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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1코스(우이동에서 정릉까지)
글/사진:이종원
기온이 떨어져 멀리 가기도 부담스럽고 지방을 찾아도 구제역에 신음하고 있는 농민들 얼굴을 보기가 미안해 떠나지도 못하고 있다. 물가는 멈추지 않고 치솟고 있고 기름값이 폭등하니 멀리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구들만 지고 있을 수가 있을까 어디든 가야지. 교통패스 한번 쓱 긁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없을까? 물론 있지~북한산 둘레길.
강북사람들은 나름 복을 받았다. 고개만 치켜들면 어머니 같은 북한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전 세계 수도 중에 이런 명산을 끼고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산정에 올라 수도 서울을 아우르며 세상을 호령하는 호기도 좋지만 나처럼 체력이 좋지 않는 사람은 등산자체가 부담스럽다. 이렇게 간꽁치 같은 사람에게 '둘레길'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동네 뒷산에 놀러가듯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그만이다.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삼았으면 한다. 수평길을 통해 이웃을 생각하고 자연과 소통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현재 북한산 둘레길은 총 13구간. 북한산과 도봉산을 포함해 총 63km, 현재 5개 코스(5일)로 서울시 6개 구, 경기도 3개 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길을 낸 1코스(우이동~정릉. 총 8.5km)가 가장 인기 있고 둘레길의 입문코스로 삼아도 좋다. 소나무숲길(2.9km)은 솔향 그윽한 숲길을 걷게 되며 순례길(2.3km)은 4.19 묘지를 비롯해 독립 선혈들의 정신을, 흰구름길(4.1km)은 가슴 뻥뚫린 북한산 과 강북의 도심 경치를 두루 볼 수 있어 시원한 눈맛이 보장된다. 솔샘길(2.1km) 은 생태숲길로 도심속 오아시스 같은 기분이 든다.
정릉에 내리면 긴 식당가가 이어진다. . 둘레길 안내편이 잘 되어 있어 그길 따라 가면 된다.
5분쯤 식당을 헤쳐가면 붉은색 건물의 봉황각이 나온다. 종로에 천도교 수운회관처럼 북은 벽돌집이 특이한데 천도교 3세 교조인 손병희선생이 종교 수련을 통해 국권회복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봉황각을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
조금 더 가면 손병희 묘소가 나온다. 개방을 하면 참배를 하고 나왔을텐데 굳게 잠겨 있어 포기할 수밖에 3.1독립운동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김창숙, 서상일, 이준열사,염상섭, 현재명 선생등 독립투사 및 문화예술가의 묘가 있어 그들의 삶을 미리 공부하고 가면 유익한 답사가 될 것같다.
주택가를 지나면 본격적인 둘레길이 시작된다. 소나무 숲길 답게 솔향이 온 몸을 감싸 피톤치드를 통해 삼림욕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수녀님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은 완만하다.
하얀 눈과 소나무가 잘 어울린다. 이런 길이 게속 이어진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조용한 편. 둘레길 표시만 따라가면 길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다.
제법 숲이 무성하다.
우이령 숲길구간-순례길 구간-흰구름구간-솔생김 구간까지 하루코스로 그만.
'만고강산'이라고 불리는 약수터에서 약수 한사발 마시고~ 빠져나오면 민가가 보인다. 길을 내준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
산책로가 잘 가꿔져 있는 솔밭공원이 나온다. 나무벤치가 곳곳에 있어 간식 먹기 좋은 장소. 이곳을 벗어나면 동네가 나오기 때문에 잠시 수퍼에 들러도 된다.
연립주택은 인수봉을 병풍삼아 서있다.
아치문을 지나면 순례길구간. 이곳부터는 독립유공자들의 애국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독립투사는 물론 17위의 광복군 합동묘소까지 모두 16기의 묘역이 있으며 국립 4.19 민주 묘지도 내려다볼 수 있어 걷기만 해도 애국심이 활활 타 오른다.
조금 가면 4.19 민주묘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3.15 부정선거에 참지 못하고 총칼에 대항해 맨손으로 불의와 싸우다가 희생당한 분들의 영령이 잠들어 있다.
양지바른 곳에 290분이 잠들어 있다. 묘지중에서 가장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잠시 묵념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좋다.
