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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원제: The Screwtape Letters)// 디딤돌교회 10년 7월 독서토론
유혹에 관한 탁월한 통찰력
20세기 기독교 최고의 변증가 C.S. 루이스의 대표작. 경험 많고 노회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이자 풋내기 악마인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관해 쓴 31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간의 갈등, 기도의 어려움, 영적 침체, 인간의 본성, 남녀간의 차이, 사랑, 쾌락, 욕망 등 그리스도인들의 여러 삶의 영역들이 다루어진다. 통찰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읽는 재미도 커서 루이스라는 20세기 기독교의 큰 산맥을 탐험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삼촌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여 파멸에 빠뜨리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31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는 우리 모두가 이 책을 구입하여 읽어야할 7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1. C. S. 루이스는 “두말할 나위 없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Time. 1980. 4월)이자, 영미 “복음주의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저술가”(Christianity Today. 1996. 9월)이다. 그리고 그의 기독교 저술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앞으로 홍성사에서 출간 예정인) 《Mere Christianity》이다. C. S. 루이스는 말하자면, 복음주의 진영의 ‘어거스틴’이자 ‘토마스 아퀴나스’라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루이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 인간 내면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담은 책은 꽤 있다. 하지만 그것을 재미있게 다루어 주는 책은 흔치 않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독서는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어주는 즐거움”(joy which can make you serious)을 느끼는 흔치 않은 경험을 제공해준다. 만약 당신이 소위 ‘깊이 있다’는 책들의 관념적 술어들에서 밋밋함만을 느끼는 독자라면, 만약 당신이 대부분의 신앙 서적들의 지극히 ‘평면적인’ 조언에 식상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자마자 당신은 C. S. 루이스 ‘매니아’가 될 공산이 높다.
3, “지루한 일상”이란 말 자체가, 삶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각이 얼마나 세속적인가를 잘 웅변해 준다. 일상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아니, 지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은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권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영적 씨름이기 때문이다(엡 6:12).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우리 삶의 의미가 “영적 전쟁”에 있음을, 우리의 일상이 실은 얼마나 '치열한' 곳인가를 보여준다. 평범한 삶을 비범한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살아있는’ 사람, 주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깨어있는’ 사람이며,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진정한 ‘영웅’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 속에 내재하고 있는 초월적 차원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참된 ‘영웅적’ 삶으로 부른다.
4, 스승의 가르침이 홀대받고 있다. 우리의 스승께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는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은근히 그 가르침을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온갖 거짓말들을 분별하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유혹’이나 ‘악’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실존에 중요 어휘가 아닌 이들은 아직 세상을, 현실을, 거룩을,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우리로 하여금 이 기도를 진지하게/간절하게/겸손히 드리도록 돕는다.
5. 루이스가 밝혔듯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악에 대한 현대인들의 잘못된 ‘상상력’을 치유하기 위한 해독제이다. 인간은 상상력이 타락할 때, 실존적으로 타락한다. 타락한 상상력은 악을 ‘신나는’ 것으로 선을 ‘재미없는’ 것으로, 악을 ‘해방’으로 선을 ‘속박’으로 상상한다. ‘이미지’는 중요하다. 특히 현대와 같이 이미지가 개념을 삼키는 시대에 있어서는, 악에 대한 바른 개념/말씀 뿐 아니라, 바른 이미지/그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이 그림을 우리 마음 판에 그려준다. 이 그림이 그려지는 만큼 우리는 전보다 더 선을 ‘좋아’하게 되고, 악을 ‘싫어’하게 된다. C. S. 루이스는 선을 악보다 더 ‘매력적인’ 것으로 표현해낼 줄 아는, 우리 시대에 몇 안 되는, 진정한 리얼리스트이다.
