로 프랑스 군에 입대하여 영화, 사진, 선전대의 병사로 근무하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으며 세 차례의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한 이후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46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대규모 사진전에 참여하고, 1947년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어, 조지로저 등 4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과 함께 사진작가주의를 지향하는 사진에이전시 ‘Magnum’을 결성하였다. 이후 스페인, 멕시코, 소련, 인도, 중국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95세인 2004년 사망하였다.
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에 대한 평가(주요 수식어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사진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이며, 이러한 그의 영향과 비중은 오늘날 까지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업적과 영향은 그에 대해 붙여진 많은 수식어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그는 ‘20세기의 눈,’ ‘근대 사진미학의 최고봉,’ ‘현대 사진영상의 아버지’, ‘사진미학의 교과서’, ‘사진의 톨스토이’ 등으로 칭송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현대 사진의 아버지’로서 사진이 근대라는 질곡에서 현대라는 보다 광활한 영역으로 넘어오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의미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서문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사진집에 “이 세상에 결정적 순간이 아닌 순간은 없다”라는 레츠 추기경의 명구를 인용하며, 자신이 직접 쓴 서문에서 “하나의 움직임 속에는 그 동작의 과정에서 각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한 순간이 있다. 사진은 바로 이 평형의 순간을 포착해 고정시키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림 1) Cartier Bresson Henri, Italy Salerno 1933
이렇듯 그의 ‘결정적 순간’은 극적 순간의 기막힌 찬스, 사건과 구도의 극적 일치를 의미하며, 핵심적 개념은 ‘찰나’이다. ‘찰나’는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자, 작가의 의도와 피사체, 그리고 그 주변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고, 구도와 형태의 예술적 감각이 완벽하게 구성되는 아주 짧은 순간을 의미한다. 요약해서 말하면 “광선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이자 “대상과 촬영자의 내부의식이 일치된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3. 리 프리들랜더의 ‘새로운 결정적 순간’
가. 리 프리들랜더의 삶(개관)
리 프리들랜더는 1934년 워싱턴주 Aberdeen에서 평범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L.A 아트센터 스쿨에서 Edward Kaminski로부터 사진을 배웠다. 1956 재즈에 심취하여 재즈 뮤지션의 사진을 찍었으며, 1963년 <The Jazz People of New Orleans>를 발간하였다. 1966년에는 전시회 <사회적 풍경을 향하여>, 1967년에는 전시회 <뉴 다큐멘터리>에 각각 참여하였다. 또한 1970년대 이후에는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을 하여 1985년 사진집 <Lee Friedlender Self Portrait>를 발간하였다. 최근까지의 그의 주요 작품집으로는 <The American Monument, 1976>, <Flower and Trees, 1981>, <Factory Valleys, 1982>, <Lee Friedlander Portraits, 1985>,<Cherry Blossom Time in Japan, 1986>, <Letter from the People, 1993>, <Desert Seen, 1996>, <The Little Screens, 2001> 등이 있다. 2005년에는 Hasselblad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도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나. 프리들랜더의 사진사적 평가
1950년대 현대사진의 문을 활짝 연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이 현대사진의 제1세대로 불리는 데 대해, 리 프리들랜더는 게리 위노그랜드 등과 함께 현대사진의 제2세대로 분류된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접근방식으로 미국의 거리(street) 등을 담아냄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을 개척하였으며, 1960년대 ‘뉴다큐멘터리의 기수’로 불린다. 또한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 외에도 풍경, 포트레이트(특히 셀프 포트레이트), 누드, 건물 등 사진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작품 활동을 펼침으로써 ‘사진의 리베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 프리들랜더의 ‘새로운 결정적 순간’의 의미
리 프리들랜더는 대상을 향해 순간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사진에 담기는 잡다한 현실 속에 하나의 시각적 통일을 이룩해 냈다. 또한 순간적이고 치밀한 계산과 통제를 통해 일상적인 풍경의 배후에 감춰져 있는 의미 있는 순간들을 시각화하였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순간적 반응, 치밀한 구성과 계산을 통한 셔터 찬스의 포착은 그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결정적 순간’은 사물의 병치(juxtaposition)과 반영(reflection), 끼워넣기(Clipping figures) 등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접근 방식으로 브레송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창조해냄으로써, ‘결정적 순간’에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추가하였다. 즉 영상적 이미지의 분석과 구축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전개하여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극복하여, 보다 현대성에 충실한 ‘새로운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림2) Lee Friedlander, New York 1963
그는 전면뿐만 아니라 측면, 후면까지 여러 공간의 차원에서 사물을 바라보았으며, 보다 포괄적인 시각을 통해 중첩적인 느낌을 주는 새로운 의미의 ‘결정적 순간’을 잡아낸 것이다. 또한 그의 결정적 순간은 인물과 주변 사물의 기묘한 공간 배분으로 정지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물과 사물이 겹쳐짐으로써 시각적 위트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삶의 아이러니, 부조화와 역설, 다층성, 사물의 기이함과 인간의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창조해 내었다.
