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4.12. 설교문
탁종 3 이 천지간 만물들아
묵상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신앙고백
찬송 431내 주여 뜻대로
대표기도 염성섭 집사(이정숙 전도사)
성경말씀 이사야20:1~6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찬송 349 나 주의 도움 받고자
광고 브니엘 아파트 신축을 위해,
주님의 은예로 요양원 4층 완공 했습니다.
어린이집도 요양원으로 리모델링 합니다.
정기 노회(4/13, 서울 수도중앙교회)
찬송 222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축도 주님, 일생에 꼭 한번은 내 이기심을 버리고 살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 모든 분들께 미안하기만 합니다.
환갑이 채 못 되어 하늘나라로 가신 엄마께도 죄송합니다.
우리 엄마는 천사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집에 염소를 키웠습니다.
염소가 땅이 닿을 듯 털렁털렁 달고 다니는 염소젖이 있습니다.
엄마께서는 아침마다 맑은 행주로 염소젖을 닦으시고
털렁털렁 염소젖을 주물주물 주무르신 후에
엄마의 작은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어 염소젖을 쭉쭉 양재기에 짰습니다.
그러면 뿔난 염소는 가만히 소변을 누듯 양재기에 염소젖을 쏟아 냅니다.
그러면 잠시 후 양재기에 염소젖이 가득 담깁니다.
그러면 염소젖이 가득 담긴 야재기를 연탄불에 올려 데우며 소독을 합니다.
그리고 연탄불에 데운 우유를 걸러 콜라병에 담습니다.
그리고 한 병은 우리교회 목사님께 갔다 드리고
또 한 병은 우리 학교 담임선생님께 갔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우리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우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천둥치면 쏘낙비 쏟아지듯 사셨던 우리 아버님의 성격을
죽는 날까지 고분고분 다 받들어 주셨습니다.
그런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그런데 제가 벌써 우리 엄마가 돌아가실 때 나이가 되어 머리가 하얗습니다.
제가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죄송스럽고,
미안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저를 아껴 준 친구들도 있습니다.
저를 애태워하면 걱정 근심하며 기도하고 있는
우리 딸, 아들,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구요.
그리고 저를 도와준 수많은 이웃들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족한 저를 목자라고 순종하며 따르는
우리 교우들에게도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엊그제 비가 내려서 땅이 젖은 날 아침에
우리 김복순 선생님께서 저에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목사님! 오늘 함열장 날에 뒤뜰에 꽃 잔디 심으려고 2,000원씩 모금했습니다.
목사님도 2,000원 주세요.
작은 손바닥을 펴 제 앞에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꽃 잔디 사려고 내민 작은 손바닥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얼른 호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참후에 창밖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진달래 닮은 꽃 잔디를 들고,
하얀 목련을 닮은 꽃 잔디를 들고,
뒤뜰로 가는 일행이 보였습니다.
우리 김복순 선생님, 김향희 선생님, 그리고 나이는 드셨지만
여리디 여린 우리 유춘자 선생님이 꽃 잔디를 심으러 가시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천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했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렇게 저에게 행북을 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4층 증축이 완료되었습니다.
참 알뜰하게 꾸몄습니다.
머지않아 이곳에서 많은 어르신들과 새로 오시는 우리 선생님들과
한 가족으로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새 가족을 모실 생각을 하니 벌써 흥분 됩니다.
신이 납니다.
그래서 4층 방 이름들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401호, 고마워요.
402호, 함께해요.
403호, 미안해요.
404호, 사랑해요.
405호, 감사해요.
방문턱을 지날 때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우리 힘들어도 함께해요!
이렇게 서로 말하며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여기가 천국 아니겠습니까?
1절입니다.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2절,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찌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 찌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4절,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리니
5절,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부끄러워 할 것이라
6절, 그 날에 이 해변 거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 벗어나기를 바라고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이사야 선지자가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하루도 아니고 3년 동안
사통팔방 대로에서
알몸 시위를 한 것입니다.
오호 통제라!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얼마 전에 전주에서 이런 수치스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편의 외도를 참다못한 아내가 발가벗은 몸으로 자가용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시위를 했다지 않습니까?
이 미친 광경이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랐습니다.
경찰관들이 출동하고,
우리에게도 온통 부끄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러고 얼마 후에
수치스러움을 참지 못한 아들이 자살했습니다.
제가 86년도에 햇살 동인 시집 <잊는다는 말은>펴냈습니다.
저와 함께 글을 썼던 심홍재 선생님은 행위예술가였습니다.
하얀 도화지가 작아서 온몸으로 예술을 표현하는 분이셨습니다.
이 행위예술의 원조가 바로 3,000년전의 이사야 선지자였습니다.
2절입니다.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찌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 찌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의 이 태도가 어떻습니까?
역시 이사야 선지자는 대담한 사내였습니다.
저도 이사야처럼 뚝심 있게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저주저 전혀 망설임도 없습니다.
가끔 꼼생이들을 보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헌금바구니 앞에 서서
천 원짜리를 낼까?
만 원짜리를 낼까?