6.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고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은, 이 책의 주제가 다름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데에 있다. 루이스는 우리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죽음보다 강한 힘’이요, 하나님의 신비임을 보여준다.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사랑’을 빼놓고는 모든 것을 아는 자이다. 그는 최고의 심리학자이요 철학자이며 신학자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결국 ‘아무 것도’ 모른다. 루이스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평범한 진리를 비범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7. 악마는 탁월한 저자와 탁월한 역자가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역자 김선형씨의 탁월한 번역은, 스크루테이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옥 보좌를 뒤흔들어” 놓았다. 분명한 의미 전달, 군더더기 없는 문체, 우리말 표현의 유창함 등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귀한 번역이다. 역자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글/이종태(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등의 번역가)
스쿠루테이프의 편지를 읽고
서론
필자가 이 책을 선택하게된 이유는 설교자인 필자자신이 종종 설교를 듣다가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의 인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인용할 때 사탄이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공격하는지, 그리고 그 공격의 장이 얼마나 평범한 우리의 일상인지를 설명할 때 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적은 분량의 책임에도 단번에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편지라는 문학형식 자체가 소설이나 수필처럼 계속적인 흥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루이스의 지성이 크기가 나로 그렇게 만만치 않게 느껴져서일까? 사실 루이스도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이 아무데서나 쉽게 읽혀지는 것에는 못마땅하게 느끼는 것같았다.
"이 책은 대자에게 선물할 책이나 피정기간에 낭독할 책으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손님용 침실 한쪽에서 〈길고치는 사람〉, 〈존 잉글선트〉, 〈꿀벌의 생활〉같은 책들과 더불어 마냥한적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고 씁씁한 웃음을 지은 적도 여러분 있었다. 때로는 이보다 더 보잘것없는 용도로 팔리는 경우도 있다...(루이스, p 190)"
이런 관점에서 필자가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루이스를 실망시키지는 않은 것 같다.
본론
1. 각 편지의 제목과 주제
루이스는 이 31한편의 편지를 쓰면서 각각의 제목을 기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편지는 1편부터 시작해서 시간적으로 순차를 가지고 있다. 이 편지는 '스크루테이프라'는 지옥심연숭고부 차관등의 요직을 지내는 고위층의 악마가 이제 막 환자-이 편지에서 악마는 자신들이 유혹하고 있는 인간을 환자라 부른다-를 유혹하고있는 신참의 초보악마이자 자신의 조카인 '웜우드'에게 하는 일종의 조언을 담고 있다. 루이스는 이 편지들을 통해 우리에게 재미보다는 각 편지들에 담긴 유혹들을 실체를 악마의 눈을 통해서 보여주길원하는 것 같다. 다만 22번째 편지부터는 웜우드의 환자가 독실한 신자와 결혼의 순간부터 결국 환자가 그리스도-악마들은 그리스도를 '원수'라고 한다.'-를 영접하고, 결국 웜우드는 삼촌인 스크루테이프에겔 먹히게될 운명에 놓일때까지는 스토리가 비교적 연속적으로 진행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루이스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보다는 유혹의 내용인 주제를 강조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루이스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한다.
"끝으로, 이 편지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정리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덧붙여야하겠습니다.(루이스. p 12)"
그러므로 이 책은 스토리보다는 각각의 편지들에 담긴 독특한 주제를 발견해내는 것이 더 유용한 듯 하므로 각 편지의 주제와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제1편지: 제1편지의 주제는 '논증'이다. 루이스는 피상적인 전문용어가 오히려 이성을 흔들어깨우는 논증보다 유용하다고 설명하다. 결국 논증을 통해 끝임없이 진리를 탐구하기보다는 '일상성'등의 무기를 통해 사색과 논증대신, 선입견등에 의해 사로잡히라는 것을 강조한다.
"너의 임무는 환자의 곁을 지키며 그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 네 또래 젊은 악마놈들 하는 말만 들으면, 우리 일이 선생질인줄 알겠더라!(루이스. p 20)"
-제2편지: 제2편지의 주제는 '회귀'이다. 즉 회심자들이 이전의 습관이나 실망등으로 인해 다시 악마와 함께 지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원수는 인간의 노력이 문턱을 넘으려 할 때마다 이런 실망감이 찾아오는 걸 허용하고 있다.(루이스. p23)"
-제3편지: 제3편지의 주제는 '가정불화'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환자의 어머니를 맡고 있는 글루보즈동지와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하면서, 날마다 아픈 데를 찔러가며 상대방의 신경을 긁어대는 돈독한 습관을 그 집안에 들여 놓거라.(루이스. p 26)"
-제4편지: 제4편지의 주제는 '기도'이다. 루이스는 아예기도하지 못하게 하거나, 해도 진지하지 못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감정에 의지하는 잘못된 기도들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제5편지: 제5편지의 주제는 '전쟁과 이로인한 공포와 고통'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사실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 2차대전중이라서 그런지 이 주제는 뒤에서도 여러번 다루고 있다.
