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13년, 도움염불(助念)로 서쪽 가리키고 극락 간 안석순 보살
곽정암, 「어머니의 왕생」, 『아름다운 이별 행복한 죽음』
(비움과 소통, 2015)
1) 어머님이 심은 극락 가는 씨앗(往生因)
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3남 2녀 중에 장남으로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릴 적에 절에 다니는 이웃집 보살님의 권유로 부모님과 같이 처음으로 절에 가서 온 가족이 부처님 법에 귀의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초파일, 칠석, 동지 때면 동네의 절에 다니는 분들과 같이 절에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의 여동생이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였는데 시골집으로 내려와서 가까운 절에서 화주 보살을 하다가 경북 청송에서 부처님을 모셔 놓은 토굴을 구입하여 신행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97년 누전으로 토굴에 불이 나서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 모두 타 버렸습니다. 화주 보살은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기를 발원하고 권선하여 1998년에 아미타 부처님을 조성하여 토굴에 모셨습니다. 그 당시에 어머니는 이미 지니고 있던 금반지와 회갑 때 받은 금반지 · 금목걸이를 모두 아미타 부처님 모시는 데 보시하였습니다. 그리고 토굴에서 행사 때마다 빠짐없이 적은 금액이라도 보시하여 동참하였습니다.
화주 보살은 그 이후에 출가하고 토굴을 청송에서 안동으로 옮겼습니다. 어머니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는데 보시하고 그 이후에도 정성껏 부처님 전에 보시한 인연으로 임종 시에 조념을 받으며 왼손으로 서쪽을 가리키고 왕생하였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2) 어머니의 임종을 맞아 집으로 모셨다.
어머니는 갑술(1934)생으로 2013년 올해 연세가 80세인데 5월부터 건강이 나빠져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는데 차도가 없이 점점 상태가 안 좋아져서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10월 22일 밤 11시 30분쯤 요양병원에서 저에게 전화가 와서 어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즉시 병원으로 가보니 어머니는 산소를 코에 달고 있었으며 폐에서 물이 올라와서 입에서 흡인기로 물을 수시로 뽑아내는데 어머니는 몹시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병원에서 이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시기에 임종 후 10시간은 염불을 해 주어야 하는데 요양병원에서 가능하겠냐고 병원장 선생님께 물으니 병원에서는 법적으로 2시간을 넘길 수 없다고 하면서 시신의 부패나 감염 등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으므로 곤란하다고 하며 “임종하고 2시간이 지나면 물이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즉 시신의 부패가 시작되어 물이 나온다는 뜻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임종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 같으냐고 물으니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며 며칠이 갈지 바로 임종할지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겠다고 하니 구급차를 불러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30분 정도 달려서 시골집에 도착하여 평소에 부모님께서 사용하셨던 온돌방이 차가워서 방바닥에 이불 3개를 깔고 하나는 덮어서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머리를 남쪽으로 발이 북쪽을 향하도록 눕혀 드리고 서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베개를 베어 드리고 얼굴이 서쪽으로 향하도록 해 드렸습니다.
3) 도움염불(助念)로 편안해진 마지막 길
그리고는 저의 처와 두 동생 부부에게 두 마디씩 교대로 염불하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고 어머니가 임종하시면 절대 울지 말고 8시간에서 10시간을 염불할 것이며 임종하신 후에는 절대로 어머니의 몸을 만지지 말 것 등의 주의사항을 알려 주고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스님께 연락을 드릴 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모든 것은 인연에 맡기고 오직 도움염불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 CD를 카세트에 넣고 스님께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2마디 염불을 신청하실 때 듣고 후렴에 맞춰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2마디 염불을 하며 저의 3형제 부부가 도움염불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도움염불을 하기 전에는 곧 임종할 것 같이 호흡이 가쁘고 입에서도 계속 피가 섞인 물이 넘어오더니 도움염불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점차로 숨이 편안해졌고 고통이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날이 밝자 스님께 전화를 드려서 도움염불을 부탁드렸더니 스님께서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불자 2명과 함께 오셔서 방앞 쪽에 아미타 부처님 불화를 모시고 향을 올리고 삼귀의로 예불을 올린 후 바로 도움염불을 시작하였습니다. 스님께서도 도움염불을 하시며 중간에 저의 어머니가 사바세계의 모든 애착을 놓고 염불하여 극락왕생하시기를 권하는 법문도 해 주셨습니다. 법문을 들으신 어머니는 눈을 뜨거나 움직이지는 못하였지만,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오전 11시에 오후 3시까지 저의 어머니를 위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도움염불을 해 주시고 두 분 보살님이 일이 있어서 3시에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보살님이 카페에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저희가 첨에 뵈었을 때 창백한 모습이었는데 중간에 염불하다 보니 복수를 토혈하는 고통스러운 광경에서는 얼굴빛이 연분홍색을 띠며 본얼굴 색으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기쁨이 넘치고 신심이 넘쳐 염불하는 내내 부처님이 나투시어 계심을 느꼈습니다. 환희심이 솟구치어 지금 생각해도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묘한 기분입니다.
