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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여년전 “싸움의 기술이란” 한국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습니다.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걸핏하면 학교 내에 깡패들에게 빼앗기거나 맞는 일에 일상이 된 주인공은 문제를 해결 해 볼려고 하지만 번번히 실패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은 하숙집에서 싸움의 고수 한 분을 만나고 싸움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싸움의 고수는 거절하지만 주인공의 간절한 부탁에 조건을 내 걸고 가르쳐주는데 처절할 정도로 얻어터지면서 싸움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중에 복수하는 줄거리입니다.
저는 지금도 생생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국민학교때 지금은 초등학교이지요 오후특활시간에 주산을 배웠습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를 않아요 이시간 초래 친구와 싸웠는데 서로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며 시작하면 좋은데 준비된 안된 상태에서 저를 주먹으로 얼굴을 과격했습니다. 어릴 때 눈을 맞았는데 지금도 생생한 것은 마치 번개불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눈 탱이가 밤 탱이가 된 그런 싸움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겁한 친구였지만 저는 이런 싸움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1968년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 역사학자는 역사를 연구하는 중에 ' 지구촌 안에서 전쟁이 얼마나 있었을까?' 면밀하게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1968년 그때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간 3421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퍼센트로 수치를 계산하니까 지구촌 안에 91.6%가 매일 전쟁으로 점철 되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100년, 20세기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전쟁으로 인해서 약 9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예일 대학에서 역사와 문명을 가르치는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은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전쟁을 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동기는 "경쟁자에 대한 두려움이요........경제적 이익추구........ 명예추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은 싸움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싸움의 시작임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엡6:12....우리의 씨름(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렇습니다. 청년여러분!! 싸움이란 포탄이 터지고 미사일이 날아가고 나라를 빼앗고 사람이 죽는 것만 싸움일까요? 우리는 매일같이 총성 없는 전쟁이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주간은 역사적으로 기록될 이벤트가 펼쳐지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12일....... 북미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 됩니다. 종전선언을 서명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영향이 미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회담이 이루어지지전 지금 양국 간에 한 치 양보 없는 총성 없는 기 싸움이 북한과 미국 간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13일 무슨 일이 있습니까?.......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이미 선거전쟁은 끝났다고 말합니다. 여당 승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출마자 본인들은 한 표라고 얻기 위해 상대방과 치열한 삽바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4일은 무슨 날인 줄 아십니까?..... 축구를 좋아하시는지요? 한달 동안 누구이기느냐 공 하나를 놓고 빼앗고 뺏기느냐 치열한 싸움이 지구촌 온 나라를 들썩입니다. 치열한 싸움입니다.
지난주 화요일 현민이 다니는 전북대학교 찾아가 격려와 기도해주고 왔는데 현민이가 그러드라구요 우리 심리학과 크라스는 유독 열심히 공부하는 여학생들이 많다네요 이런 틈에 끼여 현민이가 어떻게 공부해야 따라갈지 고민하고 있어요 학교든 직장이든 삶 자체가 치열한 전쟁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었지만 청년여러분!! 전쟁이야기구나..... 이렇게 생각 할 것 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청년들이 마치 치열한 싸움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려 보지는 않았습니까?
먼저 읽은 성경말씀 싸움을 보세요 이스라엘 청년 다윗과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움입니다. 청년다윗은 이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싸움의 승리로 다윗이란 그의 이름이 온 이스라엘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을 읽을 때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블리셋 장수 골리앗의 인적 사항이 간단히 설명하고 있지만 겉으로 들어난 외적 무장에 대해서는 성경은 상세히 밝히고 있다는 있습니다.
왜 성경이 이런 부분을 상세하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블레셋장수 골리앗이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영적교훈입니다.