"전쟁통에 얼마나 바람직하지 못한 죽음들이 속출하는 지도 한 번 생각해 보거라. 인간들은 죽음을 예감할 수 있는 곳에서 죽는다. 그러나 원수편에 있는 인간들은 그야말로 완전한 채비를 갖추고 죽음을 맞이하는 셈이지. 그보다는 모든 인간이 값비싼 요양원에서 죽는 게 우리한테는 휠씬 더 좋은 일이야.(루이스. p 40)"
위의 글에서 보듯이 전쟁과 죽음과 공포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악마들에게도 승리의 자리만은 아닌 것이다.
-제6편지: 제6편지의 주제는 '현실에 인내하며 충실하게 사는 것대신 미래를 걱정하는 삶"이다.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라는 대사처럼 실재의 주어진 삶을 인내로 받아드이지 못하도하는 악마의 임무를 보여준다.
-제7편지: 제7편지의 주제는 '악마의 존재를 숨기게 하는 유물론적인 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유물론자 마술사'라는 완전무결한 작품을 만들어 낼 그 날이 오면, 즉 '영'의 존재는 거부하되 자기가 막연한 '힘'이라고 부르는 것을 직접 활용까지는 못 하더라도 사실상 숭배하는 사람을 탄생시키는 그날이 오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기나긴 전쟁의 끝을 보게 될 게다. 그 전까지는 명령에 따라야지.(루이스. p 48)"
-제8편지: 제8편지의 주제는 '침체와 건조함'이다. 인간은 이땅위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은 육체적으로 풍성하고 활기차며 쉽게 감동하는 시기와 무감각하고 결핍된 시기를 번갈아가며 격게되어 있는 것이다.
-제9편지: 제9편지의 주제는 '골짜기의 성욕과 꼭대기의 성욕'이다. 꼭대기의 성욕이라는 것은 육체적 활력이 넘치는 때인데 이때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정욕을 일으키기에 좋은 건강과 활력은 일이나, 놀이, 생각, 무해한 오락에도 쉽게 이용할수 있으므로 상막하고 냉랭하고 공허한 골짜기의 성욕이 악마들이 유혹하기 더 좋은 시기라고한다.
-제10편지: 제10편지의 주제는 '허영'이다.
"수치심이니 자존심이니 예절이니 허영같은 것들만 잘 건드린다면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일이야.(루이스. p 63)"
-제11편지: 제11편지의 주제는 "웃음의 4가지 구분이다." 루이스는 웃음의 원인을 기쁨, 재미, 적절한 농담, 경박함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특히 미덕을 우스운 것인 양 떠들도록 만드는 경박함을 가장 좋은 유혹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
-제12편지: 제12편지의 주제는 "모호한 불편함이다." 이것은 진지함으로 나아가기전에 얼마든지 취소가능한 사소한 것들이라고 믿게하는 것을 말한다.
-제13편지: 제13편지의 주제는 "적극적인 습관과 수동적인 습관 그리고 결단의지"이다.
"여하튼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 아니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두거라.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게 없다.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점점 더 행동 할수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수도 없게 되지.(루이스 p 81)"
-제14편지: 제14편지의 주제는 "자신만만한 결심의 남용"이다. 이것은 결국 잘못된 겸손에 대한 인식과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판단하는 편견을 가져오게 한다.
