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카인과 치프는 시계의 약을 갈기 위해 시계방으로 가고, 다른 일행은 감자탕 식당으로 향했다. 근데 오스카가 식당으로 가지 않고 카인과 치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 형이 자신을 돌아보자마자, 오스카는 씨익 웃으며 팔을 뻗어 두 형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형들!”
“어. 너 왜 우리한테 왔어.”
카인의 물음에 오스카는 홍조를 살짝 띄우며 대답했다.
“시계 약을 갈아 끼우는 법을 배워두면, 나중에 형들의 약과 제 시계의 약을 제가 갈아 끼울 수 있잖아요.”
“후훗, 확실히 그렇구나.”
한참 가던 오스카의 눈에 약국이 들어왔다.
“근데 치프 형, 의약품을 따로 안 샀는데 괜찮겠어요?”
“!!”
치프의 청색 눈동자가 확 커졌다. 맞다~~~~~~~~~~~~~~~ 허즈그레이에서 다 썼지, 참!
오스카의 팔에서 벗어난 치프는 짧고 간단하게 자신의 의견을 카인에게 전했다.
“카인! 카드!”
“알았어, 알았어.”
카인은 카드를 성큼 건넸고 치프는 카드를 받아들고 약국에 갔다가, 잠시 후 의약품이 든 봉투를 잔뜩 들고 나왔다. 그가 나올 때까지 카인과 오스카는 잠시 기다려야 했다.
“얼마야?”
“50만! 여기 영수증!”
“음.”
작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한 카인은 영수증과 카드를 받고서 시계방으로 들어갔다. 두 형제가 내민 시계의 약을 갈기 위해, 시계방 주인은 시계 뒤쪽의 뚜껑을 열고 이리저리 조작했다.
그리고 오스카는 그 모습을 열심히 눈과 머리에 새겼다.
“손목시계는 다 같은 구조죠?”
“예.”
약을 갈아 끼운 주인은 오스카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뚜껑을 잘 닫았다.
“뚜껑을 여는 핀은 따로 있습니까?”
“예. 하나 드릴까요?”
“앗, 감사하죠!”
오스카는 공짜로 얻은 핀을 잘 넣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처음 보는 시계 약을 갈아 끼우는 법이 간단하면서도 신기한 그다. 시계 약을 여유 있게 몇 개 더 구입한 카인과 치프, 오스카는 세 왕족과 칼리프가 있는 식당을 향했다.
그런데.
“!”
라이아가 일행을 끌고 온 식당은 꽤 붐볐다. 저녁 식사대임과 동시에, 그 식당의 맛이 상당히 좋음을 의미했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일행은 7인분을 시켰다. 후에 합류할 셋의 감자탕도 같이 주문했다. 그들이 앉은 곳은 4인용 식탁이 두 개 붙어있는 곳이다. 자리 있음을 알리기 위해, 네 남녀는 벽에 붙은 식탁을 두고 통로 쪽의 식탁에 앉았다.
그랬더니 웬 건장한 체격의 사내 하나가 와서 앉는 게 아닌가.
그 사내를 본 사람들은 흠칫 놀라 구석으로 모조리 몰렸다.
주변 상황을 감지하지 못 한 라이아가 따지듯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봐! 여기 자리 있어, 다른 곳으로 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식탁은 아무도 안 앉았잖아. 그리고 계집애가 건방지게 어디서 하대야.”
“계집애라니! 나 왕녀거든? 한 왕국의 귀한 공주야, 너야말로 말조심해!”
라이아는 더 크게 받아쳤다. 싸움이 커질 것을 우려한 칼리프가 얼른 엉덩이를 옆 의자로 옮겨 앉았다. 그는 잠시 씩 웃어 보인 뒤 말했다.
“됐지? 꺼져.”
“어쭈. 이것들이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사내는 오른손 주먹을 왼손으로 척 감싼 뒤 주먹을 내뻗었다. 다이아가 대신 용서를 빌기 위해 일어나려던 그 찰나. 턱, 하고 사내의 팔이 공중에서 멈췄다. 칼리프 옆에 앉아 있던 신이 일어나 그의 팔을 잡은 것이다.
신은 잡은 상대의 팔을 꺾어 뒤로 접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고 벽에 처박았다.
