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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지명 속 보물찾기 /남양주시 서정원
1.남양주 지명 속에서 식물과 나무를 찾아보세요
남양주시(南楊州市) -버드나무 고을
남양주 상징 : 소나무 . 개나리
와부 도곡리 갬벌(엄나무배기) / 와부 월문리 골안 (梨谷)-배나무골
잣봉, 백봉산 (柏峯山)- 잣나무
율석리(栗石里) 밤나무 / 내각리 밤섬유원지-밤나무
내곡리 임송(林松)-소나무 숲 / 진접 연평리(蓮坪)-연꽃
연평리 목화배미 / 갬벌 .가얌벌. 진벌리:(榛伐)-개암나무
진벌리 덤바께 또는 덤불바께 :논. 밭의 이름으로 덤불이 많아
진벌리 상납백이 .상나무배기 :들판에 향나무가 있어서
금곡리 화봉산(花峰山) :꽃이 많이 피어있는 산 봉우리
화도 금남리 닥박골:닥밭골>닥박골 –닥나무가 많아
사능리 향늑개들 .상늪개들 . 상녹개들 . 뽕나무들
배양리 꽃내미– 꽃나무가 많아서 / 진관리 밤나무골(栗木洞)-밤나무
진건 용정리 고리개.오리동(五里洞)-버드나무
:나루터-죽은 미루나무(枯柳浦) >고리개>오리동
진건읍 송능리(松陵):소나무와 능이 있는 마을
오남읍(梧南).오산. 오산동-오동나무
팔현리 괘라리(掛蘿). 과라리 – 다래나무
오남리 뽕나무골 . 청학리 잣고개
광전리 삼밭골(麻田)-삼
별내 덕송리(德松里) . 식송리(植松里)=싱근솔-소나무
별내 화접리(花蝶)=곶나리-꽃과나비
화접리 잣나무골 . 수동 송천리(松川)-소나무
송천리 소래비=솔봉 .송라.송라산(松羅山)-소나무
수산리 괘라리고개
:옛날 홍씨 선조가 이사올 때 칡 덤불에 걸려서 갓을 벗고 들어갔다 하여
冠(갓 관)나리 >괘나리(掛 걸 괘, 蘿 덤불 라)
수산리 꽃재(화현 花峴)-꽃이 많은 동네. 꽃이 많은 고개
조안 송촌리=松(송)村(촌) . 두촌 =豆村 .배나무용진.송송골.송신
호평동 느티울.느태울 –느티나무 . 평내동 잣골 .지금동=芝(지)錦(금)
지금동 갈옷내 –싸리나무와 참나무가 많아
2.지명 속에서 사람 및 동물을 찾아보세요
진관리 목동. 먹골 : 힘이 센 장사 나뭇꾼 이야기
시조 광릉 크낙새(천연기념물 197호)
덕소 말무더미(뱅께 .율계): 말 무덤에서 유래
덕소 우시장(장터거리)
도곡리 까치재 . 달걀봉 .동자골 . 말림(거북이등)-산 모양 .새재고개. 어룡
팔당: 팔선녀
월문리: 고래산(경산 鯨山) .구선동(九仙):9명의 선녀 앞산은 신선봉 .
말등바위: 월문4리 바위의 모양이 ..문곡(글개울):글 선생
율석리: 수리봉-독수리
장현리: 매봉산-매, 봉현(蜂峴)-벌우개.보루개>벌 .용소(龍沼 용숙깨미)
부평리:태학산(太鶴山). 광릉 수목원 :크낙새, 봉선사 하마비(下馬碑)
팔야리: 王宿川 (王山川)-왕
학림-鶴林 .黃林洞-황씨와 임씨가 살아
금곡리: 周谷(주리골.주유골) -두릅 多/ 주리를 틀어서/柳씨가 많이 살아
마석우리: 아래닭계(鷄田)-금계포란형
가곡리: 가곡(가오실)-지형이 가오리 모양
구암리: 매바위(응암 鷹岩)-매
창현리: 장현(누루너머.노루머리)-獐峴 . 황새머리(鶴首)
녹촌리: 鹿村-잣봉산에 사슴이 많아
步鶴골-마을 앞산이 학이 날개를 펴고 걸어가는 모양
사능리: 춘원 이광수 은거지
배양리: 배암굴. 뱀굴. 뱀골 –뱀 多
어은동(漁隱洞)-물고기 잡아 먹으면서 평온하게 지내는 마을
진관리:매바위-매봉재에 있는 바위가 매 모양
우전다리-우씨들이 살던 곳 ,예전에 우시장
신월리: 곰실부락(웅곡 熊谷, 웅실)-뒷산이 곰 모양
오룡골(五龍洞)-용 다섯 마리- 다섯 개의 능선: 마을뒷산 줄기
송능리 병랑소-적성골 남쪽에 있는 沼(소)로 :송아지가 무었인가 물고..
양지리 장자말 –부자들이 많이 살아
팔현리 용마바위: 龍馬 -바위에 지금도 용마의 발자국이 ..
형제바위: 남양홍씨 –서구. 주구. 우구. 응구 등 사형제
오남리 뒷간바위(장사바위) :어냄이마을 남쪽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재래식
화장실 형태로 옛날 장사가 이곳에서 대변을...
어남.어냄이: 御覽 > 어남(於南 > 오남(梧南) >임금
오남리 장재말 .장자말 :이 마을의 산세가 부자의 혈
별내 청학리:靑鶴 .동학굴. 동학동
청학리 박수고개 –변씨라는 사람이 산이 무너져 돌에 깔렸다 박석>박수 ...
정촌말:정씨가 많이 살아
용암리-용처럼 생긴 바위
수리봉-산의 형태가 독수리 =소리봉. 서리봉
광전리 임촌-任씨가 많이 거주
광전리 중말 :말에게 죽을 먹였던 곳, 죽말 > 중말
태봉(胎峰):왕자의 태를 묻은 산
퇴산(堆山);떤 힘센 장사가 흙을 날아다 쌓은 산 , 堆(언덕 퇴) =퇴산. 퇴봉
퇴뫼:높은산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독립적인 봉우리를 이룬 산
덕송리 장자밭:큰 부자가 될 터 (밭)
화접리 삼안(三安): 본관이 다른 안 씨 세 집안이 모여 살았던 곳
평양골(평양동.양지편)-양지 바르고 평온한 마을에 사자 모양을 한 사자바위
퇴계원
1.퇴계원(退溪院): 예종이 선왕인 세조의 능인 광릉에 참배차 행차하는데
교통이 불편하여 냇가를 길로 닦기 위하여 밖으로 물리 쳤기 때문에
=道濟院
2.퇴조원(退朝院):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환궁하던 중 이곳에서 삼각산의 세봉우리를 보자 분이 복 바쳐 다시 풍양궁으로 물러가 있었으므로
3.도제원: 양주군 별비면 지역으로 도제원이 있었기 때문.
수동 운수리 군안(群雁): 기러기, 9 번의 난리를 피했다는 九亂 또는 求亂
지둔리 광대울 :광대가 줄을 타다 떨어져 울고 가
송천리 석산 (돌산 ,宰相峰(재상봉): 돌이 多(다), 한 재상이 이산 봉우리에 올라가 마을의 수확고를 조사한 이후 ..
