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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일홍(落日紅)
김 정 한
1
박재모는 변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골마루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말끔하게 닦아둔 거울 면에는, 재모의 파리한 얼굴이 뚜렷하게 비치었다. 쑥 불거진 광대뼈, 면도 자리가 파르스름한 턱주가리, 그리고 움푹 둘러 꺼진 눈언저리 一모두가 까칠까칠한 껍질에 싸여 있었다. 머리는 알뜰히도 박박 깎은 중대가리다. 중대가리면서도 반백이 완연한데, 그의 뼈 손가락이 가볍게 부딪치자 허연 비듬이 무덕지게 일어난다.
재모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두어 번 썩썩 긁다가, 결국 갈망을 못할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손수건을 꺼내가지고 정수리부터 어깨 짬까지를 털털 떨어버리고는 직원실로 쑥 들어갔다. 그는 직원실 안을 둘러보는 법도 없이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가 앉았다.
퇴색된 그의 국민복에 비겨서는 의자든지 테이블이든지 어울리지 않게 새롭다. 아직도 광채가 낡지 않고 번들거리는 테이블 위에는 벼룻집을 한 귀로 모두가 반듯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단 둘이밖에 없는 다른 동료들도 끽 소리없이 그날의 사무 정리에만 바쁘다.
이렇게 긴장된 환경 속에서 제일 큰 테이블을 차지하고 단정하게 앉은 재모는, 누가 보더라도 이 지방의 순직한 학부형의 대부분과 마찬가지 생각으로 얌전한 교장 선생님으로 알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한 사람의 훈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학교에 터를 닦을 때부터 와서 육 년 동안 여러 가지 고생을 격으면서 지금과 같은 버젓한 학교를 만들어놓은―― 말하자면 이 학교의 공로자인 동시에 착실한 훈도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태껏 누구에게도 자기의 노력을 요만치도 자랑하려 한 적이 없었고, 또 자기보다 훨씬 교원 계급이 낮고 공로도 없는 양반들이 교장으로서 당당히 행세를 하고 다녀도 그는 한 번도 자기가 교장이 되지 않은 것을 구두덜거린 일이 없이 사시장철 한모양으로 지났다.
재모는 그날도 그러한 얼굴을 하고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방학 때이라 아이들이 오지 않기 대문에 교내는 지극히 조용하였다. 오직 뉘엿뉘엿한 삼월의 석양빛만이 고요히 유리창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느 학교 할 것 없이 삼월 말이 되면 교원들의 이동기가 절박한 만큼 직원실 안이 꽤 떠들썩한 법이지만 재모가 소위 수석 훈도로 있는 이 S분교장만은 그렇지 못했다. 이렇게 미적지근한 공기를 제일 갑갑하게 여기는 건 부임해온 지가 아직 일 년도 채 못 되는 강 선생이었다. 나이도 아직 점잖아질 때가 못 되지만, 그보다도 그는 교통이 말이 못 되게 불편한 이 산골이, 오던 그날부터 그만 진저리가 나서, 엄부렁하게 전근 운동을 한다고 해놓고는 짜장 궁금한 생각에 마음이 들떠서 어서 날이 가기만 못내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강 선생은 그날도 일을 부리나케 마쳐놓고는 보고 싶지도 않은 신문만 괜히 이리 뒤적 저리 뒤적하면서 낌새만 보고 있다가 결국 참지를 못하고서 또 먼저 말을 꺼냈다.
“박 선생님 ”
“네?”
재모는 그때까지도 꽉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도(道)에서는 지금쯤 꽤 바쁘겟지요? 교원들의 이동이며 배치 사무에…….”
강 선생은 마치 자기 친형에게나 하듯이 예사롭게 물었다.
“여태 있어! 벌써 다 결정됐을걸 뭐. 오늘이 이십칠 일이니까…….”
“우리 학교에는 별반 이동이 없겠지요?”
하는 강 선생의 말눈치는,
‘저를 빼놓고는……!’
하는 기색이 빤하였다.
재모는 그러한 강 선생의 눈치를 못 알아챈 바가 아니지만,
“글쎄요…… 있다면 아마 내가 어디루 밀려나가겠지요.”
“박 선생님이야 어디?”
“왜 그래요.”
“선생님께서야 인제 이 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눌러앉으실 텐데 뭐!”
강 선생은 아주 그렇게 확신하는 듯이 말했다.
“천만에! 그럴 자격이 돼야죠.”
재모는 그저 쓸쓸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왜요. 금수로도 이미 넉넉하거니와 공로, 더구나 이 학교를 이만큼 만드신 공로를 두구 말하더라도 당연히 그만 대접은 받아야죠.”
“공로는 내가 무슨 공로가 있다구!”
“천만에요! 그리구 또 지방측에서 당국에 그만큼 진정두 허구 탄원두 했으니까 안 될 리가 있겠어요?”
“별소릴 다…….”
“아녀요, 꼭 되어요.”
강 선생님은 제 일같이 열을 내었다.
“그래두 안 되면……?”
“그때야……!”
차마 집어치우란 말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 틀렸소. 성이 박조가린데 뭐…… 평생 바가지나 긁구 살지요.”
재모는 그저 장난조로 씩 웃어버리고 만다. 강 선생도 더 시부렁거릴 용기가 없었던지 멍멍할 따름이었다.
재모는 말만은 비록 그렇게 해던졌지만 그래도 일루의 희망이 바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결코 자기의 급수라든지 공로를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아니 이 분교장이 오는 사윌부터는 독립이 되고 따라서 교장도 따로 두게 된다는 당국의 방침을 알고부터는 더욱 자기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입 밖에는 내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자기가 이 학교의 교장이 되어가지고 식(式)날 모닝 코트가 없어서 여러 손님들 앞에서 얼굴을 붉히던 꿈까지 다 꾸어보았다.
그는 생시에도 하루에 몇 번은 만약 교장이 된다면…… 하고 자기의 태도라든가 행동을 반성도 하고 고쳐도 보곤 하였다. 언젠가 한 번은 변소에 들어가 들앉았다가 교장이 되어도 이렇게 앉아서 무방할까 하는 생각을 문득 가졌다가는 그렇게까지 달뜬 자기의 마음이 짜장 우스워서 혼자서 씩 웃어본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재모는 남의 앞에서는 결코 그러한 데된 짓은 애당초 하지 않을만한 수양을 충분히 쌓은 사람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한결같은 얼굴이다. 그날도 그는 마치 감정이란 것은 송두리째 거세(去勢)당한 천치처럼 예의 화석 같은 얼굴에 겨우 눈만이 살아 있는 표적인 듯 끔벅끔벅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속만은 젊은 강 선생에게 못지않게 뒤설레고 훙뚱거렸다.
2
재모는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이 직원실을 물러나왔다. 그가 거처하는 집은 바로 학교 구내에 있었다. 장래 교장 관사로 지은 집이었다. 아직 전임 교장이 없으므로 재모는 그저 임시로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까닭인지 그는 지나간 육 년 독안을 마치 제 집같이 드나들던 그 문간이 요즘 와서는 들어서기가 퍽 거북스려웠다.
“어머니, 아버지 돌아왔어요.”
