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도착해서 일단 수퍼마켓에 먼저 들렀다
왠지 느낌에 알베르게에도 자리가 있을 것 같고
(오는 길에 만난 순례자가 너무 없어서 혼자 이런 착각을-_-)
알베르게 들어가 다시 나오는 일 없이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기에..
참, 여기서 도저히 건조증을 못참고 바디로션을 샀다
근데 사이즈가 죄다 커서 내가 고른 넘이 무려 400ml
무겁긴 했지만 바디로션은 정말 필수다..
살갗이 완전 최악으로 쩍쩍 갈라져 척박해진다ㅠ.ㅠ
너무 삭막해 보이고 노란 화살표도 갑자기 사라져서
'이 동네 까미노 취급도 안해주는거야?' 했는데
도로 한가운데 순례자상도 나름 있다
수퍼마켓에 갔더니 무지 많은 순례자들-_-;;;;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한다
그들의 몸은 이미 샤워도 끝낸 듯 뽀송뽀송했기에...
아~ 나 오늘 또 노숙이야?
알베르게 찾아가는 길에 발견한 이상한 동상(? 조각상?)
길 떠나는 남자, 아마도 아버지 같은데 다리가 나무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애는 완전 절박하게 매달리고...
뒤쪽을 보니 이런 상황...
어이쿠, 스페인은 좀 삭막하거나 특이해 보이는 조각상을 좋아하는 듯;;;;
무슨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듯 하지만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에고, 도시 들어가서도 알베르게까지 꽤 걸어야 한다
알베르게에 들어서자 철조망으로 만든 담벼락 위에 빼곡히 널려 있는 빨래들
아, 역시 불길해
알베르게 꽉 찼단다OTL(숙박료 기부제)
아니, 쟤네는 나 오는 길에 한 번도 마주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온거야?;;;
원래 4시엔가 문을 여는데 오스삐딸레로가 융통성을 발휘해서
미리 도착한 순례자들에게 침대 배정을 이미 마쳐 버린 것
사실, 어차피 도착한 순서로 침대 배정 받는 것은 똑같으니
미리 배정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다
그나저나...큰일이야~
앗, 그런데 한국 친구를 만났다
'조세피나'라는 세례명을 쓰는 열아홉 꽃다운 대딩 1학년생
나보다 일찍 도착해 샤워와 빨래까지 마친 상태였다
일단 가방 한 구석에 내팽개쳐놓고
수퍼에서 장 본 것을 꺼내어 조세피나와 나눠 먹는다
둘이 수다를 막 떠는데 '대한민국' 티셔츠를 입으신 한국인 남자분 등장~
피니스테레 가셨다가 다시 되돌아 산티아고로 가시는 길이시란다
우리 점심 먹고 있는데
스페인 아저씨가 자기가 한 요리 한 접시랑 남은 블랙 올리브캔을 주셨다
배가 무지 불렀지만 "와~ 고마워 고마워~" 하면서 넙죽 받았다
한국인 남자분이 "여자들이랑 있으니 이런 것도 주네" 하셨다
여자라서 줬다기 보다는 우리가 그냥 먹고 있으니
많이 한 요리를 나눠 준 것 같은데;;;;;
솔직히 요리를 하면 정말 남는게 엄청 많다
우리가 먹다 먹다 지쳐서
(내가 손이 좀 커서 엄청 장을 봤더랬지;;;;) 빵을 버렸는데
이 분이 오시더니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 가셨다
게다가 내가 막 버리려는 샐러드 캔 남은 것까지 자기 달라고...;;;;
"아마도 환경 운동가일거야" 하면서
살짝 놀란 마음을 다독다독 하는데 정말 놀래 버린 일 발생
내가 화장실에 들어 갔는데
이 분이 여자 화장실에서 옷을 훌러덩 훌러덩 벗고 계신거다
"꺅!" 하면서 놀래서 뛰쳐 나오려는데
이 사람이 막 당황하면서 바지에 속옷까지 막 다 벗으려는 거다;;;
가슴도 없고 수염까지 덥수룩한 사람이 설마 여자일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다른 순례자 여자분이 가서 옷을 벗은 모습을 확인하더니
나를 나무라는 단호한 목소리로 "여자야!" 라고 말해 주었다
흑.....어찌나 미안하던지....
음식이라도 그렇게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가고
그러지 않으셨더라면 내가 조금은 편견을 덜 가지지 않았겠어ㅠ.ㅠ
나뿐 아니라 많은 여자 순례자들이 그녀가 화장실에 올 때마다
"어머! 여긴 여자 화장실이야!"