송천리 소래비(솔봉.송라): 신선이 놀던 곳
송천리 장자터 :부자터 ,옛부터 부자들이 살던 곳
송천리 학고개(하고개)-마을의 형상이 학과 같다하여
송천리 형제바위:장자터 서북쪽에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마치 형제 같아서
수산리 安馬山.內馬山: 철마산과의 연관, 안씨 성과 마씨 성을 가진 사람
내방리 비금계곡 :秘金(비금)-금 .秘琴(비금)-선녀
내방리 청룡말(가평안마산)=靑龍 -마을 뒷산이 청룡과 같이 생겨
외방리 남이바위:조선조 명장 남이장군이 국난에 대비 =팔걸이의자와 흡사
외방리 수리바위:다른 산보다 유난히 독수리가 많고 바위모양이 독수리
전지라골(전지라하골 ,전지동)-전 씨. 지 씨. 라 씨 .하 씨 성
祝靈山(빌령산).비랑산(非郞).비령산(飛靈山)
五得山(오득산)-멧돼지 5마리 .태조 이성계 사냥
입석리 황소터:가마소 동쪽 내로 황소가 빠져 죽었다, 또는 이 하천에 사는
메기가 황소를 잡아먹었다고 해서
조안면 능내리 :서원부원군 한확의 묘 .능내 마현(馬峴)
조안리(鳥安里):새 .새말. 조동(鳥洞).새울.새월.새재(조령)
고랭이(고안.사안):장마때 물이 고개를 넘쳐 흘렀고 물고기도 고개를
무너미고개 :장마로 홍수가 나자 문어가 넘어온 곳 >물넘이 고개가 변화
생사람고개: 원님들이 다니던 고갯길로 이곳에서 생사람을 찔러 죽여...,
진중리(마진+죽말+마들+조곡) 고려장터
진중리 마들(마뜰). 마재. 마현. 마진(진말).마진산성
마탄나루-변응성 장군 수원부사시절 .중리(중말.죽말)
송촌리 한음 이덕형 별서지(오성 이항복)
송촌리 변 협 묘 :조선 중기의 무신 / 변응성 묘 :조선중기의 무신
삼봉리 부엉배마을
시우리(時雨里)-신라 마의태자가 금강산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쉬어간 것
호평동 갈배자리들(갈보자리들); 갈보
>가마솥둥지 –기우제 >구룡터(구명터.구멍터.구녕터)>호만(好滿)-홈안
색시골: 옛날 양반집 새아기씨의 산소-새아기씨골>색시골
악사바리밭: 상명학원 전이사장 배상명의 묘지가 있는 밭
여우박골(여우막골): 여우굴이 많아 밤이면 여우 울움소리가 그치지 않아
청룡뿌리: 남양아파트 옆
평내동 궁집: 영조의 딸 화길옹주의 시집 >능성위 구민화
궁댁: 궁집 곁에 있는 집 > 궁녀 / 궁촌(宮村)-궁말 .궁평
장내마을 –담안에 .다만 . 牆內
내시촌: 조선 후기 고종을 모시던 내시가 살아
금곡동 : 어룡(魚龍골)
이패동 말미=마산+석포: 우영문 대장이 말을 끌고 다니다가 말을 쉬게 하고
먹이를 주었기 때문에 >이와는 달리 말을 밀고 디밀고 해서
명우(鳴牛): 한양으로 가는 언덕길, 우마차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소가 울어
이패동 왕자궁(王子宮):조선중엽 장현세자의 서자 은신군과 그의 생모 임숙빈의 묘를 쓴 뒤부터
-그 무덤의 주인이 고종황제 팔촌의 묘 ,지금은 이장
-어린왕자를 데려다 키운 곳
이패동 해질모루. 해질머리(日暮村): 왕자궁 동쪽 도로에 인접한 마을로 덕소우시장에 소를 팔러 갔다가 오는 사람들이 이곳 주막에서 쉬며 해 지는 줄 모르고 놀았다는 데에서 유래 또한 이 마을은 집들은 거의 없고 솔밭이 있어 도둑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시장 >소 팔고 >돈 >주막 >솔밭에 도둑
삼패동(三牌洞): 청풍김씨 신도비에서 유래, 김식. 김육. 김죄명의 신도비 3
기가 있기 때문에 삼패동이 되었다.(일패.이패동도 비석의 숫자에서 연유)
삼패동 궁안: 역말 동쪽마을로 영조의 일곱째 딸인 화협옹주와
부마 신광수의 묘를 쓰고 수직하는 궁을 둔 데에서 비롯(99칸짜리 집)
삼패동 쇠꼬리. 소쿠리. 平丘(평구) :마을의 모양이 소의 꼬리를 닮아
-마을 모양이 마치 소쿠리 또는 삼태기안 저럼 생겨서 전설로는 옛날 금송
아지가 산으로 도망쳐 동굴 속에 숨어들었는데 꼬리만 남았기 때문에
> 평구: 평평한 지역의 언덕 마치 박 넝쿨 처럼 흩어져 있다고 해서..
지금동(芝錦洞) 가운동(加雲洞) 가재(加在)울
-마을 주변 산의 형상이 가재와 같아 가재마을 또는 가재울
-마을 북쪽 안산에 가재가 많기 때문에 산물과 관련된 유래
-임금이 지나가다 휴식을 취하면서 “이곳은 가히 쉴만한 곳”이라 했다하여
수석동 학두들기 :들판에 학이 많이 날아온 데서
지금동 까치내 :지금동에 있는 빨래터로 따듯한 샘물이 사시사철 솟아나서
빨래터로 활용 이 우물에 미꾸라지가 많아 잡아먹기 위해
까치들이 많이 몰려들어
지금동 새마을 :지금동에 있던 공동묘지로 잡귀가 많다고 하여 집짓기를
두려워하던 곳, 자식 없는 할머니가 돌담집을 짓고 살다가
돌아가시면서 잡귀를 몰아갔다고 한다.
그 후에 집들이 한 두채씩 생겨 마을이 형성된 마을
지금동 분토골(안말), 외딴집계, 큰막족골> 작은막족골 :마을 모양이 삼태기, 수 십만평의 앞벌이 곡창지대 ,마을에 있는 9개의 바위가 동구릉을 향해 놓여있어 동구릉을 수호하는 바위
도농동 주막거리:도농역-도농사거리 옛날에 주막들이 즐비..
3.지명 속에서 강과 하천. 섬. 폭포. 우물을 찾으세요
덕소(德沼) .떡수 -한강에 큰 못
와부 도곡리 경석포: 鏡石浦
와부 도곡리 골우물: 골 안에 우물이 있다 하여
와부 도곡리 폭포말: 폭포가 있었으나 현재는...?
도곡리 문우골 :물이 많아 문우골 또는 글방이 많고 배우는 사람이 많아
와부 팔당: 댐 .바다나루 .바다이. 바대이 .바당이
와부 월문리: 九仙-앞산에 신선봉, 산꼭대기에는 좋은 우물 (선녀용)
-문곡 (글개울. 글계울)
진접 장현리: 용소(龍沼).용숙깨미
진접 내각리 밤섬, 천견산. 천점산(泉岾). 샘재(천현)
연평리 중포(中浦) .중포개 .원모루
팔야리(여덟밤이) :왕숙천(왕산천 .왕산내)
진벌리 샘말 . 금곡리 벼락소
화도 가곡리 소경우물. 쇄경우물
화도 답내리 신포(新浦).새개-수해로 새로운 개울이 생겨
신월리 마른개울(건천)
진건 용정리: 독정리(상.하)=웃독정.아래독정 ,
송릉리 병랑소 : 적성골 남쪽
오남읍 양지리: 여의천 (如意川)-개울 근처에 있는 마을
별내 화접 오형제연못, 샛말연못, 주을내
퇴계원(退溪院) : 신하촌(新河村)
수동(水洞) 雲水里
: 석수대-돌틈에서 물이 나와
: 섬말-수동천과 천마산에서 흐르는 냇가의 중심지역에 있는 마을 =島村
수동 송천리 장개울. 장천: 마을 앞 큰 개울
-수산리 물막골(수막)-물골안의 물줄기의 원천 ,바위소 .중소(무당소).
조안 두몽소-마현마을, 십리백사장, 송촌리 수늪이, 時雨里
금곡동 어룡골 :저수지
이패동 돌누께 (石浦)/ 수석동 미음나루=水邊里 / 지금동 까치내
4.지명 속에서 광산 등 산업시설 부지를 찾아라
덕소리 金臺山(금대산) =金垈山(금대산) 쇠터산 송장산
:마을사람들은 쇠터산이라 부르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동국여지지”와 같은 옛 문헌에는 모두 모두 金臺山(금대산)으로 기록 ,현재는 金垈山 >옛날에 금을 캐던 광산이 아직도 ...
*송장산 :옛날에 이 산에 송장을 많이 묻어서...
진접읍 金谷里(금곡리) = (쇠파니 ,쇠푸니)
-옛날부터 이 지역에 쇠가 많이 나서 쇠푸니 .쇠파니 즉 광산과 관련
鐵馬山(철마산) -철이 많고 모양이 말 모양 (쇠를 캐는 광산)
별내면 청학리 숫돌고개 :이 고개에서 숫돌이 난다 하여
금곡동: 돌팍고개 (돌작고개)
5.남양주에 한글산이 있다.
진접읍 장현리 전동 뒤에 산 ,이 산은 한글학회의 산으로 주시경과 최현배의 묘소 등 한글연구에 큰 역할을 한 이들의 묘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6. 옛 봉수대를 찾아라
-대이산 烽燧臺(봉수대)-연평리-양지리 경계
(포천> 퇴뫼산(363.7m) >국사봉(331m)>수락산(637.7m) >아차산
-수석동 토성
7.심봉사도 놀란 기적의 우물
-화도읍 가곡리 소경우물(쇄경우물):화도 가곡리(가오실)서쪽에 있는 우물
로 옛날 장님이 이 우물을 먹고 눈을 뜬 우물
-진건 용정리 독정리(독재이.독쟁이):풍양조씨의 시조인 조맹이 홀로
먹던 우물(견성암) :하늘 아래 하나 밖에 없는 우물
8.남양주에서 별을 딸 수 있는 곳이 있다
별내 용암리 비루개(벼루개 .별고개.星峴(성현):별을 딸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고개 밑에 있는 마을
진건 용정리 별말 –별마을 .星村(성촌):지세 동쪽 마을로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살림이 너무 어려워서 도둑이 들어도 무엇하나 가져갈 것이 없으므로 빈마을 .빈말. 빈촌 등으로 불리다가 개명
9.남양주에서 하늘을 만질 수 있는 곳은 ?
- 天摩山 . 天磨山 . 天麻山 . 天馬山 (812m)
10.남양주에 미아리가 있다
별내 廣田里 미아리<-> 彌阿里
이 마을 모퉁이에 미아바위가 있어 미아리라고 하였으며 산 밑에 있다
하여 산하마을 이라 칭하기도 한다.
11.연예인이 꼭 가지 말아야할 곳과 가야할 곳
수동면 지둔리 광대울 : 약200년전 이 마을의 통정대부 집에서 경연이
벌어졌는데 이 때 한 광대가 줄을 타다가 떨어져 울고 같다고
금곡동 舞垈(무대부락):옛날에 벼슬이 높은 조선 중엽 조한천씨가 지나가다가 경치가 매우아름다워서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쉬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흥이 올라 춤을 추고 갔다고 해서 ...지금도 마을 어귀에 그 장소에 느티나무가 있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일설에는 산대놀이를 하던 장소라고도 한다.
12.수 백년 전통이 있는 남양주의 주막집은 ?
