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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고인돌박물관→②고인돌유적지→매산재→③운곡저수지→④동양최대고인돌→⑤용계리 청자도요지→원평마을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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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평마을 입구→→아산계산마을→→①인천강→→②덕천사→→③할매바위→→아산초등학교→→④병바위→→인천강길→→호암다리→→강정다리→→연기마을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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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마을 입구→①분청사기요지→산림경영숲쉼터→②소요사→③질마재→④국화마을→⑤미당시문학관→⑥미당생가→좌치나루터→⑦하전갯벌 학습체험장→소금샘→검단소금전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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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소금전시관→①진채선생가→화산마을→연천마을→②참당암→③도솔암→④선운사→선운산관광안내소 |
고창 하면 고인돌, 고인돌 하면 고창. 그래서 시작은 고인돌박물관이다. 고인돌에 대해 부족하다 싶으면 이곳에서 기초 지식을 탄탄하게 쌓고 가야 가는 길이 즐겁다. 길가에서 문득문득 마주치는 고인돌과 아는 체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 됐다 싶으면 사람 보는 게 고인돌 보기 보다 힘들다는 고인돌유적지로 출발한다. 박물관에서 유적지가 훤히 보이지만 느긋하게 한가로운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10분이 조금 넘는다.
한국판 왕들의 계곡은 산등성이부터 시작이다. 언덕에 발을 들이자 듬성듬성 놓인 고인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고인돌을 마주치면 바짝 놀라지만, 차차 엄청난 수의 고인돌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 시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하나 둘러보다간 이곳에서 지는 해를 맞이할 터, 산책하는 기분으로 언덕을 오른다. 탐방로를 따라 언덕을 돌고 돌며 풀숲에 앉은 고인돌을 본다. 3km 남짓 되는 고인돌 탐방로 위로는 선들선들 바람이 분다. 이곳에서 원평마을로 난 길과 매산재를 지나는 길을 놓고 고민을 한다. 동양최대고인돌을 보려면 조금 더 걷더라도 매산재 길을 선택한다. 이길에는 동양최대고인돌 뿐만아니라 생태연못과 생태습지가 있어,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오베이골 생태연못에는 어리연꼿, 수련, 노랑 꽃창포 등 갖가지 식물들이 자란다. 쑥부쟁이와 억새밭 자생지이기도 한 습지식물의 보고, 오베이골 습지도 마찬가지이다. 지나가는길로 물잔디, 네가리, 검정말, 왕버들나무 등 습지식물들이 반긴다. 습지식물의 생소한 모습이 신기하다. 식물들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어느새 운곡저수지가 나타난 것도 모른다. 저수지가 보이는 길은 호젓하다. 늘 바람이 먼저 지나가는 길이다. 저수지 위로 안개가 맺히는 날엔 구름 속으로들어가는 듯 몽환적이다 텃새 날아가는 소리와 야생동물 발자국 소리만이 맴돈다.
길가로 동양최대고인돌이 불쑥 나타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 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풀이 우거졌어도 그 거대한 시간의 흔적은 흔들림이 없다. 거뭇거뭇한 표면은 비와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3,000년을 이어져 단단한 갑옷 마냥 반질하다. 운곡저수지는 여행자 옆을 마냥 따라온다. 용계리 청자도요지가 슬쩍 길 옆으로 나란히 선다. 이곳은 고려 초기 청자를 빚어내던 곳. 고운 흙이 있고 바다가 지척이라 청자를 만들어 개성이나 중국으로 보내기에 좋은 위치이다. 지나치며 바라본 터만 봐도 얼마나 많은 도공이 청자를 만들고 부스며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이 된다.