어린것들이 통통통 달려와서 가방을 받아 들며 반가워하여도 어쩐지 전과 같이 그리 마음이 명랑해지지를 못했다. 재모는 마루 위에 올라서기가 바쁘게 기둥에 걸린 먼지떨이를 내려 들고서 양복 바짓가랑이를 네댓 번 툭툭 털어버린 다음 자기가 거처하는 방으로 썩 들어갔다.
“아버지, 다리 아프시죠? 내 또 두드려드릴게.”
앉기가 바쁘게 둘째딸 혜순이가 고사리 같은 주먹으로써 허벅살 짬을 콩콩 두드리어도 그저 ‘응 그래.’ 할 뿐이었다.
“아찌! 아찌!”
하며 단 하나뿐인 아들 ― 경호가 종일 흙판을 밟고 다니던 발바닥으로써 무릎 위를 저벅저벅 사뭇 밟아도 그는 싫다고도 귀타고도 하지 않았다. 전 같으면 으레 가동질도 시켜보고, 또 일부러 울려가면서까지 귀여워도 했지만 요즘 와서는 괜히 제자식에게 대해서도 그렇게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세 살도 채 못 찬 것이 아비의 그러한 심사를 알아줄 리 만무하고 ―一―--.
“아찌! 아찌! 누야 으은 으은…….”
혜순이에게 또 무슨 설움을 받았는지 똑똑하지 못한 말을 자꾸 또 되풀이 했으나,
“오냐, 그래, 그래.”
그저 덮어놓고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재모는 아들을 무릎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그는 더욱 아비의 목에 매달렸다.
“아찌 엠배!”
언제나 쓰는 수단을 또 쓴다. 미상불 그는 담배도 꽤 피우고 싶었다.
“엠배?”
경호는 눈이 탐스럽게 둥그래졌다.
“응, 엠배! 어서 성냥 찾아와.”
경호는 여태까지 버티던 걸랑 별안간 잊어버린 듯이 부리나케 무릎을 썩 내려서더니 이리저리 바쁘게 살핀다. 재모는 그 동안에 양복 호주머니에서 ‘마코’ 동강을 하나 꺼내 물고는 경호가 가져오는 성냥을 얼른 받아 들었다.
“아찌, 피!”
경호는, 빨리 불을 붙이라는 뜻일 테지, 화약 타는 시늉을 하고서는 저도 피운다는 듯이 야무지게 성냥알 하나를 쑥 꺼내 물고서 재모의 곁에 바특이다가 앉았다. 그리고서 재모가 한 번 길게 빨면 저도 그러고, 연기를 후――내불면 저도 제법 헛입을 쫙 벌리고 후―후 하였다.
“아찌 ! 이 아…….”
“응 많이 피워.”
“아찌, 으은 아, 이 아!”
“응, 으은 아. 이 아!”
재모는 이렇게 벙어리타령을 해서 아들의 구미를 맞추면서도 마음속은 조금도 후련해지지를 않았다.:
이윽고 맏딸 영순이가 밥통을 들고와서 도리상을 방 가운데 펴놓고 아내는 바쁘게 반찬 그릇들을 갗다 날랐다. 혜순이와 경호는 갈증난 강아지처럼 허덕허덕 날뛰었다. 혜순이는 그래도 다소 누이 된 대문이 있어서 얼른 제 숟가락이나 찾아 들지만, 경호란 놈은 그 짓도 못 하면서 그저 욕심만 크다.
“아찌 ! 빱바! 아찌.”
부리나케 밥을 재촉하면서 고기(제 말로 이찌) 접시는 모조리 제 앞으로 끌어다놓는다. 그러는 통에 수저는 방바닥으로 댕그렁 떨어지고 상 위에는 된장국물이 철썩 넘치고 ―----.
이러한 난리가 벌어져도 재모는 그저 손 되어온 사람처럼 신풍스럽게 구경만 할 따름이었다. 허둥대는 건 아내뿐이다.― 상 위에 행주질을 다시 한다. 어린것들을 이리저리 제자리에 앉힌다…… 그리고는 또 칭얼거리는 짖먹이를 돌보러 건넌방으로 달려간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편에게 대해서 한 마디도 불평이라고는 없다. 그녀는 그러한 여자였다. 재모는 가끔 무식한 구식 여자라고 나무라기도 하지만 이런 점을 보아서는 짜장 고맙기도 하였다. 입으로는 이해니 뭐니 하고들 떠들지만 사실 오늘날 소위 신여성으로서 이처럼 자기 남편을 이해해주는 여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하며 재모는 깍두기 조각을 구수하게 씹어보는 것이었다.
재모는 가정 생활에 있어서 자기의 등한한 태도를 결코 옳다고 생각한다든가 또 하려고는 않았다. 다만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자기의 버릇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리고 여자란건 남자의 태도가 옳건 그르건 반드시 복종해야만 된다는 고린내나는 봉건 사상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자기 아내의 그러한 불간섭주의가 만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젖먹이를 안고서 일변 경호에게 반찬을 집어주는 아내를 바라볼 때 그는 숫제 마리아의 그림을 연상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아내를 고맙게 여기고 감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모와 같은 성격과 처지의 인간에게는 그러한 본의를 표시할 만한 길이 별로 없고 따라서 그와 같은 감정은 곧 아내에게 대한 측은지심으로 돌아가고 말 뿐이었다.
‘저도 이젠 좀 편해져야 할 나일 텐데…….’
재모는 밥공기에 된장국을 떠넣으면서 곁눈으로 아내를 술쩍 건너다보았다.
아내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두서너 술 뜨다 말고 남이 먹고 난 그릇들을 말끔 챙겨가지고는 어두컴컴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녀는 얼떨결에 못 다 먹은 밥을 부엌에서 마저 먹는 버릇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다.
영순이도 지저분하게 어지러진 방바닥을 진걸레, 마른걸레로써 깨끗하게 가시어논 다음 어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혜순이 넌 안 가니?”
재모는 밥술 떼자 곧 누우려는 작은 딸애를 보고 묻는다.
“오데?”
“똥 싸러.”
“안 똥 마려?”
말이 아직 서투르다.
“정말?”
“응!”
“그러다가 밤에 또 울려구? 똥 똥 허구…….”
“안 울어.”
“이젠 울어도 안 데리구 간다.”
재모는 톡톡히 다짐을 받아놓는다. 그는 혜순이를 따로 데리고 자느라고 꽤 단잠을 놓치곤 하였다.
“울면 안 돼!”
“응.”
“울면 뭐가 잡아가지?”
“어머니.”
“아냐!”
“부엉이?”
“옳아 또?”
“올빠미.”
“응, 그래그래.”
“아버지 거짓말!”
혜순이는 약삭빠르게 앙글방글 웃는다.
“그럼 울 텐가?”
“안 울어!”
재모는 혜순이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갔다. 가나오나 그는 어린애들과 노는 것이 가장 유쾌하였다. 설혹 돈은 없더라도 자식들만은 결코 영양 부족은 아니었다.