프리들랜더의 ‘결정적 순간’의 사진은 우리가 완전히 알아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는 추상회화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또한 우연한 순간 길모퉁이에서 포착해낸 듯 한 정황과 심사숙고한 듯 짜여진 구성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마치 재즈음악과 같은 자발성과 즉흥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도, 이러한 재즈적 특성을 작가의 정확한 구성에 결합시킨 듯 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4. 두 거장의 ‘결정적 순간’의 비교(비평)
가. 시공간 인식: 공간 중심 vs 시간 중심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사건을 형성해 주는 완벽한 시공간 인식 즉 시간과 공간의 절묘한 통합을 통해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의 ‘결정적 순간’속의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시간보다 공간이 우선시되는 ‘공간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공간을 위한 시간, 공간에 봉사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회화성’과 짙은 연관을 가지며 브레송 사진의 특유의 화면 구성 원리를 형성한다.
반면에, 프리들랜더에서도 시간이 공간과 절묘하게 만나고 있긴 하나 공간보다는 시간을 중심으로 하며, 시간이 공간에 우선한다. 시간이 공간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시간만의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 프리들랜더는 오히려 시간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평범한 일상을 기묘하게 왜곡시킨다. 이러한 시공간 인식은 ‘움직임’에 보다 연관되며, 영상성을 부각시키는 접근 방법으로 연결된다.
브레송에서의 시공간의 완벽한 통합이 프리들랜더에서는 분리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어긋남을 보이고 있다. 즉 공간을 위한 셔터 찬스라기보다는 셔터 찬스(‘시간’)를 통한 공간 활용(구성)인 것이다. 프리들랜더에서 시간이 공간과의 완전한 일치가 아니라 틈새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그의 ‘결정적 순간’은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일차적인 차별화를 보인다. 그의 사진에서는 시간이 공간과의 밀착 동행을 거부함으로써, 현실성이 지워진 이미지, 나아가 환상적인 이미지가 태어나게 된다.
그림3) Cartier Bresson Henri, SPAIN. Andalucia. Seville. 1933.