"나도 알아"
순례자들과 말도 섞지 않고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남과는 다른 몸.......그녀의 인생이 마음아프다
모두들 그녀를 인정은 하지만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샤워하고 빨래까지 힘들게 마치고 나니
(여기 빨래하는 곳 무지 불편하고 별로다..
심지어 하수구도 막혀서는 물바다-_-)
한국인 bici 여자 순례자 가희 등장~
8월 까미노부터 시작해서 12월2일 출국까지 여행을 계속 할거란다
생장에서 자전거를 200유로에 구입해서 피니스테레를 찍고,
자전거를 판 다음에 포르투갈로 갈 거라고...
다이어리 정리도 완전 멋지고 성격이 끝내주는 친구였다
나눌 줄도 알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순례자들과도 쉽게 친해지는 유쾌한 친구~
우린 서로 너무 까맣다고 감탄을 했더랬지ㅎㅎ
저녁꺼리까지 장을 봤는데
아까 조세피나랑 같이 다 먹어 버려서 마을 구경도 할 겸 마을로 나왔다
여긴 과일가게
조세피나가 여기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나왔다가 순례자 메뉴 파는 곳을 못찾아서 그냥 파나데리아를 물어 찾아왔다
앗, 저거 순례자빵~ 한 판을 다 사야 하니 아니란다
조금만 잘라 달라고 하려는데 그냥 귀찮아서 냅뒀다
저걸 저녁 대신 먹어야겠구려~
무게를 달아서 파는데 저만큼이 2.1유로...좀 비싼 편이다
아몬드로 만든 촉촉한 파운드 케잌 맛인데 맛있다~!!!
조세피나 말로는 산티아고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모양만 비슷한 순례자빵이랑 맛이 차원이 틀리댄다
알베르게에서 침대를 배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줬다
콜라 자판기 저 쪽은 남자들 자리
(아까 양성인 그 분 저기 가서 자리 잡으셨다..
다들 관심없이 신경을 안쓰지만 옆자리는 피한다;;;)
이 쪽은 여자들 자리인데...젤 오른쪽 내 자리는 머리맡에 현관문이 있다ㅠ.ㅠ
근데 자다 보니 더워서 땀까지 흘렸다는
밖에는 텐트까지 여러 개 마련되어 있어서
텐트나 안이나 원하는 곳에서 묵을 수 있다
다만 텐트안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둘둘 말린 휴대용 매트가 꼭 있어야 한다
왼쪽 다리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요리와 올리브를 나눠 준 아저씨~
사실 가희가 처음에 내 옆자리를 잡았었는데
오스삐딸레로가 비씨! 하더니 막 쫓아내는거다-_-
잔차 순례자들에 대한 확연한 차별이 있는 듯
착한 가희는 "오케이~" 방긋방긋 하면서 순순히 받아 들인다
잠시 후 대충 자리들이 다 정리되자
드디어 그녀에게 매트리스를 허락 해 준다
내 옆자리 하늘색 담요가 가희 자리
이날 나 초반에 코까지 곯았다고...OTL
한국에서 잘은 모르지만;;
코를 곤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해서 안심했었는데 말이지
까미노에선 그 무엇보다 코고는 사람이 젤 나쁘다
귀하고 귀한 수면을 방해하면
다음 날 같은 방에서 잤던 사람들의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 오기 때문이다...
이 날부터는 잘 때 코를 곯까봐 넘넘 무서웠다 흑흑
일본 총각 다케시(이름 가물가물;;;)
영어도 스페인어도 잘 안되는 친군데
이탈리안 친구들이랑 너무 잘 어울려 다닌다
일본판 오마이 뉴스 같은 곳에 글을 쓰는 시민기자(?) 초창기 멤버란다
매트까지 자리를 못잡은 사람은
저렇게 테이블 위에서도 자고 다케시 아래에도 누가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계단 밑에서도 잘 잔다ㅎㅎ
이 친구들은 포르투갈인
다음날 보니 아침에 깨자마자 "까르르르르!" 웃기부터 시작한다
무지하게 신나는 로케트 같던 친구들
참, 여기 알베르게에서 이해 못할 캐나다인 아줌마를 만났다
늦게 도착해서 침대를 배정받지 못했는데
갑자기 막 울기 시작하는거다
울고 불고 애처럼 칭얼거리면서
"캐나다에서부터 여기까지 너무 멀리 왔는데
침대도 없고 너무 힘들다. 집에 가고 싶다. 엉엉엉!"
-_-;;;;;; 어쩌라고.......
착한 순례자들과 오스삐딸레로가 그녀를 막 달래준다
나 같음 절대 쳐다도 안봤을텐데...
결국 착한 프랑스인 사이드가 자기가 배정받은 침대를 그녀에게 내주었다
더 얄미운건 침대 받더니 완전 신나서 칠랄레 팔랄레 놀러만 잘 다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