혜순이는 고단한 탓인지, 거무하에 잠이 콜콜 들었다. 재모는 자기의 헌 양말을 아내가 맵시있게 줄여서, 겹으로 신겨놓은 딸의 통통한 발밑에 조심스럽게 싼 유단뽀를 넣어주고서는 자기도 그 곁에 다가 누웠다. 어미를 닮아서 약간 곱실곱실한 머리카락이 향긋하게 놀던 그의 비단풀 각시가 귀엽게 누워 있었다.
삼월은 봄, 나른할 때다. 혜순이는 콜콜 잠이 더욱 깊게 들었다. 건넌방에서도 영순이 외에는 죄다 잠이 든 모양이다. 일에 지친 아내의 숨소리도 차츰 커졌다. 그러나 재모는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 쉬 들지 않았다. 사흘 뒤면 발표될 자기의 운명과, 국민 학교는 마쳤지만 재주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아비된 자기의 가난 탓으로 다른 집 아이들과 같이 상급 학교에 가지 못하는 영순이 때문에 그는 별안간 베갯잇이 차가워오는 것을 깨달았다.
3
재모가 잠이 깨었을 때는 벌써 처마 끝에 해가 비치고 참새 소리가 부산하게 짹짹거렸다. 언제나 동살이 잡히기 전에 일어나던 재모지만 요즘에는 어쩐지 불면증이 자주 들어서 일쑤 그렇게 되기가 쉬웠다.
혜순이는 어느덧 눈이 또록또록 해가지고 울타리 밑에 가 있었다. 그의 고사리 같은 손에는 벌써 보들보들한 파란 풀잎이 꼭 쥐어져 있었다. 아침으로는 아직도 싸늘하니까 어깨를 으쓱 웅크리고 있었다.
“혜순이 너 춘데 게서 무얼 하니?”
하도 기특해서 재모는 한참 동안 가만히 구경을 하다가 말을 걸었다.
“암것도 안 해요.”
그는 돌아도 안 보고 다라지게 허리를 꼬부장하며 울타리 밑만 열심히 살핀다.
“안 추우냐?”
“안 춰요!”
하지만 돌아서 있는 귓방울이 호―불어주고 싶을 만큼 빨갛게 되어 있었다. 가지런하게 에워 선 측백나무 울타리에는 볕살이 차츰차츰 짙어왔다. 밤새 서리에 젖어서 갈매빛으로 질렸던 잎사귀들이 조금씩 맥이 트여 반짝 반짝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 ―야, 이 ―야……!”
뒤꼍에서는 경호란 놈의 드센 소리가 들리더니 제 키보다 두 배나 더 긴 대막대기를 하나 추켜들고는, 제 생일날 잡아먹으려고 사다둔 둥우리 같은 수탉을 뒤쫓아 나온다. 추워서 시퍼렇게 된 입가에 콧물 침물을 흥건하게 흘려가면서 둔팍스럽게 뒤룩거리는 품이, 마치 부룩송아지처럼 어설프다.
“이 ! 이 !”
경호는 잘 이기지도 못하는 대막대기로써 억척스럽게 맨 땅바닥만 툭툭 친다.
“왜 그러니 ?”
“아찌 꼬꼬 으은 으은!”
무슨 소린지 알 수는 없으나 골이 꽤 난 모양이다.
“그러면 안 돼 ! 꼬꼬 저―가버린다.”
“앙이 !”
고집이 또 보통 고집이 아니다. 여간 나무라는 것쯤은 아예 듣지 않는다.
“그럼 아버지 이놈― 하지.”
“앙이 ! ”
경호는 제 쪽에서 되려 못마땅한 듯이 상을 찡그리며 다시 닭을 뒤쫓았다. 겁을 먹은 수탉은 공교히 울타리 구멍으로 빠져 나갔다.
“앙이 ! ”
경호는 골이 나서 상을 더욱 찌푸리고 혀를 쯧쯧 차며 뒤룩뒤룩 대문을 향해서 나아갔다. 무거운 듯이 머리를 앞으로 구붓하고서 뚱딴지 걸음을 치는 꼴이 하도 우스워서 재모가 허허 하고 웃어대니까 구는 화가 더욱 남인지,
“앙이!”
하고 재모를 흘겨보며 작대기로써 금방 칠 듯이 한 번 겨누곤 밖으로 나갔다. 울타리 밖에서도 잇달아 또 닭을 쫓는 소리가 앙칼스럽게 났다. 그와 동시에 저쪽 노간주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던 죄없는 까치란 놈이 괜히 제물에 놀라서 꽁지를 두어 번 깐댁깐댁하더니 깍깍 소리를 치며 그만 어디론지 훨훨 날아가버렸다.
이윽고 울 밖이 잠깐 고요하기에 이상타 여겼더니 경호란 놈이 뜻밖에 입을 히죽이 하고 돌아왔다.
“아찌, 아찌!”
하며 방금 세수를 하고 있는 재모 앞에 다가선다. 재모는 얼굴에 비누칠을 무덕지게 한 채 고개를 들었다.
“아찌, 이 아이아!”
대작대기는 어디다 던져버리고서, 어느 돌구멍 에서 끊었는지 경호는 노오랗게 꽃이 핀 애기똥풀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쥐고 있었다.
“아찌 이 아이아!”
그는 여태껏 치밀었던 화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금시에 좋아져서 입이 그저 벙글벙글했다. 놈은 말이 아주 간단해서 옷이든 뭐든 제 맘에 맞는 건 모조리 ‘아이아 !’라고 떠든다. 그렇게 숫된 놈을 재모는 또 찌부릭거려보고 싶었다.
“아이아 아냐 ! 엣페 !”
“앙이 ! 아이아 !”
일껏 마음이 풀렸던 경호는 또 열을 바짝 내었다. 그러나 재모는 되려 그걸 재미삼아 골을 더 돋우고 싶었다.
“아냐! 옛페 !”
“앙이 ! 앙이 ! ”
“앙이 ! 앙이 ! ”
“아찌 옛페 ! ”
아버지가 더럽다는 말이다.
“아냐, 경호 엣페 !”
“앙이, 앙이, 앙이 ! ”
경호는 그만 또 불뚱이가 터져서 울상을 해가지고 와락 덤벼들었다. 그대로 나간다면 꽃이고 뭐고 죄다 내던지고 시작할 모양이었다.
“응, 응. 아찌 엣페 ! 경호 아이아! 그 꽃 참 좋군.”
재모는 끝갈망이 두려워서 그만 못 이기는 체했다.
“…….”
경호는 그래도 시무룩해가지고 아버지를 잠깐 흘겨보았다.
“그 꽃 참 좋다. 아이아! 어디서 끊었지?”
재모는 이번엔 골을 풀어주기 위해서 애를 쓴다. 경호는 역시 지르퉁한 채, 혀만 한 번 쯧 한다. 소원대로 풀지 못한 골덩이가 별안간 굵다란 눈물이 되어서 얼굴에 두 줄기의 금을 지었다. 그러나 결코 소리를 내어 우는 성미는 아니었다. 재모는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와락 그를 껴안으며,
“경호야, 아버지 잘못했지 ? 인제 다신 안 그럴게. 이 아이아 참 예쁘구나. 아버지 하나 안 주련?”
하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제 어미가 벼락이란 별명을 붙여둔 만큼 놈은 성질이 어떻게 팔팔한지 골을 낼 땐 그만 천불이 나고 풀린 땐 또 아주 쉽게 풀어진다.
