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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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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9월 6일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 광부의 생환을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보름 전 충남 청양군 사양면 구봉광산 갱도가 무너지면서 수직갱 125m 지점
제1 배수구에서 갱을 수리하던 김창선(당시 36세)씨가 매몰 368시간(15일 8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것이었다.
막장 안을 받치는 갱목이 썩어 무너져 내려 꼼짝없이 갇힌 김창선씨는 다행히도
갱도 내 대피소로 피신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암흑천지가 된 무덤과도 같았던 지하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며 외부와의 연락을 시도했고,
해병대에서 통신 업무를 담당했던 전력이 있었던 김창선씨는 대피소에 있던
망가진 군용 전화기를 이용해, 외부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렸다.
김창선씨의 생존 소식은 전국에 일제히 보도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이 청양으로 모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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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부 극적 생환’ 제목의 기사와 서울 메디컬 센터에서 거강 진단을 받고 있는 김창선씨 모습/사진=1967년 9월 8일자 1면·한국사진기자협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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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성씨 구조작전은 15일간 연 인원 2200여명이 동원됐으며 미8군 MARS 헬리콥터와
전기톱 등 장비와 미국 전문가들도 참여했다. 구조진행과 김창선씨의 상태가 언론에
연일 중계됐다. 한 치 앞도 분간 안 되는 어둠 속에서 공포와 배고픔에 떨었던 김창선씨는
전화기를 통해 때로는 생존에 대한 희망을 갖고 음식을 달라고 전했는가 하면,
어느 날은 죽음 앞에서 “세상에 나아가 인사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다”라는
절망적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고재일 청와대 민원비서관을 붕괴현장에 급파해
독려하는 등 구조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국민들은
김창선씨를 돕기 위한 성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고맙습니다, 살아나왔습니다.”
49년 전 오늘(6일) 밤 9시 15분에 비로소 김창선씨는 생사의 고비를 넘어 국민들의 열렬한 성원에 화답했다.
청양 구봉산 광산 붕괴는 성장 제일주의만을 앞세워 안전이 뒷전으로 밀린 사고였다. 당시 노동조합원이 회사 측에 갱내 수리를 진정한 것을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시킨 것이 화를 불렀던 사고였다./김은주 기자
*김창선씨 사건은 양창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양창선이란 이름은 입영통지서에 양씨로 바뀌어 사용돼 그대로 사용됐다고 한다. 위 글은 본명인 김창선으로 표기한다.
당시 중도일보 지면에도 양창선이 아닌 ‘김창선’으로 표기됐다.
첫댓글 1967년 9월 6일 갱도에 매몰된 지 15일 8시간 35분(368시간 35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양창선(楊昌善·당시 36세) 씨 기록은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15일 17시간(377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박승현(당시 19세) 양에 의해 깨졌다고 합니다.
이 모두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25년전(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사고가 생각납니다.
당시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유지환, 박승현양은 어떻게 지내는지?
1967년9월6일 청양 구봉광산의 갱도에 매몰되었다가 구조된 양창선씨 매몰사건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알려줘 국민들의 마음을 안타갑게 했던일이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