전망대에서 국립공원에서 준비한 시집이 놓여 있어 시를 통해 자연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오른쪽으로 보광사 절이 있다.
독립군 무장투쟁을 벌였던 강재 신숙선생. 훗날 한국독립당을 결성한다. 잠시 묵념. 조금 더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북한산으로 올라가면 대동문이 나온다. 거기서 계곡을 따라 200m 쯤 가면 심산 김창숙 선생 묘가 나온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반대와 매국 5적을 처형하라는 상소를 올려 옥살이를 하였으며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는 내용을 알리는 활동을 주도하였고 해방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규탄을 했으며 훗날 성균관대학을 설립한 유학자이자 교육자다.
북한산 둘레길 1코스에서 가장 멋진 곳이 바로 이 섶다리 구간이다. 섶다리는 통나무, 소나무가지, 진흙으로 놓인 임시다리를 말한다.
원래는 물에 강한 물푸레 나무를 Y자형으로 거꾸로 막고, 그 위에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어 다리의 골격을 만든후 솔가지로 상판을 덮고 그 위에 흙을 덮는데 이곳은 대충 형식만 갖추었다.
산장 이름은 힘이 넘치는 데 메뉴가 영양탕, 오리백숙이다. 단군할아버지가 멍멍이를 드셨다는 얘기인데~
둘레길안내탐방센터를 만나게 된다. 따끈한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 소나무 아래 벤치에서 쉬었다 갈 수 있다. 깨끗한 화장실이 있으며 간단한 지도를 얻을 수 있다. 큼직한 둘레길지도는 2천원
다리를 건너면 이준열사 묘가 나온다. 1907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 2회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한 선생은 고종의 밀명을 받고 파견된다. '을사조약이 황제의 의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제의 협박으로 강제로 체결된 조약이므로 무효'라는 것을 만국에 알리고 독립을 위해 열국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1907년 4월 22일 가족들과 눈물의 작별을 하고 서울역을 떠나 부산항에 도착해 블라디보스톡 배에 올라탄다. 한 달만에 연해주를 떠나 시베리아 철도편으로 6월 4일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이위종을 만나 장서를 불어로 번역한 뒤 독일 베를린에 들러 장서를 인쇄하고 6월 25일 만국평화회의의 개최지인 헤이그에 도착한다. 독립을 위한 그의 열망과 기대는 뜨거웠고 이것이 독립을 위한 최선, 최후의 방법임을 그는 알았다.
6월 28일 호소문이 담긴 장서를 40여 참가국 위원들에게 보냈으나 열강들은 조선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고 거절하고 만다.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의장(러시아)에게 제출했지만 일본과 영국의 노골적인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세사람의 독촉이 계속되자 평화회의 사무국은 조선정부에 신임장을 조회하라는 조선에 전보를 보냈지만 통신기관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통감부가 이에 협조할 리가 없었다.
결국 외교관을 직접 설득하는 것을 접고 각국 신문기자들을 모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설명했다. 특히 이위종이 불어로 연설해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구한말 나비넥타이를 목에 걸고 서양인들을 설득하는 모습은 눈물겹다. 다시 회의장에 들어갔건만 구비여건 미비로 또다시 퇴장 당해야만 했다. 분을 못 이긴, 아니면 조선독립의 꿈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준은 연설대 위에서 미리 준비했던 보검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고 "대한독립만세, 세계약소국가 만세"를 외치고 장열하게 배를 가르고 만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이상설과 이위종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급히 달려 갔건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구 반대편 외롭게 순국한 이준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각국의 사신과 언론인들은 이준 열사의 의거를 똑똑히 목격했다. 대표들이 조의금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꿈에 그리던 독립 조국을 뒤로 한채 타국땅 네덜란드 헤이그에 묻히고 만다. 1907년 7월 14일 향년 49세.
5일뒤 고종은 강제퇴위 당했으며 이미 세상을 떠난 이준은 궐석재판을 통해 종신역을 선고받고 이상설은 사형, 이위종은 종신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순국 3일후 유해는 헤이그 공동묘지에 임시안장되었고 9월 5일 이상설의 이름으로 102달러 75센트를 지불하고 에이켄무이넬에 묘지영구 사용계약을 하고 9월 6일 장례식을 치뤘다. 순국 55년만인 1963년 10월 4일에 조국의 품안으로 모셔와 온국민의 애도속에 국민장을 치룬 후 수유리 선열묘지에 안장되었다.