-덕소 우시장 (장터거리)
-와부 월문리 선원(원터)-강원도 가는 원님들이 쉬어가는 곳
-진접읍 팔야리 왕숙천 >팔야리>광릉내(상권집중)
-화도읍 묵현리 (먹고개.먹갓.묵동) 院址(원지).원터: 춘천> 한양 가는 무인 지경 대로변-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편의제공
-화도 월산리(달미)점촌.점막: 춘천과 홍천을 가기 전 주막거리가 형성
-화도읍 차산리 盃基(배기) =잔터 :원래 우시장이었던 것이 변하여 마을
이 형성 ,약 50년전 까지도 이 지역이 술을 팔던 곳
-진건읍 사능리 驛村(역전마을 .역전).새술막 :예전에 주막이 있었던 마을
-진건읍 진관리 우전다리 :예전에 우시장
-진건읍 용정리 고리개 (五里洞) ;예전에 나루터였는데 죽은 미루나무가
많아 枯柳浦(고류포)
-퇴계원리 술막=酒幕(주막)-퇴계원역 앞에 있는 마을–조선시대 퇴계원은
각처에서 한양으로 가는 행인들이 거처 가는 곳으로 주막거리가 형성
-퇴계원 새술막 :현 퇴계원사거리 근처에 술막이 확장 새로 생긴 주막거리
-양정동 이패동 해질모루 (해질머리.日暮村(일모촌):왕자궁 동쪽마을로 덕소 우시장 소팔고, 해질모루에 와서 ...도둑 .술집,여자...
-양정동 삼패 역말 .역촌:마을 동쪽으로 중앙선이 지나가는 이마을은 한양에서 40리 거리로 평구역이란 역원이 설치 되었던 곳 ,마을 중심에 역원.역촌>조선시대에 한양에서 8도로 가는 도로에 설치 여행객의 편의 제공
-지금동 가운동 가재마을 :임금이 지나가다가 휴식을 취하면서
“이곳은 가히 쉴만한 곳”이라 하여 加在(가재)
-지금동 錦橋里:조선초 중엽 “금어”라는 조그만 개울에 있는 다리 “금교”
에서 유래 ,이 근처에 주막거리가 형성
-도농동:陶農洞 주막거리:도농역->도농사거리
13.술에 만취하고 싶을 때 가 볼 곳은 ?
-수동면 입석리 만취대 : 옛날 이곳이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여 장군들이 놀다가 술에 만취되었던 곳이라 하여 만취대(滿醉臺)
> 술에 취하면 가야할 곳
와부 덕소 산5번지 석실부락 醉石(취석)으로 남양주 지역에 있는 비로는
유일하게 송시열 이 짓고 쓴 글씨로 그 유래는 중국의 여산기에 “도연명이 거처하던 율리에 큰 돌이 있는데 연명은 술에 취하면 항상 그 돌에 올라가 잠을 잤다” <-> 醒石(성석)
14.남양주에서 가장 노름하기 좋은 곳?
와부 도곡리 노름바위
15.철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
-진건 배양리 어은동(漁隱洞):물고기나 잡아 먹으면서 평온하게 지내는 마을
16.세상사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이 꼭 가야 할 곳 ?
-화도 창현리 달길리 무시울 (무수정):조선시대 고관이 이 지역으로 낙향하여 정자를 세웠는데 그 정자 이름이 無愁亭(무수정)
-월문리 묘적골: 신라시대 학율대사가 초막을 치고 살았다 하며 화전민만 사는 고요하고 묘한 곳
17.남양주에서 최고로 살기 좋은 곳( 3가지 아름다운 곳) ?
수동 지둔2리 삼각골 .三佳골(삼가골):마을지형이 삼각형의 골짜기 형태로
1가:천마산의 수려함이 드러나는 山佳(산가)
2가:풍부한 계곡물로 나타내는 水佳(수가),
3가: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로 표현되는 人佳(인가)
18.남양주에서 곤궁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은 ?
-화도읍 녹촌리 궁촌(궁말.아랫말)<->上村(상촌.웃말)
:한말에 困窮(곤궁)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
19.남양주시 마을 중 최악부대는?
-양정동 일패동 최악부대>새마을동네
가난한 서민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살던 곳으로 최악부대라는 이름은
아마도 취락부락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20.서울에서 백리가 되는 곳은 ?
퇴계원 뱅이부락 –백리> 뱅이
21.남양주에도 섬마을이 있다.
-수동면 운수리 섬말, 한자로는 島村(도촌)
수동천과 천마산에서 흐르는 냇가의 중심지역에 위치하여 섬과 같다하여
-진접 내각리 밤섬 .알동산(왕숙천의 섬)
22.남양주시 땅 중 쓸 떼 없는 곳은 ?
진접읍 연평리 들판 “군계들” 이 이름의 근원은 갯벌 같다고 해서
또는 쓸데 없는 곳이라는 의미, 실제로 목화를 재배하던 목화배미 600평을 흉년 때 너무 배가 고파 팥죽 3그릇과 바꿔버렸다.
->지금도 그럴까요?
23.남양주시 최고의 부자터는 ?
-진접 부평리(富坪里) :뒷벌(후평).부동(富洞)=분토골..평촌=벌말
-연평리(蓮坪里)
-오남 양지리 벌말 (평촌 坪村)
-오남 양지리 장자말 :부자들이 많이 살아 현재도 갑부들이 많다고..
-오남 오남리 장재말(장자말):마을 산세가 부자의 혈에 해당
-호평.평내.양평.가평.평촌.......(평자 들어간 곳)
* 풍수지리적 관점
-화도 마석우리 아래닭계(계전)-金鷄抱卵形
-진건 신월리 豊耕(풍경)내; 내는 왕숙천
-별내 광전리(廣田里)-麻田(마전) 삼밭골
-별내 덕송리 장자밭:이곳에 장자가 될 터가 있다고 하여
-수동 운수리 唐豆坪(당두평) .벌群雁(벌군안)
-수동 송천3리 장자터 :부자가 살던 곳.
24.남양주의 학자. 현자들이 많은 곳
-와부 도곡리 문우골: 글방이 많고 글을 배우던 사람이 많아 文友골(문우골)
-와부 월문리 문곡(文谷) ; 글계울.글개울–글 선생 많고, 조선 중엽 문곡
이라는 유학자
-오남 팔현리;8명의 현자
25.무식한 사람이 꼭 가야할 곳은 ?
-화도 월산리 지현(지르네미=지름길)
한산 이씨가 모여사는 마을:智峴(지현)-슬기로운 고개
* 도현-지현을 오가는 지름길
26.남양주시에 동구릉을 수호하는 9개의 바위가 있다
-지금동 막작골
:마을 모양이 삼태기처럼 아늑하여 수 십만평의 앞벌이 있어서 곡창지대로 풍요로움을 과시하던 마을로 이 마을에 9개의 바위가 동구릉을 향해 놓여 있어 동구릉을 수호하는 바위라고 한다.
27.“철마산”의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수동 내방리 메주소
옛날 이 메주소가 있는 동네에서 어느 장수가 죽임을 당했는데 그 장사를 주인으로 여겼던 날개달린 말이 철마산으로 날아갔다.
또한 아기장수 설화를 바탕으로 추정해보면 아마 이 소에서 날개 달린 말이 솟아나와 철마산으로 날아갔다고..
28.보물을 찾아라 (남양주시 보물지도)
오남리 뽕나무골 :어냄이 마을 동쪽 골짜기로 뽕나무가 많아서...
이 곳에 절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중에 스님들이 피난을 가면서 모셔 두었던 금부처를 이곳 어디에다 묻어놓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남리 굴바위 (보물 비행기/동굴)이야기
어람마을 남동쪽에 있는 바위로 견성암과 통하는 굴이 뚫여 있는 바위로 중공군의 비행기가 이 바위 주변에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수동 내방리 秘金里(비금리): 옛날 이 마을에 숨겨진 금이 많이 있다고 하여 비금리 또는 秘琴里(비금리)-선녀와 거문고 ...
화도 창현리 신주바위: 옛날 난리 때 신주를 이 바위 밑에 묻었음
29.특정 성씨로 구성된 마을들
와부읍 덕소리 사계(세루):덕소7리에 있는 마을로 김.박.윤 세 性(성)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하여 “세루”라고 부르다가 이후 모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산다고 해서 沙溪(사계)로 바뀌었다.
와부 팔당리 남가골 :남씨 성/ 팔당리 방가골 :방씨 성
와부 월문리 다리골(중광.月谷):태종의 후손인 이인한의 선조가 낙향 하여
살았던 곳으로 이 마을에 이씨가 많이 살아 多李골(다리골)
별내 광전리 임촌(任村) :임씨가 많이 거주
별내 화접리 삼안리(三安里):본관이 다른 안씨 세 집안이 사는 마을
수동 내방리 안마산(安馬山:안씨 성과 마씨 성 )
수동 내방리 유가모이골(유개미골.유가묘골)
:유씨성을 가진 사람이 살다가 여기서 죽어서 >묘
장가죽은골(장개중골):수동 내방리 마을로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굴러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
전지라골(전지라하골.전지동):전 씨,지 씨,라 씨, 하 씨 집성촌
진접 금곡리 주곡(주유골.주리골):
1.삼면이 산 >두룹 多 . 2.주리를 틀었던 곳. 3.유씨가 많이 살아서
진건 진관리 우전다리 :벌말 서쪽으로 우씨들이 살던 것에 유래 또는 우시장
30.님아 부디 그 고개를 넘지 마오.
와부 덕소 득수리고개(득실이고개)
:율석리와 석실사이 고개로 옛날에 양반이 많이 살던 곳으로 이곳으로 수레를 끌고 지나갈 때 그 소리가 시끄러워서 양반들이 수레를 들고 자나가게 했다(신분차별)
덕소리 원수고개: 이 고개가 넘기 힘들어 원수고개
와부 도곡리 박작고개: 지게를 지고 오갈 때 힘이 들어 박하다 >박작고개
와부 도곡리 된고개: 주변 지형이 매우 험해서
평내 늘그리고개: 궁평>신촌 고개로 젊은이들은 넘어가고 늙은이들은 넘어 가기 힘들었기 때문에 >남녀노소 불문 허리가 굽어...