“아찌, 이 ! ”
그는 서슴없이 한 떨기를 쑥 내어준다.
“응, 아 아이아!”
재모는 날큰날큰할 꽃을 받아 들고 짐짓 반가워했다.
“아이아 어디서 끊었지?”
“아이아 으은 으은.”
누구보다도 그와 이야기를 잘하는 재모지만 이놈의 ‘으은’이란 말만은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응, 응, 으은 으은.”
그저 이렇게 해두는 수밖에 없었다.
“아찌 이 아 코―으은 아.”
“응! 으은 아.”
“앙이 ! ”
경호는 갑자기 또 불끈하려고 든다. 이쪽에서 말을 얼른 못 알아주기 때문이다.
“왜 그래 응?”
재모는 무슨 죄나 지은 듯이 맘을 조릿거렸다. 결국 또 경호란 놈이 한참 옹고집을 쓰고 재모가 실미가 나게 진땀을 낸 다음에 비로소 겨우 통정이 되었다―화병에 꽃자는 경호의 의견이었다. 재모는 한숨이 다 나왔다.
“응, 인젠 알았어. 아찌 세수나 마저 하고…….”
“앙이 ! ”
놈은 급하기가 그저 싸전에서 밥 내놓으란 격이다. 재모는 박부득이 얼굴에 비누칠을 허옇게 말려붙인 채 화병을 찾으러 방으로 들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귀치않은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4
“쌀……? 글쎄, 팔려거든 팔아오구 말려거든 마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재모는 쌀 말을 하는 아내더러 이렇게 어리뻥뻥한 대답을 던지고서 집을 나섰다.
교장 문제에 대해서 진정을 갔다왔다는 지방 유지들의 말을 들으면 군수 영감의 대답도 그야 교장이 되고 안 되고는 예단키 어려운 일이지만 만약 그렇게 못 될 경우에는 도에서도 당자의 체면이라든가 여러 가지 입장을 생각해서 어디로나 큰 학교로 전근쯤은 시켜줄는지 모르겠지요, 하더라 했고 또 재모 자신도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어쩌면 그렇게 될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것도 틀릴 경우가 염려되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형편이 그렇고 보니 미상불 쌀을 더 팔기도 주제넘은 일 같고 그렇다고 해서 아니 팔기도 거북한 일이었다.
재모는 가만히 장부 정리를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아내가 쌀을 팔겐지 안 팔겐지 짜장 궁금하게 여겼다. 그는 자기의 마음이 어째서 이다지도 옹색해졌을까 생각하고 스스로 나무라기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속이 갑작스레 후련해질 일도 아니었다.
팔까? 말까·…·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소사를 보내 아내더러 쌀을 팔아두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또 그렇게 일러 보낸 것을 잘못했다고 뉘우쳤다. 역시 아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재모는 그렇게 달뜬 자기의 마음을 잠시라도 가라앉히기 위해서 다시금 장부 속에 정신을 쏟았다.
50전 +150전 +15원 +10전…….
그는 어느 새 차게 식어버린 찻물을 훌쩍 들이마시고는 다시 따끈한 물을 잔에 따랐다. 불을 붙여놓고서 잊어버린 담배가 흰 재떨이 위에서 파르스름한 연기를 실같이 뽑아 올렸다.
1원 ×23+10원…….
재모는 암산 시험을 받는 학생처럼 정신을 가다듬는다.
특별 기부 장부였다. 자칫하면 의심을 받기 쉬운 성질의 회계 장부지만, 재모는 지방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서 결백한 자기 자신의 손으로써 처리하고 또 정리한 것인 만큼 사실은 그다지 꼼꼼스럽게 재검(再檢)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일이 금전에 관한 만큼 결코 섣불리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골머리 아픈 노릇이었다.
이윽고 그는 정신이 휭 ―나가고, 눈앞이 그만 흐리멍덩해졌다. 그는 언제나 하는 버릇으로 고개를 뒤로 잔뜩 젖히고는 양복깃에 목덜미를 두어번 비비적 비비적 했다. 그러고 그만 눈을 꽉 감았다. 문득 지나간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 ―그렇다, 그걸 좀더 얘기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재모가 처음으로 이 산골에 부임해왔을 때는 아직 학교가 서지 않았었다. 이름만의 J국민학교 분교장이었다. 따라서 물론 교실도 없고 학생도 없었다.
그는 곧 학생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헐어져가던 동네 글방을 빌려가지고 한쪽에는 자기 가족이 들고 한쪽을 임시 교실로 대충하였다. 천장이고 벽이고 모두 군데군데 매흙이 떨어져서 알맹이가 쑥쑥 드러나고 방바닥은 여간 발라도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의 발길에 단 사흘이 못 가서 먼지가 풀썩풀썩 솟아올랐다.
이런 데서 그래도 공부를 시켜보겠다고 사십 명이나 되는 아동을 방 안이 빽빽하게 몰아넣고서 국이 끓는지 장이 끓는지 모르게 한참 동안 벅적거리고 나면 굴 속 같은 방 안에는 어느덧 분필가루와 먼지가 자옥해진다. 게다가 아이들이나 말쑥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코를 흘리는 놈, 낯도 아니 씻은 놈들이 그저 수두룩했다. 그 밖에 또 지린내 비린내까지 사뭇 내는 놈도 있었다.
이러한 공기 속에서 재모는 하루에 몇 번씩 숨이 턱턱 막히고 속이 메슥기리는 경우를 겪었다. 그는 몇 번인가 교원 노릇을 집어치우고 고향에 돌아가서 남의 땅이라도 파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일시의 흥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자기가 온 것을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또 자기를 어디까지 라도 믿어주는 아이들의 순직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다. 그는 흔연히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늘에서 펀 호박꽃같이 영양 부족한 그들, 오나가나 땟국이 질질 흐르는 그들, 무지하고도 어리석은 그들을 재모는 불쌍하게까지 여기었다. 재모는 차라리 그러한 데서 교원된 보람을 찾으려했다.
틈만 나면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냇가로 내려갔다. 아직 물은 조금 차가웠으나 아이들은 별반 꺼리지 않고 마치 그러 한 맑은 냇물을 처음으로 발견이라도 한 듯이 거위 새끼처럼 앞을 다투며 풍덩풍덩 즐겁게 뛰어들었다. 재모는 가끔 자기 손으로 때를 문질러주기도 하고 이가 추저분한 놈이 있으면 일부러 자기집 소금까지 가져와서 일일이 닦게 했다. 아이들은 볼 동안에 깨끗해졌다. 때로는 손수 귀구멍 소제까지 해주었다.
수업 시간에 똥을 싸는 놈이 있어도 그는 그다지 불쾌히 여기지 않았다. 곁에 앉은 놈들이 ‘야―’하고 침을 뱉으면서 놀리면,
“에끼 이놈들! 너희들은 똥 안 싸고 자랐니?”
나무라 놓고는,
“이놈, 너 어젯저녁에 차게 잤군. 이담부터는 어머니에게 배를 단단히 덮어 달라구 그래, 응?”
하며 찔끔거린 놈을 되려 위로해주었다. 그리곤 자기 손으로 좋게 그것을 다 치웠다.