그림4 Lee Friedlander, New York 1963
나. 내용: 이야기(사건) 중심 vs 이미지 중심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완벽한 시공간 일치와 통합을 통해 극적인 ‘사건’을 만들며, 이러한 ‘사건’은 사진을 보는 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객관적으로 누가보아도 '결정적‘이어서 여러 사람의 감탄과 감동을 자아낸다. 그의 ’결정적 순간‘은 사건(이야기)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즉 그의 ’결정적 순간‘은 여전히 사진의 근대성의 하나인 ’설화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프리들랜더의 시간은 공간을 사건화 시키지 않고 이미지화시킨다는 점에서 브레송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저 인용할 뿐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거나 대변하지는 않는다. 언어로 설명이 가능한 ‘문학적’의미의 사건이 아니라 시각으로밖에는 전달이 되지 않는 시각적 의미의 이미지가 그의 사진의 주제로서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미지는 그저 무덤덤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머와 풍자, 의도를 알 수 없는 장난기, 시각적 위트와 기괴함을 발산한다. 어떤 설화적 이야기를 읽어 낼 수 있기보다는 “그냥 느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림5) Cartier Bresson Henri, MEXICO. Mexico City. Calle Cuauhtemoctzin. Newspaper sellers. 1934
그림6) Lee Friedlander, Chicago 1966
다. 시각: 관조적 시각 vs 자기 의지적 시각
브레송은 눈앞에 보이는 모습, 존재하는 실재, 현실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용적이며 靜的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의 시각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 상당히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근대 사진미학의 최고봉이자 현대사진의 문을 두드린 그의 사진은 여전히 ‘묘사’위주의 근대사진의 틀에 머물러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가축화된 이미지’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는 근대사진의 한계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프리들랜더에서는 시각이 현실을 거부하는 현상을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의 시각으로 복합적인 현실을 뜯고 분해하려는 시각적 의지가 두드러지며, 현실에서 벗어나고 또 현실성을 지워버리려는 作爲적 의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눈으로 본 것과 동일하면서도 괴리된 느낌을 자아내고 별난 구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즉 현실이면서도 현실적 의미가 배제된 상황, 사진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이미지, 의사현실, 현실 아닌 현실로서의 현실이 그의 사진 이미지인 것이다. 나아가 그는 프레임안의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프레임속에 자신을 집어넣으려는 自己反映적인 경향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나중에 유리나 금속 등에 자신을 반영시키는 셀프포트레이트 사진으로 더욱 짙어진다.
그림7) Cartier Bresson Henri, Florence. Piazza della Signoria 1933
그림8) Lee Friedlander New York, New York, 1999
라. 이미지 구성: 평면적 vs 중첩적
사진은 2차원의 평면 예술이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이미지들은 이러한 사진의 원초적 속성에 매우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그의 이미지는 매우 ‘평면적’ 구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그가 산책을 하면서 마주한 일상의 풍경들을 캔버스(평면)에 가볍게 스케치한 듯 한 인상이다. 이러한 ‘평면성’은 그의 사진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부여한다. 여기에 이미지의 내용(이야기)까지 더해져 그의 사진은 언뜻 고전적 회화를 연상시킨다.
반면, 프리들랜더의 경우 그가 즐겨 사용한 사물의 병렬(juxtaposition)과 반영(reflection), 끼워넣기(Clipping figures) 등 기법을 통해 한 장의 사진 속에 순간적으로 담긴 장면이 분명히 한 장소인데 마치 서너 장의 원판을 함께 포개어 인화한 것과 같은 중첩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2차원의 평면이면서도 전경, 중경, 원경이 압축된 중첩적인 인상을 줌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느낌을 받게 한다. 이러한 차별성은 그의 이미지가 인간과 다른 시각계를 가진 외계인이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 불시착하여 현실을 바라보는 듯 한 비현실적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그림9) Cartier Bresson Henri, ITALY. Tuscany. Sienna. 1933
그림10) Lee Friedlander, Akron, OH Plate 13 from "Factory Valleys" 1980
마. 인간관: 휴머니즘 vs 탈 휴머니즘(인간 vs 사물)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들은 브레송 자신의 긍정적인 인생관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짙게 배어 있다. 그의 사진이 사건중심이듯이 이러한 사건들 속에는 언제나 사람과 삶의 모습과 단면을 그려내고 있으며, 브레송이 느끼고 깨닫고자 했던 삶의 진실들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프리들랜더의 사진은 이러한 휴머니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브레송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다른 대상으로 전이된 듯하다. 그는 오히려 사람보다는 공간, 공간을 메우고 있는 사물, 인간의 삶의 정황을 형성하는 사물들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사진은 탈 휴머니즘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림11) Cartier Bresson Henri, Mexico. Calle Cuauhtemocztin 1934
그림12) Lee Friedlander, Boy in Window
바. 총평: 근대성 vs 현대성
상기의 시공간 인식, 시각, 이야기와 이미지, 구성, 휴머니즘 측면 등을 종합할 때,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정 순간’과 리 프리들랜더의 ‘결정적 순간’의 차이는 결국 사진사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하는바, 사진의 근대성과 현대성의 차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즉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 여전히 ‘묘사’를 위주로 한 사진의 근대성에 머물러 있었다면, 리 프리드랜더의 ‘결정적 순간’은 ‘묘사’보다 ‘표현’을 위주로 하는 현대성의 발현인 것이다.