-제15편지: 제15편지의 주제는 "현재와 영원"이다. 즉 현실에 신실함보다는 과거에 파묻혀 살게하거나 또는 비현실적인 허상인 미래속에 살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16편지: 제16편지의 주제는 "구미에 맞는 교회 찾아다니기"이다. 즉 신자가 예배에 실패하고 교회의 감별사나 비평가가 되어 구미에 맞는 교회를 찾아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제17편지: 제17편지의 주제는 "탐식"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탐식으로 시간과 영성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일백년 간 우리가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는 바로 이 주제에 관해 인간의 양심을 완전히 마비시켰다는 거라구. 이제는 유럽 전체를 위아래로 아무리 훑어보아도 탐식에 대해 설교한다거나 탐식 때문에 가책을 느끼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지 이게 다 많이 먹는 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맛있는 걸 찾아먹는 데 욕심을 부리도록 총력을 집중한 결과다.(루이스 p.99)"
-제18편지: 제18편지의 주제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진실한 결혼"에 관한 것이다. 즉 성욕을 절제할 은사가 없는 인간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혼을 해결책으로 선택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좀 당황스럽지만 고린도전서에서는 이부분을 분명 결혼의 이유로 강조하고 있다. 또하나는 성적인 매력에 홀린 것 뿐이데도 무조건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믿어 결혼하려하는 행동이다.
-제19편지: 제19편지의 주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진정한 동기"를 이해못하는 악마의 모습이다.
"대체 원수는 인간에게서 무얼 얻으려는 심산일까?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주로 이 문제 때문에 우리 아버지께서 원수와 다투셨다는 건 말해줘도 해가 되지 않겠지?(루이스. p 111)"
-제20편지: 제20편지의 주제는 "예술등을 가장한 성의 상품화 정당화"이다. 현대사회는 다양성등을 강조하여 예술등을 이요해 성을 오용하도록 만드는 악마의 계략이다.
-제21편지: 제21편지의 주제는 "채워지지않는 삶의 욕구로 인한 분노이다." 내것에만 집착하고 이타적이지 않은 인간들을 분노의 길로 유혹하라는 내용이다.
"인간이 완전히 소유했다는 의미에서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시도 때도없이 웃음이 나오지 뭐냐. 종국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 특히나 모든 인간에 대해 원수나 우리 아버지 둘 중 한 편이 '내 것'을 주장하게 될 게다. 그러니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인간들도 결국엔 자기시간, 자기 영혼, 자기 육체가 과연 누구 것인지 알게 되는 날이 올테니까. 여하한 경우에도 저희들 것은 절대 될 수 없지.(루이스. p125)"
-제22편지: 제22편지의 주제는 '독실한 신자와의 결혼'이다. 악마는 여기서 가장 큰 절망감과 위기감을 느끼게된다. 스크루테이프는 독실한 가정의 신실한 삶을 묘사하며 분노하다 결국 큰 지네의 형상으로 변하고 만다.
-제23편지: 제23편지의 주제는 '역사적 예수'이다. 다소 딱딱한 내용이 될 수도있지만 악마는 독실한 여성의 가정구성원들이 지적인 크리스챤과 교제중에 예수를 역사적으로 구성하려는 노력들에 대해 듣고 그들의 영성이 흐려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예수'가 어떤 특정 지점에서는 우리한테 위험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장려할 만하다 이말씀이야 기독교와 정치의 전반적인 연관성에 관해서라면 우리 입장이 좀 미묘해지지. 기독교가 정치적 삶에까지 흘러들어가는 거야 분명히 원치않는 바다. 그랬다가 정말 정의로운 사회가 세워지라도하는 날엔 정말 큰일이고말고. 우리가 바라는 바 정말 간절히 바라는 바는 인간들이 기독교를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루이스 p136)"
