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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의 세습비판 설교 금란교회 대응
▲ 최근 김동호 목사의 설교와 관련 '세습 비판'의 무대에 다시 오른 김홍도 목사.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목회세습을 비판하는 내용의 설교를 한 것을 문제 삼아 금란교회 성도들이 선전포고를 하고 나선 가운데 사태가 아직까지 수습되지 않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김동호 목사가 지난달 18일 주일예배 설교시간에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상 금란교회와 김홍도 목사임을 알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교회를 물려준 아버지 김홍도 목사와 물려받은 아들 김정민 목사를 동시에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에 인터넷 매체를 통해 김동호 목사의 설교를 접한 금란교회 장로회와 성도들은 지난달 30일 김동호 목사에게 “김동호 목사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를 바란다”며 “만약 주일 낮 설교를 통해 해명과 사과가 없을 시 금란교회 성도들은 법적인 조치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을 할 것을 밝힌다”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항의 서한 발송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금란교회 장로회측은 지난 2일 ‘금란교회 장로회’란 작성자 명의로 소속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항의 서한 전문을 올려놓았다.
그 다음날인 3일 이러한 내용들은 기독교 언론들에 의해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정작 금란교회 홈페이지에는 4일이 되어서나 항의 서한 내용이 높은뜻숭의교회 및 김동호 목사의 연락처와 함께 게시됐다.
이번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금란교회(장로회)측의 지혜롭지 못한 처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접근하는 방식이 미숙한 탓에 ‘긁어 부스럼’이란 옛말처럼 자신들의 치부가 더욱 불거졌을 뿐 아니라, 더 많은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공개적으로 했어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 즉 이렇게 공개적인 방법을 택함으로써 김동호 목사를 압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홍도 목사의 (금란교회 교인들은 부인하고 싶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비판하고 있는) 교회세습 행위를 더욱 부각시킬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나 하는 것이다.
감리교단 홈페이지나 언론사의 관련기사 댓글을 보면 이들이 기대했던 ‘김동호 목사가 자기네 교회 설교시간에 다른 교회와 선배 목사를 비난한 것은 적절치 못한 처신이었다’는 책망성의 글보다는, 금란교회와 김홍도 목사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하는 따끔한 충고의 글들이 더 많은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또한 도무지 성경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왜 그토록 ‘성경적인 것’을 부르짖는 기독교인들이 정작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는 성경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의 권징과 관련 마태복음 18장 15절 이하의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말씀을 근거 구절로 든다.
정말 이 말씀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는다면 교회의 대표들이 조용히 김동호 목사를 방문해 항의 서한과 함께 유감의 뜻을 전했어야 했다. 그래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김동호 목사와 연관이 있는 교계의 선배들과 함께 조용히 찾아갔어야 한다. 그래도 무반응이었다면 상종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만약 이렇게 일 처리를 했다면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음이 알려졌을 때 (반드시 알려지게 돼 있다), 주위의 반응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금란교회 장로회와 성도들은 12만 운운하면서 힘의 논리로 뭔가 해보겠다는 심사를 은연중에 나타내며, “법적인 조치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을 할 것을 밝힌다”고 윽박지르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고린도전서 6장 6절 이하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는 말씀을 거역하는 또 다른 불순종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며,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기 원한다.
(아래는 김동호 목사의 '설교 전문'과 금란교회측의 '항의 서한 전문'이다.)
근사한 하나님의 사람들(2) <창 12:1-4>
1983년 1월 후배 목사가 목회하던 충청도 시골 교회에서 집회를 하던 중 차사고로 죽을 뻔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수안보 온천으로 목욕을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다리 위에서 차가 미끄러져 다리 아래로 추락할 뻔 했던 것입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도로가 얼지 않았었는데 공중에 매달려 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다리만 얼어 있었던 것을 미처 모르고 빙판에서 브레이크 밟아서 차가 다리 위에서 돌았던 것입니다.
