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박수부대 대원(?)
4년 전, 어머니가 바람난 적이 있었다. 그 바람은 누구도 재울 수 없을 정도의 큰 바람이었다. 선친이 소천(所天)하신 지 2년 남짓 적적함을 달랠 만한 소일거리가 어머니에게는 없었다.
노인정에 참여하기는 그렇고, 반세기를 가까이 지내던 소위 본토박이들도 고향을 떠나 함께 어울릴 만한 마실 동무도 그다지 많지 않았을 때니 무언가에 취미를 붙여야 했다. 노인대학이나 주민자치센터의 문화강좌를 추천해 드려도 시큰둥할 뿐, 평소 몇몇 친구들과 점심내기 고스톱이나, 가끔 산악회에 다니는 것을 낙으로 삼던 시기였다.
어머니의 생활이 바뀌던 어느 날, “어머니, 요즈음 매일 어딜 나가세요.” 하고 묻자 “응, 박수부대 나간다.”는 짧은 대답을 했다. “박수부대라니요.” 되묻자, 어머니는 그곳에 가면 온종일 박수를 치며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잘한 사람에게는 선물도 주고, 가끔 트로트가수도 온다고 하며, 그 생활이 무척이나 재미있다고 말하는 어머니는 여느 때보다 화색이 돌았고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는 ‘아범아! 너도 박수 많이 치거라. 박수가 그렇게 건강에 좋다고 한다’며 박수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리곤 골수 박수부대 대원이 됐다.
해가 이슥해지면 휴지, 과자, 김, 고추장, 일회용 주방용품 등을 박수 친 대가로 챙겨왔고, 그 물건들로 어머니의 방 한구석은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물창고로 여겼다. 어머니에게 불었던 큰 바람은 바로 박수부대에 있었다. 매스컴을 통해 현대화된 약장수가 극성을 부리고 노인들의 자존심을 긁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값비싼 상품을 사게 만드는 사기성 장사꾼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선뜻 어머니에게 그만두라고 하지는 못했다. 아내와 나는 반 체념하고는 비싼 물건은 구입하지 말라는 조언만 했을 뿐이다.
어머니가 박수부대 대원이 된 지 한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우리부부를 불러 산더미로 쌓인 보물창고를 개방했다. 우리 5남매는 물론 손위 시누이들에게 나누어 줄 목록까지 분류되어 있었다. 보자기로 싼 두 개의 상자를 내놓으며, “올해가 윤년이니 수의를 장만했고, 내일은 아범을 위해 도자기 하나가 올 것이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수의(壽衣)는 물론, 캐딜락영구차에 5남매 내외 상복을 장만한 거라고, 다음날 도착할 도자기는 길흉화복을 다스리는 영험한 도자기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수의는 당신을 위한 것이고, 도자기는 자식을 위해 장만했다니, 탓도 못하고 그저 어머니의 처사에 볼멘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시중가보다 서 너 배 고가로 구입한 수의와 도자기를 보면 지금도 씁쓸함은 크다.
그토록 어머니가 수의에 집착하신 것은 굳이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회갑이 지난 부모님을 특히 홀몸이신 분들에게는 윤달이 낀 윤년을 평소보다 큰 의미를 둔다. 이 기회에 수의를 준비하면 당신의 무병장수는 물론 자손에게 좋다는 속설 때문이다.
윤달은 공달[空月], 덤달, 여벌달이라고 하며, 우주 만물이 돌아가는 체계 속에 포함되지 않는 달로 여겨왔다. 윤달에는 지상의 모든 신들이 인간사를 관장하지 않는다고 하여, 평상시 신의 노여움을 살 것으로 여겨 두려워하고 꺼려하던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니,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안 난다’는 속담도 있다. 윤달에는 집수리와 이사, 선묘(先墓)의 단장과 화장, 수의장만 등의 풍속이 지금도 행해진다. 이러한 풍습을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가정이라는 가족이라는 매개는 하늘의 구름처럼 남으리라. 하지만 윤달이 있던 4년 전, 우리 집에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었던 어머니의 박수부대 사건은 다른 물건의 구입보다 수의를 마련하셨기에 어머니와 큰 마찰 없이 지냈다.
올해 음력 7월은 윤달이다. 윤달이 낀 해에 수의를 마련하면 좋다는 강박관념이 나이 드신 홀어머니들에게 유혹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다고 보장할 방법은 없다. 가족이라는 것은 내 어머니가 추구했던 자식에 대한 사랑처럼, 자식은 어머니에게 사랑을 줄 수 없을까. 하필이면 자식과 부모간의 수의를 위한 줄다리기의 윤년이 왔을까.
한철수/시인·좋은아버지가되려는사람들구리모임직전회장 기재일 : 200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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