집에서는 자칫하면 매맞기 아니면 꾸중듣기가 마련이어서 언제나 진 날개처럼 기를 잘 못 펴는 그들에게 재모는 또 일찍 이 제 어머니 품에서 듣지 못한 가지가지 재미있는 옛이야기들도 자주 들려주었다. 그리고 잊혀져가는 고장의 아름다운 옛노래들도. 툭하면 다닥치기를 일삼던 그들도,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살아라…….
하며 사이좋게 깡총거렸다.
재모의 집을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은 동네 할머니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짜고짜로,
“노래통 한 번 놀려보우!”
하는 것이 수인사였다.
“네?”
재모는 첨에는 무슨 말이지 잘 알아채질 못했다.
“노래통 말이요. 왜, 그 날마다 우리 손주놈들에게 들려주는 것 있잖수?”
“아하, 예, 노래통 노래통·…·.”
재모는 그제야 비로소 유성긴 줄을 알고서 노래통이라니 묘한 이름이로구나 감탄을 하며 구미에 맞을 만한 것을 많이 들려주었다.
구추 깊은 밤에
하늘이 높고 달이 밝다·…·!
하는, 초한가 한 대문이 나왔을 때 할머니들은 주름잡힌 얼굴들을 벙긋거리며 더러는 어깨까지 들먹들먹하였다. 그들은 오래도록 신이 나게 듣고 나더니 돌아갈 때는 모두 풀이 뻣뻣한 치마 밑 때묻은 주머니들을 더듬더듬하여 웬 돈을 일이 전씩 방바닥에 꺼내놓는 것이었다.
“왜 그러세요?”
재모가 의아해 하니까,
“그럼 남의 노래를 듣고 그냥 가서야 되겠수?”
하였다.
“천만에요 ! 그렇지 않습니다.”
재모는 돈을 도로 넣어 보내면서 속으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의 할아버지들도 더러 놀러왔다. 그들은 대체로 할머니들보다는 좀 뒤퉁스러웠다. 더구나 동리 안에서 제 땅마지기나 지닌 걸 엉터리로 괜히 얼토당토 않게 저들끼리서 주사니 참봉이니 하며 소위 산골 양반을 뽐내려는 패들이 더욱 그러하였다.
첨에는,
“접장 있는가?”
하며, 재모를 마치 자기들의 아들 친구나 되는 것처럼 만만히 보고서 말조차 함부로 해던졌다. 재모는 다소 창피스러운 생각이 아니 든 바도 아니었으나 그저 지방 풍속이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서,
“예, 어서 오십시오.”
우선 반갑게 맞아들이고는,
“요즘에는 접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지 어승그러하게 타일렀다.
“그럼 무어라고 부르는고?”
저편에선 얼른 눈치를 채기는커녕 말이 연방 더 열통적게 나갔다.
재모는 그제야 비로소 교원을 아주 영 시들히 보는고나 깨치고서,
“선생이라고들 허지 않으우?”
조금 무안토록 해던졌다. 실상으로는 왜 빤히 알면서 그렇게 능갈을 치오,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응, 그래·…·?”
이를테면 그게 아마 양반의 대답들이라는 것일 테지, 신풍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무안한 기색이 아주 없는 바도 아니었다.
재모는 그러고부터 소위 지방 양반들의 그러한 경향을 고치려고 들었다. 비단 접장이란 말에 한해서만이 아니었다. 다만 순사들처럼 ‘고라! 바가! 격으로 호통을 치거나 따귀를 갈기지 않는다고서 교원을 만만히 보려는 그 고린내나고 다라운 태도를 응어리부터 확 뜯어 고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선생 이라고 부르려고도 않고 또 그렇게 알아주지도 않았다.
되려 주막집에라도 모여 앉으면,
“제가 어디 우릴 가르치러 왔던가? 우리 손주놈들의 선생이지.”
이렇게 깎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또 무슨 선거(選擧)때만 되면 그 엄청난 비빔밥 한 그릇이나 혹은 쥐꼬리만한 돈에 팔려가지고 첫새벽부터 덜덜 떨며 망석중이들처럼 우쭐거리는 그들이, 무슨 속알맹이가 있다고서 자칫하면 학교 안 일에 대해서까지 당치 않은 간섭을 하려고 들었다. 그럴수록 재모는 교육자로서의 자기의 몸가짐을 한결 삼가히 하는 반면, 경우에 따라서는 막선 일도 많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들도 차츰차츰 재모를 이해해 갔다.
하지만 약시약시한 분에게는 한 말에 일 원 육칠십 전씩으로 두말 없이 썩썩 턱 밑까지 바치는 쌀을 재모에게는 꼭 말 부피까지 축이 나게 해가지 고부당 시세에서 일 전도 덜하지 않게―그것도 반드시 소사나 누가 일부러 가서 애걸하듯 해야만 겨우 내어주는 버릇만은, 끝내 잊어버리지 않았다.
글방 생활을 석 달도 더 했을 때 겨우 학교가 섰다. 성대한 낙성식이 벌어졌다. 재모는 파랗게 빛나는 새 기와지붕과 훤칠하게 번쩍 거리는 유리창들을 바라볼 때 뱁새춤을 깡총거리는 아이들에 못지 않게 기뻤다.
“선생님 !”
“선생님 !”
“오냐.”
“오냐.”
아이들은 좋아 뛰고 그는 빙그레 웃었다.
“이게 우리 학교죠?”
“암 그렇구말구 !”
“언제부터 들게 되나요?”
“내일부터 라두.”
“정말예요?”
“그럼.”
“아이구 좋아.”
어떤 놈은 재모의 손을 마구 잠아당기고 어떤 놈은 재모의 양복 저고리에 매달렸다. 뜰 안이 차게 모인 방민들도 모두 입이 벙긋벙긋하였다.
“이러면 되는걸 온!”
늙은이들은 텁수룩한 수염에 막거리칠을 허옇게 해가지고 부산하게 떠들어댔다. 재모도 어느 새 술이 얼근히 돌았다. 그러나 그는 한갓 기쁠 따름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때부터 벌써 새로운 걱정 거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집만은 어떻게 됐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하여서 내용을 충실히 해나갈까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당국의 예산이란 예나 이제나 보잘것 없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더라도 다시 지방 유지들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부터 그는 아이들만 돌려보내고 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밖으로 나돌았다. 면내(面內)의 어느 부락, 어느 집의 사람 할 것 없이 그의 발자취가 가지 않은 곳이 별로 없었다. 물론 그에게는 일요일도 없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거죽만 엄부링하던 학교가 오늘날에 와서는 삼 학급 제도의 학교로서는 어디에 내놓더라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안팎이 모두 오달지게 영글어진 것이다.
그렇게 동냥아치처럼 독지가의 동정을 얻으러 다닐 때에 겪은 가지가지의 고초 중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그에게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은 양 주사란 사람의 술도가에서 당한 봉변이었다.
“학교만 지어줬으면 됐지, 또 무엇을 그렇게…….”
이것이 그분의 첫 수인사였고,
“예산은 군에서 나오는 법이고, 당신은 그저 교장 선생님의 명령을 좇아서 해나갈 일이지…….”