용계리 청자도요지를 지나 남으로 돌아선다. 운곡저수지를 둘러가는 길이라 물은 계속 여행자를 비춘다. 물 그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원평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고인돌유적지에서 바로 왔으면 한참 전에 지나갔을 곳이지만, 대신 쌓인 시간만큼 묵직한 고인돌과 저수지를 끼고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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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박물관 |
박물관과 외부전시장으로 이뤄져 있다. 박물관에는 한반도 초기 청동기 문화에 대해 전시가되어 있으며 외부전시장에는 선사시대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09:00~18:00 (동절기~17:00), 월요일 휴관 | 어른 3,000원, 청소년2,000원, 어린이 1,000원 | 063-560-2576~8 | http://www.gcdolme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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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유적지 |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고인돌 밀집지역. 동서로 약 2.5km 정도에 달하는들판에 총 447기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 063-560-2577 (고인돌공원관리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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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저수지 |
운곡서원 앞에 자리한저수지이다. 이곳의 물은 주변 마을에 식수로 공급될 정도로깨끗하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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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최대고인돌 |
운곡고인돌이라 불린다. 상석의 높이 5m, 가로 길이 7m에 이른다. 무게만 해도 300여 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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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리 청자도요지 |
약 3,200m2에 걸쳐 작업장과 건물터로 이루어진 청자가마터이다. 3개의 가마와 대형건물터, 다양한 청자들이 발굴되었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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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시골마을의 길들은 모두가 같은 듯 보여도 걷다 보면 그 맛이 다르다. 원평마을, 그리고 계산마을을 지난다. 서로 가까운 마을이지만 원평마을은 호수를, 계산마을은 인천강을 옆에 둔다. 인천강은 고창의 젖줄. 주변 산이나 구릉에서 흘러내린 물들은 이곳으로 녹아들 듯 합쳐져 강줄기를 이룬다. 고창의 복분자도, 풍천장어도 이 물줄기로 자란다. 옥천 조씨 지평공파의 영당 덕천사에서는 인천강 위로 춤을 추듯 날아드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 두루미를 비추는 인천강은 잔잔하기가 호수와 같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은 평탄하고, 풍경은 고즈넉해 산책 나온 듯 가볍다. 할매바위가 나타난다. 강가에 드리운 커다란 바위. 90도로 강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절벽이라 부르는 것이 나을 성 싶다. 이 바위의 그늘 아래 앉아 강태공들은 인천강의 시간을 낚았다 한다. 씨알 굵은 물고기들이 덥썩덥썩 미끼를 무는 바람에 낚시명당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암벽 등반 고수쯤 되면 고창 할매바위를 지나치기 힘들다. 할매바위 아래 인천강은 이제 그들의 모습을 비추며 말없이 흐른다. 이곳에서1km 정도 걷자 아산초등학교가 나온다. 할매바위를 정복하려 찾은 외지인들은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텐트를 친다.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익숙한지 자신들의 놀이에 푹 빠져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학교를 돌아 오르는 나지막한 뒷산.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사람의 모습을 한 바위가 학교를 내려다 본다. 오똑한 콧날과 훤한 이마, 머리 위로 몇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있어 얼핏 보고 지나쳐도 사람 얼굴이다. 이름은 병바위. 술 취한 신선이 집어 던진 병이 거꾸로 세워져 지금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병보다는 사람 머리처럼 보인다. 몸을 돌리자 바위 얼굴이 쳐다 보는 듯하다. 그 길로 내려와 인천강과 사이 좋게 길을 간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두어 개 지난다. 강 흐르는 소리조차 고요해 여행자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려온다. 연기마을 입구에서 한숨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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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강 |