-제24편지: 제24편지의 주제는 '믿는 자들의 울타리'이다. 즉 믿는 자들은 믿지않는 자들을 이방인으로 여기며 어리석고 우스운 사람들일 것이라는 억측을 이용하여 유혹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25편지: 제25편지의 주제는"무한한 변화를 추종하는 인간과 순전한 기독교"이다. 사실 순전한 기독교는 루이스가 따로 책을 낼 정도로 루이스의 관심의 분야이다. 관심사와 환경이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는 순전한 기독교을 바로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변함없는 것은 무조건 질색하고 변화가 주는 자연스런 즐거움만 따로 뒤틀어 완벽하게 새것만 원하는 욕구에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승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을 질색하는 이 감정을 철학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지식인들의 헛소리를 통해 의지의 타락을 강화시킨 것이다. 근대 유럽사상에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진화론적, 역사적 특징은 이 점에서 아주 유용하지, 원수는 상투적인 것 좋아한다.(루이스. p148)"
-제26편지: '연애기간의 모호한 사랑과 비이기주의의 오해'이다. 악마는 웜우드의 환자가 독실한 가정의 여성과 결혼하게 된 것을 파괴시키는 방법중하나를 연애기간중에 모호한 사랑의 감정으로 특히 그 중 비이기주의적인 것에 대한 개념의 오해를 유발하여 불화를 가져오려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말의 모호한 뜻을 잘 이용하도록. 사실 아직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문제들을 보류하거나 연기한 상태이면서, 정작 본인은 사랑의 힘으로 이미 해결했노라 믿게해야한다....... 남녀 사이일 경우에는 비이기주의에 관한 견해차이를 이용하거라. 우리가 그 동안 이성간에 갈라놓은 의견들 알지? 비이기주의라는게 여자한테는 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수고하는 것 뜻하지만, 남자한테는 남을 수고시키지 않는 것 뜻한다..(루이스 pp150-151)"
-제27편지: 제 27편지의 주제는 "마음흐트러짐에 대한 잘못된 자각이다."
"어떤 경우건 환자가 스스로 마음이 흐트러졌다는 생각을 할 시에는 순전히 자기 의지의 힘으로 마음을 추스린 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평상시처럼 기도하도록 부추겨야지. 마음이 흐트러졌다는 걸 당면문제로 인정하며 그걸 원수앞에 내놓고 주된 기도제목이자 노력할 항목으로 삼을 경우, 넌 좋은 일을 하기는커녕 긁어 부스럼 만든 꼭밖에 되지 않는다.(루이스. p 156)"
또한 악마는 기도가 잘못되도록 유혹하려 힘쓴다.
-제28편지: 제28편지의 주제는 '세속화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은 절박하고 위급한 시간에 오히려 하나님을 붙든다. 반면 안일하고 편한 시간의 여정속에서 세속화되기 쉬운법이다. 이번 편지의 주제는 전쟁의 화염속에 있는 환자를 죽음의 공포로 유혹하려고 하는 윔우드의 노력에 세속화의 유혹을 지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정한 세속성은 시간의 작품이야 물론 교만의 도움도 받긴한다만. 우린 조금씩다가오는 죽음을 분별이니 성숙이니 경험 따위의 말로 표현하도록 교육한다. 특히나 우리가 교육해 놓은 특별한 뜻으로 쓰기만 한다면 경험이야말로 가장 쓸모 있는 단어이지. 예전에 한 위대한 인간 철학자가 미덕에 관한 한 경험이야말로 가장 쓸모있는 단어이지. 예전에 한 위대한 인간 철학자가 미덕에 관한 한 '경험은 착각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비밀이 탄로날 뻔한 적이 있었지만, 유행의 변화와 역사적 관점에 힘입어 그 책의 해악을 대부분 무마시킬수 있었다.(루이스. p166)"
-제29편지: 제29편지의 내용은 '두려움이 수반하는 증오와 비겁함'이다. 이차대전중 독일의 폭격을 앞두고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윔우드의 환자에게 두려움을 통해서 비겁함의 길로 인도하라는 유혹의 내용을 담고 있다.
"비겁해지도록 유혹하는 실제 기술에 대해서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요점만 말하자면 경계심은 외려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경향이 있어. 그러나 공적인 명령으로 부과되는 경계심은 머지않아 늘상 수행하는 뻔한 임무가 되는 법이니 이런 효과를 만들어 내기가 어렵지 그러니 네가 할 일은 환자가 임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에 대한 끊임없이 막연한 생각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것이다.(루이스. p172)"
"명심하거라. 중요한 것은 공포 자체가 아니라 비겁한 행동이야. 공포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닐뿐더러, 보기엔 즐거워도 소득은 별로 없다.(루이스. p173)
-제30편지: 제30편지의 주제는 '피로'에 관한 것이다.