와부 월문리 수리넘어고개: 월문리-차산리, 유씨네의 비석을 수레로...
진접 팔야리 아작고개:학림과 중림사이 고개로 어느 흉년 때 어떤 농부가 너
무 배가고파 이 고개에서 자기 자식을 잡아먹고 말았다는데서 연유
또는 호랑이가 이 고개에서 사람을 아작 하고 잡아 먹었다고 해서..
진접 금곡리 덕고개 :금곡리->진벌리 고개로 홍역을 하다가 의식을 잃으면 이 고개 나무에 매달아놓고 죽었는지를 확인, “덕맨다”한데서 유래
별내 청학리 박수고개 :옛날에 변씨 라는 사람이 산이 무너져서 돌을 받아 깔았다는 이야기에서 박석고개>박수고개
별내 덕송리 덕릉고개(당고개):별내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서울로 나무
를 팔러 다녔다고,,,
퇴계원 말티고개: (馬峙고개.磨峙峴=마치현. 뒷고개. 공동묘지고개. 인산터 고개) >퇴계원 뒤편 <->화접리
수동 송천리 덕고개 :송라마을 북쪽 고개로 옛날 이 고개에서 마마에
걸려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태웠다고 한다.
조안리 생사람고개 :새말 북쪽에 있는 고개로 옛날 원님들이 다니던 고갯길로 이 고개에서 생사람을 찔러 죽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
호평동 덕고개: 평내역 서쪽 철로에 있는 고개로 옛날에 마마와 같은 전염병으로 죽은 아이를 바로 묻지 않고 덕에다 놓아두었다가 며칠이 지난 후에야 매장하는 풍습 >덕을 매던 고개
금곡동 동구리고개 ; 구 금곡역 위쪽에 있는 고개로 이 역에서 일패동 안곡으로 넘어가는 고개 로 가시덤불이 많고 고개가 둥굴게 굽어서 동구리고개
진건 진관리 막은고개: 양짓말 북동쪽고개(황새고개 위쪽)로 나라에서 이 고개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 구체적으로 고종 황제가 자신의 조부 묘소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 ...
진건 송릉리 북고개(서낭뱅이 .성릉고개. 송국):북쪽에 있으며 성릉에서
웃독정으로 넘어갈 때 이용하는 고개
31. 님과 함께 손잡고 넘는 고개 (걷기길. 올레길. 둘레길 ..)
와부 덕소 금대산고개(보리고개):덕소-도곡리
와부 덕소 염줄고개 *염줄은 사계 북쪽 골짜기
와부 도곡리 새재고개 :예봉산-적갑산
진접 내곡리 全道峙. 全道里
:영서 남쪽에 있는 마을 .고개 >도로가 온전
화도 마석 山城(산성)부락 :마을 중앙이 깊숙하고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성과 같이 생겼으며 사방에 성문과 같은 고개가 있어 또는 메재. 머재
화도 墨峴里 (먹고개.멋갓.묵동) 천마산과 마치고개 아랫마을로 옛날에 검은
갓을 만들어 팔았던 동네
화도 금남리 신당재(고개):한다리(백월리)마을 북쪽
진건 배양리 고재 (高峴):높은 고개
수동 수산리 괘라리고개
:옛날 홍씨 선조가 이사올 때 칡 덤불에 걸려서 갓을 벗고 들어갔다 하여 冠(갓 관)나리 >괘나리
오남 팔현리 掛蘿里(괘라리) (과라리. 괴라리) :다래덩굴에 걸린다...세종실록 세종2년 9월8일 기사에 보면 “상왕이 풍양북촌 괘라리의 산골에서 놀이를 하고 작은 잔치를 베풀었다”라고 나와 있다. 이 길을 넘으면 수동과 현리가..
별내 청학리 沙器幕(사기막)고개 :사기막(마당바위.場巖(장암)
별내 청학리 순화궁고개 –순화궁이 있는 고개 ,순화군이 묻힌 고개
청학리 잣고개:고개가 길어 잣 한 말을 까먹어야 넘을 수 있어(힘들지만.. )
수동 송천리 소래비고개 (솔봉.송라): 신선이 놀던 곳
수동 송천리 학고개 (하고개) :마을의 형상이 학과 같아서
수동 수산리 花峴=꽃재고개 :고개에 꽃동산이 있어서
마치고개; 평내 궁평-묵현리 먹갓으로 넘어가는 고개 엣 문헌에 이 고개는 馬峙峴(마치현) 또는 馬峙(마치) 등으로 기록 마을 사람들은 말터라는 이름을 함께 쓰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과 마는 모두 산 또는 산 정상 이라는 마리에서 나온 것으로 산 정상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가 있다.
금곡 구수고개:무대마을-율석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아홉계곡에서 물이 흐른다는 뜻으로 물이 풍부하다는 의미
금곡 돌팍고개(돌작고개): 옛날 강원도와 한양을 왕래하던 길목으로 돌이 굉장히 많아서 돌밭고개로 부르다가 >돌팍고개로 ...산 전체가 돌 ...
금곡동 쑥고개 (숫고개):어룡마을 서쪽에서 진건 사능으로 넘어가는 고개
금곡동 아르네미고개 :금곡->월문리로 넘어가는 고개
양정동 일패동 각골고개: 양정동-지금동 금교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는 이 고개 반대쪽에 길이 있었는데 춘천가도 국도를 낼 때 이 길이 아닌 반대쪽에 길을 낸 까닭에 걱구루고개 -> 각굴고개 > 각골고개
양정동 삼패동 호고개(홋고개):역말 남쪽에 있는 고개로 옛날 호곡산에 서낭당이 있었는데 이 서낭당에는 장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회가 나와 회고개로 부르다가 호고개 또는 홋고개로 불렀는데 정수장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지금동 수석동 언너머고개(은너머고개):도로가 되기전에는 언덕이 많아서 언너머로 예전에 내미음에서 가운동으로 넘어갈 때 이용하던 고갯길
32. 연인과 꼭 걸어 봐야 할 명상의 길
-명칭: 바랑골 명상길 >호평동 구 평내역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동쟁이절(독정리 절)이라 부르던 견성암의 스님이 바랑을 지고 호평동으로 넘나들던 골짜기 라고 해서 바랑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33.남양주에서 예술인 / 문학 / 서화의 향기를 찾아라.
와부 덕소 취석. 석실서원묘정비. 김창엽 ...
진접 부평리 봉선사 입구 춘원 이광수 기념비
(주요한이 비문을 짓고 김기승이 글씨를 썼으며 1975년5월29일 제막)
사능리 이광수은거지 :춘원 이광수는 1944년부터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돌배개”라는 책을 출판하고 봉선사 조실로 있던 팔촌형 이운허의 도움으로 봉선사에 머물며 광동학교에서 역사를 가르키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화도 마석우리 박두진. 박목월 과 함께 청록파의 한 사람인 조지훈 묘
화도 금남리 금대마을: 약400년전 전씨 일족이 만든 마을로 전 씨 일족 중에는 음율을 좋아하던 이가 있었는데 매일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고 해서 검터라고 부르다가 한자화하여 琴臺(금대)로 부르게 되었다
<금남리의 유래>
마을의 모양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왕녀처럼 생겨서 즉 산은 왕녀이고 북한강을 거문고로 본 것인데 이 마을이 남향이라서 금남리가 됨
수동 지둔리 광대울 .광대울고개
조안 두강(남.북한강)승유도 –이건필 .다산유적지. 실학박물관
금곡동 무대부락 :舞垈(무대)
양정동 삼패 김윤식묘. 김육묘 .김좌명묘 ...문신들
지금동 수석동 조말생 문신. 서예가의 묘.
겸재정선의 석실서원도 .삼주삼산각도 .윤선도 별서지
34.자연재해로 사라져 버린 마을들
도농동 돈대마을 :빙그레 공장이 있는 마을 로 1925년 대 홍수로 마을이
사라져 버렸다.
와부 덕소리 원덕(굴덕소):원래의 덕소, 한강의 큰 섬이 있는 곳>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침수->집단이주 >신촌(새말)
화도 월산리 新浦(신포)=새개울 :약200년전 수해로 새로 생긴 개울
진관리 문화촌: 밤나무골 북쪽마을 1964년 9월 수재민들을 수용하면서
만들어진 마을로 처음에는 난민촌이라 불렀으나 ...문화촌으로 개명
수해와 군부대 때문에 생긴 마을 퇴계원 新河村(신하촌)
:퇴계원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 군부대가 들어온 이후 하천변에 마을이 생겨 다리촌이라 불렀다. 그 이후 1964년 9월 큰 홍수로 마을이 전부 침수, 다시 마을을 만들면서 ...하천주변에 새로 생긴 마을
오남 양지리 삭다니(삭다리,골말):벌말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 마을
에서 화재가 나서 마을 대부분이 타버려서 “모두 타버린 마을 ”이란 의미의 싹탄리> 삭다리 또는 삭다니
진접 부평리 적십자 마을 :1964년 폭우 피해자들이 모여 이룩한 마을
35.자연재해로 속칭 땡 잡은 마을 /장소 ?
진접 내각리 알동산 (앞동산, 앞섬) :하루 아침에 마을에 섬이 생겼다면??
