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두번 째 제주 여행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지난 해 이맘 때쯤 승주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제주도에 삐악이 보러간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비행기, 숙소, 렌트 까지 모든 예약을 취소해야 할 만큼 날씨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에는 당시 며칠동안 폭설이 내려서 모든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으니까요. 때문에 승주는 어린이집도 가지 못하고, 그냥 아빠 엄마와 집에서 놀아야 했습니다.
다시 도전한 올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승주, 승현이가 드디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여행이며, 올해도 재주 넘는 제주도 삐악이를 보겠다고 승주는 신나했습니다. 가장 먼저 날씨를 체크했는데, 다행히 제주도에는 눈이 내린다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첫날, 13시 2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10시 30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출발공항이 군산공항인 탓에, 공항에 일찍 도착한 들,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수 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제주도에 간다는 설레임으로 승주는 신나했고, 승현이는 오빠따라 마냥 즐거워 보였습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너무 짧은 비행시간이었지만 드디어 제주도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5번 게이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오른 쪽으로 돌아가니 즐비한 렌트카 회사들이 있었고, 예약한 회사 버스에 올라 차량 인수장소로 향했습니다. 장모님, 이모님, 고모님과 함께 한 여행이었기에 스타렉스를 렌트했는데, 처음하는 차량의 운전이라 모든 게 낯설었지만, 적응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첫 행선지로 한라대학교 강당으로 향했습니다. '페인터스 히어로'라는 공연을 봤는데, 배우라고 불러야 할 지, 화가라고 불러야 할 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4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주요 플롯으로 여러가지 공연을 신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동안은 승주가 살짝 지루해 했고, 승현이는 중후분반부터 공연보다는 자기세계에 빠져 놀았습니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푸짐한 해산물을 내 놓으신 삼성혈 해물탕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산방산 숙소로 향했습니다.

둘째 날, 숙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여미지 식물원에 갔습니다. 수학여행 때 마다 아이들을 인솔하고 갔었기에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풍경을 기대했지만, 때가 때인지라 한산해서 구경하기 좋았습니다. 열대관부터 물의 정원을 거쳐 둥그렇게 펼쳐진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외부 정원을 한 바뀌 도는 것으로 관람을 마쳤습니다. 점심으로는 춘심이네 본점에 들러 커다란 갈치를 주 메뉴로 먹었는데, 우리나라 갈치처럼 보이지 않았고, 갈치 특유의 맛도 조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후 일정으로는 카멜리아힐 이라는 동백꽃 군락지를 갔는데, 역시 꽃이 많지 않았고, 꽃보다 젊은 선남선녀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승주는 계속 꽃만 보러다닌다고 싫어했으며, 승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세번 째 여행지로는 근처의 설록차 연구단지이면서 박물관인 오설록이라는 곳을 방문했습니다. 부근에 도착했을 때부터 광활하게 펼쳐진 차밭이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했지만, 승주는 역시 찌푸둥한 표정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녹차)을 사준다는 말에 엄마와 할머니를 따라 구경을 떠났고, 승현이는 계속 잠을 잤기에 아빠는 승현이를 보느라 차에서 대기했습니다. 중간에 일어나 똥을 싸는 바람에 차안에서 뒷처리를 하느라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기에 설록의 차 냄새를 후각에 전달하지 못한 안타까운 여행지였습니다. 조금 일찍 숙소에 들어와 나만 홀로 인근의 산방산 탄산온천에 다녀왔습니다. 물 색부터 탄산온천이란 느낌을 진하게 묻어냈지만,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온천욕을 제대로 즐길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 이와 같은 탄산온천이 있다는 것에 복받은 동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날 저녁이 기억에 남습니다. 숙소에 조금 일찍 들어왔기에 리조트 관리하시는 분께 근처 맛집 소개를 부탁드렸더니, 인근의 사계짬뽕집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차를 몰고 도착한 시간이 저녁 일곱시 경이었지만, 하마터면 짬뽕을 구경도 못할 뻔했습니다. 우리 다음부터 식재료 부족으로 손님을 받지 못하였고, 우리가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었습니다. 홍합과 해산물을 듬뿍 담아 주신 짬뽕은 동네사람들이 왜 사계짬뽕집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어느정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자장면 맛도 좋았다고 했습니다.

셋째 날, 승주가 가장 신나했습니다. 승주가 귤따기 체험을 하는 날이었으니까요. 한경면 올리못이란 귤농원을 찾아갔습니다. 매년 겨울 승주 엄마가 귤 맛있는 집이라고 자주 시켜먹던 농원이었는데, 체험전문 농원이 아니었음에도 주인아저씨가 선뜻 와서 체험해도 좋다는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노란 귤들이 나무에 다닥다닥 열려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고, 따면서 맛볼 수 있었기에 더 신나는 체험이었습니다. 수확한 귤은 곧 포장해서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귤맛은 역시 최고였습니다. 오전 내 귤체험을 하고, 오후에는 서(한경)에서 동(성산)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중간에 성읍 민속마을에 들러 오겹살과 주물럭으로 배를 채웠고, 성산에서는 아쿠아플라넷이 목적지였습니다. 잠깐 공연을 관람하였고, 각 수족관들을 방문하였는데, 승주, 승현이가 제일 신나게 구경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해가 지고, 셋째 날은 숙소를 옮기는 날이었기에 제주 시내의 메종드 호텔에 마지막 여장을 풀었습니다. 호텔 인근에서 간단하게 회로 저녁을 먹었고, 별 다섯개 호텔에서 제주의 마지막 잠을 청했습니다.


넷째 날, 조식으로 호텔 1층의 삼다정 뷔페에 갔습니다. 승주 엄마가 제주도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해서 내심 기대를 많이 했고, 깔끔한 분위기와 넓은 룸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렌트 차량을 반납하고, 제주 공항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쇼핑을 하고, 군산행 비행기에 다시 올랐습니다. 의외로 승주 승현이기 비행기를 잘 타는 것 같아서 다음 번 여행은 비행거리가 조금 있는 곳도 괜찮을 거란 생각을 가졌습니다.

3박 4일간 제주 여행의 전반적인 느낌은 여행지마다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서 한껏 한가로운 여행이었다는 것과, 맛집들을 찾아다니면서 먹었던 음식들이 기억에 남는 것이었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승주 승현이와 함께하는 첫 비행기 여행이라 행복했습니다. 이쯤에서 승주의 제주도 재주넘는 삐악이 찾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승주는 3살때부터 해미도서관에서 '병아리 100마리 대소동'이란 책을 자주 빌려 읽었습니다. 내용을 거의 외울 정도였지요. 그 책에는 병아리 100마리가 등장하는데, 물구나무 서는 병아리, 그네타는 병아리, 뽀뽀하는 병아리 등등 수많은 병아리들이 등장합니다. 그중에 '재주 넘는 병아리'가 있는데, 제주도란 섬을 언급한 후부터, 재주넘는 병아리와 연관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제주도에는 재주 넘는 삐악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둘째 날에 여미지 식물원에 갔었는데, 열대 정원 앞에 병아리 여러 마리의 밀랍인형들이 있었습니다. '승주야, 승주야! 여기 제주도 삐악이 있다.'라는 말로 승주의 제주도 삐악이 찾기는 매조지 되었습니다. 제주 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