"네 편지에서 유일하게 건설적인 부분은, 아직은 환자의 피로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게 있다는 대목뿐이었다. 그거야 충분히 기대를 가질부분이지. 하지만 네깟놈 솜씨로는 어림도 없다. 피로는 극도의 온유함과 마음의 평정과 심지어 비전 같은 걸만들어 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피로가 분노와 악의와 조바심으로 인도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만, 그건 모두 유능한 유혹자들이 달라붙은 덕분이다.(루이스. p175)"
-제31편지: 마지막 편지의 주제는 실패한 악마 웜우드에 대한 질책과 벌로써 그를 잡아먹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악마가 원수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비통한 맘을 담고 있는데 이 승리한 웜우드의 환자를 통해 진정 유혹앞에서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설사 환자가 계속해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그 아픔을 끌어안아줄걸, 그들은 그 고통을 이땅의 어떤 쾌락과도 바꾸려 들지 않을 게다. 네가 한때 유혹의 무기로 삼을 수 있었던 감각적, 정서적, 지적 즐거움은 물론, 미덕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이제 환자에게는 메스껍기 그지없는 유혹으로 보일게야 평생 사랑했던 여자가 죽은 줄만 알았더니 사실은 살아있을뿐 아니라 지금 바로 문앞에 와 있다는 소식을 막 들은 남자한테, 시뻘건 연지를 덕저덕지 바른 창녀의 유혹이 어떻게 느껴지겠느냐? 환자의 고통과 쾌락이 유한한 가치를 뛰어넘는 세계, 우리의 산수가 먹혀들지 않는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 게야.(루이스. p185)"
2. 편지의 구조
스쿠루테이프의 편지는 그 제목에서처럼 고위 악마인 스쿠르 테이프가 신참 악마인 자신의 조카 웜우드에게 그의 환자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질책하며 유혹의 기술을 알려주는 편지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스크루테이프는 악마들중 고위관료답게 지적이며, 고위직의 거만함의 냄새를 풍긴다. 31편의 그의 편지들을 읽어보면서 재미있는 것은 그 편지들에게서 일정한 형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서론은 보고를 받고 윔우드의 행동을 평가하는 일이다. 그래서 편지의 서두는 "지난번 편지에서.."하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4, 5, 9, 14, 15, 17...의 편지-이것은 스쿠루테이프의 편지는 윔우드로부터 답장을 받는데 그 내용은 주로 환자에 대한 보고이다.
-둘째로 본론에 들어가서는 유혹의 실패의 원인을 설명하고 그 원인으로부터 다음 유혹의 주제를 끌어온다.
"네 환자가 기독교 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불쾌했다....성인이 되어 회심한 이들중에는 잠시 원수의 진영에 머물다가 다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 수백명도 넘으니까. 네 환자의 몸에 배어있는 습관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직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유리하지..(루이스. p 21)"
"지난번 내 편지를 읽고 느낀 바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환자가 지금겪고 있는 침체와 '건조함'의 골자기를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 한, 그의 영혼을 얻긴 글렀다는 건 똑똑히 알았겠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이용방안을 생각해보자...(루이스. p 57)"
-셋째로 악마는 그 유혹의 주제들을 인간에 접목시킬 때, 극단의 방법보다는 오히려 미적지근함의 방법을 사용하도록 장려한다. 이러한점은 루이스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부분인데, 예를 들어 스크루테이프는 웜우드에게 사색이나 논쟁이나 공포나 피곤등은 오히려 그 극단에서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붙잡게 되므로 이러한 행위들을 피상적으로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희망을 갖게하는 방법을 장려하고 있다.