옛날 큰 장마에 이 산이 가평에서(1963년 이전은 입석. 내방. 외방리가
가평) 떠 내려와 이곳에 새 산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가평에서는 졸지에 산을 하나 잃어버린 것이다.
가평에서는 고민 끝에 공무원을 내보내어 매년 이곳에 와서 세금을 걷자
남양주에서는 필요도 없는 산에 세금을 내기가 억울하여 당시 현감이 가족끼리 고민을 하던 중 그의 손자인 아이가 그 광경을 보고 그 산이 필요 없으니 가져 가라고 하자 조부가 손자의 말대로 하니 가평에서는 다시는 세금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이 산은 모양이 둥굴고 보통 때는 한쪽으로 왕숙천이 흐르고 여름에는 물바다로 건너지 못하여 알동산 또는 앞섬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 :도담삼봉. 속초 울산바위....
36.세상에 이런 일이 “남양주시편” : 황당한 일 / 기적
덕소 득수리고개
도곡리 어룡부락 =금곡동 어룡마을
월문리 고래산 = 鯨山(경산) :골의산 골짜기의산이 변해 고래산
연평리 목화배미: 팥죽3그릇의 가격 =논 600평
부평리 살내벌(광릉앞 봉선사천) > 차수복
팔야리 아작고개; 호랑이 출현 >사람을 아작...
가곡리 소경우물 :장님이 이물을 먹고 눈을 번쩍
용정리 감바위:도둑소굴 >며느리 납치>부정한 행실 >...
진건 송릉리 병랑소 :소가 沼(소)에 들어가며 뭔가를 물고 들어가...
오남 양지리 삭다니마을 :화재로 마을 전체가 싹 타버려
수동 수산리 중소(무당소):예날 이곳에서 스님(중)이 소에 빠진 숟가락을
건지려다 빠져 죽었다고 하여 중소가 되었다
수동 입석리 황소터:가마소 동쪽에 있는 하천의 소로 황소가 빠져 죽었다고 해서 황소터, 또한 이 하천에 사는 메기가 황소를 잡아먹었다고 해서..
조안리 무너미고개:옛날 장마로 홍수가 나서 문어가 넘어온 곳
(문어가 아닌 물이넘어온곳>무너미고개)
37.천연기념물 제197호 크낙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진접 부평리 246-1번지 일원이 광릉 크낙새 서식지이다.
진접읍. 별내면. 포천군. 의정부시 등 5개 행정구역에 걸친 75만여평이 크낙새 서식지로 보호되고 있다.
원래 세조의 능인 광릉과 봉선사가 자리한 곳으로 조선시대부터 잡초의 채취까지도 금지될 정도로 능림으로 잘 보존되어 오면서 크낙새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어 더욱 중요하게 보호되고 있다.
38.남양주시의 천연기념물 / 보호수는 ?
덕소리 느티나무: 수령 300년 ~남양주32호
월문리 이곡마을 향나무: 수령220년~ 남양주 37호
월문리 묘적사내 보리수나무 :수령300년 ~남양주36호
율석리 목동부락 느티나무 33호 수령300년/ 개인주택 향나무 33호 310년
율석리 대동마을 향나무 :35호 310년~
내각리 내동마을 느티나무 :남양주12호
내곡리 영서마을입구 느티나무 ,남양주15~16호 220년
연평리 상수리나무 남양주14 .은행나무 :남양주9번-650년
연평리 와촌마을 은행나무 남양주13, 250년
부평리 봉선사 느티나무 :남양주 11
팔야리 검단마을 느티나무 350년 ,수령350년
가곡리 가곡초등학교 인근 은행나무 :남양주21 ,550년
가곡리 보광사 안 반송 남양주52 ,수령200년
금남리 느티나무 1. 2 남양주22. 남양주23
답내리 답동마을 남양주24, 500년
월산리 등정골마을 느티나무 남양주26 ,450년
진건 신월리 달음마을 느티나무 남양주46 ,380년
녹촌리 상촌마을 느티나무 남양주27, 350년
녹촌리 상촌마을 향나무 남양주28 .수령100년
차산리 광암마을 느티나무: 25호 450년
사릉리 해원사앞 느티나무 47호, 300년
진관2리 느티나무 48호, 450년
송능리 합다리마을 느티나무 :49호, 210년
양지리향나무: 양지 530번지 삭다니마을 ,천연기념물 232호, 수령500년
오남리 장자말 뒷동산 향나무 :남양주 38 ,수령500년
오남리 느티나무 39호 ,수령350년
청학리 주공아파트 은행나무 31호,480년
덕송리 덕능마을 느티나무29호
덕송리 흥국사 상수리나무 30호,400년
퇴계원 뱅이마을 느티나무 41호 ,400년
수동 운수리 감리교 교육원 느티나무 44호,300년
수동 지둔리 소나무군락 (11그루)45호, 350년
수동 지둔리 삼각골 시무나무 :42호 500년
이 종은 느티나무과에 속하는 변종 없이 단 한 종만 존재하는 희귀수종
수동 외방리 소나무 43. 수령 400년
수동 외방리 전지라골 은행나무 50,
능내리 봉안마을 느티나무 18번 ,500년
조안 조동마을 느티나무 20번 ,190년
송촌리 수종사 은행나무 17. 19 각 500년
호평동 아이파크아파트 느티나무 5, 300년
평내동 느티나무: 남양주 1, 500년
금곡동 무대부락 느티나무:4, 수령300년
지금동 가운 가재마을 엄(음)나무: 51 ,수령 300년 된 당산목으로 신성시
뿌리에서 세 갈래로 나뉘어 길게 뻗어나가는 줄기 중 한 줄기는 심하게
휘어 지면에 닿아 뿌리가 생겨나 있다.
수석동 느티나무 두 그루 , 남양주 3 . 7 / 수석동 은행나무 2,
지금동 느티나무 :420년
39.우리시 시찰용 CCTV 설치 어디가 좋을까요?
:가운동 안산보루(案山堡壘) *堡(작은 성 보)- 둑. 제방 壘(진 루)-성채 진
안산은 가운동 산 50-1번지 해발 128.8m 독립된 구릉으로 높지는 않지만 정상부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수성리 토성과 한강유역 서족으로 아차산 북쪽으로 퇴계원까지 조망되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
:별내 광전리 國賜峰(국사봉)보루 :광전 산 81,산95일대(수락산 동쪽지붕)
해발331m
40.콩밭 매는 아낙네가 가장 좋아하는 밭은?
와부읍 덕소리 개집대 공수밭(밭매기가 수원하다 하여 공수밭)
41.콩밭 매는 아낙네가 가장 싫어하는 밭은?
덕소 기둥이벌(기댕이벌)로 그 이유는?
덕소저수지 북서쪽 들판으로 덕소에서 가장 큰 들판
광전리: 얼마나 넓길 래...
수동 당두평 :당나라 콩밭만큼 넓어서
42.“사랑과 영혼” 남양주시 편 (도자기. 옹기. 기와)은 ?
와부 (瓦阜) :기와를 만드는 언덕
와부 덕소리 점말 : 옹기
와부 도곡리 :질그릇 즉 옹기를 만드는 계곡=도곡(陶谷)
와부 도곡리 기와골 :기와
와부 도곡리 도심부락 .(도경):도곡4리 옛날에 질그릇 –>도산리.도경
진접 연평리 瓦村(와촌.와말)부락 :기와
진접 팔야리 陶谷(도곡) .독점마을 :독.옹기
별내 청학리 砂器幕(사기막):사기그릇
조안 송촌리 점마을 ;옹기 / 호평동 구슬막 :평내역 남쪽
양정동 일패 가마골 :옹기를 굽던 가마 / 陶農(도농)동
43.아주 특별한 전통적인 남양주의 특산물은 ?
남양주시 전역 : 천마.철마.축령......산(시면적의 67%가 산)-산채나물
와부 덕소리 금대산 (쇠터산): 金(금)
월문리 골안 .梨谷(이곡)=배나무골
와부 율석리 ;밤
진접 장현 봉현부락(벌우개.비리개.보루개):양봉.한봉
진접 부평리 와요지(瓦窯址):부평리 산67-1일대 :기와
진접 내각리 밤섬 :밤 / 林松(임송):조경용 소나무
진접 연평리 목화배미.목화배기 :목화 .연근 (요연평=연평들.풍양들)
진접 진벌리 :헤이즐넛 =개암
화도 구암리 진벌(榛伐)=헤이즐넛=개암
진접 금곡리 가마솥골 :숯을 만드는 가마솥
진접 금곡 주곡 (주리골.주유골):두릅
진접 금곡 가마솥골 花峰山(화봉산):양봉,한봉
화도 마석우리(磨石隅里)=맷돌모루
화도 묵현리(먹고개.먹갓.묵동):검은 갓
화도 금남리 닥박골:닥나무 ->한지생산
진건 사능 향늑개들(상늪깨들. 상녹개들. 뽕나무들):양잠
진건 배양리 꽃내미(安道里):꽃나무가 많아서 꽃내미-양봉
배양리 漁隱洞(어은동)물고기 잡아 먹으면서 평온하게 지내는 마을 :매운탕
진관리 목골. 木洞 .먹골 :법골 동쪽에 있는 마을: 장작
:옛날 이 마을에 힘이 센 장사가 살았는데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만 해와도 말 4~5마리가 짊어지고 갈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이 마을을 “나무를 많이 해오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란 의미의 목골 또는 목동이 되었다.
