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 소개
당신의 눈 속에 꽃나무를 심는다 마지막까지 모른다는 듯
“먼 곳까지 종소리를 산란하는 물고기는 얼마나 많은 지느러미의 시간을 소진했을까”(「풍경의 풍경」). 시인이 눌러쓴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그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들렸다. 여러 겹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다 보니 이해받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난청의 벽에 가로막히는 일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 시집을 출간하기까지 시인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시인은 그 목소리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포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시인은 “잘라도 잘려도/집요하게 문장은 자라났다”(「가지런한 불면」)라면서 불가항력으로 배태되는 말들의 행렬을 지켜본다. ‘다른’ 목소리들에 대한 시인의 수용은 곧 이질적인 타자들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말들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무수한 달의 뒷면을 지닌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해서 오롯이 이해될 수 없는 다중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막연한 슬픔이 떠오르기도 한다. 슬픔을 통해 김분홍이 다다르고자 하는 세계는 어떠한 장소일까. 우리는 그 실마리를 이 시집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안의 목소리를 끌어내기 위해 시인은 다른 존재로의 변신을 마다하지 않는다. ‘분홍’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면 조금은 낭만적인 상상에 빠져들 법도 하지만, 이 시집은 낭만보다는 어떤 선홍빛 상처와 어울린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언제나 생각보다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시인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남기고 있다. ‘거짓말에도 꽃이 피고 수선화에 초인종이 울리는 동안 당신의 눈 속에 꽃나무를 심는다 마지막까지 모른다는 듯’. 꽃나무를 심고 거기에서 꽃이 피어날 때까지 시인은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당신이 시집에서 예상치 못하게 마주쳤을 풍경들을 다시 읽어 볼 시간이다.(이상 안지영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김분홍 시인은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고,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는 김분홍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
■ 추천사
김분홍의 시는 독자를 사물에 대한 매혹과 사랑으로 인도한다. 그 방법은 “석류를 흠모하면 석류가 삭제된다”(「석류」)는 말에 요약되어 있다. 석류를 좋아하면 석류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궁금해지고 석류가 감추고 있는 내밀한 세계를 엿보고 싶게 된다. 석류는 확실한 하나의 사물, 확정된 하나의 이름에서 미지와 혼란의 광활한 자리로 이동하여 기억을 끌어오고 감각을 활동시키고 존재를 무한하게 확장시키는 에너지가 된다. 석류는 사물이면서도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는 것이다. 「원피스」는 그 가능성의 세계를 경쾌한 반란과 리듬의 놀이를 통해 보여 준다. 걸음의 리듬에 따라 원피스가 물결무늬와 주름을 그리며 흔들리고 그 무늬들이 춤을 출 때 그것을 바라보는 느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의 사건이 일어나는가. 원피스는 머리로는 다 알 수 없으나 느낌으로는 다 통할 것 같은 광활한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 되기도 하고 사물 간의 관계가 되기도 하고 에너지와 시공간이 어우러진 운동이 되기도 한다. 이 놀이는 어른의 사고에 붙들려 있던 감각을 해방시켜 아무것도 몰라서 더 자유로운 어린이의 활기와 생기를 회복시킨다. 사랑과 매혹에는 지루하고 평범한 사물과 일상을 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로운 사건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김기택(시인)
■ 시인의 말
야책 예르카의
해변에 딸기가 있다
딸기는 방이 많다
방문 앞에
하이힐이 있고 장화가 있고 스니커즈가 있고
잘린 발목이 있다
발자국들이 돋아나고 있다
■ 저자 약력
김분홍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다.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를 썼다.
첫댓글 첫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발간을
축하 드려요.
방문 앞에 ...발자국들이 돋아나고 있다
내 발자국은 어디쯤에서 돋아날까, 설레는 마음으로
시집의 첫 장을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