예를 더 들어보면 네 번째 편지에서는 기도를 막을 수없다면, 스스로의 감정을 충족시키는 피상적인 기도에 빠지게 하라고 한다. 또한 다섯 번째 편지에서는 전쟁의 공포등에 의한 죽음에 대한 지나친 환기보다는 세속에 만족하며 살게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교회역시 교회에 아주 못나가게 하는 것보다는 교회를 구미에 맞게 고르고 적당히 나가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전부 연애기간에 시작될 수 있는 것들이야. 환자의 영혼을 확보하려면 소소한 진짜 이기주의보다는 정교하면서도 자의식이 강한 비이기주의의 초기 징후들이 결국엔 더 값진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다. 이런 징후들은 내가 설명한 것과 같은 종류의 악으로 꽃필 가능성이 농후하지.(루이스. p154)"
주님께서는 계시록 3장 15절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네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셨는데. 이처럼 인간은 극단에 있을 때 오히려 절망과 만남으로 소망되시는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가장위험한 지점이 되는 것이다.
-넷째로 악마는 위협적이기기는 하지만 결코 그리스도의 위엄을 손상치 못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편지마다 거의 악마는 패배의 신음을 하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혹자들이 우리의 제일가는 재앙이라면, 그 다음으로 큰 재앙은 결국 정보국의 실패다. 원수의 진짜 속셈을 알아 낼수만 있다면! 아 슬프기 그지 없구나 그 자체만으로도 협오스럽고 느끼한 그 앎이야말로 절대권력을 쟁취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조건이라는 가끔씩 나는 거의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 되곤한다.(루이스. p186)"
이렇듯 번번히 실패하는 스크루테이프의 신음을 듣고 있으면, 우리주님의 형언할 수 없는 위엄과 권능에 큰위로를 느끼기도하고 고위직의 품위를 지키고 쓰려고 앴는 스크루테이프에서 조소를 지어보게도된다.
-마지막으로 서언에서 '사랑하는 윔우드'에게라는 받는이와 편지를 마치면서 '너를 아끼는 삼촌' 이라고 쓰면서 스크루테이프의 서명도 이 편지의 형식이다.
'여기서 너를 아끼는 삼촌이라는 말속'에는 '마치 사탄사이에서도 사랑이 있는가? 스크루테이가 생각보다 의젓하다'하는 생각을 할수도 있겠지만. 22번째 편지에서는 윔우드의 환자가 결정적으로 예수님편에 서게되는 순간에 스크루테이프는 외형이 지네의 형상으로 변하게되고, 그의 편지는 스크루테이프의 비서인 '토드파이프'라는 악마다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31번째 편지에서는 패배를 확인 스크루테이프는 서언과 맺는 말에서 이전의 형식들과 달리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윔우드, 내 귀여운 것, 언제나 소중한 존재에게'와 '너를 더더욱 게걸스럽게 탐내며 아끼는 삼촌'으로 변형된 형식을 띄게하는데 이는 스크루테이프가 자신의 조카윔우드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는데 그것은 환자들을 악마의 편에 서게하는 사탄의 존재목적에 대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이 친근해보이는 선언과 맺는 말의 형식은 우리로 더욱 소름끼치게 한다.