사무엘상17장 전체를 읽지 않았지만 삼상17장 전체를 읽어 보면 골리앗의 이름은 2회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4절, 23절만 나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청년 다윗의 이름은 32회나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 이상, 그 사람의 내면적인 자질 곧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살면서 인물이나 학식, 배경 직업으로 볼 때 대단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골리앗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초라하게 보이고 외소하게 보이고 좀 부족하게 보여도 그 사람이 하나님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다윗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죠!!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청년주일 헌신예배를 통해 청년 다윗!! 그는 길들려져 있는 군인도 아닙니다....... 양을 치는 목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기는 더 더욱 없습니다.......
그런 청년다윗이 어떻게 이 싸움에서 승리 할 수 있었는가? 승리한 비결은 무엇인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청년 다윗은 싸움의 위기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스라엘나라는 블레셋나라와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청년 다윗은 위기속에 골리앗과 1:1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과 골리앗을 서로 비교하면 그냥 보지않아도 싸움의 승패는 결정되었습니다. 비교 불가이지만 성경을 통해 비교 할 수 있습니다. 17:4-7절에 보면 골리앗은 키가 무려 270센티 갑옷은 58킬로 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놋 경갑을 ,어깨에는 놋 단창을 메었고, 창날의 무게만도 7킬로 나가는 창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런 골리앗 앞에 청년 다윗은 전쟁터에 3명의 형들의 안부를 알려고 아버지 심부름으로 온 것입니다. 뻔한 전쟁이지요 이스라엘의 장수 사울이나 병사들은 숨죽이며 숨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일 매일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쳐 되는 골리앗의 소리를 보세요
43-44절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이런 상황에 청년 다윗은 사느냐 죽느냐 둘 밖에는 없습니다. 위기 입니다.그렇습니다. 청년여러분도 위기를 맞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기느냐 지느냐..... 생존과 죽음..... 성공과 실패..... 도약과 좌절의 갈림길입니다. 정말 위기입니다.
청년 다윗 블레셋과 싸움의 위기 앞에 가장 먼저 어떤 모습입니까? 그것은 싸움터 현장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습니다. 눈 이야기가 왠 말입니까? 하지만 청년 다윗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있었는데 처음 청년 다윗을 봤습니다. 삼상16:12.......그이 빛이 붉고 다윗의 눈이 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력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볼 줄 아는 영적 안목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당시 존경받은 사무엘이 청년 다윗을 이렇게 평가 한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다이아몬드와 가짜 다이아몬드를 구별할 줄 아십니까? 저는 만져보지도 않았지만 만져볼 때 진짜는 다이아몬드를 만져보면 선이 곧게 뻣쳐 있고 가짜는 선이 휘어져 있답니다. 그런데 이것도 육안으로 안되고 현미경으로 보아야 식별이 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가 막히게 땅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분이 있습니다.
지금 엄청난 위기 앞에 청년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어떻게 보았을 까요?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청년다윗이 골리앗을 바라보는 안목은 여호와 하나님이름으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청년다윗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사무엘선지자로 통해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이런 멧세지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삼상16:7...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말씀이 골리앗 앞에 서 있는 다윗의 마음에 각인 된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다윗은 중심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블레셋장수 골리앗이 외모로 무장한 것이 위풍당당하게 칼과 창과 단창으로 무장한 것 같지만 청년다윗에게는 안중에 없습니다. 왜요!! 중심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 골리앗이 마무리 큰 들 하나님보다 크겠습니까?........ 골리앗이 아무리 완벽한 무장을 한들 하나님 보다 완벽하겠습니까?.........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인 이란 무엇 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볼 줄 아는 영적인 안목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보느냐'물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고백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적안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그리스도보다 더 큰 게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면 그리스도 보다 더 완벽한 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요 방패와 검이라고 했습니다.