5. 사진집 감상을 통한 비교(My personal comparison)
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세상관조와 자기성찰의 일기장”
거리를 걷는다. 걸으면서 바라본다. 또 바라보면서 걷는다. 자신이 사는 곳은 물론 세계의 곳곳을 이렇게 걷고 바라보는 것은 일상 아니 삶 자체가 된지 이미 오래다. 거리의 사물과 사람들, 세상이 펼쳐 보이는 파노라마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드라마들에 따사로운 시선을 보내고 관찰한다. 한 장면이 포착된다. 한쪽 눈을 감는다. 마음의 눈을 열기 위하여. 그리고 이제 팔의 연장이 된 라이카를 통해 대상을 응시한다. 자신의 머리와 눈과 마음이 하나의 축에 결집되도록 온 신경을 집중한다. 시간과 공간, 구도와 내용, 대상과 자신이 완전히 일치되고 통합되는 순간 자신의 가슴속에서 어떤 알 수 없는 소명(calling)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과 풍경 속에서 세상의 본질과 자신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직관적으로 깨닫는 찰나의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그는 그렇게 경외감과 진지함으로 세상과 사람들의 삶에 다가가고, 바라보며, 말을 건네고 또 귀를 귀 기울였다. 이것은 그가 평생을 통틀어 구도하듯 실천했던 세상 관조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기 성찰의 의식이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에게 사진 찍기는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또한 세상에 투영된 자기 자신을 성찰한 기록이자, 하루하루 쉼 없이 성실하게 써내려간 일기 쓰기였다. 일기장의 빈 공간들을 깨알같이 메워가고 일기장의 페이지 수가 더해갈수록, 일기장에 손때가 묻고 귀퉁이가 점점 낡아 갈수록 그는 삶의 매순간이 모두 ‘결정적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즉 삶에는 결정적이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사실을.
그림13 Cartier Bresson Henri, SPAIN. Madrid. 1933.
나. 리 프리들랜더: “현대 풍경과의 숨바꼭질”
숨바꼭질을 한다. 세상과 사물들, 그리고 삶의 정체와의 팽팽하고 치열한 숨기와 찾기. 주저 없이 자신이 술래가 되었으며, 현실 속에 감추어진 세상과 사물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본질과 의미를 관찰하고 들추어낸다. 때때로 자신이 숨기도 하면서 세상으로 하여금 자신을 찾아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자신이 술래이면서 숨기도 하고 숨으면서 찾기도 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숨바꼭질에는 장난스러움과 함께 기괴함이 깔려있다. 말없는 긴장이 흐르면서도 어떤 표현할 수 없는 유머와 재미가 있고, 풍자와 재치가 풍겨난다.
리 프리들랜더, 그에게 사진찍기는 “현대 풍경과의 숨바꼭질”에 다름 아니다. 그는 ‘숨바꼭질의 시선’으로 꼭꼭 숨어있는 세상과 삶의 본질을 찾으려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뜯어보면 세상과 삶의 진실이 조금씩 간간이 엿보였다. 그에게 있어 ‘결정적 순간’이란 숨고 찾는 숨바꼭질 속에서 장애물 옆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 은신처 밑으로 살짝 드러난 발끝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리 프리들랜더는 눈에 보이는 현실, 현실의 풍경이 진실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항상 회의와 의혹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상과 삶의 본질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철저히 감추어져 있으며, 빛이 이러한 진실을 들추어내는 데 결정적인 원리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사물의 그림자도 유심히 바라보았으며, 자신의 그림자까지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의미는 어쩌면 실제 모습이 아닌 자신의 그림자 속에 있다고도 생각했다. 세상의 복잡성과 삶의 다층성을 해체하기 위해 정면, 측면과 후면 그렇게 여러 각도에서 세상과 사물들을 뜯어보았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삶의 폐부 깊숙이 들여다보려 애썼다. 숨고 찾는 숨바꼭질의 시선으로.