100번이면 99번 죽을 뻔 했던 사고였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내가 100번이면 99번 죽을 뻔 했었는데, 만일 내가 오늘 그 사고를 죽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아주 심각하게 하였습니다. 외아들의 홀어머니인 어머니 생각도 났고, 삼십대 초반에 과부가 되어 어린 아이 셋을 길러야 할 아내 생각도 났고, 애비 없이 자라야 할 제 어린 세 아이 생각도 났습니다. 모두가 다 저 없으면 살 수 없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생각으로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애, 내가 죽어야 문제지 네가 죽는데 무슨 문제냐? 물론 자식이 먼저 죽으면 힘들지만 믿음은 그것도 극복하는 것이란다. 네 어머니 나를 믿기 때문에 네가 죽으면 물론 힘들겠지만 잘 극복하고 이겨 낼 꺼다. 남편 없는 여자는 다 못 산다든? 남편 없이 사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못사는 것은 아니란다. 네 아내가 나 잘 믿으면 아이 셋 잘 기르면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 자식도 마찬가지다. 아비 없다고 못하는 것 아니다. 네 아이들이 나만 잘 믿고 자라 준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으로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죽어야 문제지 너 죽는다고 문제 될 것 아무 것도 없다.’ 저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생각에 동의하였고, 그날 아주 철저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산다.’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식 없으면 못살고, 남편 없으면 못살고, 아비 없으면 못사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혜로운 일도 아닙니다. 자식과 남편과 아비는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인데 그 나약한 존재가 없으면 못사는 존재가 된다면 그는 당연히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 계시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문제없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사람을 참 근사하게 합니다. 사람을 자유하게 하고 당당하게 하며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하나님처럼 의지하고 살면 복의 근원이 되는 큰 사람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인데, 믿음이란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내 모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내 모시는 까닭은 세상 줄 다 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는 훈련을 하게 하려 하심 입니다. 모세가 그 훈련을 받았고, 바울이 그 훈련을 받았으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도 그 훈련을 받으셨습니다.
남의 교회 이야기를 하게 되어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강북에 있는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최종적으로 받음으로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게 되자 아직 35살도 안 되었다는 아들 목사에게 당회장 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 여러해 전 강남에서 역시 대형교회를 목회하시던 그 목사님의 형님 목사님도 38살 된 아들에게 수 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세습케 하시더니 동생도 똑같이 그와 같은 일을 하였습니다.
세습은 참 전근대적인 것입니다. 사업도 조그맣게 할 때는 자식에게 물려 줄 수도 아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업이 커져서 주식회사가 되고 여러 주주들의 돈으로 큰 회사를 이루게 되면 사장의 아들이라는 이름만으로 그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 회사는 개인의 것이니까 아들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어도 되지만, 주식회사는 개인의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장과 회장의 회사가 아니라 주주들의 회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자기 아들이라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뒤를 이어 사장을 만들고 회장을 만드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옳지 않은 일입니다.
선진국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선진국일수록 그와 같은 생각, 즉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고 하는 생각을 갖고 회사에 대한 영향력은 주식을 상속함으로 자식들에게 물려 줄 수 있지만, 무조건 자기 자식을 회장과 사장으로 세워 회사 경영을 대대로 하려고 하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와 같은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삼성이 혼을 나고, 현대 자동차 회장이 감옥에 들어가 옥고를 치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 하건데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와 같은 일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회장이라고, 권력이 있다고, 남보다 좀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그 회사를 개인 회사인양 생각하고 운영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도둑심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과 교인들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영수직을 자식에게 대대로 세습케 하려는 것은 말로는 나라가 국민들의 것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나라를 자기 개인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에 35살도 안 된 어린 아들에게 수 만 명 교세의 큰 대형교회를 물려주는 그 목사님은 유명한 반공주의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생각과 행동은 오히려 그가 비판하는 김일성을 꼭 빼다 닮았습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강남의 대형교회가 아들에게 세습을 할 때 저희 큰 아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아들에게 세습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가 간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눈이 멀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자기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렇다고 그것을 아무 사양 없이 그냥 받는 아들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잘 만나, 그 덕으로 젊은 나이에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자리에 앉게 되는 황태자들. 사람들은 배 아파하고, 부러워 하지만, 사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부러워할 일이 못됩니다. 자리는 근사하지만 사람은 별로 근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절대로 정당한 승부 끝에 얻는 승리의 기쁨이 무엇이지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 무엇인지를 죽어도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성공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성공한 줄로 착각하지만,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정말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와 같은 식으로 얻는 자리를 성공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성공한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을 때까지 성공의 진정한 의미와 기쁨과 보람을 맛볼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통했다면 그는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마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는 남의 자리와 기회를 도적질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의 자리와 기회만 도적질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자리와 기회를 도적질 한 셈이 되어 문제가 생각보다 커집니다.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게 되면 그와 같은 아버지를 두지 못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은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회하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도 옳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에게 절망을 주게 하여 정당한 노력과 도전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옳지 않은 일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큰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자리에 눈이 어두워 자기에게 전혀 맞지도, 옳지도 않은 자리에 덥석 앉아 버린 사람들이 꼭 읽고 교훈을 얻었어야 할 말씀이 저는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저들에게도 아브람에게처럼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아비의 덕을 보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덕을 볼 수 없게 되고, 하나님의 덕을 입지 못하게 되면 나약한 자가 되고 진정으로 성공하는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들에게 틀림없이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저들도 목사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말씀과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 아는 사람이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훌륭한 아브람의 믿음에 대하여 설교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는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세상 끈을 붙잡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끈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주여, 주여 외치며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도 의지하지도 잘 않습니다.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돈을, 권력을 더 의지하여 실제로는 그것으로 자신의 하나님을 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브람처럼 떠나야만 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것이 아브람이 복을 받은 이유입니다. 성공한 이유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돈을 하나님으로 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꼭 가난해 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로, 남편으로, 자식으로 하나님을 삼지 않는다는 것은 꼭 저들과 헤어져 독신으로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해석하여 소극적이다 못해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자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는 아내와 남편이 함께 살면 참 관계가 좋아집니다.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에 참 자유 함이 있습니다. 남편은 남편이고 아내는 아내입니다. 남편은 남편이고 아내는 아내일 때 부부의 사이와 관계가 제일 좋아집니다. 돈으로 끈을 삼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경제가 좋아집니다.