4) 왼손으로 서쪽을 가리키고 운명하신 어머니
막냇동생 부부와 저의 처는 볼일을 보러 나가고 바로 아래 동생과 제수씨하고 셋이서 도움염불을 계속하다가 방이 조금 더운 듯하여 어머니를 보니 땀이 나서 어머니를 이불 채로 윗목으로 이동하고 덮은 이불을 조금 벗겨 드리고 아궁이에 가서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서 물을 붓고 아궁이에도 물을 조금 뿌려서 불이 꺼지도록 하였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끄고 나오는데 스님께서 전화가 와서 통화가 조금 길어졌습니다.
그사이 어머니는 호흡이 가빠지면서 왼손을 힘들게 들어 올려서 제수씨가 엉겁결에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는데, 어머니가 왼손을 들어 서쪽을 가리키자, 이 상황을 저에게 알리려고 나오다가 통화를 마치고 들어오던 저를 거실에서 만나 저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가 왼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잠이 부족하여 졸려서 눈을 감고 염불을 하고 있던 동생도 제수씨가 알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머니는 왼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며 감고 있는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눈도 뜨지 못하고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는데 왼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고 있는 장면을 보고 저와 동생과 제수씨는 적이 놀랐습니다. 저는 염불하며 어머니를 보고 있었는데 숨은 멈춘 상태였습니다.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어머니가 ‘후우~’하고 숨을 내쉬며 왼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다시는 호흡을 하지 않으시어 마지막 임종의 순간이었습니다. 핸드폰의 시간을 보니 어머니의 임종 시각은 10월 23일(음력 9월 19일) 오후 6시 2분이었습니다.
5) 임종 이후의 도움염불 계속
저는 스님께 즉시 문자로 간략하게 상황을 알려 드리자 불자들과 함께 다시 오셔서 임종 후 조념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처와 막냇동생 부부도 모두 돌아와서 같이 도움염불에 동참하였습니다. 새벽 3시에 조념을 마치고 아침이 되어서 가까운 친척분들에게 전화를 드려서 어머니가 23일 오후에 임종하셨다고 알려드렸습니다. 24일 아침 8시쯤에 구급차가 와서 어머니를 장례식장으로 모시기 전까지도 물이 나오거나 그런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오후 3시쯤 장례지도사가 어머니의 염을 해 드리는데 가족이 모두 동참하여 염이 끝날 때까지 염불해 드렸습니다. 장례식장이 조금 외진 곳이었고 마침 다른 일행이 없어서 염불하는데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장례지도사에게 저의 어머니 염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는지 물어보았는데 관절이 굳지 않고 부드러워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상식은 모두 채식으로 하고 술 대신 음료수를 올렸습니다. 조문을 오시는 분들께도 모두 채식으로 하려고 하였지만, 가족들의 반대도 있고 채식으로 하면 조문을 오시는 분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하실 것 같아서 어머니께 올리는 상식과 저만 채식을 하였습니다. 마침 25일에 김천의 시립 화장터가 수리 중이라고 하여 문경의 시립 화장터에서 화장하여 납골당에 임시로 모시고 49재를 모셨습니다.
스님께서 차를 대접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거사님의 어머니는 눈도 뜨지 못하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임종 직전에 손을 들어서 서쪽을 가리키며 ‘지금 여기에 부처님께서 오셨다. 부처님께서 오셨다. 나는 서방정토로 간다.’라고 알려 주시는 서상을 보여 주신 것은 2013년(불기 2557년) 한국 불교사에 획기적이고 불가사의한 사건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임종 전의 사전 조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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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께 오체투지 하오며 감사의 삼배를 올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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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혜명스님이 그때 그곳에 계셨군요..
극락왕생 수희찬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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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곽거사님댁에서 혜명스님과 함께 조념했던 그순간들이 아직도 새롭게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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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을 들어도 환희롭습니다.
가슴이 뿌듯하니 벅찹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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