고창 인근 산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이모여 드는 곳이다, 강 하구에서 잡히는 뱀장어는 풍천장어라 하여 고창 대표 특산물이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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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사 |
조선 전기의 문신 신말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 사당 형식으로 지어져 소박한 모습을보인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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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바위 |
클라이밍 좀 한다는사람들이라면 꼭 오르는 바위다.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에는 늘 사람들이 매달려 바위를 오른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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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바위 |
산 전체가 바위로코와 입, 이마가 선명해 사람머리처럼 생겼다. 소반바위 또는 이승만바위라고도 부른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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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마을 입구에서 분청사기요지까지는 금방이다. 경사진 언덕에 추수를 끝낸 논처럼 외로운 터, 과거에는 도공들이 서로의 재주를 겨루며 접시 하나, 대접 하나 손수 만들던 곳이다. 지금은 질마재에서불어 내려오는 바람만 스쳐 지나간다. 쓸쓸한 과거의 흔적을 돌아 나가면 산림경영숲 쉼터가 나타난다. 연기마을 입구에서 다 돌리지 못한 숨을 돌리고 목도 축인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축축한 나무 기운이 묻어난다. 흐르던 땀이 바람에 가시면 몸은 한결 가뿐해진다. 길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소요사 입구'라고 써 놓은 표지판을 만난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걸어가니 소요산에 기댄 듯 앉은 암자가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000년 전까지만 해도 소요산 자락에 8만 개의 암자가 있었다 한다. 지금은 소요사뿐이다. 산사는 작지만 엄숙해 저절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게 한다. 암자를 나서면 미당이 노래하던 그곳, 질마재이다. 바람만 넘는다던 길이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변한 것이, 미당의 「질마재 신화」는 정말 신화가 되어버린 듯하다. 고갯마루에서서 내려다 보면 사방이 시원하다. 산자락에 터를 잡은 올망졸망한 농가들, 그리고 그들이 삶을 일궈 내는 들판이 펼쳐진다. 시야가 좋으면 변산반도도 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는 길도 마찬가지로 거칠 것 없는 말끔한 도로. 국화마을로 들어간다. 이름처럼 모든 집 담에, 지붕에 국화가 소담하게 그려져 있다. 국화를 닮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도 그려져 여행자를 반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사람 사는 마을이다.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은 쉼터 하나가 전부. 마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까 마을 안에서는 조심한다. 가을이면 300억 송이의 국화가 국화 그림과 어우러진단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가 눈 앞에 그려질 만하다.
마을 지척에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미당시문학관에 들른다. 옛 학교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은 원래 하나였던 듯 잘 어울린다. 미당이 남긴 아름다운 시구가 둘 사이를 끈끈하게 잇는다. 이곳에서 10분이면 미당생가도 볼 수 있다. 미당이 기억하는 옛 추억은 이곳에서 쌓인 것. 마루에 앉아서 미당을 키웠다던 바람과 만난다. 여행자의 8할도 바람으로 채워진다.
(서정주의 시를 넣을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제가 찾은 바로는 '질마재신화'에서 고창 100리길과 관련된 풍경을 노래한 시가 없는 듯 합니다.)
좌치나루터는 미당 생가 아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장에 갈 때 들고나던 곳이다. 이곳에서 인천강을 건너고 질마재를 넘어 저녁 찬거리를 장만했단다. 배가 다니던 분주함은 이제 기억과 흔적으로만 남았다. 인천강을 훌쩍 넘어 바다로, 바다로 걷는다. 짭짤한 소금 기운이 갯벌의 모습과 함께 몸으로 스민다. 10km의 해안선을 따라 널찍한 갯벌이다. 서울 밥상이든, 강원도 밥상이든 그 위에 오르는 바지락은 모두 이곳에서 나올 터. 갯벌을 가로지르며 경운기 한 대가 달리자 갯벌체험 온 아이들이 꺅 소리를 낸다. 하전갯벌 학습체험장에선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어도 혼내는 사람 아무도 없다. 구르고 뛰며 아이들은 갯벌만큼 넓어진다.