가 그의 두 번째 훈계였고,
“가만히 앉아서 가갸거겨나 가르치지 뭘 그리 급하게 날뛰오? 일장공성만골고(―將功成萬骨枯)란 격으로 당신 한 사람 이름 내기 위해서 지방 사람들 죽는 줄 모르오?”
가 그의 마지막 명령이었다.
재모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한다. 악치듯 억수가 쏟아지던 밤중에 양 주사의 집을 헛탕으로 물러나와서 산길 이십 리를 허둥지둥 돌아오던 그날 밤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곁 교실에서 ‘로렐라이’를 풍당당거리는 강 선생의 요란스러운 오르간 소리도 재모의 귀에는 먼 옛날의 잊어버린 자장가같이 아득하게 울려왔다. 그날 오후에는 본교(本校)에서 나카무라란 교장 선생이 출장을 나와서 출근부에 괜히 거짓말 도장을 수두룩하게 찍어놓고 돌아갔다.
5
재모는 짜증이 몹시 솟굴았다.
“자장 자장…… 요거 왜 요렇게 자질 않고서 줄곧 칭얼거리기만 할까 온!”
그는 몇 시간 전부터 젖먹이를 보는 중이었다. 뉘어도 보고, 안아도 보고, 또 안고 서도 보고, 이리저리 다녀도 보고, 말판에는 하다 못 해 혀를 빨려보아도 이건 뭐 아주 억척이다. 홍역 앓는 애처럼 빨개진 상바닥에 양미간을 잔뜩 찌푸려 매고, 방금 불에라도 데인 듯이 뻬 ―소리를 짜내는 통에는, 아무리 성미가 누긋한 재모로서도 짜증이 안 날 도리가 없었다.
“혜순아! 어서 노래라도 좀더 불러봐 응!”
그저 만만한 것이 혜순이었다.
“안 해!”
혜순이도 인제 어지간히 역정이 났는지 그만 뾰로통하고 토라진다.
“왜?”
“해도 자꾸 우는걸 머!”
사실 그는 인젠 싫어졌다.
“그래도 해봐. 노래만 잘 부르면 애긴 곧 자버리지.”
재모는 이놈까지 달래야 될 판이다.
“많이 했는데 머 !”
“그래도 조금만 더 해 응? 노랜 너가 제일이야. 언니보담 훨씬 낫지.”
“그럼, 머?”
추켜만 주면 으레 솔깃해진다.
“암거나.”
“암거나 안 해!”
“그럼, 뿌른 아늘 은하수?”
“싫어 !”
흉내내는 건 또 싫단다.
“그럼, 참깨 들깨 오도록ㅡ헐까?”
“거도 안 해!”
“가자 가자 감나무?”
“건 나빠 !”
“그럼 뭐?”
“새야 새.”
“거 참 좋지, 어서 해봐.”
“아버지부터 먼저 해 !”
“아버지가 어디 헐 줄 아니. 난 있다 좋은 장수 얘기 해주지.”
“정말?”
얘기라면 또 숟가락이라도 내던지고 덤비는 성미다.
“그럼.”
“꼭 해줘!”
재모는 괜히 또 별소릴 했구나 싶으면서도, ‘응, 응.’ 아니 할 도리가 없었다.
새애야 새
나아무가 삐
조선 나아라
임금의 집에
무엇 하러 갔더뇨
새끼 치러 갔더라
몇 마리 쳤노
다섯 마리 쳤다
한 마리 주우라
볶아 먹고 지지 먹고
다아 먹었다.
혜순이는 고개를 깐댁깐댁하면서 재롱스럽게 불렀다. 재모는 젖먹이를 무릎 위에 안은 채 풀무질을 흔들흔들했다. 그러나 혜순의 말과 같이 아무리 노래를 들려주어도 아가는 자꾸만 낑낑거릴 뿐이었다. 재모는 어쭙잖은 일에 그만 역증이 슬며시 났다.
“혜순아, 어서 어머니 데리구 와 ! 뭘 그렇게 오래 께질지리느냐구 아버지 야단났다구 그래, 응?”
혜순이도 아버지가 끙짜를 놓는 것을 눈치채고서, 그러나 아기자기하게 깨금질을 쳐가면서 대문 밖으로 간들간들 나갔다. 아내가 경호만을 떼어 업고서 바느질거리를 가지고 남의 집 자봉침에 일을 갔던 것이다. 게다가 영순이조차 빨래를 가고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는 아니 오고, 일부러 심부름을 보낸 혜순이조차 좀처럼 돌아오지를 않았다. 그러는 동안 어린건 연방 목이 더 말라서 못 견디었다. 팔다리를 바드등바드둥하면서 빼액빼액 울어대는 모양이 짜증이 나다가도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재모의 양복 바지에는 벌써 두 번째나 어린것의 오줌이 차게 번지었다. 그는 냉큼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오냐 오냐, 네 어미가 소 같은 년이다.”
하며 달래었다.
마침내 어린건 울음소리도 잘 안 나오리만큼 기진해지고, 재모는 아내에게 대한 불뚱이가 극도로 치밀었다.
‘오기만 오면…….’
재모는 부엉이상으로 뭉클해 있었다.
“뭘 허구 인제 와?”
재모는 그렇지 않아도 조마조마하고 들어오는 아내를 그만 쥐어뜯을 듯이 쏘아보았다.
“일이 좀 어중간해서…….”
아내는 재모가 사정 없이 불끈하는 바람에 더욱 겁을 먹으며 부리나케 어린 걸 받아 안으려 했다.
“그만둬!”
재모는 아내의 손을 홱 뿌리쳤다.
“…….”
아내는 어마뜩하고 서서 손만 비빌 뿐이었다.
“혜순이 안 갔소?”
“왔어요…….”
아내는 겨우 기죽은 대담을 하였다.
“그럼 오라면 곧 와야지?”
“남의 자봉침을 너무 자주 빌려 쓰기도 무엇하고 해서, 일거릴 조금 많이 가져 갔더니…….”
이렇게 어리삥삥하게 해던지는 아내의 대답이 재모에게는 왜 당신은 여태껏 자봉침 하나도 못 장만했어요 하는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자봉침을 빌리지 않으면, 그래 바느질은 못 하오?”
재모는 속이 더욱 뭉클했다. 아내는 원망스러운 듯이,
“누가 어디 못 한다고 하나요?”
“그럼 왜 주제 추접게 늘 남의 자봉침은 빌리오?”
“어디 빌리구 싶어서 빌리나요? 이집 저집 다녀가며 거지같이 눈총을 맞아가면서…….”
아내는 악다구니라기보다도 데되게 신세타령 비슷하게 얼버무리더니 뜻밖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았다. 재모는 언젠가 아내로부터 자기가 역시 어느 부자댁에 가서 바느질을 하자니까 웬일인지 그 집 며느리의 눈이 가끔 자기의 치마 밑을 흘낏거리기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어델 가도 남달리 단속을 한다고 하는 청목치마 귀가 어느 새 어슬피 따들싹 헤지고 남을 보여서는 아니 될 사뭇 헤어진 속곳 구멍으로 허벅살 짬이 허옇게 드러나 있었으므로 어떻게 창피스러운지 얼굴에 불을 놓는 것 같더란 얘기를 들은 일까지가 문득 머리에 떠올라서 동정은 가면서도 화는 연방 더 북받쳐서 얼김에 아내의 뺨에 손이 그만 찰싹 날아갔다.
