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조카 결혼식이 있을 예정인데 폐백 때 조카부부에게 해줄 덕담을 생각하다 평소 등한시 했던 가정의 평화와
부부의 노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결혼 45주년을 막 지난 필자이지만 아직도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을 신혼부부에게 들려 줄만큼 베테랑이 되여 있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지난
45년을 아무 생각 없이 살지나 않았는지 회의감 마저 든다. 비록
내가 결혼 50주년을 맞는다 해도 나의 결혼생활은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시행착오를 통한 현재 진행형의
노력 상태를 벗어나지 못 할 것 같다.
미국시인 스탠리 쿠니츠(Stanley Kunitz)가 말한 “결혼한 모든 집안에는 통역관이 주재할 방이
존재한다.”(In every house of marriage there’s room for an
interpreter.)에서 잘 표현 된 바와 같이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말을 하며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함을 겪는 부부생활의
구조상의 모순을 엿볼 수 있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여필종부(女必從夫)는 옛말이고 이제는 부필종부(夫必從婦) 풍조가 대세를 이루어 가정의 주도권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역전됨에 따라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혼하는 부부가 내세우는 파탄의 원인으로 통상 “극복 할 수 없는
성격상의 차이”를 꼽고 있다. 배우자간에 크고 작은 문제로
의견 충돌이 있은 후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좌절감을 느끼고, 그런 좌절감이 쌓여서 분노가 되고, 분노가 증오로 변질 되여 급기야는 가정을 버리는 극단적인 사태로 악화하게 되는 것이 파탄의 수순이 아닌가 싶다.
연애 상대자는 당사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혼상대자는 적어도 몇 가지 기본적인 공통점을 지닌 사람을 선택해야
원만한 결혼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편의상 경제적인 여건은 갖추어져 있다고 보고 결혼한 당사자가 가정을 지키며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는데 필요한 정서상의
문제를 여기서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결혼 당사자가 지녀야 할 정서상의 공통점은:
첫째 가정공동체의 틀 안에서 서로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터득하여 서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는 자세이다. 신혼시기가 지나고 결혼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대다수의 배우자들은 성장과정에서 굳어진 각기 다른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고집하며 자신의 권리를 반분 하기는커녕 배가 시키고 자기 몫의
의무까지 상대방에게 전가시켜 건강한 결혼생활에 평지풍파를 일어 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둘째 배우자는 결혼 후에도 매력 남 또는 매력 여로 거듭나려고 노력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매력은 외모보다 성격에 관한 문제이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용모의 단점을 성형을 통하여 교정 하듯이 가정공동체 안에서 사람의 성격도 노력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자도 사람인지라 동키호테식 접근 방식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힘들고
의무적인 순종만으로는 가정생활의 활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조카 부부에게 행복한 결혼생활의 조건을 key word 두 가지로
.축약 해서 말하려고 한다. 폐백 때 많은 어른들이 의무적으로
여러 말을 하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도 고단하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염려 때문이다.
45년동안 결혼 생활을 한 사람이 한다는 말이 고작 그 정도냐고 말
할 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결혼생활의 두 가지 key word는 “teachable”
과 “lovable”이다. 즉 가정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순한 양같이 길들여 질 수 있는 순수성을 지녀야 하고, 상대방이 베푸는 사랑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서로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배워서 수용하려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는 사람에게 일방적인 봉사만 해야 하는 사람처럼 피곤하고 지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생활에서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라고 해도 사랑 받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는 사람에게 어린아이처럼 “한번만 더, 한번만 더”하고 평생 따라 다니며 사랑을 떠 먹이기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비단 결혼 생활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먼 장래를 보고 심화 시키고 싶은 사람은
“teachable”과 “lovable”의 궤도 위에서 앞을
향하여 달려야 서로 지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관계의 순례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눈이 나빠 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친구를 위하여 오늘 내가 쓴 글을 등식으로 표시하면 Teachable+Lovable=Reachable 이 될 것 같다. 지치고 고단한 인생살이 가운데서도 내가 그 누군가의 마음속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며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은 살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만 한 좋은 일이 아닌가 싶다. 그 누군가가 자신의 배우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바이다.
두 사람의 생각이 처음부터 하나같이 일치하고 두 사람의 가슴이 하나 같은 리듬으로 박동하면 더 바랄 나위 없는
천생연분의 만남이다. 비록 천생연분은 아닐지라도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길동무가 되여 순례길 위에서 서로
닮으려는 노력을 통하여 마치 두 사람의 머리와 가슴이 하나 같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인연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주말에 결혼하는 조카부부가 서로 에게 수호천사가 되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로 행복한 가정공동체를
꾸려 나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철학자 쇼펜하워(Arthur Schopenhauer)는 “결혼 하면 권리는 반쪽이 되고 의무는 배가된다(To marry is to
halve your rights and double your duties.)”라고 하면서 결혼을 거부 했다고 한다. 앞으로 결혼 하려고 결심한 사람이나 이미 기혼자가 된 사람은 여러 많은 의무 중에서도 적어도 “Teachable” 과 “Lovable”이라는 두 가지의 기본 의무는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을 쓴 사람의 생각임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