꼼지락 꼼지락 거리며 돈을 세어 본 적 있습니까?
아니면 덜덜 떨며 움크려 앉아 있는 노숙인 앞에서
꼼지락 꼼지락
천 원 지폐 만지며 갈등하고 있었던 일은 없습니까?
그러다 그냥 지나쳐버렸습니까?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전혀 망설임이 없지 않습니까?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찌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 찌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2절)
어차피 우리들의 마지막 모습이 이런 모습 아니겠습니까?
알몸으로 왔으니
알몸으로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안데르센의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왕에게 두 명의 재봉사가 찾아와 근사한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들이 만들어 준 옷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임금님이 이 옷을 입고 길거리에 나서자
많은 사람들은 벌거숭이 임금님을 보고 칭송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가 외쳤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우리 인생살이가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겉치레 합니까?
화장을 하고
비싼 옷을 걸치며 얼마나 너스레nonsense를 떨고 삽니까?
며칠전에 저녁 나절에 집에 도착해보니 벌써
잔디밭이 거칠게 잡초가 우거져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외출복을 입은 체
1년 내 묵었던 잔디 기계를 꺼내어 시동을 걸었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좋지 않음에도 힘차게 줄을 당겼습니다.
여러 차례 부릉~ 부릉~ 부릉 ~ 헛바람에 힘이 들었습니다.
겨우 엔진에 열이 가해지고 잔디밭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그 푸른 하늘 한번 바라보지 못하고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 곁에 사는 잔디가 벌써 껑충 자랐는데도
모르고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벌써 하얀 목련이 떨어졌느지?
그래서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이 온 것인지?
모른 체 살고 있는 허둥지둥한 제 삶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러다 의미 없이 죽는 인생은 아닌지?
발가벗은 몸으로 전주 시내 바닦을 미친 듯 달리던 엄마, 아빠 때문에
어린 자식이 부끄러워 자살을 하는 세상이
어디 남의 일이라며 손가락질만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박근혜 대통령도, 청와대 비서실장도, 내로라하는 국회의원들도
어디 편한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110원 가지고 엄마 찾아 서울 상경하여
2조원의 갑부가 되었지만
끝이 아름답지 못한 죽음에
자녀들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지겠습니까?
이런 일그러진 세상에 지금 우리들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어제는 길거리에서 이런 현수막 문구를 보았습니다.
부자들은 돈벼락 맞아 죽고
가난한 사람들은 빚덤이에 눌려 죽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갈찌어다!
네 허리에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 찌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2절)
전혀 망설임이 없지 않습니까?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2절)
저는 우리 아들의 인생에 대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에 대하여 깊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돈을 바라보며 살다가는 폐가 망신합니다.
지금 제 곁에는 돈만 알고 돈만 보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 꼼지락 거리는 갈팡질팡
불쌍한 인생을 봅니다.
저는 우리 아들에게는 보여 줄 세상은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오판하지 않도록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돈을 잘 못 알고
돈을 잘 못 쓰면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어제 익산 팔봉에 있는 장례예식장에 갔습니다.
잠시 우리와 함께 새벽예배를 드렸던 신현운 성도가 소천하셨습니다.
영양실조로 원대병원 응급실에서 나흘을 머물다가
우리 요양원에 오셨습니다.
배가 터져 죽는 세상에서 영양실조로 입원 한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부모님만 두고 멀리 서울에서 자녀들이 살다보니
부모님은 굶어 죽어 가는 것도 모르고 삽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누가 누구를 원망하고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목사인 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는데
제 앞에 앉아서 아멘하던 그 어르신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누가 그 어르신을 보면서
며칠 후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 조차 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인생살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는 인생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인생은 주님을 알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 부모가 자식에게 너 옷 벗고 길거리에 나가서
3년 동안 1인 시위 해봐라!
그러면 자식이 뭐라 말하겠습니까?
아니, 여러분들이나 나는 뭐라 말하겠습니까?
미쳤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2절)
이것이 순종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토를 달지 않는 것입니다.
내 체면 따위
내 자존심 따위
내 목숨 따위
기꺼이 바친 예수님처럼,
이사야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의 기쁨,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르신들을
똥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밥을 먹여 드리며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요양원에서나 하는 우리들의 기초적인 삶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어르신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드리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말벗입니다.
가족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광경을 보았습니다.
우리 이순희 선생님이
우리 어르신들과 함께 찬송가를 즐겁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눈물까지 나왔습니다.
우리 이순희 선생님은 처음 입사 할 때에 꼴찌였습니다.
전혀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안타까울 정도로
그래서 우리 이순희 선생님이 얼마나 다닐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데 이제 우리 신우회 회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업무보고도 설렁설럴, 대충대충이 아니라
꼼꼼하게 세밀하게
변 색깔, 변량, 식사량, 혈압 등까지도 살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 궁중, 애굽파 정치인들은 오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을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이 썩은 동아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돈이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지않아 애굽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수치를 당할 것이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부터라도
돈을 의지하는 인생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처럼
내 체면 따위
내 자존심 따위
내 목숨 따위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 되기를 권면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