안 그래도 조용하던 식당 안은 더 조용하게 가라앉았고, 반찬을 들고 나오던 직원도 놀라서 주방으로 돌아가기까지 했다.
“넌 뭐야! 몸도 얇은 게 어디서 이런 힘이!”
“격투라면 자신 있다. 피를 보고 싶지 않으면 꺼져라.”
신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은 사내는 당장에 이놈을 두드려 패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을 잡고 있는 자는 힘이 의외로 거셌다. 그래서 다른 수를 쓰기로 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얘들아!”
사내의 외침에 건장한 체격의 사내 서넛이 우르르르 들어왔다. 코너로 몰린 손님들은 가만히 보기만 할 뿐 아무 것도 못 했다.
그들은 보고 싶었다. 자신들을 마구 짓밟던 불량배들이 바닥에 처박히는 모습을. 남자치고 몸도 호리호리한 저 청년의 손에 어떻게 쓰러질 지 궁금했다.
불량배 서넛이 식당을 장악하자 칼리프도 벌떡 일어났다. 이윽고 불량배 여섯 명과 신 사이의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졌다. 2대 6이지만 신과 칼리프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불량배들이 여기저기 얻어터지고 있었다.
손님들은 박수치고 환호하면서 칼리프와 신을 응원했고, 다이아와 라이아도 그 응원에 합세했다. 하지만 점점 불리해졌다. 숫적인 열세였다.
“엎드려!”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
식당 안의 전원은 얼떨결에 몸을 숙였고, 신과 칼리프도 몸을 숙였다. 서 있는 자는 불량배 여섯이 전부였고 식탁 위의 공간은 텅 비었다. 그 공간을 뭔가가 채웠다.
어디선가 날아온 그 뭔가는 회전을 거듭하며 빙글빙글 돌아서, 불량배들을 한 대씩 치고 지나갔다. 6명을 모두 때린 무엇, 아니, 원통형의 황갈색 막대는 회전을 늦추며 문 쪽으로 돌아갔다.
“뭐야!!”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불량배 여섯의 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향했다. 몸을 숙여 막대의 공격을 피한 손님들 전원과, 주방에 있던 사람들 전원의 시선도 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가지각색의 머리색에, 다양한 옷차림의 세 남자가 있었다. 식당 안에서의 시선에서 봤을 때, 오른쪽에 선 청년이 왼손에 막대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불량배들에게 공격을 가한 막대의 주인이 그인 모양이었다.
“치프 형.”
그의 부름에 가운데에 서 있던 청년이 허리에 묶인 두 자루의 도를 뽑아 들었다. 그는 도를 들고 왼쪽에서 오른쪽, 왼쪽 대각선으로, 거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도를 꺾었다.
“이도류 Z-Line.”
도의 휘둘림에 의해 발생된 칼바람은 그대로 불량배들을 향해 날아갔다. 보이지 않는 칼바람을 등에 제대로 맞은 불량배 여섯은 일제히 휘청거렸다. 자신의 역할을 끝낸 청년은 도를 도집에 넣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정리다.”
그 청년의 오른쪽에 있던 청년은 등허리에서 무언가를 뽑았다. 그것은 적갈색을 띈 두 자루의 권총이었다. 청년은 안전장치를 풀자마자 방아쇠를 사정없이 당겼다.
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
불량배들은 총알을 보고서 이리저리 피했지만, 피한 자리에는 다른 불량배가 있었고, 그들은 날아오는 총알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풀썩, 풀썩, 풀썩.
불량배 여섯은 모두 식당의 통로에 이리저리 쓰러졌다. 총알을 맞은 이상 사망은 피할 수 없다.
청년은 권총을 빙글빙글 돌려서 벨트에 끼워 넣고, 친구, 그리고 동생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뚜벅뚜벅, 셋의 신발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린다.
“와~!”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숨어 있던 사람들 모두가 벌떡벌떡 일어나, 박수와 환호로 그들을 반겼다. 어느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오오오~ 정말 고맙소!”
“이야~ 속이 다 후련~ 하구려!”
“?”
속속들이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그들을 반기는지, 카인 일행은 전혀 알지 못 했다.
