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 AG 야구 대표팀, 날아간 금메달

[championship]

2006-12-01 오전 6:59:43 [스포홀릭]
30일 오후 3시(이하 한국시간)부터 도하 아시안 게임의 대만과 한국의 경기가 열렸다. 이번 대회는 풀리그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에 비해 프로팀 선수가 포진된 대만과 한국이 비교적 우세한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 두 팀은 공교롭게도 첫경기에서 격돌하게 되면서 이 경기는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불리울 만큼 비중이 컸다. 하지만 결과는 4대 2의 처참한 패배로 나타났다. 그것도 이렇다 할 제대로 된 공격한번 하지 못하고 경기를 내주게 된 것이다.
투고타저 문제의 심각성 이 경기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 점은 한국의 타자들이 대만 투수들의 공을 대응하는데 있어 많은 약점을 보였다는 것이다. 대만은 예상했던 데로 궈홍즈(LA 다저스), 장치엔밍(요미우리 자이언츠)을 기용했는데 상위 레벨의 무대에 있는 선수들 다운 좋은 경쟁력을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공략하기 쉽게 보였을지 몰라도 움직임이 좋은 볼을 구사했기에 정작 배트 중심에 맞추기는 어려웠고, 타구도 그리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이들 투수가 좋은 투구를 펼친 것도 사실이지만, 국내 타자들의 대응력은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었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와 이진영(SK 와이번스)을 제외하면 변변한 공격조차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가장 큰 패인 중 하나는 김재박 감독이 회심의 테이블 세터로 기용한 이용규(기아 타이거즈)와 정근우(SK 와이번스)가 출루를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것을 거론할만 하다. 아마도 대만의 엉성한 수비를 한두 번쯤 크게 흔들 수 있었다면 경기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 경기에서도 드러났듯 투고타저의 문제는 비단 국내리그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거라고 여겨지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임을 부인하긴 어려워졌다.
선발 손민한 카드의 실패 김재박 감독은 베테랑인 손민한(롯데 자이언츠)을 선발로 냈다. 손민한의 장점은 경기별로 기복이 그리 심하지 않으며, 압도적인 구위를 가진건 아니지만 경기 운영을 침착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점은 3회까지 효과적인 투구로 나타났다. 그러나 4회에는 달랐다. 천룽지(시애틀 매리너스)가 높은 코스로 형성된 실투성 브레이킹 볼을 공략해서 솔로 홈런을 날리면서 재앙의 조짐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어 4번이자 주포인 첸진펑(라뉴 베어스)이 다시 2루타를 때리고, 도루까지 성공 시키면서 분위기는 대만 쪽으로 넘어간다. 설상가상으로 린즈성(라뉴 베어스)이 적시타를 때려 첸진펑을 홈으로 불러 들이면서 결국 2대 0의 상황으로 몰리고 만다. 4회말에 중견수의 실책성 플레이를 통한 이대호의 3루타, 이진영의 적시타가 이어지면서 한점을 만회하긴 했지만, 5회초에 손민한이 다시 씨에지아시안에게 우월 솔로홈런을 허용하면서 경기는 3대 1로 벌어진다. 이때 선발로 낸 손민한이 교체되고 마는데, 결국 5이닝을 채 못버티고 교체된 것은 선발 기용의 실패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포수인 조인성(LG 트윈스)의 리드와 손민한의 투구 로케이션에 있었다. 장타를 맞기 시작할 시점, 손민한의 볼은 전체적으로 높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브레이킹 볼은 각이 꺾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때리기 좋게 높은 곳으로 들어갔고, 패스트볼 조차 가운데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타자들은 아예 슬라이더나 스플리터 계열의 볼을 노리고 들어서는 모습이었는데, 노림수에서 앞서지 못했다는 점에서 리드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추신수의 미선발이 패배의 원천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대표팀이 4대 2의 패배를 연출하자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미선발을 걸고 넘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추신수의 미발탁이 패배로 연결되었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논리다. 현재의 대표팀 상황으로 보면 다른 선수가 추신수로 대체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효과를 발휘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신수가 매타석 홈런이나 안타를 때려낸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며, 라인업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는 대세를 결정할 선수이기 보단 9명의 선수 중의 한명일 뿐이다. 더구나 추신수 대신 들어온 선수가 이날 2타점을 쓸어 담은 이진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본다면, 이러한 점은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매우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보자면 필자는 추신수가 당연히 선발되어야 한다는 쪽에 반대의 의견을 견지했던 경험이 있다. 김재박 감독(LG 트윈스) 자체가 추신수의 플레이를 본적이 많지 않을 뿐더러, 그가 강견임에도 불구 수비에서 약점(타구판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선수선발 시점에서 추신수는 클리블랜드 이적 후 100타수도 채 들어선 상태가 아니었으며, 플래툰이나 대타로 기용되면서 빅리그에서 입지를 완전히 갖춘 상태도 아니었다. 그 당시 좋은 성적도 페이스 저하를 가져오면서 9월에는 성적의 하락세가 두드러 졌던 점도 떠오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재박 감독이 굳이 추신수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며,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추신수가 '당연히' 선발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 시즌 정도는 빅리그의 주전으로 뛰었어야 했다고 보고 있다.
우려되는 팬들의 반응 대표팀의 패배에 따른 비난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이 '고작 대만한테 져서 돌아오느냐' 는 것에 기초한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 야구는 그 어느 스포츠보다 의외성이 많은 경기다. 우리가 WBC 4강에 진출하면서, 미국과 일본을 격침했다고 해서 그들보다 수준이 높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의외의 결과는 얼마든지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리그의 수준은 대만보다 나은 것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중의 엘리트 선수들끼리의 대결, 그것도 단판 승부라면 우리는 이길 확률만큼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대만이 내세운 투수는 올해 미국과 일본에서 괜찮은 실적을 쌓은 수준급 선수들이었다. 팬들은 잔루가 무수히 이어진 경기를 보면서 답답해 했을 수 있고, 진 결과에 대해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회에 질려고 참가하는 선수단은 없으며, 병역문제가 걸린 선수들이 있었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리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나온 결과라면 바로 이것이 국내 프로야구의 현 주소이고 인정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국가대표간 경기에서는 야구, 축구, 농구 가릴 것 없이 선수들의 부담감이 크다고 한다. 소위 이기면 영웅, 지면 역적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결과만 중시하는 풍조의 단면일 것이다. 선수단, 대표팀에 대해 비난을 하더라도 패배가 용인되지 않는 그들의 입장에 한번쯤 서보는 것이 필요하다. 적어도 자신의 삶이 성공의 가도만 달려온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느 세계던지 항상 승리와 성공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다.
이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