“그런 줄을 빤히 알면서 왜 그런 데를 다니오? 미쳤지 미쳐?”
“안 미쳤으면 어떡해요?”
아내는 손 자취가 빨갛게 드러난 얼굴에 눈물을 주루룩 지으면서 원망스러운 듯이 재모를 쳐다보았다. 경호와 혜순이도 난생 처음으로 이러한 광경을 보고 제물에 놀라서 어미 등에 붙어서 울어대었다.
‘이게 무슨 꼴인가?’
재모는 순간에 자기의 경솔한 행동을 뉘우치면서 그만 눈을 꽉 감았다. 감은 채 눈속이 갑자기 더워졌다.
“평생 안 그러시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그에게 아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에서 매암을 돌았다.
재모는 한숨만 한 번 무섭게 쉴 뿐이었다.
“제가 잘못했으니 애기나 어서 이리 주고 건넌방으로 가세요.”
아내는 그때까지 재모의 무릎 위에서 깔딱거리는 젖먹이를 빼앗듯이 받아 안으면서,
“빨리 한다구 한 것이 그만 늦어져서·…·.”
혼잣말같이 어물쩍 거렸다. 재모는 암말도 않고서 불쑥 일어나서더니 모자를 찾아 쓰기가 바쁘게 밖으로 핑 나가버렸다.
‘무슨 까닭으로 요즘에는 저렇게 잘 불끈거리는지 온?’
아내는 못내 애달파하면서, 그러나 남편의 뒷모습만 우두커니 바라볼 따름이었다.
한식경이나 지난 뒤에 재모는 술 냄새를 몽클거리며 돌아왔다. 눈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또 고구마밥인가?”
재모는 선 떡 받듯이 상을 받았다. 아내의 헤어진 버선 콧구멍으로 본 없이 쑥 내민 발가락이 눈에 선뜻 띄었다. 역시 고구마밥이었다. 고슬고슬한 쌀바탕에 노르끼한 고구마 조각이 사암(砂岩) 속에 장석 (長石)처럼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재모는 언짢은 얼굴로써 그놈부터 먼저 빼어 먹었다. 이밥에 넌더리 난 사람이 별미 삼아 가끔 먹을 때 말이지, 허구한 날을 노상 그놈만 처맡기니 꿍짜가 아니 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내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수입은 한 푼도 늘어나가지 않고 난리 바람에 물가만 대중없이 집어채는데, 쥐꼬리만한 월급으로써 처자를 먹여 살리려네, 고향에 계시는 부모 형제까지 돌보려네, 하자니까 허덕대다 허덕대다 박부득이 궁리해낸 것 이 엄청난 고구마밥이었다. 자기가 처음에 그런 엄두를 내었을 때 아내는 못내 섭섭하게 여기었다.
“그렇게까지 않더라도…….”
“아냐, 쌀 한 말에 이 원이 훨씬 넘는데 어떡허우. 국으로 고구마밥이나 먹는 게 옮지. 그런데 어느 책에선가 보니 고구마란 놈이 사람에게 썩 좋은 모양이더군 그래. 특히 여자에게는…….”
재모는 이렇게 권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태 누구보다도 달게 먹어왔다. 그러한 고구마밥이 요즘 와서는 갑자기 넌더리가 나서 그날 저녁에도 그만 중동무이를 하고 말았다.
6
마침내 최후의 심판날이 왔다. 오랫동안 꿈꾸던 교장이 되느냐 못 되느냐? 마음이 달뜬 것은 당자인 재모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동료들이 그러하였고 지방민들도 그러하였다.
재모는 마음이 뒤설레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첫새벽부터 책상을 향해 앉아서 담배만 피워댔다. 그는 두 가지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 만약 교장으로 눌러 앉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하불실 자식들 공부시키기에나 편리한 도회지 가까이 전근이라도 되어얄 것이라고.
‘이것도 저것도 죄다 틀릴 경우에는…….’
이러한 생각은 애초부터 가지기도 싫었다.
‘설마 그런 무작한 대우야 안 할 테지 !’
그는 이렇게 부인하려고 들었다. 어느 편이냐 하면 아마 교장으로 앉게되겠지 하는 생각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두 밑둥같이 도사리고 앉아서 부질없는 꿍꿍잇셈에 골머리가 횅해졌을 때, 바로 책상 벽에 뜻밖에 웬 거미 새끼 한 마리가 고물고물 기어올라갔다. 재모는 마침 피워 물었던 담뱃불로써 턱 없이 그만 그놈을 지져버리려고 손이 슬며시 갔다가, 아서라 아침 거미는 재수가 있다더라 하는 생각이 문득 나서 제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거미 새끼는 동그스름한 엉덩이를 무거운 듯이 늘어뜨리고 아슬랑아슬랑 느리게 기어 올랐다. 재모는 갑갑한 듯이 만년필 펜 끝으로써 불룩한 궁둥이를 조금 건드려보았으나 그럴 때 뿐이지 역시 느리기가 짝이 없었다. 그래도 재모는 열심히 고놈을 지키고 보았다. 그럴 때 마침 건넌방에서,
“이 옴(놈) ----.”
하는 경호의 잠꼬대 소리가 들려왔다.
“경호야 !”
이렇게 불러보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미친 놈!”
재모는 다른 때 같으면 으레 달려가서 그놈을 또 좀 깨워가지고 찌부럭거려볼 것이로되, 그만 픽 웃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 애가 터지게 꼼질거리던 거미 새끼도 어느덧 ‘나는 거지 아이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가르치기 위하여 내 스스로 거지 아이와 꼭 같은 생활을 하였노라’ 한 ‘페스탈로치’의 말을 적은 쪽지 뒤로 가뭇없이 숨어버렸다. 재모는 다시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낮에는 마음이 더욱 홍뚱거려서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젊은 강 선생이, 물론 자기는 자기로서의 꿍꿍잇속이 있었을 테지만, 체부가 몹시 기다려져서 초조증을 내는 바람에 도저히 직원실 안에 꾹 배겨 있을 수가 없었다. 재모는 짐짓 침착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먼저 그는 자기 뜻대로 규모있게 꾸며둔 화단들을 둘러보았다.
벌써 빨갛게 꽃이 핀 동백나무를 비롯하여 군데군데 심어둔 상록수(常綠樹) 사이에 아담하고 질서있게 째인 여러 가지 화초들. 나날이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봄볕을 받아서 어느덧 매화는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개나리는 노란 꽃술들을 하늘거렸다. 녹진녹진 부풀어오른 부토를 떠받고서 작약은 자즛빛 순을, 양귀비는 두색 순을, 붓꽃은 칼날 같은 순을 여기저기서 뾰족뾰족 추켜들고 있었다.
재모는 그 귀여운 새 순들과 봉오리들을 마치 하나하나 세기나 하는 듯, 깍듯이 바라도 보고 만져도 보는 동안에 어쩐지 아까운 생각, 섭섭한 정이 자꾸만 들었다.