이 세상의 문제는 돈으로 끈을 삼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고 돈으로는 끈을 삼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가난해 지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깨끗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어떤 면에서 보면 가난해 지는 것이 믿음을 지키기가 쉽습니다. 돈을 끈으로 삼으려고 하여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것은 부자인데 돈으로 끈을 삼지 않고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으로 끈을 삼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 때문에 세상은 참 힘들어 지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권력을 끈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만을 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되면 세상이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끈이라고 하여 권력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말장난 같지만 권력을 끈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권력을 정말 끈이 아니라고 확실히 믿는다면, 그것을 끈으로 잡지 않는다면, 권력의 순수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누군가가 깨끗한 마음으로 그것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아브람은 갈 바도 알지 못한 채 정말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땅을 떠납니다. 그 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입니다. 돈과 권력과 사람에 얽매여 그것을 끈으로 알고 자신과 세상을 칭칭 감으면서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브람과 같은 사람을 보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하나님만 믿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대개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실제로 하나님이 아니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믿고 삽니다. 그러나 정말 믿음의 사람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만 믿고 삽니다. 그래서 깨끗합니다. 그래서 당당합니다. 그래서 근사합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성공합니다. 그래서 승리합니다.
저는 제가 아브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이 아브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혹시 셋 중에 목사가 된다면 막내가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목사만 주의 종이고 성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는 목사가 성직이기 때문에 막내가 목사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볼 때 막내는 목사가 되는 것이 제일 어울릴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막내는 이제껏 패션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에 생각을 바꾸어 목사가 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각을 저에게 전해 왔습니다. 저는 참 기뻤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되겠다는 뜻을 정한 막내에게 제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아버지 덕 볼 생각하지 말아라’였습니다. 저는 제 막내가 어린 나이에 아버지 잘 만나서 대형교회의 후계자가 되는 그런 아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제 막내가 아브람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아이가 한동대학교에 입학한 후 다시 재수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대학에 다닌 다는 것이 약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고, 보다 중요한 것은 선배들이 후배를 이끌어 주는 우리 사회에서 선배가 없는 대학을 졸업하여 이 세상에서 생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재수하면 어떻겠냐고 묻는 큰 아이에게 나에게 묻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보라는 뜻으로 기도원에 가서 기도해 보라 말해 주었습니다. 큰 아이가 사흘을 작정하고 기도원에 갔다가 이틀 만에 응답을 받고 기도원을 내려왔습니다. 우리 큰 아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응답은 이사야 31장 1절에서 3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 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학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아멘.
큰 아이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고 두 말 않고 한동대로 내려가 졸업을 하였습니다. 제 아이는 그날 선배와 학연이라고 하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시 한동대로 내려가는 아이에게 저는 ‘아버지는 네가 학교와 선배 덕이나 보는 사람이 되는 것 원치 않는다. 학교가 네 덕 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제가 생각해도 참 근사한 말을 해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75세의 나이에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아브람이 너무 근사합니다. 믿음은 사람을 참 근사하게 합니다. 믿음은 사람을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거듭남의 모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음은 사람을 근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과 같은 믿음으로 근사한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공하고 승리하고 복을 받아 그 복을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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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교회 12만 성도는 김동호목사의 설교(6월 18일자)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작성자 : 금란교회 장로회
제 목: 금란교회 12만 성도는 김동호목사의 설교(6월 18일자)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설교를 할 때 다른 교회나 목회자에 대한 비판을 삼가며, 혹 비판을 하더라도 그 진위여부와 여파를 수십 번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 18일 주일 김동호목사가 한 “근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란 설교는 처지를 잘 알지도 못하는 금란교회를 폄하함으로서 김홍도목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12만 명의 금란교회 성도들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기에 우리는 이에 강력히 항의하며 김동호목사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한다.