진관리 밤나무골(栗木洞): 밤과 양봉
梧南邑 :오동나무 장롱. 악기 >오남 가구단지
오남리 뽕나무골 :양잠
오남 수사골:약초-어린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먹는 염사라는 약초가 자생
오남리 숫돌모루 :숫돌
백봉산 :잣 / 별내 화접 잣나무골 ;잣
별내 광전리 삼밭골(麻田) -대마, 삼베
水洞(수동): 물=광천수
수동 지둔리 돌모루(石隅洞=석우동) -돌이 많아 ...석산
수동 수산리 花峴=꽃재 :양봉
조안 송촌리 豆村 (배나무용진.연개.평촌):콩.배
조안 삼봉 아양부락: 조선 중엽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목장형식으로
양을 길렀던 곳
지금동 갈옷내 :싸리비. 삼태기 >싸리나무와 참나무가 많아 숲을 이루었으며 옛날 이성계가 커다란 싸리나무를 베어 대들보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도농동 야말 . 중말(중촌):양어장
:미금초등학교 남쪽 마을로 약200년 전에 연못이 있어 양어를 하였다 하여 양어말 >야말, 중촌은 도농동의 중심에 위치한다 하여 중말
44.남양주시 최초의 수확량 등 통계조사 방법(세무조사)
수동 송천리 석산(돌산 또는 宰相峰(재상봉))-송라산 남서쪽 화도읍과 경계지역이며 돌이 많아서 돌산 또는 석산 이라 부른다,
또한 옛날 한 재상이 이 산봉우리에서 근처 마을의 수확고를 조사한 이후로 “재상이 올라갔던 봉우리”라는 의미의 재상봉
45.집안에 자손이 귀하면 이곳으로 가시오 ?
:수동면 외방리 홍구세굴-조선조 홍씨성을 가진 판서가 늦도록 후세를 잇지 못해 애를 태우던 중 영산인 이곳 축령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지성으로 발원기도를 한 결과 후세를 잇고 자손대대로 가문이 번창
46.남양주 최초의(?) 납골묘는 ?
일패동 봉두메(鳳頭머리) 봉사골의 전설에서 찾아보면 뒷산형태가 봉의 머리, 뒷산바위에 큰 매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지명
그 인근에 봉사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현 동일자동차학원 근처로 옛날 이곳에 많은 땅을 가지고 있던 부유한 집안이 가세가 기울러 땅을 거의 팔게 되었고 결국 묘자리 조차 부족해 조상의 묘를 한곳에 썻는데 이로 인하여 그 집안은 완전히 몰락 하였다고한다. 사실일까?
47.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디로 피해야 할까요?
와부 율석리 피사골:옛날 이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왔었고 그 피난민과 군인들이 이곳에서 많이 죽었기 때문에 피난와서 죽었다는 의미의 피사골(避死(피사)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수동면 운수리 군안(群雁)부락은 옛날에 아홉 번의 난을 피해 피난을 했다하여 구난(求亂)이로 불리다가 군안으로 변경 또한 마을 앞에 망군석이 있고 기러기 떼가 많다하여 군안...
48.우리시 하천 중 가장 수질이 좋은 곳은?
와부 도곡리 경포=鏡浦 (경석개)-냇가의 바위가 강물에 비치는 동네
49.우리시 지역별 기우제 방법/ 가뭄 극복 방법
-진접 장현리 용소/용숙깨미에서 기우제 지내는 방법
:가뭄이 심할 대 이곳의 물을 키에 담아 까부르면 비가 온다고...
-수동면 수산리 바위소 (비하소):화현마을 동쪽에 있는 냇가의 소로 비가 오지 않을 때 아낙네가 이곳에서 키질을 하면 3일안에 비가 왔다는 이야기
-호평동 가마솥둥지 :호평동 게곡 중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바위로 좌우로 갈라진 바위 사이가 큰 가마솥을 얹을 만하다 해서 “가마솥둥지”
> 이 지역은 가뭄이 들 때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는데 온 동네 부녀자들이 키를 들고 이곳으로 와서 키로 물을 퍼서 끼얹으며 비가오기를 기다렸다 가뭄이 심한 해에는 몇 번씩 키질을 하기도 했으며 키질을 마치고 내려오면 젖은 키가 채 마르기도 전에 비가 오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청제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별내 화접리 오형제 연못 (샛말연못):이 지역에 물이 귀해 다섯 형제가 연못을 각각 만들어 놓았다 하여 오형제연못 샛말에 있다고 하여 샛말연못
50.남양주의 전통적인 수방(재해)대책은 무엇일까요?
-집단 이주 >예를 들면 원덕소 >신촌
-화도 답내리 신포(새개):홍수로 새로운 개울이 형성 >그대로 존치
-진건 진관리 수살막이 :양짓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 들판으로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주을천(현용암천)이 곧장 이 지역으로 와 水殺(수살)이 있어 마을에 해를 끼치므로 이곳에 느티나무를 심어 살막이를 한 지역이기 때문에 수살막이라 부른다.
-총사업비 700냥으로 만든 제방 :칠백냥둑
:지금동 과 진건 배양리 경계를 이루는 둑의 이름으로 조선후기에 황무지를 논으로 개간하면서 보의 제방을 칠백냥을 들였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51.묘적천이 월문천이 된 사연은 ?
월문천은 묘적산에서 발원하여 덕소에서 한강과 만난다.
때는 을축년 대홍수로 갑산에 대형 산사태가 일어나 나무가 뿌리채 큰 바위와 토사가 산 통째로 내려와 묘적천 중간을 가로 질러 막음으로서 냇물이 좌우로 분류되어 양편으로 새로운 하천이 형성되어 이 하천을 월문천이라 하였다.
52.남양주시에 소나무를 심어야 했던 이유는 ?
조안 송촌리 송송골(송신)에서 그 연유를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 진시왕이 장수 이여송을 조선에 보낼 때 ,송자가 붙은 마을은 가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것을 전해들은 한음 이덕형 대감이 직접 이 마을에 송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 바로 송송골 , 그 이유가 뭘까 ? 松
53.“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거늘..
조안 진중리 마탄나루 –변응성 장군이 수원부사로 있을 때 하도 바뻐서 말을 탄채로 배에 오르고 말을 탄채로 강을 건너 이곳 나루를 마탄나루.
그렇다면 변응성 장군은 왜 그렇게 바뻤을까요?
:조안 진중리 마재 (馬峴):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변응성이 수원부사로 있을 때 이곳 마진부락에서 살았는데 부친인 변협이 노환중이라 이곳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말을 타고 넘던 고개를 마재라고 한다.
54.일심동체 그러나 색 다른 맛 ?
“眞露” 마실까? “참이슬” 마실까?
-남양주 / 버드나무골 . 와부 / 기와골 . 오남 / 오동나무골
-수동 / 물골안 . 와부 금대산 / 쇠터산 . 우시장 / 장터거리
-와부 도곡리 내동 / 안골 . 상리/ 윗마을
-월문리 경산/ 고래산 . 월곡/ 다리골 .문곡/ 글개울 .이곡/ 배나무골
-차산리/ 수리넘어고개 . 백봉산/ 잣봉산
<진접> 봉현/벌우개 . 내곡/ 안골 . 와촌/ 기와마을 . 후평/ 뒷벌. 평촌/ 벌말
신촌/ 새말 .하촌/ 끝재말 . 도곡/ 독점마을. 팔야리/ 여덟밤이.
진벌/ 갬벌. 간촌/ 샛말(사잇마을)
<화도> 마석우리/ 맷돌모루 . 묵동/ 먹갓 .원지/ 원터 .응암/ 매바위.
외구운/ 바깥구운. 신대/ 샛터 .장현/ 노루머리. 학수/ 황새머리 .답동/논골
신포/ 새개울. 월산/ 달뫼. 상촌/ 웃말 .광암리/ 넓은바위. 배기/ 잔터
차유령/ 수레너머. 양현/ 두고개
<진건> 역촌/역전마을 .율목동/ 밤나무골.웅곡/ 곰실 .신촌/ 새말 .성촌/ 별말
<오남> 평촌/ 벌말 .신능골/ 새능골
<별내> 장암/ 마당바위 .응달촌/ 응달말 .성현/ 별고개(비루개)
광암/ 넓은바위.마전/ 삼밭골 . 식송리/ 싱근솔
<퇴계원> 주막/ 술막 .내촌/ 안말
<수동> 도촌/ 섬말(섬마을). 석우동/ 돌모루 .석산/ 돌산 .화현/ 꽃재
수막골/ 물막골 입석/ 선돌
<조안> 조동/ 새울.새월 마현/ 마재 (말재.말고개)
<평내> 장내마을 / 담안 .신촌/ 새터. 새터말
<양정동> 답곡/ 논골 .안곡/ 안골 .일모촌/ 해질모루
<지금동> 荒谷(황곡)/ 거칠뫼. 거칠매
55. 남양주 전설 따라 삼천리
1)와부 도곡리 동자골의 전설
:이 마을 남쪽 골짜기에는 무덤이 있고 그 앞에 동자석이 있다
옛날에 이 무덤 주인이 장가도 가기 전에 벼슬을 했기 때문에 동자석을
세웠다고 한다.
2)와부 도곡리 말림. 거북이 등에 관한 전설
:도곡리 경포(경석개)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예전에 왕의 스승이 죽어 상여를 들고 가는데 그 명정이 이 산으로 날아와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이곳 땅을 사서 산소를 만들었는데 훗날 이장을 하려고 산소를 파보니 시체가 썩지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전설이다.
말림.거북이등 이라고 불리는 것은 산모양이 거북이모양이고 풍수학 상으로 이 산의 머리 부분에 비석을 세워 거북이가 기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3)송천리 구제비골 =부자터-옛날부터 큰 부자들이 살던 곳이었는데 큰 지네가 나타나 마을사람을 모두 잡아먹어 마지막 한 처녀가 남았는데 그 처녀마져 잡아먹으려 할 때 벼락이 내려 딋 산이 무너지고 지네는 깔려죽었다.