거무하게 그는 조심조심 꽃밭 속으로 들어가서 어여쁜 매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는 매화꽃을 코끝에 가까이 휘어대고서 원대로 흠뻑 향내를 맡아보았다. 향내는 뼛속까지 스미어드는 듯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맡아도 흡족하지 않은 심사였다. 그는 콧방울에 화분이 노랗게 묻는 것도 몰랐다. 양복 등덜미에 꽃잎이 수두룩하게 떨어져 있어도 몰랐다. 삼월의 석양만이 따뜻하게 무르녹았다.
재모는 가만히 화단을 나와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네모가 반듯한 운동장에는 조약돌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끝에서 끝까지, 보드라운 모래가 다지어져 있었다. 어느 모래알에도 재모의 발이 아니 간 곳이 없느니만큼 알알이 다 정이 새삼스러웠다.
운동장 저편의 황토색 실습지는 어느덧 비노리 같은 잡초를 파릇파릇 아로새겨가지고 씨앗 뿌려주기를 기다리는 듯싶었다.
재모는 뚜벅뚜벅 또 철봉 곁으로 발을 옮겨놓았다. 역시 그의 손때에 매끄러워진, 나지막한 철봉틀이었다. 그는 그 중 제일 높은 놈을 하나 거머잡았다. 그러나 해보지는 않았다. 손바닥이 점점 차가워졌다.
마침 그럴 때 기다리던 체부가 왔다. 무거운 듯한 가방을 엉덩이 짬에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교문을 들어섰다.
‘인제 왔고나!’
재모는 선뜻 나는 맘으로 부리나케 체부가 오는 쪽으로 두어 걸음 나섰으나 강 선생이 어느 새 먼지 알아채고서 슬리퍼 바람으로 쫓아나오기에 그는 그만 주춤하고서 자기는 그렇지 않은 양으로 마침 땅에 떨어져 있는 나무막대기를 하나 슬며시 주워가지곤 쓰레기터로 어슬렁어슬렁 돌아갔다. 그러나 속은 역시 뒤설레었다.
이내 강 선생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박 선생님!”
재모는 신풍스럽게 돌아보았다.
“전보가 왔어요!”
재모는 가슴이 선뜩했다. 그러나 강 선생이 벙긋거리는 걸 보고는 갑자기 천지가 환해지는 듯싶었다. 그는 어느덧 뚜벅뚜벅 발을 옮겨놓고 있었다.
그러나 강 선생이 다시 전문을 들여다보며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고서는 불현듯이 또 가슴이 울링거리기 시작했다.
‘미친 녀석! 왜 말을 분명히 안 해!’
재모는 혼자서 구두덜거리면서 발을 잦게 떼어놓았다.
“누가 됐어?”
그는 어름거리는 강 선생 앞으로 다가섰다.
“요다란 사람인가 봐요.”
“요다 무언가요?”
“요다 사부롭니다.”
“뭐? 요다 사부로……?”
재모는 불시에 뭉클하면서, 전보 쪽지를 텁석 뺏어들었다. 손이 사뭇 덜덜 떨어댔다.
“아시는 분임니까?”
강 선생은 민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재모는 암말도 않고서 오직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전문만 뚫어지도록 노려보았다. 주름살이 깊이 드러난 앞 이마에는 어느 새 진땀이 번지르르 솟아 있었다.
귀교 교장을 배명. 여러 가지 잘 부탁. 육일 부임 예정. 사택 기타 지장 없도록. 요다 사부로.
난생 처음 대하는 긴 전문이었다. 재모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는 듯 몇 번이나 되읽었다. 받을 사람은 확실히 박재모였다.
“요다 사부로…… 사택 기타 지장 없도록……? 허허허·…·쳇!”
재모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만 헛웃음을 껄껄거리더니 별안간 또 얼굴을 벌겋게 해가지고 전문 쪽지를 짝짝 찢어 던지면서,
“신문 사령은……?”
하였다.
“아 참 그건 안 봤구먼요. 신문은 직원실에 있습니다.”
헐렁이 강 선생은 껑청껑청 직원실 쪽으로 뛰어갔다. 재모도 시무룩해 가지고 직원실로 향해 갔다.
“요다 사부로……가? 쳇!”
재모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요다모노로’ 라고 놀려대던 ‘요다 사부로’의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재모가 × × 보통 학교에서 수석 훈도로 있을 때, 이 요다란 사람도 그 학교에 한 훈도였다. 그는 일쑤 슬리퍼로써 학생들의 뺨을 잘 때렸고 한 번은 주판으로써 제반 학생의 머리를 벌려놓곤 동맹 휴학까지 당했으나, 워낙 상관에게 대해서 아부가 능란한 놈이라 무고히 학생 몇만 희생을 시키고 자기는 무사히 되었다. 그러나 제 버릇 제 심보라 말경에는 제가 가르치던 여학생 하나의 신세를 망친 뒤엔 하는 수 없이 다른 학교로 전근이 되어간 인간이다. 그래서 동료들로부터 ‘요다모노로’란 별명까지 얻었으며 재모로부터는 동정도 많이 받았고, 또 꾸중도 적잖게 들었다.―말하자면 키는 작아도 꾀는 많은 인간이었다.
‘세상일 참 알 수 없군! 제기랄……!’
재모는 뭉클하면서 직원실 문을 열어젖뜨렸다.
강 선생은 두 손으로써 머리를 싸잡고서 제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생님…….”
신문 사령을 보고 있던 다른 동료 한 분이 재모 앞에 다가왔다. 재모는 입을 다문 채 보기만 했다.
“우리 학교도 인젠 망하게 됐군요.”
“왜 그래요?”
“저도 인제 그만두겠어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선생님께서 다른 데로 가시게 되고…….”
“뭐 내가 어디로……?”
재모는 갑자기 말소리를 높였다. ‘요다’밑에 있기보단 차라리 나을 테지만 감개가 무량하였다.
“갈고지 간이 학교래요.”
“갈고지? 아직 학교도 안 섰을 텐데?”
재모에게는 거짓말같이 들렸다.
“학교 설 자리에 보리가 퍼렇다우.”
“갈고지? 어찌 그리도 갈 곳이 없어서 하필 갈고진고?”
재모는 신문을 받아 들고 보더니,
“음…… 정말이군요. ‘보리와 교원’이란 이야기라도 써볼까 허허허!”
재모는 갑자기 너털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의 뚜렷한 두 눈에는 어느덧 알지 못할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침 그때 경호란 놈이 쑥 들어오더니,
“아찌 엄마 빱바!”
하며 매달렸다.
“오냐 빱바 가자.”
재모는 자기의 눈물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당황히 경호를 추켜 안으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몇 걸음 안 떼놔서 갑자기, 아주 뜻밖에 전연 딴 생각이 불쑥 일어나서 가슴속이 금방 후련해졌다. 마치 악몽(惡夢)에서 깬 듯하였다. 뉘엿뉘엿한 낙일(落日)이 일찍 보지 못했을 만큼 붉고 아름답게 빛났다.
‘좌천이든 뭐든 좋다! 어서 갈고지나 가서 갯놈 애들허구 고기나 잡고 지내자!’
재모는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기다란 그림자를 고요히 끌고 돌아갔다.
― 1940년
2016년 12월 2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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