영문을 뒤로 한 세 청년은 다이아 일행이 앉아 있는 자리로 와서 앉았다. 카인과 치프는 그냥 앉을 수가 없었다. 허리에 찬 권총벨트와, 두 자루의 도 때문이다. 그것들을 풀어 모서리에 놓고 나서야, 치프는 편히 앉을 수 있었다.
이어 반찬을 비롯한 감자탕이 식탁 위로 왔다. 직원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고서 말했다.
“팔팔 끓으면 불을 낮추고 드시면 됩니다.”
직원이 가고 나자 카인과 치프는 다이아와 라이아, 신의 안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두 마마, 괜찮으십니까?”
“응, 우린 괜찮아요.”
다이아가 먼저 대답했고, 신도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
“적절한 때에 잘 와주었다. 근데 이런 일이 터진 걸 어떻게 알았지?”
“봤어요. 막 들어오는데, 라이아 마마와 불량배 한 명이 말싸움을 막 시작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치프 형의 의약품도 놔두고 올 겸 해서, 여관에 들러 두 형의 무기를 갖고 왔어요.”
오스카의 대답이었다. 그들 옆으로 누군가가 섰다. 가게 주인인 듯했다. 그도 박수를 짝짝 치며 말했다.
“이야~! 청년들, 제법 하는구려! 불량배들을 처리해주어 정말 고맙소. 국왕과 경찰도 어찌하지 못 한 놈들인데 말이오. 감사 인사로 감자탕을 모두 20% 깎아줄 테니 맛있게 먹게나.”
주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관 10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가게 손님들의 증언과 카인 일행의 증언을 들은 뒤 불량배 6명을 끌고 가게를 나갔다.
보글보글.
곧 감자탕이 끓기 시작했다. 진한 갈색의 국물과 맛난 냄새가 군침 돌게 만들었다. 젓가락 한 짝으로 깍두기를 콕 찍은 라이아의 얼굴이 심드렁하게 변했다.
“이건 왜 이리 커?”
다이아가 주변을 살폈다. 다른 식탁도 감자탕을 먹고 있었고 깍두기도 다 컸다.
“원래 큰 것 같아, 언니.”
“그래?”
심드렁한 표정을 지운 라이아는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먹었다.
사각.
“음~ 맛있다!”
그녀의 말에 신도 깍두기를 하나 콕 찍어서 베어 먹어봤다. 반인반용이라서 특히 민감한 그의 입맛인데도 깍두기는 묘하게 맛이 있었다. 그는 흡족한 듯 빙긋 웃었다.
“음, 괜찮네.”
“국 끓는다.”
칼리프는 국자를 들어 국물을 떠서 한 입 먹었다. 하지만 1초도 지나지 않아 혀를 쑥 내밀었다.
“앗, 뜨거~!”
“푸훗.”
칼리프의 커다란 비명에 식당 안의 모두가 작게 웃었다.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한 식당의 근원지에는 칼리프가 있었다.
처음 먹는 감자탕이지만 상당히 맛있었다. 모두 밥 두 공기씩 먹은 것도 모자라, 3공기를 감자탕 남은 물에 볶아 먹었으니, 오랜만에 과식했다 할 수 있다.
저녁 식사 45,000G 지출.
식사 후 카인은 주방으로 쳐들어가서 감자탕 만드는 방법을 빼왔다. 가게에서는 특별한 비법이 있다며 그것만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카인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풀어놨던 권총벨트를 허리에 차고 식당을 나온 카인은 얼마 걷지 못 하고 섰다. 다른 재료는 정육점이나 마트에 가면 살 수 있다지만, 감자탕의 맛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게 쉬이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카인은 그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묵은지> 라-.”
그는 오른손에 쥔 펜으로 수첩을 툭툭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카인?”
“예.”
다이아의 물음에 카인은 성큼 고개를 끄덕였다.
“<묵은지>라고 있나 봐요.”
“묵은지?”
다들 모르는 얼굴을 하는 가운데 칼리프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김치를 항아리에서 10개월 가까이 익힌 게 묵은지야. 쉰 냄새가 아주 강하게 나지. 최소 6개월은 익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냥은 못 먹어.”
카인의 얼굴에 조금 어두워졌다.
“그럼 배에서는 못 해먹네. 묵은지를 구하지 않는 이상.”
그의 말은 일행에게 충격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