송천리 며느리바위 :진접 금곡리 벼락소 유래와 비슷
4)내방리 메주소의 전설 : 이 동네에서 어느 장사를 죽였는데 그 장사를 주인으로 여겼던 날개 달린 말이 철마산으로 날아갔다 (아기장수 설화)
> 이 소에서 날개 날린 말이 솟아나와 철마산으로 날아갔다는 이야기
5)이패동 마산(馬山) 또는 절골 –이패동에 있는 마을 이름
조선초기 홍판서 묘가 있었는데 그 묘가 준마의 형상 ,절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홍판서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로 홍판서가 권력을 휘둘러 친구의 원한을 사게 되었는데 홍판서가 죽자 그 원한을 품었던 친구가 폐가가 된 자리를 명당자리라고 속이고 묘를 쓰게 하여 홍판서 집안은 기울게 되었다.
홍판서 집안에서는 가세가 기운 것이 산소 옆에 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절을 허물어 버렸다
이 절의 규모는 쌀을 씻은 물이 한강에 이를 정도라고 ...지금도 그 흔적과 기와조각...
6)와부 도곡리 무내미고개의 전설
:도곡리 군벌은 도곡리의 논밭의 이름으로 예전에 군대가 주둔했던곳이다.
이곳 동쪽에 무내미고개가 있는데 옛날 어떤 절 밑에 부자가 살았는데 중이와도 시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중이 말하기를 “물이 흐르도록 따을 파면 더 부자가 될 수 있다”하여 땅을 파다가 산에서 피가 나자 그만두었다. 이때 물이 나오려다 말았다고 하여 “무내미고개”
7)수동면 송천리 구제비골(부자터):구제비(산제비)가 이 골짜기 근처에서 새끼를 많이 낳는다고 하여 구제비골 ,부자터는 옛날 이곳에 큰 부자들이 살았는데 큰 지네가 나타나 마을 사람을 모두 잡아먹었다.
마지막 남은 한 처녀 마저 잡아 먹으려 할 때 하늘에서 벼락이 쳐서 뒷산이 무너지고 지네가 깔려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부자들이 살던 곳이라 하여 부자터라고 불렀다고 한다.
8)진접 장현 봉현(벌우개.비리개.보루개)에 대한 전설
세조는 자신의 묘 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직접 땅을 돌아보던 중 불길한 땅에 묘 자리를 쓰고 있는 상주를 만났다.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가 300냥을 주면서 “다른 곳으로 이장하라”
하고 묘 자리를 잡아준 사람을 물으니 바로 자신이 찾던 이생원이라는
지관이었다.
세조가 기이하게 생각하여 그에게 물으니
“그 근방에 길지가 있지만 현 장지는 당장 300냥의 큰 돈이 생기므로
가난한 상주에게 금시발복할 자리를 정하여 주었다.”고 하였다.
이에 감탄한 세조는 “당신같이 잘 아는 사람이 왜 산골에서 이 고생을 하느냐”고 그의 집을 보고 물으니 “국왕이 친림 하실 곳이므로 이곳에 산다”
며 백배사죄하였다.
이에 이생원의 능력에 감탄한 세조는 그와 동행하여 현재의 광릉을 능 자리로 정하였다.
그 뒤 광릉에 능을 만드는데 그곳에서 큰 벌이 나올 것이라 하여 주관하는 지관이 지금의 장현리 벌우개로 대피하여 큰 독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과연 능을 파기 시작하자 곧 큰 벌이 나와 쫓아 왔으나 큰 독을 뒤집어 쓴 지관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부터 이 동네를 벌우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9)장현리 용소. 용숙깨미에 대한 전설
;장승부락 서쪽에 있는 연못으로 광릉 검문소 못미처 왼쪽의 작은 산봉우리 아래 용소와 용바위가 있다.
옛날부터 이곳에서 천하를 호령할 장수와 용마가 난다고 했는데 이곳에 용마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용마를 타고 천하를 호령할 장수가 나타나지 않아 .
이에 용마는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여 이곳 용소위에 있는 용바위 위에서 하늘을 향해 크게 세 번 울고는 바위 위에 발자국만을 남기고 물위로 뛰어 들어 죽었다고 한다. 이후 용마가 빠져 죽은 소라고하여 용소 또는 용숙깨미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용소는 매우 깊은데 바위굴을 지나 덕소강까지 이어져 있어 그 길이가 명주실 한 타래가 다들어가도 모자랄 정도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가뭄이 심할 때면 이곳의 물을 키에 담아 까부르면 비가온다는 말도 전한다.
10)부평리 “살내벌”의 살벌한 전설
:살내벌은 광릉앞에 벌판의 이름으로 옛날 차수복이라는 사람이 임금의 능에 참배를 하러가는데 부채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그냥갔다.
이에 임금에 대한 불경의 죄를 지었다고 해서 차수복을 동구밖에서 참수하려 하였다. 그런데 차수복은 동구밖까지 춤을 추면서 끌려갔다.
그때 마침 임금이 능에 참배를 하고 내려오다가 이를 보게 되었다.
임금은 곧 참수를 당해 죽을 사람이 희한한 춤을 춘다고 해서 차수복을 살려주라고 명을 내렸다. 뿐만아니라 부채도 하사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차수복이 춤을 추었던 장소를 임금이 “살려줘라”고 한
연유에서 살내벌, >현 봉선사천
11)진접읍 금곡리 벼락소의 전설
:하늘로 올라가던 용이 벼락을 맞고 떨어져
:벼락이 쳐서 바위가 쪼개져서 이 연못 깊은 곳으로 떨어졌기 때문
:옛날 신감역이라는 부자가 살았는데 아주 인색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동냥하러 온 중에게 쇠똥을 퍼서 주었는데 이를 본 그집 며느리가 안타까운 마음에 쌀 한바가지를 시주했다.이에 중이 말하기를 “돌아보지말고 나를 따라오라”하여 뒷산으로 따라 올라가는데 갑자기 천둥소리가 나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때 며느리가 겁이나서 뒤를 돌아보자 자기집은 벼락을 맞아 불이 붙었다가 쏟아져 내린 폭우에 깊은 못이 되어버렸다.
가족들은 모두죽고 며느리 역시 뒤를 돌아본 까닭에 그만 바위가 되어버렸고 그 집터는 벼락을 맞아 소가 되어..= 수동 송천리 며느리 바위의 전설
12)진건 사능리 향늑개들(상늪개들.상녹개들.뽕나무들)의 전설
:향득개들은 사능1리 들판으로 옛날 숙종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말발굽이 붙어서 꼼짝할 수 없게 되자 안터 효자궁 산소에서 향을 피웠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뽕나무가 많고 늪이 많아 질척질척....
13)진건 용정리 감바위(반바위)의 전설
:고려 태조 때의 이야기다.
이곳 인근 산에 대적굴이라는 도둑의 소굴이 있었는데 어느날 이 바위앞을 지나가는 예쁜 신부를 잡아다가 도적두목의 부인으로 삼으려 하였다.
이에 신부가 꾀를 내어 말하기를 남편과 시부모님이 이 일을 알게되면 후환이 있으니 먼저 내가 가서 그들을 죽이고 다시 오겠으니 잠시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하여 그들이 허락하니 집으로 무사히 올 수 있었는데 그러나 집에서는 오히려 부정한 행실을 하고 왔다고 쫗아냈다.
쫗겨난 신부는 이 바위아래에서 기도를 드리고 비녀를 뽑아 바위를 내리치자 바위가 갈라졌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이 바위를.......
14)진건 용정리 오룡골의 전설
:용과 우물+독정 >오룡골 –다섯마리 용에 대한 이야기
옛날에 용 다섯 마리가 이곳으로 내려 왔는데 승천은...?
마을 뒷산 줄기가 마을을 향해 다섯 갈래로 뻗어 나왔는데 풍수지리학상
용이 뻗는 것과 같다는 데서 유래
15)진건 송능리 병랑沼(소)에 대한 전설
:적성골 남쪽에 있는 (약대울천-사능천)소로 송아지가 이 소로 들어가면 뭔가 물고 들어간다는 이야기 ,뭘 물고 들어갔을까요?
16)오남 양지리 새능골(新陵골. 鳳陵골(봉릉골)이야기
:새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태조 이성계가 진접 내각리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능자리로 정했던 곳>신릉골 또는 새능골로 불렀으나 릉 자리가 좁아 광릉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릉 =鳳陵村 >御覽(어람)=어내미의 유래
17)오남 팔현리 용마바위의 전설
:원팔현 동쪽 하늘거리 봉우리 아래 약300m 지점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바위가 용마바위이다 옛날 에 용마가 바위를 밟고 갔다는 이야기인데 지금도 이 바위에는 그 용마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18)오남 팔현리(벌안)의 전설 (현자는 선녀를 좋아한다)
:관련:억바우(낙암동). 용마바위.형제바위.발현재
원래의 팔현마을로 팔현1리 지역이다.
벌판 안쪽이 되므로 벌안 배라니.배래니라고 불렀다.
조선조 유명한 유학자인 점필재 .김종직과 망세정 심선 등 여덟명의 선비가 항상 이곳에서 만나 강론을 하였다 하여 여덟 현인이 은거했던 마을이라는 의미의 팔현리가 되었다.
또한 이곳은 여덟명의 선녀가 마을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가 ...
그래서 이들 팔현자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팔현재(발현재)가 있다.