1. 김홍도목사가 목회를 할 수 없게 되어 아들목사에게 담임자 자리를 넘겨주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반공운동으로 현 정부와 계속해서 대립해 온 김홍도목사가 세상법의 판결은 받은 것은 사실이나 목회를 그만 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금란교회의 담임목사는 김홍도목사이며 2년 후 은퇴 시 까지 이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아들 김정민목사를 후임자로 내정한 것은 전적으로 장로들과 성도들의 선택이었다.
김홍도목사는 평소에도 아들목사가 후임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개척교회를 지어 목회하기를 원해서 이미 남양주에 땅을 사서 개척교회 건축을 추진 중에 있었다. 그러나 지난 35년 동안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목회로 70여명의 교회를 12만 명의 세계적인 교회로 부흥시킨 김홍도목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가지고 있는 장로들과 부교역자, 그리고 임원들은 김홍도목사의 반대를 염려해 김홍도목사가 캐나다와 미국에 집회를 떠난 시기에 아들 김정민목사를 후임 담임목사로 청빙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이는 교회의 분열이나 흔들림이 없이 지속적으로 부흥하기 위한 금란교회 성도들의 최선의 선택이었으며 목회자, 장로, 임원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구역인사위원회”를 통해 김정민목사가 후임자로 결정된 것이다.
2. 아들 김정민목사는 남의 자리와 기회를 도적질한 사람이 아니다.
김동호목사는 설교에서 “아무 사양 없이 그냥 받은 아들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자리에 눈이 어두워 자기에게 맞지 않는 자리에 덥석 앉아 버린 사람이며, 남의 자리와 기회를 도적질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개인에 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을 선택한 수많은 성도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김정민목사는 지금 미국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공부 중이며 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아버지를 닮아 열정적인 목회를 해서 금란교회에서 후임 담임자로 청빙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한인교회 성도들은 그가 계속해서 미국에 남아서 목회를 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전에 경기도 마석에서 개척교회를 할 때에도 사례금의 대부분을 교회에 헌금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지금도 그때 성도들은 김정민목사를 칭찬하고 있다. 김정민목사는 금란교회 성도들의 요청에 대해 “자신은 한 없이 부족한 사람이니 40일 금식기도를 한 다음에야 돌아가겠다.”고 답변하였다.
김동호목사는 설교 중에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자식이 진로를 두고 이틀 금식 기도한 것이 귀하고 자랑스럽다면 다른 사람이 생명을 걸고 40일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보겠다는 말에도 최소한의 공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주식회사 운운하며 교회재산을 물려준 것처럼 말한 것을 사과하라.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의 신앙전통을 계승한 분열되지 않은 단일 교단으로서 교역자의 파송 및 교회재산 일체를 교단이 감독하는 감독제이다. 따라서 모든 감리교회는 교회의 재산 일체를 감리교 유지재단에 편입해 놓고 있다. 이것은 담임목사가 교회재산의 일부라도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소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금란교회에서도 김홍도 담임목사는 교회법으로 책정된 사례비만 받을 뿐이다. 비근한 예로 자가용 한 대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해 최근까지 8년이 넘은 차를 타고 다녔다.
최근 현 정부가 이러한 교회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교회를 주식회사 취급하며 세속의 잣대로 교회와 목회자를 재단하고 구속하는 것도 심히 안타까운데 같은 목회자인 김동호목사는 어쩌자고 교회를 주식회사에 비유하며 후임자 문제를 재산상속으로 취급하는지 알 수 없다. 아니면 높은뜻숭의교회는 김동호목사 개인소유의 재산인가? 목회자로서 교회를 주식회사로 비유하고 담임목사로서의 헌신을 재산상속 쯤으로 폄하한 것을 사과하길 바란다.
4. 김동호목사는 김홍도목사에 대한 실언을 사과하라.
오늘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쉽게 깎아 내리는 풍토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목회자라면, 더더욱 선배 목회자에 대해서라면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김홍도목사는 세상적인 이야기,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직 복음만으로 금란교회가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가 되도록 헌신해 온 목회자이며 한국교회의 원로급 목회자이다. 또한 감리교단의 감독회장을 역임한 지도급 목회자이기도 하다. 그런 목회자에 대해 “김일성을 꼭 빼다 닮았다”라고 말한 것은 상식으로 이해 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민족상잔의 원흉인 ‘김일성’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주일 낮 대예배에서 그런 말을 했으니 이것은 김홍도목사에 대한 분명한 명예훼손 일 뿐만 아니라 금란교회 12만 성도에 대한 폭력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이 김동호목사는 이점을 즉시 사죄해야 한다.
금란교회의 12만 성도는 김동호목사의 지난 6월 18일 설교에 대해 아픔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김동호목사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를 바란다.
만약 주일 낮 설교를 통해 해명과 사과가 없을 시 금란교회 성도들은 법적인 조치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을 할 것을 밝힌다.
2006년 6월 30일
기독교 대한감리회 금란교회 장로회 및 성도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