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거미가 내려앉은 초저녁에 동구 전망대에서 바라본 예송리와 예작도 전경.
해남 땅끝선착장에서 보길도까지 뱃길로 1시간쯤 걸린다. 풍광 좋은 다도해 뱃길이라, 실제로는 훨씬 짧게 느껴진다. 면적이 33km2, 해안선 길이가 41km인 보길도는 섬치고는 높은 산이 제법 많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커다란 종 하나가 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형상이다.
오늘날의 보길도는 완도군의 여러 섬 중 청산도와 함께 가장 유명하다. 자연풍광이 빼어난 덕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은거하며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걸작을 남겨 유명해졌다. 51세 때인 인조 15년(1637)에 보길도 부용동으로 들어온 고산은 자신만의 낙원을 건설했다. 낙서재에서 8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둘 때까지 세연정, 동천석실, 곡수당, 무민당, 정성암 등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지었다. 고산이 세상을 뜬 뒤 부용동 정원은 그의 서자와 후손이 관리했으나 점차 황폐해졌다. 이후 약 300년 동안이나 잡초 우거지고 주춧돌만 곳곳에 뒹구는 채로 방치됐다가 1993년에야 세연정과 동천석실이 복원됐다.
현재 부용동 동구의 보길초등학교와 이웃한 세연정은 부용동 정원 중에서도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세연정 주변은 굵은 동백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상록수가 울창해서 사시사철 푸르다. 세연정의 누마루 난간에 걸터앉으면 세연지, 회수담, 동대, 서대, 판석보 등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 있으면 눈과 귀가 즐겁다. 주변 풍광이 철마다 다채롭게 달라지고 어디선가 끊임없이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들려온다.
갯돌 깔린 해변에서 해조음에 기분 좋게 취해
고산의 처소였던 낙서재는 세연정에서 1.5km쯤 떨어진 적자봉(430m) 북쪽 기슭에 자리한다. 낙서재 입구에는 곡수당이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두 곳 모두 잡초와 나무만 무성한 폐허였으나, 최근 대대적인 복원공사로 여러 채의 건물이 다시 들어섰다. 고산이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칭송했던 동천석실은 낙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산 중턱에 있다. 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동백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진 산길을 15분쯤 오르면 전망대처럼 훤하게 트인 암벽 위의 동천석실에 당도한다. 부용동 일대가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부용동 골짜기에 비구름이나 안개가 낮게 깔리면 선계(仙界)에 들어온 기분마저 든다.
보길도에서 가장 큰 마을은 예송리다. 마을 앞 바닷가에는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다. 원래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조성됐던 숲이다. 처음에는 바닷가를 따라 1.5km쯤 늘어서 있었으나 지금은 740m쯤으로 줄었다. 이 숲에는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생달나무, 감탕나무, 동백나무 같은 상록활엽수가 흔하다. 상록침엽수인 곰솔(해송)과 낙엽활엽수인 팽나무, 작살나무, 누리장나무 등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상록수림 앞에는 ‘깻돌’이라 불리는 검푸른 조약돌이 깔려 있다.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기분 좋은 해조음이 쉼 없이 들려온다.
|
1. 정자리 망끝전망대 부근의 해안도로에서 본 저녁노을. 2. 고산 윤선도의 낙원인 부용동 세연정과 세연지. 3. 우암 송시열이 제주도 귀양길에 잠시 쉬어 가면서 시를 짓고 글씨를 새겼다는 ‘송시열 글씐바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