19)오남리 장사바위 / 뒷간바위의 전설
어람마을 남쪽에 있는 바위로 바위 모양이 재래식 화장실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 한편 옛날에 어떤 장사가 이곳에서 대변을 보았다고 해서 장사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20)수동천 달래강 남매의 전설
태동고전연구소 밑에 있는 소로 보통 달래강으로 부른다
여기에 안타까운 전설이 있는데 ... 홀아비와 남매간에 얽킨...
56.남양주에서 가장 諧謔(해학)적인 동네는 ?
*호평동: 가마솥둥지.구룡터(구명터.구멍터.구녕터).벌말(평촌)
*나무 홈 > 홈안(농수로) > 好滿(호만)
:호평동 갈배자리들(갈보자리들)-벌말과 구룡터 사이에 있는 들판이름으로 호평동에서 가장 넓은 논 지역이다.
가뭄에 물이 마른 수로라는 의미로 가뭄이 들면 모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생긴 이름, 그렇다면 뭐가 해학적인가요??
또한 평내동과 관련하여 확장하여 보면
:평내동에는 궁댁이 있고 궁집이 있고 궁촌(궁말.궁평)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 “내시촌”이 있으며 담장(장내부락 / 담안)이 확실히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내시촌은 장내마을 에 있는 가옥의 이름으로 큰 느티나무 바로 뒷집으로 조선후기 고종을 모시던 내시가 살았었다고 전한다.
57.수락산 이야기
-태조 이성계는 수락산의 모든 봉우리가 서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하면서 서울의 수호산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높이 638m 로 산이 전부 석각으로 되어 있어 비가와도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떨어진다는 의미의 수락산이 되었다.
58.별내 청학리 옛성산(古城山 . 퇴메산)이야기
별내 청학리.광전리와 진접 내각리의 경계 산으로 높이는 371.8m 이며 을지문덕장군이 쌓았다는 옛 성터 혹은 옛 봉화터가 있어서 예성산=한자식으로 고성산 한편 임진왜란 당시 성을 쌓았기 때문에 옛성산 >차차 부르기 쉬운 예성산으로 와전- *관련 이야기
-용암산이 아침에 해가 늦게 뜨고 저녁에는 일찍지어 응달>응달말
-별내 용암리 거묵골.거묵굴-숲이 우거져 마을이 거무스름 (응달) ,
이와는 달리 옛날에 큰 먹이 나와서
-광릉산 아래에 위치한다하여 광릉 굴 ->장현 수리봉. 소리봉. 서리봉
59.별내 광전리 胎峰(태봉)/퇴메/퇴미/퇴뫼 이야기
*관련 이야기: 국사봉보루. 퇴뫼산성. 퇴계원
-태봉마을 동쪽 산으로 이곳을 옛성산까지 포함하여 퇴뫼산으로 부른다.
-왕자의 태를 묻어 “태가 묻힌 산”=태봉
-어떤 힘센 장사가 흙을 날아다 쌓은 산 곧 퇴미=갈라져 나온 산(堆山.퇴봉) >높은 산 줄기가 뻗어나와 독립적인 봉우리를 이룬 산 즉 광릉산 소리봉 .용암산. 천견산 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옆으로 뻗어나간 산이 퇴뫼산
60.별내 덕송리 남아리골 이야기
*관련 이야기: 덕동. 덕릉=덕흥대원군. 植松里. 유골(묘꿀. 墓洞). 장자밭
:식송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이곳에 좋은 산소 자리가 있는 것을 알고 타인이 알지 못하게 속였다고 남 알지 못하게 속였다는 듯으로 이렇게 부른다.
61.별내 화접리 주을내(주을동) 이야기
화접리에 있는 마을로 용암리. 화접리. 퇴계원리를 흐르는 하천이름.
주을내 이름과 관련해서는 태조의 능지를 화접리에 선정하고는 그 장소가 적합한 곳인가를 중국에 문의한 결과 적당한 땅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현재의 동구릉을 능지로 재선정하였다.
이때 마침 개국공신이며 당시 영의정이었던 남재가 죽자 동시에 하관키로 하고 서로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통신망이 발달하지 못하여 줄을 이용하여 신호를 하게 되었는데 이 줄이 마을을 지나가게 되어 “줄이지나간 마을”이라 하여 줄흘내. 줄을내. 주을내 .주을동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62.수동면 외방리 축령산 남이바위 이야기
축령산에 있는 바위로 전지라골 동쪽에 있다
조선조 명장 남이장군이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동북방 조망이 좋은 이곳 축령산에 자주 올라 지형을 익혔다는 자리로 모양이 마치 팔걸이 의자와 흡사하다.
63.오득산/축령산/빌령산/비령산/비랑산 이야기
-수동-가평 , 높이 886.2m
산기슭에 비령이 남아있어 飛靈山,동국여지승람에는 非郞山(비랑산)
주민들은 신령에게 빈다하여 비령산
오득산의 유래로는 조산왕조 시조인 태조 이성계와 관련, 왕으로 등극하기 전 이곳으로 이성계가 사냥을 왔는데 하루 종일 산을 돌며 사냥을 해도 짐승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어 허탕을 치고 돌아가려는데 몰이꾼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니 고사를 지내야한다고 하자 다음날 산정상에 올라 고사를 지내고 사냥을 하자 멧돼지 5섯마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멧돼지를 다섯 마리나 잡은 산 즉 五得山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고사를 드렸던 산은 빌령산 또는 축령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유사한 이야기 :예봉산= 靈山
64.수동 외방리 입석리/선돌의 전설
수동면 입석4리마을 앞산에 약 1평정도 되는 큰 돌이 서있어서 “서있는 돌이라는 의미로 선돌/입석 이라 하였는데 ...
도리 서있는 이유는 “굄돌”
이 굄돌은 마귀할머니가 큰 돌을 치마에 싸가지고 와서 바위에 놓았다고
65.조안 진중리 마진산성(馬鎭山城)이야기
*관련 지명:진중리.마들.마재.마진.마탄나루.중리(죽).
마진마을에 있는 산성으로 지금의 양수리 지역에 약 3만 명의 왜병이 진을 치고 있으므로 수천의 우리 僧軍(승군)으로는 대적이 불가능하자 지금의 삼봉 앞 북한강을 수책으로 막아 3만의 왜병을 수장시키고자 하여 수책이 완공될 때까지 이곳 산성정상에 모닥불을 피우고 騎兵(기병)에게 검정 옷을 입혀 말 일곱 필로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돌게 하니 적들이 이를 보고 우리군의 기병이 만 여명에 이를 것이라 생각하고 감히 공격해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수책을 완공하여 적을 북한강으로 유인하여 모두 수장시켰다고 한다 그런 연유인즉 이곳에 청동으로 만든 말이 있었다고 전한다.
66.조안 시우리 동간부락 / 마의태자 이야기
時(시)雨(우)里(리)의 의미는 때에 맞춰 비가 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또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비가 갑자기 오면 시위(큰물)이 잘 나므로 “시우”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신라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쉬어간 곳 이라해서 시우리라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에 동간으로 바뀌었다.
67.금곡 군장리 이야기
*관련 지명: 홍릉. 유릉 구상정. 구일. 구수영. 구희경.....묘
구 금곡역 북쪽에 있는 마을로 워낙 지새가 좋아서 왕릉 터로 정해놓았으나 주변이 모두 논이어서 왕릉을 만들려면 논을 전부 메워야 하는 관계로 다른 곳으로 왕릉을 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군장이라는 이름도 왕의 묘로 잡았던 터라는 의미와 조선 초기 이곳에 있던 구씨 선조의 묘가 장군행렬이라 부른다는 설도 전한다.
68.양정동 일패 봉두메(봉두머리.鳳頭)이야기
봉두산 밑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의 형태가 봉의 머리 같다하여 봉두산. 봉두마을로 부른다, 한편 옛날 어느 벼슬아치가 지나가다가 봉두산 꼭대기 큰 바위에 매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봉두매(봉두메)라고 정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한 옛날 왕의 상여가 이 마을길을 지났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69.도농동에 도둑이 많았다 , “쇠미”의 전설
:질그릇을 구웠던 마을이라는 의미의 도농. 도롱
조선 중엽 남양 홍씨가 거주하였는데 도적이 너무 많아 철 울타리를 만들어 세웠던 연유로 쇠미 > 도농 ...
또 다르게 약 300년 전 풍천임씨의 충천각이 지금까지 서 있다하여 홍문안이라고도 불린다.
70.남양주시 힐링 약수터 (약물 약수터)
-차산리 약물바위
-독정리 하늘아래 하나 밖에 없는 우물
-속병에 좋은 광릉약수 (봉선사 뒤쪽)
-피부병에 좋은 못물터 (온물터)-부평리 소재
-광릉 약물터 :광릉 앞
71.왕숙천(王宿川)과 팔야리(八夜里) 이야기
태종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는 함흥으로 가버렸고 이에
태종은 사자를 보내 부친이 돌아오도록 하였으나 태조는 거절을 하고
사자들마저 모두 죽여 버렸다.
태종은 궁리 끝에 태조의 사부라 할 수 있는 무학대사를 보내어
겨우 환궁시킬 수 있었다.
이때 태조가 한양으로 돌아오는 도중 지금의 팔야리에서 여덟밤을 자고
갔으므로 마을 이름을 여덟배미 또는 팔야리로 부르게 되었고 이 마을 앞을 흐르는 내를 왕이 자고 갔다는 의미로 왕숙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세조의 광릉 안장 후 선왕이 영숙(깊이 잠들다)한다는 뜻에서 왕숙천, 왕산내. 또는 왕산천 >1861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왕산천이라 표기
* 동구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