3.편지속의 사탄의 특징
편지속의 사탄은 관료형 인간의 상징을 하고 있다.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인적으로 나는 박쥐보다-인간은 천사에게는 새의 날개를 악마에게는 박쥐의 날개를 달아주었는고 그들이 아는 유일한 영물인 인간의 형상을 악마의 상징으로 사용했는데 악마에게 박쥐의 날개를 달아준 것은 인간이 새보다 박쥐를 싫어하기 때문이다.-관료들을 더 싫어한다. 나는 경영의 시대이자 '행정'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제 가장 큰 악은 디킨즈가 즐겨 그렸듯이 지저분한 '범죄의 소굴'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제수용소나 노동수용소에서 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장소에서 우리가 보게되는 것은 악의 최종적인 결과이다. 가장 큰 악은 카펫이 깔려있으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흰 셔츠를 차려입고 손톱과 수염을 말쑥하게 깎은,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점잖은 사람들이 고안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느 당연히 지옥에 대한 상징으로서 경찰 국가의 관료조직이나 아주 비열한 사업을 벌이는 사무실 비슷한 것을 택하게 되었다.(루이스. pp 195-196)"
루이스는 사탄들에게 '심연부 차관'. '각하' '무능한 악마를 위한 교도소' 등고 같은 조직과 정비를 부여했고 악마들만의 신조어도 상상했다. 루이스는 악마에 대한 풍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1961년판 서문에 보면 그는 악마는 타락한 천사들에게서 기원되었으며, 단테와 밀턴 그리고 괴테가 상상하고 있는 악마상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루이스가 그려내고자 했던 악마를 그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상징은 악마들이 '악' 그 자체를 사심없이 추구한다는 터무니없는 환상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내 상징에서는 허깨비가 허용되지 않는다. 악한 천사는 악한인간처럼 실리밖에 모르는 존재이다. 그들은 두 가지 동기로 행동한다. 첫째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다. 전체주의 국가에 고문실이 있듯이, 내가 묘사하는 지옥에도 '무능한 악마를 위한 교도소' 같은 더 깊은 지옥이 있다. 둘째 동기는 일종의 굶주림이다. 나는 악마들이 영적인 의미에서 서로를 잡아먹을 수 있으며, 우리 인간도 잡아먹을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인간들의 삶속에서도 같은 인간을 완전히 제것으로 소화시키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강렬한 지배의 열망을 보곤 한다. 그들은 상대방의 지적인 삶과 정서적인 삶 전체를 단지 자신의 연장선상에 두고자 한다. 즉 자기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을 통해 자기의 증오심을 발산하며, 자기의 불만을 터뜨리고,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려드는 것이다.(루이스. pp196-197)"
결국 이책을 정성스럽게 읽은 사람이만 루이스가 그리고 있는 악마 스크루테이프에게서는 추호의 동정심과 호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악마들은 그들 속에서도 그리고 악마자신에게서도 악에대한 집착과 굶주림만 있지 진, 선, 미에 대한 빛은 조금도 찾을 수 없다.
결론
스쿠르테이프의 편지의 형식을 보면서 왜 루이스가 인간을 천상으로 인도하는 천사장과 천사의 편지나, 혹은 성령님이 천사들에게 보내는 편지대신 악마의 편지를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 답은 간단했다. 우리를 유혹에서 이기게 하고 천상으로 인도하는 편지를 우리는 이미 신구약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받았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인간이 피상적으로 그리고 희극적인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는 악마에 대해서 우리의 잠자고 있는 지성과 감성에 경종을 울리게 했다. 악마는 31편의 편지속에 담겨있는 유혹의 내용들 처럼 우리에게 너무나도 깊숙하게 침투해있는 것이다. 각각의 주제들중 22편부터는 독실한 신자에 대한 최후의 공격으로 유혹의 내용들이 조금더 복잡하고 정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루이스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악마의 몸부림이 강하면 강할수록 주님이 더욱 크게보이고, 악마는 더욱 초라하게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이스는 서문을 통해서 우리가 악마의 존재를 믿지않거나, 악마에 대해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쏟는 것을 주의하라고 한다. 또한 루이스는 악마는 거짓말쟁이인 것을 잊지말고 안전장치를 치고 있다.
루이스는 신학자이기보다는 문학자로 그 명성이 더하다. 악마에 대한 루이스의 상상력은 미묘한 신학적 문제에도 큰 걸림이 없이, 악마를 우리곁에서 인식하게 하는데 유용한 도구를 제시했다. 구름이 신자를 보호하고 악마를 막아버리는 모습, 악마나 분노중에 혐오스런 지네로 변화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조카를 삼키려는 스크루테이프의 진노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문학적 기교가 31편의 편지를 흥미있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유용함을 우리에게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대가를 우리에게 주기위해 그는 산고와 같은 문학자의 고민을 했다.
"나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증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요청이나 권고를 종종 받곤 했지만 수년동안은 그럴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이 책만큼 쉽게 쓴 책도 없지만, 이만큼 즐기지 못하면서 쓴 책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악마의 마음으로 비트는 일은 설사 그것이 아무리 쉽다고 해도, 결코 재미있거나 오래할 일은 못된다.(루이스. pp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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