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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학 1:12-15)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였고, 기원전 530년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는 7년 만에 죽었습니다. 학개서는 고레스의 손자 다리오 왕 2년에, 예루살렘에서 되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개 1:1절 말씀입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아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운 것은 고레스 왕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이 있고 난 후, 16년 후에 되어진 일입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성전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복원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드리기 위해 서둘러 성전 터를 닦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 터만 겨우 닦아 놓고, 16년 동안 성전 짓는 것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전을 짓다가 중단했습니다. 왜 중단했을까요?
에스라 1:1-4절 말씀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아멘.
그렇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을 정복하자, 그곳에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칙령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고레스 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백성들은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큰 꿈을 안고,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레스 왕이 창고지기에게 명령하여,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에, 성전에서 가져온 성전 기물들을 창고에서 꺼내어, 돌아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전 기물들과 성전을 지을 때, 필요한 많은 예물들을 가지고, 큰 꿈을 안고,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시편 126: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곧바로 성전을 다시 세웠습니다. 성전의 기초를 세우면서, 그들은 너무나 기뻐, 대성통곡하였습니다. “꿈인가? 생신인가?”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전을 짓다가 중단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고 고백했던 그들이, 씨를 뿌리는 것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왜 중단했을까요? 그들은 왜 성전건축의 꿈을 실현하다가, 그만 공사를 중단했을까요?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첫째,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건축을 반대하였습니다.
에스라 4:5-6절을 보면,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 짓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반대했습니다.
사마리아 땅을 다스리고 있었던 총독이나 그 밖의 집권자들에 의해서 강력한 방해를 받았습니다.(스 4:3-4) 이방인과 혼혈족인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짓는 것을 시기 하였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짓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발했습니다.
그들의 고발의 내용을 보면, “강 건너편에 있는 신하들은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스 4:11-13)라고 했습니다.
그 고발장을 받아 든 왕은, 예루살렘 성전 공사를 멈추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끈질긴 방해로 인해서 성전건축을 중단하라는 왕의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들은 왕의 칙령에 의해 성전건축을 하고 있었는데, 왕이 성전건축을 중단하라고 하니,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중단하라”는 왕의 칙령이 내려지자,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는 다리오 왕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고레스 왕 원년에,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왕의 조서를 찾아보십시오.”
다리오 왕은 신하들에게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아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보물전각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는 고레스 왕의 조서를 발견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라 6:15절을 보면,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고 했습니다. 약 16년 만에, 성전공사가 재개되었고, 4년에 걸쳐 성전 공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반대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성전은 건축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대와 핍박이 있어도, 멈추어 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귀한 일들을 이루어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신앙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무너진 여호와 신앙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들입니까? 눈물로 씨를 뿌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 짓는 일을 중간에 포기하고, 미루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만이 진짜 이유였을까요?
여러분! 그들은 성전을 짓다가, 왜 중단했을까요? 왜 다시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왜 16년 동안을 계속 미루고 있었을까요?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아멘.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반대 때문에, 성전 건축이 중단되기는 하였지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아직 성전을 건축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학 1:4-5)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하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했을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랬을까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던 것일까요? 여유가 있으면 그때 가서 지으려고 했을까요?
그들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오직 한 가지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큰 꿈을 품고 돌아왔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유대인에게는 한 가지 동일한 꿈이 있었다면, 고국에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그곳에서,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봉사하고자 하는 큰 꿈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건축되다가, 중단된 지가 16년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그들과 함께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하여 드렸던 많은 예물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반대가 심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중단했습니다.
그 중단된 기간 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16년 동안, 그들은 그들이 살 집을 지었습니다. 물론 바벨론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마땅히 살 집이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집입니까? 어떤 집을 지었을까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판벽한 집을 짓고, 그 곳에서 온 가족이 오순도순 살았습니다.
여러분! 판벽한 집이 어떤 집일까요? “널빤지로 꾸민 집”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성전이 무너졌는데도 아랑곳없이 벽을 널빤지로 꾸민 집에서 사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지 않고, 널빤지로 꾸민 집에서 살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널빤지로 꾸민 집”은 우리가 지금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 초라한 집이 아닙니다.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널빤지로 꾸민 집”이라고 하는 것은 잘 꾸민 집, 화려한 집을 의미합니다.
“널빤지로 꾸민 집”이라고 하는 것은 도시 외곽에 넓은 잔디밭이 있고, 텃밭이 있고, 우거진 나무들과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멋진 정원이 있는 그런 집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호화스러운 집을 짓기에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것은 결코 경제적 궁핍이나 때가 아직 되지 않은 것, 혹은 주변의 정치적 여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어 황무하게 되었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호화롭게 꾸미는데 바빴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있을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변했습니다. 성전 짓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들 때문에, 성전공사가 중단되었을 때, 그들은 “그래. 성전은 나중에 짓지. 지금은 때가 아니야. 돈도 많이 벌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지어도 무방하지. 지금은 아니야.”라고, 마음이 변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자신들의 일상적인 일에 매달렸습니다. 물론 그것도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할 집을 짓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간이 남아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입니다.
마땅히 먹고 사는 일상적인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넓고, 화려하고, 멋진 집에서 살고 있으면서, 성전을 무너진 대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하나님은 “너희는 성전을 황폐한 대로, 무너진 대로 내버려두고, 화려하고 멋진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아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왜 나쁜 결과가 있었을까요?