청년여러분!! 눈이 나쁘면 안경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영적 안경을 쓰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 앞에 골리앗 같은 위기가 있습니까? 그 위기의 본질을 보려면 육신의 눈으로가 아닙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래야 사람이나 다른 것이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은 키고 크고 거의 완벽하게 무장했지만 골리앗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 나는 약하고, 가진 것도 없고 무장도 시원치 않게 보입니까? 그러나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확신 가운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청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골리앗은 겉으로는 완벽하게 무장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청년 다윗은 어떤 무장일까요? 이스라엘왕 사울 왕은 청년 다윗에게 싸움에 나갈려면 완벽하게 무장할 것은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친히 자신이 입은 군복을 벗어 다윗에게 입혀줍니다...... 투구도 썼습니다...... 사울의 칼도 찼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다 거추장스러울 뿐이었습니다.
38-39절....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그래서 다윗은 사울이 입힌 갑옷을 다 벗고 평소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 평상시 가지고 놀던 물매와 물맷돌 다섯개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에게 말합니다.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 것은 다윗이 무장한 것은 칼이나 창이나 단창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이 창이요 칼이요 단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가슴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이것 하나뿐입니다.
이런 속담이 있지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전에 12명 제자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돈을 남겼습니까? 땅을 남겼습니다. 주식을 남겼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긴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 입니다.
제자들 뿐 아니라 오늘 예수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유산으로 상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죽게 되면 나중에 하늘나라 상속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상속자입니다.
그러면 현재 이 땅에서 받은 상속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상속으로 받고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을 우리가 언제든지 쓸 수 있게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셨습니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입니다.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란 이름을 장롱 속에 보관하는 자요......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을 항상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줄 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윗이 가지고 간 무기란 물맷돌 5개와 물매 뿐입니다.
물매란...... 막대기에 끈을 달고 거기에 돌을 넣어서 빙빙 돌려서 휙 던지는 무기지요 던졌습니다....... 돌이 날아갑니다......... 맞으면 아프겠지만 죽기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골리앗은 단 한방에 죽었습니다. 정수리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면 엄청난 위력이 발생합니다.
예수님이 벳세다 들녁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왜 이런 능력이 나타날까요? 하늘을 우러러 주님의 이름으로 축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만나 손을 내밀어 일으킬 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의 능력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의 능력입니다.
에베소에서 한 귀신들린 여종이 날마다 바울을 따라 다니면서 괴롭히자 바울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자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어찌 사도 뿐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산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예수그리스도란 이름을 남겨 두셨습니다.
주향청년여러분!! 지금 내 앞에 골리앗처럼 물리 칠 수 없는 커다란 두려움이 놓여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 하십시오 두려움아!!..... 물러가라!!........
우리는 아침에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해야합니다........ '주님, 오늘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겠나이다.'...... 저녁이 되고 잠자리에 들 때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무리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에게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의 방패요 산성이요 요새요 칼이요 검이 됨을 믿습니다.
3. 청년 다윗은 블레셋과 싸움에서 승리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47절....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전쟁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전쟁은 처음 블레셋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거인 골리앗을 앞세우고 당당하게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전쟁의 시작은 블레셋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전쟁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시작했고, 이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 멧세지가 너무나 중요하고 궁금하고 가슴에 새겨야 할것입니다.
46절입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절 중반절에....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온 땅으로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알게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위기가 뭐냐?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냐?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시는 지 생생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기회입니다.
성도여러분!! 내 앞에 있는 위기란 삶과 죽음을 뛰어 넘어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회임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하나님이 시작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위기는 하나님이 계획하셨음을 믿어야합니다........이 전쟁의 목적이 나를 죽이려는 것도 아니요, 나를 살리려는 것도 아니요 지금은 바로 하나님의 메세지를 들을 때요 하나님이 일하실 때임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청년여러분!!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 세상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기를 통해서 옵니다. 이 위기를 만드시고 이 전쟁을 시작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청년들 앞에 어떤 일들이 벽에 부딪치고 있습니까? 그것은 곧 싸움입니다. 내가 이기느냐 지느냐 내가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싸움의 전쟁이 여호와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일하심을 믿으시고 하나님을 내 중심에 모시고 당당히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