그가 순국한후 103년이 지났고 이땅에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대한민국이 의장국이 되었으니 이준 열사의 한은 어느 정도 풀어졌는지 모르겠다.
묘소는 세월의 때가 잔뜩 묻었다. 1973년에 쓴 박정희 대통령의 '殉國大節' 휘호가 보인다. 초입에는 자유평화수호상이 서 있는데 북청군민회 차동수 여사가 성금을 냈다고 한다.
순례길 구간이 끝나면 흰구름길 구간이 시작된다. 4.1km로 제법 길고 오르내리막의 연속으로 걷는 맛이 난다. 북한산 둘레길 구간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세인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훗날 우리가 이렇게 혜택을 보는 것 같다.
다시 숲길을 걸어본다.
북한산 주변에 산재한 사찰. 1100년 전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 화계사,중국 승려인 승가대가의 이름을 딴 승가사, 신라의 명찰이던 진관사 등이 있다. 이렇게 사찰이 많은 줄 지도를 보고 알았다.
30분쯤 지나면 3층 건물의 화계사 둘레길오른쪽에 화계사 샛길이 나온다. 고려때 창건한 화계사는 한양과 가까워 왕실사찰로 보호 받을 수 있었다. 특히 '흥선대원군의 원찰'이라 불릴 정도로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건물을 중수할 때 대원군이 시주를 많이 했다고 한다. 부인 여흥민씨가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란다.
어느 여름날, 대원군이 남루한 차림으로 화계사를 찾았다. 너무 목이 말랐는데, 때마침 느티나무 아래에서 동자승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 사발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신기해서 연유를 물으니 '만인'이라는 스님이 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원군은 만인을 만나게 되었으며, 만인은 대원군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는 자손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충청도 덕산의 가야사 금탑 자리가 '제왕지지帝王之地'이니, 남연군 묘소를 그곳으로 이장하면 제왕이 될 귀한 왕손을 얻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화계사의 너른 쉼터인 너른 마당. 밀짚 모자에 얼굴이 그려져 있다. 목시님의 문구가 참 마음에 와닿는다.
사람들은 모두 참 이상도 하시네요. 자기 마음을 자기가쓰고 있으며서 따로 또 마음을 찾는다네요.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는 격이잖아요. 그래요 맨땅에서 맨발로 깊은 숨 깊은 명상으로 그냥 좀 쉬었다 가세요.
안쪽으로 들어가면 '천불오백성전'이라는 이름 거창한 불당이 있고 그 옆에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다. 1만원을 내면 쪽지에 소원을 적어 줄에 묶으면 삼일간 특별기도를 해준다고 하는데 ~글쎄 현대판 면죄부 같아서..500만원이 넘네
전세계 120개국에 선원이 있다. 이곳은 외국 수행자들이 수행정신하는 곳.
다시 길을 나선다. 제법 경사도 깊다.
멀리서 메카의 카바 같은 전망대가 보인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시원한 전망을 위해 무려 4층까지, 아이고 다리야.
구름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으로 북한산, 도봉산 일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난간에 상세 지도가 붙어 있어 손으로 짚어보면 좋다.
만경대. 인수봉 그 옆에 산성의 주능선이 이어진다.
가노라 삼각산아-청음 김상헌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쟈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청나라에 볼모로 가는 김상헌은 이 삼각산을 보면서 비분강개한 심정을 시로 표현했다.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서울 동북쪽 일대가 한눈에~강북의 미아, 수유, 번동. 상계동까지 날이 맑으면 마석의 천마산까지 보인다. 우리 집이 어디지?
그 너머에 불암산, 수락산까지
성냥갑 같은 곳에서 우리는 참 아둥바둥 사는 것 같다. 살기 힘든 요즈음 이곳에 올라 잠시나마 희망을 보았으면 좋겠다. 8분쯤 내려 가면 빨래골 공원지킴터가 나온다. 그 옛날 궁중 무수리들이 빨래터로 이용할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른다. 민가도 스쳐지나가고 자연보호를 위해 출입통제펜스를 쳐 놓았다. 입장료가 없어 무분별한 길이 자꾸만들어져 그걸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흰구름길이 끝나면 2.1km 솔샘길 구간이 열린다.