그림14) Lee Friedlander, Like a One-Eyed Cat. Photographs: 1956 -1987
그림 15 Lee Friedlander, Las Vegas 2002
6. 결어(‘결정적 순간’의 개별화)
리 프리들랜더의 보다 새로운 의미의 ‘결정적 순간’은 그가 의도적으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답습했거나 브레송의 사진적 지향과 양식을 추종한 결과라기보다는, 사진의 현대성이 스스로 발현되고 창작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프랭크가 ‘미국인들'(The Americans)을 통해 ’더 이상 결정적 순간이란 없다‘라고 외친이후 즉 현대사진의 등장이후 이미 ‘결정적 순간’의 개별화, 다양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리 프리들랜더에 이어서 현재에도 ‘결정적 순간’의 미학은 아직도 사진 창작의 블루오션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사진 미학의 발전은 시대정신과 사회적 분위기, 예술조류, 시공간 개념 등을 배경으로 하면서, 작가의 빛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시각, 세상과 삶에 대한 경험과 관점에 따라 계속 다양하게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결정적 순간’도 사진미학의 영원불변의 완결체로서의 고정 개념이 아니라, 작가들이 ‘시공간’과 ‘빛’의 어우러짐을 통해 이미지를 탐구하고 개척해 나감에 따라, 더욱 새롭고 풍부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 참고 문헌
1. 사진집 <Friedlander, 2005>
2. 사진집 <The Decisive Moment, 1952>
※ http://www.magnumphotos.com
3. Essay '"Cartier-Bresson's Impact on Photojournalism" by Claude Cookman, an Professor of Journalism at Indiana University
4. Essay "Conversation in Silence" by Philip Brookman, curator of photograhpy and media art at the Corcoran Gallery of Art
5. Essay "Surrealism U.S.A" by Mark Stevens
6. Article "LEE FRIEDLANDER, Face to Face" by Liz Kay
7. Article "Lee Friedlander still has power to astonish" by By Timothy Cahill, Correspondent of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8. 철학으로 읽어보는 사진예술(이경률, 사진마실)
9. 현대사진의 이해(한정식, 눈빛)
10. 영화보다 재미있는 사진이야기(진동선, 푸른세상)
11. 사진에 관하여(Susan Sontag, 이재원 옮김, 시울)
관련 사이트 http://www.magnumphotos.com http://www.phototrip.org
리 프리들랜더의 그 외 작품들 |
첫댓글 사진은 결정적 순간을 필름과 인화지를 통하여 우리 인간에게 수많은 멧시지를 전합니다! 슬픔.기쁨,고통,행복,고뇌,세상사......
아... 그렇군요
참고 하겠습니다.. 멋져요
결정적인 그 순간을 모두 포착할 순 없겠지만, 찾아보도록 노력은 해야겠죠. 고통을 해방으로 바꾸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모든 사진 애호가를 위하여...~~~~잘 보았습니다.
전문적인 공부 조금 한 것 같습니다. 어렵네요.두 거장을 통해, 특성과 사진의 흐름을 대충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얼굴 뵌지가 꽤 오래 된것 같습니다.자주 좀 뵈어요.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 이겠지요 한 순간의 정지된 모습 이지만 그 속엔 슬픔과기쁨 사랑과미움 등 그 순간만의 수 많은 이야기들이 ..... 그때 그 느낌 그데로....작은 틀 않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