갯벌을 지나면 백제시대부터 재래소금 생산지로 알려진 검당포가 나온다. 검당은 검단선사가 이곳 장사현에 들어와 첫 포교를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 선운사가 세워지기 전 이곳은 바다만 있고 논과 밭이 적어 모두가 어렵게 살았다 한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밤만 되면 산에서 내려오는 도적떼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검단선사는 도적들과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후손까지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며 소금 만드는 법을 일러준다. 시간이 지나자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빛을 보기 시작했고, 고마운 마음에 소금을 만들어 선운사에 공양하기 시작했다. 옛 이야기 속의 풍속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데, 선운사검단선사보은염선재라 하는 축제가 그것이다. 심원면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그 규모도 상당하다. 이곳에는 지금도 소금을 구웠던 벌막과 소금샘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소금전시관까지 세워져 옛 소금 만드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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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요지 |
15~16세기 청자를 만들던 분청사기 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대접이나 접시, 항아리등이 발굴되었으며 연꽃무늬와 모란무늬 등 독특한 무늬가 그려져있는 것이 특징이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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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사 |
백제 위덕왕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사찰로 유명한고승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던 서해용왕지위비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 063-564-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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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마재 |
소요산 자락을 넘나드는 야트막한 고개. 원래 이름은길마재였으나 미당의 시집 <질마재신화>로 질마재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063-560-2715 (고인돌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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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마을 |
미당의 고향마을로 돋움별마을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마을에있는 집과 담, 지붕에 국화와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으며, 가을에는 300억 송이의 국화가 물결친다. • 063-562-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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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시문학관 |
폐교된 분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미당의 문학관이다. 미당의육필원고와 작품집, 살아 생전의애장품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 09:00~18:00 (동절기~17:00) | 063-560-2760 | http://www.seojungju.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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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생가 |
미당이 나고 자란 곳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초가지붕에 황토로 지은 생가는 미당이어린 시절을 회고할 때 빠지지않는 곳이다. • 063-560-27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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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전갯벌 학습체험장 |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선정된어촌이다. 국내 최대 바지락생산지로서 아름다운 갯벌을 뽐낸다. 갯벌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 063-563-0117 | http://hajeon.invil.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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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소금전시관 가까이 진채선생가가 있다. 진채선은 경회루 낙성연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판소리를 부른 여류국창. 스승인 신재효 문하에 들기 전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다. 진채선은 스승 신재효와의 가슴 찡한 사랑이야기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녀를 흥선대원군 곁에 두고 고창으로 혼자 돌아온 신재효는 '도리화가'를 부르며 그리움을 달랬다. 진채선생가를 뒤로 하고 선운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 보은길이다. 1,500년 전부터 심원 사람들이 나무등짐 가득 소금을 담은 채 걸었던 길. 나즈막한 비탈을 올라 참당고개를 넘는다. 백제가요 '선운사가'의 배경이 되었던 오래되고 오래된 길이다. 때는 백제시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쟁에 나가게 되었고, 아내는 하루를 열흘 같이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올 날이 지났음에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아내는 기다리다 못해 창담고개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슬픈 이야기를 곱씹으며 고개마루를 넘자 녹차 밭에 둘러싸인 조용한 암자, 참당암이다. 승려들의 수도도량이라 하니 발소리도 조심스럽다. 대웅전 뒤로 꽃무릇이 9월이면 공작꼬리마냥 늘어진다. 경내를 둘러본 후 산새소리와 대나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길을 오른다. 바닥에 깔린 고운 흙 덕분에 오르막이지만 쉽사리 오른다. 자박자박 흙을 밟으며 도착하자 오롯이 앉은 암자가 반긴다. 도솔암은 진흥왕이 선운사를 찾아와 가장 사랑했던 도솔 왕비와 중애공주의 이름을 따 창건한 암자이다. 암자 뒤로 돌아가자 우뚝 솟은 칠송대 암벽, 그 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은 두툼한 입술, 살짝 치켜 올라간 눈이 인상적이다. 그 규모가 웅장하여 두 손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마애불 앞에서 여행자도 손을 모은다. 칠송대를 감아 돌아 계곡을 따라 오르면 용문굴이 나온다.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할 때 용의 방해가 너무 심하여 용을 쫓아내자 용이 도망가며 낸 구멍이라 한다. 용문굴 위로 난 등산로를 오르면 천마암, 일명 천길 낭떠러지라고 부르는 천질암이다.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면 다시 도솔암이다. 도솔암을 나서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선운사와 생태공원이 나온다.