7절을 보면, 하나님은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9절을 보면, 하나님은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했으며,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품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음이 되었다. 너희가 많이 거두기를 바랐으나 얼마 거두지 못했고, 너희가 집으로 거두어 들였으나 내가 그것을 흩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여도 소득이 적었으며, 먹고 마셔도, 만족함을 누릴 수 없었고, 집에 도둑이 들어온 것처럼, 재물을 모으려 해도 모이지 않았습니다. 돈을 모으는 것 같은데, 어느 날 보면, 사고로 모은 돈이 다 날아가 버립니다. 열심히 일하여 살만한 것 같은데, 질병으로 쓰러집니다. 돈을 열심히 모은다고 모았는데도, 통장을 확인하면, 항상 비워 있는 것입니다. 돈은 쌓여 있는 것 같은데도, 집에 들어오면 만족이 없고, 행복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지 않고, 자기 일에 바쁘면, 풍성한 열매를 맛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삶의 만족도 급격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너희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한 번 너희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왜 열심히 살아왔는데, 수확이 없었을까요?
직장생활을 내 일처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왜 쫓겨났을까요? 사업을 밤낮 가리지 않고, 먹을 것 못 먹고, 시간을 쪼개가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왜 부도가 났을까요?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왜 성적은 떨어졌을까요? 넓은 들에 많은 씨앗을 뿌렸는데도, 왜 수확이 적었을까요?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지금까지 행한 것, 겪은 것, 그들의 계획, 그리고 그 결과를 마음에 두고 분석하고 반성해 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 성전 짓기를 중단했는지, 정직하게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한 번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믿음 상태를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진정 돈이 없어서인지, 경제 환경이 나빠서인지, 방해가 많아서인지, 반대가 심해서인지, 정직하게 진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은 무엇 때문에 성전 짓는 것을 중단했을까요?
하나님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9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아멘.
“나의 집은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너희는 저마다 제집 일에만 바쁘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의 성전 무너진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집만 짓느라고 바삐 돌아다닌 탓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것보다, 내 일 하기 바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너져 황폐해진 성전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내 집, 내 가정, 내 자녀들 챙기느라 여기 저기 바삐 돌아다닌 탓”이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었다는 것입니다.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학 1:10-1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때문에 하늘은 이슬을 그치고, 땅은 소출을 그쳤다. 내가 땅 위에 가뭄을 들게 하였다. 산 위에도,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 위에도, 밭에서 나는 모든 것 위에도, 사람과 짐승 위에도, 너희가 애써서 기르는 온갖 것 위에도 가뭄이 들게 하였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셨을까요? 왜 이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로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내셨을까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전건축을 중단하고 각자 자기들의 삶에만 몰두했던 백성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삶이 곤고했던 것은 그들이 성전을 황폐하게 버려두고 자기들의 일에만 바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이상하게도 삶이 어려웠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자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산에 가서 나무를 찍어다가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 집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성전을 짓으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손해를 주고 그들에게 염려를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난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정한 복을 주시기 위해 성전 건축을 재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27: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신명기 28:1절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신 28: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이에게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셔서, 때를 따라 축복의 비를 내리시고, 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순종했을까요? 불순종했을까요? 거절했을까요? 받아들였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뒤로 미루는 주의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2-13말씀입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아멘.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다윗 왕의 후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총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진다면, 그는 왕이 될 사람입니다. 정치적인 지도자입니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입니다.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남은 모든 백성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일반 백성들입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일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반드시 누군가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크게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름이 있기에, 아름다운 꽃이 필 수 있고,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 보면, 크고 작은 교회들이, 잘 지어진 것을 봅니다. 그 교회가 건축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엇보다 크게 들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서 크게 울려 퍼지고, 내 마음에서 뛰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들은 학개 선지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환경이나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다가 올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완악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무감각해지거나, 강퍅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절망이 소망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앞길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4-1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아멘.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말은, “마음이 흥분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깨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진 마음이 깨어났습니다. 잠자고 있던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변했습니다. 절망이 열정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깨어났습니다. 지금껏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자마자, 신속하게 각자의 할 일을 찾아,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은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 다시 성전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때가 다리오 왕 2년이었습니다.
고레스 통치 9년, 캄비세스 2세 통치 6년, 그리고 다리오 왕 2년째, 도합 16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하는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 2: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라 3:11-13절을 보면,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이,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을 보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너희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 옛날 찬란하던 그 성전을 본 사람이 있느냐? 이제 이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에게는 뒷산에 올라가서, 평범하고 흔한 나무를 베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는 것이, 어쩌면 하찮게 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 눈에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이 비록 하찮게 보일지라도, 힘을 내어, 계속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덧붙여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세워가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학 2:7-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의 성전 기초를 놓던 날까지 지나온 날들을, 마음 속으로 곰곰이 돌이켜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때에 곡간에 씨앗이 아직도 남아 있었느냐? 이제까지는,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나 석류나무나 올리브 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았으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전과 후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성전 세울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쌓기 전에는, 곡간에 씨앗이 남아 있지 않았고, 나무에는 열매가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울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 나갈 수 있을까요?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누가 진짜 신인가?”를 놓고 대결을 했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라는 대결을 했습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고, 기도했으나, 불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왕상 18:30)
엘리야 선지자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그는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돌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물을 떠서,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소제 드릴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하늘로부터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수축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너져 내린 신앙을 다시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워나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짓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진실한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대리석이 아니라도, 백향목이 아니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재료인 백향목과 최고급 대리석으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 성전처럼 값진 레바논 산의 백향목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성전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은 화려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성전, 하나님은 그런 성전 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을 먼저 건축해야 합니다.
보이는 성전은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성경공부 할 수 있는 보이는 성전을 지어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해가야 합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를 허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협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러 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삶을 살고자 하오니,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교회를 다시 세워나가고자 하오니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에게 복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