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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오봉산에 올라 2006/02/17 09:15 | |
1월 8일. 수요일.
아레 내린 눈발이 나를 산으로 오라고 부르는가? 이번 주 수요 등반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할 거라고 미리 알려 두었지만, 하얀 순백의 세계에 젖어 들고 싶어 올해 들어 처음으로 눈내린 산을 오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노포동 전철 종점에서 회원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에 승용차에 몸을 실어 물금으로 달린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 낙동강을 따라 올라 가다가 물금역을 지나고, 물금 파출소 뒤에 내려 다른 일행이 오기를 기다린 후에 함께 오봉산을 오른다. 모두 8명의 남녀 회원이 모였다. 개학하기 전에 오르는 마지막 등반이라 반가움이 샘솟는다.
중턱에 이르니 벤치 등이 있는 체육공원이 나오고 넓은 터인지라 이내 눈과 장난하는 시간이 생긴다. 눈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강아지나 아이들만이 아닌가 보다. 60을 바라보는 사람과 50 전후의 여성회원들간에 눈싸움이 벌어지나 1:5의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여성회원들이 도망을 가고 항복을 하고 만다. 힘으로 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딸리는 것인가? 전쟁 이야기에서 잔다르크는 그래서 위대한가 보다.
왼쪽부터 1봉이라 한다면 먼저 2봉부터 오른다. 처음에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팔라 힘도 들고 땀도 흐른다. 차가운 날씨이지만 파카를 벗고 오르기도 하다가 금세 불어 오는 칼바람에 다시 껴입고야 만다. 오르는 중간에 눈이 없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간식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정상인 오봉산을 향한다.
오봉산은 요산 김정한 선생의 중편 소설 '수라도'에 나오는 오봉산이 아닌가? 평소에 부산과 인근의 동해남부 지역을 공간적 배경으로 작품을 담은 김정한 선생은 여기 물금에 있는 오봉산 자락밑에 오봉 선생을 창조했고, 인고의 삶을 살다 간 며느리, 가야 부인을 통해 일제 시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한참을 오르며 바라보는 오봉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으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하다. 지리산의 장엄함도, 설악산의 화려함도 없지만 촌색시의 수수함과 은근함이 스며 있는, 향토색이 물씬 배어나는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낸다. 아담한지라 숨길 것도 없고, 보드라운지라 오르는 이를 괴롭히지도 아니한다. 적당히 땀흘리고,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산이다.
능선을 타고 정상에 이르는 길은 외길이다. 그리 험하지도 힘들지도 않건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자그마한 표지석이 오히려 거센 바람을씩씩하게 이겨 내고 우뚝 서 있다.
일망무제로 바라 보이는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하니, 동쪽으로는 양산 신도시의 빌딩이 늘어서 있고, 남쪽은 낙동강이 넘실대며 흐르고 저멀리 구포와 화명이 보인다. 또, 금정산 고당봉도 멀리서 보인다. 서쪽으로는 낙동강과 김해시 대동면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북쪽으로는 토곡산이 하얀 눈을 머리에 얹고 우뚝 서 있는 장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잠시를 머물며 북동쪽을 바라보니 정상 아래에서 우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부복해 있는 신하들처럼 준봉들이 줄지어 엎드렸다.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 - 그말 그대로이다.
발목 정도까지 빠질 수 있는 눈길이지만 먼저 다녀 간 발길이 다져 놓은 길을 밟아 아래로 내려 간다. 간혹 약간씩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양쪽에 난 가지를 잡으며 조심스레 내려 간다. 다른 사람보다 카메라를 메고 있는 입장이라 더 조심이 된다.
한참을 오르내려도 중식을 할 만한 양지바른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눈이 쌓여 있지만 평평한 곳을 골라 자리를 편다. 눈속에서도 걸으며 식사를 한다고도 하는데 눈밭에 비닐돗자리를 깔고 하는 식사야 준수한 편이리라.
남자 둘에 여자 여섯이니 반찬 걱정은 안한다. 항상 각자 반찬을 따로 챙겨오니 푸짐한 부페식이다. 더구나 오늘 나는 도시락도 준비하지 못해 김밥을 사오려다 충분히 준비했다는 만류로 떡과 과자를 사서 내 놓았지만 밥과 반찬이 남아 돌 지경인지라 도무지 팔리지가 않는다. 내려 가서 먹기로 하고 도로 짐을 싸고야 말았다. 당일치기 등산에서는 가져온 것을 빨리 내놓고 소비해야 짐도 가볍고 좋은데 벌 받았다고 웃으며 즐겁게 식사를 하였다.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눈꽃을 반찬삼아 밥맛은 꿀맛이 되고 유쾌한 시간이 웃음 속에 흐른다.
식사를 한 후 내려 오는 길에도 몇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고넘어 임도에 이르자 오른쪽 길로 하산을 하였다. 소복이 쌓였던 눈이 일부 녹은 곳에 얼음이 얼어 다소 미끄러워서인지 두 세번 넘어질 뻔하였으나 순발력을 발휘하여 카메라를 잘 보호하여 무사히 내려 온다. 범어동 대동아파트 단지 옆으로 내려왔다.
곳곳에 쉼터도 보이고 등산로 입구에는 멋진 정자도 있어 때는 바야흐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절감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웅크리고 힘든 하루를 보내어야 하는 실업자와와 노숙자가 일년이 다르게 늘어 간다는 일행의 우울한 이야기는 등산의 상쾌함을 반감하게 만든다. 그래도 우리만의 즐거움만이 아니고 이웃을 더불어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바람도 쉬어 가는 곳'이란 아름다운 분위기의 카페에 들러 생맥주 한두 잔씩 하고 돌아가는 발길은 가벼웁고, 호포에서 지하철 한번에 1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 올 수 있다는 것도 또한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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