솔샘길은 사람을 피해 자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길에서 어떻게 자연과 멋지게 공존하는지 배우게 된다. 길은 아파트 단지 옆으로 이어졌다.
둘레길이라기 보다는 뒷동산으로 보면 된다. 등산복보다 츄리닝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자연생태체험장이 조성되어 있어 여름이면 꽃과 나무를 관찰하게 된다.
눈여겨 보면 솔뱀 발원지를 볼 수 있다. 소나무가 무성하고 물이 맑은 샘이 있어 솔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한 자연학습장과 놀이터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 라면 시간이 지체된다.
아파트 앞에 1014 마을버스가 있어 그냥 타고 갈까 생각하다가 이것도 먹고 사는 직업인지라 다시 길을 나서야만 했다. 멈출 수 없는 것이 내 인생인가 보다.
얼음판은 도시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다.
환한 미소가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대한민국 아이들의 표정이 365일 이랬으면 좋겠다. 벌써 해가 하직인사를 하려고 하려고 자꾸만 산쪽으로 기울어진다. 빨리 산을 벗어나야 하는데~
마을로 접어들었다. 이제 속세로~
1코스 완주 기념 인증샷
과거의 그림이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캬바레 포스터는 북북 찢어졌다.장윤정이 나오네.
'청수장' 제일 흔한 이름이 아닐까. 목욕탕도 반갑고~배가 고파 김밥천국을 기웃거리고
드디어 종착지 북한산 탐방안내소. 여기부터 평창동까지 명상길이 이어진다. 내 발걸음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위한 휴식이다. 그 달콤한 휴식이 짧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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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보다 더 잘된 안내는 없을것 같습니다. 고이 접어두었다 올 봄 친구들과 다녀오겠습니다.
청수탕에서 묵은 대를 벗기는것도 잊지않고요....좋은안내 늘 감사드리며,,^^#
잘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같은 서울의 강북에 살겄만 ....왜 이리도 바쁘고 정신 없는지~~ 잠시 쉬었다 갑니다..대장님 건강해 보이시네 좋아요..
대장님 감사합니다. 올해는 서울에 있는 둘레길이라도 자주 찾아보려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아~하! 이곳이 "2월 답사지로 확정".... 좋으네요, 답사는 2월 셋째주인가여, 아니면 넷째주?? 빨랑 공지 올려주시와요~ ^^*
멀리 갈 필요없이 우선 서울 둘레길부터 많이 다녀봐야겠네요
갈곳은 많은데 시간도 많은것 같은데..왜 못 가는건지...ㅠㅠ
꼭 다녀온것만 같습니다. 좋은 곳 소개 해주시는데 늘 핑계만 대고
가보지 못하고 있네요. 저는 혈당도 높아 운동이 꼭 필요한데 여기 한번
다녀오고 나면 훨씬 좋아질것만 같습니다.
와~~ 1코스가 5시간이나 걸리네요... 둘레길이니까 오르락내리락이 그리 심하진 않겠죠? 날씨 따뜻해지면 용기를 내어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자세히 안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시간내서 가보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좋은 정보~~~
시간내서 꼭가봐야겠네요.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초등학교때 소풍다니던 이준열사 묘지 참~~~ 청수탕 ㅋㅋㅋㅋ 요즘도 가끔 친구들 만나러 수유리 오며가며 보던 청수탕이 이렇게 보니 참 방가네...
곳 곳이 아는 지명인데... 시간내서 가봐야겠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서울에 이렇게 좋은곳들이 참 많네요.... 걸은후 청수탕에서 피로 풀면 아주 좋겠네요 ㅎㅎㅎ
정말 가까운곳이면서도 이렇게 좋은 코스가 많다니 또한번 감탄입니다~
봄 되면 갈곳이 많아진것 같습니다...감사히 보고 갑니다^^*
서울 나들이 한번 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가까운곳에 너무 좋은 둘레길 감사합니다. 봄에 꽃이피면 한번 가봐야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