흙담이 선운사 가는 길을 안내한다. 우거진 나무와 돌담, 그리고 흙길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약 3km의 길은 이렇게 이어진다. 산행인지라 당기는 종아리는 어쩔 수 없다. 여유로웠던 숨소리가 한결 거칠어질
때쯤 선운사로 들어선다. 수 백 년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입구에 그늘을 드리운다. 일주문을 지나 황토담이 이어지고 천왕문이 나타난다. 천왕문에서 바라본 선운산은 부처의 미소처럼 온화하고 둥글다. 만세루에 앉아 마시는 녹차에 풍경소리가 녹아 든다. 이제 여정의 마무리. 선운산관광안내소에서 돌아본 선운산은 여행자에게 그 다음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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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채선생가 |
판소리대가 신재효 선생의 제자 진채선이 태어난 곳이다. 진채선은 판소리최초의 여자 명창으로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 •063-560-2712 (선운산관광안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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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당암 |
선운사 암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원래는 대참사라고 불렸던만큼 암자임에도 불구하고 보물로 지정된대웅전을 가지고 있다. • 063-563-3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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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
선운사와 함께 백제시대 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암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상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있는 곳이다. •063-564-2861, 561-0075 | http://www.dosolam.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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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
백제시대 창건된 사찰이다. 경내에는 보물과 중요문화재가 많으며, 동백숲, 장사송, 송악 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063-561-1422, 1418 | http://www.seonuns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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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보리밭축제: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메밀이 재배되는 들판. 특히 매년 4월에서 5월 사이 푸른 색으로 일렁거리는 보리는 고창의 명물이다. 이곳에서 청보리밭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기고 보리를 이용한 음식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매년 4~5월 | 학원관광농원 청보리밭 일대 | 063-564-9897 | http://chungbori.gochang.go.kr
▷ 복분자축제: 복분자 최대 생산지 고창에서 만나는 복분자의 진면목. 매년 6월 복분자를 수확할 때면 다양한 이벤트와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고창의 질 좋은 복분자와 복분자 가공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직거래로 구매할 수 있다. 매년 6월 | 선운산도립공원 내 | 063-560-2600 | http://bokbunja.gochang.go.kr
▷ 질마재문화축제: 고창의 자랑 미당과 국화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축제이다. 100만 m2 규모의 국화밭에 300억 송이의 국화가 피는데, 이는 세계 최대의 국화밭. 이곳에서미당의 시를 만나고 다양한 전통놀이도 체험한다. 고창 특산물로 만든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음식들도 맛볼 수 있다. 매년10-11월 |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일대 | 063-560-2760
▷ 복분자주: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선운사 지역의 복분자는 붉은 빛과 단맛이 강해 최상으로 친다. 이 중에서도 1등급 복분자를 모아 저온에서 발효해 향과 영양가를 보존하며 빚은 술이 바로 복분자주이다. 단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섞인데다 고혈압 예방과 치료에 특효라고 알려지며 인기를 얻고 있다.
▷ 풍천장어: '풍천'이 고창의 어느 지역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풍천장어 하면 고창이다. 풍천장어란 바닷물과 강물이 합쳐지는 곳에서 잡은 장어를 말한다. 탄력이 있어 씹히는 맛이 쫄깃하고 기름기가 적어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복분자와 함께 고창의 스태미나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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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유스호스텔 |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334 |
063-560-2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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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관광호텔 |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287-5 |
063-561-3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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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아침 |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113 |
063-562-6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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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가득한집 |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119 |
063-562-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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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마을 |
고창군 부안면 검산리 559 |
063-562-2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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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전원마을 |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 22-1 |
063-563-3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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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염다목적체험펜션 |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1036-3 |
010-8837-5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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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면 축령산 휴림 |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1 |
010-6607-5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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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메골 |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925-1 |
063-561-3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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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아름마을 |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179 |
063-563-7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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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갯벌장어 |
고창군 고창읍 월곡리 283-1 |
063-564-0101 |
장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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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회관 |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72-1 |
063-564-6543 |
탕, 백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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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의 아침 |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44-1 |
063-562-7997 |
장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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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가든 |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135-4 |
063-564-1680 |
장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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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장가든 |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372-8 |
063-564-8643 |
탕, 백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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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 536-1 |
063-561-5592 |
장어, 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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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회관 |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 141 |
063-563-7181 |
참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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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식당 |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 729-7 |
063-561-2468 |
굴정식, 게장백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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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든 |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1 |
063-563-5694 |
바지락죽. 백합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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