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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Montenegro
10. 검은산 몬테네그로 부드바, 코토르 (2)
“오늘은 코토르까지 보고 오기로 하죠. 그리고 내일 두브로브니크로 가면 어떨가요?” 하고 나는 성당을 나오면서 엘레나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요새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곳 부드바에서 코토르까지는 30분 거리이다. 호텔을 코토르로 가는 길에 야즈 해변이 보였다. 이 해변 뒤편에서는 여름철에 콘서트가 열린다고 한다. 롤링 스톤스와 마돈나가 콘서트를 열었던 곳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조금 더 가 터널을 지났다. 그리고 유럽 최남단 피오르를 만났다.
“이곳 코토르도 부드바처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크루즈도 많이 들어옵니다. 보통 이곳에서 하루 정박하고 두브로브니크로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 코토르는 1979년에 유네스코에서 문화도시로 지정한 곳입니다.”하고 나는 차창 밖을 보고 있는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엘레나는 나를 보더니 씩하고 웃었다. 며칠 동안 함께 여행하면서도 이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차를 주차하고 내려 걸으면서 엘레나는 나에게 “코토르는 두 개의 작은 강 사이에 있습니다. 삼각형 모양이죠. 슈코르다 강과 고르디치 강 사이에 있는데 사실 하천정도 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것을 강이라 부른다는군요.” 하고 이야기하였다.
“혹시 아시나요? 코토르가 만들어진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 왕이 산 위에 마을을 건설하고자 하였답니다. 하지만 너무 가팔라서 마을을 건설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곳에 살던 요정이 제안을 하나 합니다. 아래쪽 삼각형 모양의 땅에 마을을 만들면 도와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도움을 받아 마을을 만들게 되죠. 하지만 왕은 도움만 받고 이 요정을 잊어버린 채 축제를 하게 됩니다. 요정은 화가 나서 두 개의 강을 막고 사람들을 잠들게 만듭니다. 왕은 요정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막아 놓은 두 개의 강 중 하나를 풀어 사람들에게 물을 마실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도시가 바로 코토르입니다.”
엘레나와 내가 걸어서 도착한 곳은 서문 입구였다. 나는 서문을 바라보면서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아주 오래전에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서 옛날에는 항구가 있었답니다. 문 아래를 한 번 보세요. 베네치아 풍의 로즈 스톤을 사용했고 위쪽을 보면 구 유고슬라비아의 문장을 볼 수 있는데요. 의미는 ‘남의 것을 원하지 않지만 우리의 것도 주지 않겠다.’라는 것이랍니다. 문구만 보더라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오른쪽을 보면 사자상이 있죠. 이것은 옛 베네치아의 상징입니다. 베네치아는 400년 동안 이곳을 지배했습니다. 그 후 프랑스가 지배하였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몬테네그로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코토르는 11세기 그리스인에 의해 건설된 도시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베네치아가 지배하게 되었던 겁니다.”
엘레나는 나에게 “코토르라는 이 도시가 유럽 역사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아세요? 코토르는 유럽의 입장에서 보면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저지선 역할을 하게 됩니다. 로브첸이라는 코토르의 돌산에 성벽을 쌓았죠. 이 성벽의 길이는 11킬로미터로 이것이 방어선 역할을 했던 겁니다. 17세기, 그러니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1657년 오스만 투르크가 이곳으로 진격하는데 아드리아 해로 올라가려 하였던 것이죠. 하지만 철옹성 같은 이 성벽에 막혀 올라가지 못합니다. 만약 코토르가 오스만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였다면 크로아티아나 두브로브니크가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을 겁니다.”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레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이 성벽은 언제 만들어진 건가요?”
“이 성벽은 6세기 비잔틴 시대부터 건설하기 시작해서 베네치아의 지배 기간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약 20미타의 높이로 쌓았죠. 그리고 성벽마다 계단이 약 1,300개나 됩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을 엘레나와 나는 천천히 걸었다. 골목 안의 풍경은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2000년 동안 코토르를 지배한 사람들은 20개의 민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민족이나 나라를 꼽자면 일리리아인, 로마, 비잔틴 제국, 베네치아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들의 음식문화와 외모에서도 나타나게 된답니다. 그래서 이들을 슬라브족이라기보다 라틴족에 가깝다고 하기도 하죠. 1918년 합스부르크의 지배가 끝난 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귀속하기도 했습니다.”
코토르의 구시가지 골목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음식을 보더라도 다양성이 나타납니다. 터키, 이탈리아, 그리스의 맛이 서로 혼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즐겨먹는 음식은 부렉, 쇠고기 스테이크인 쁘레스카비차, 그리고 양파와 고추로 양념되어 있는 소고기라든가 돼지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워 구워 먹는 라즈니치 등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안으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엘레나에게 물었다.
“오른쪽에 있는 동상 보이시죠? 저게 누군지 아세요?”
“저건 성모 마리아와 성 도미니크 아닌가요? 코토르의 수호성인이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코토르죠.”
궁금증은 커져 갔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여기가 메인 광장입니다. 무기의 광장이라고도 불리죠. 오른쪽 코너를 한 번 보세요. 빨간 지붕의 건물은 병기고입니다. 중요한 사건들이 이곳에서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 궁전인데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베네치아가 이곳을 지배하던 시절에 관리들이 사용하였던 건물입니다.”
엘레나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하시죠? 그냥 너무 바쁘게만 다니는 느낌이라서.”
나는 그러자고 하였다. 우리는 시티 가드 타워(City Guard Tower)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더블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조금만 데워 달라고 하였고, 엘레나는 아메리카노를 좀 진하게 해서 달라고 하였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나는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커피에 적당히 부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말하였다.
“카페 꼬르따도(cortado)를 좋아하세요?”
“네.”
“스페인에 살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잇는 카페 라케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거 같은데.”
하고 엘레나가 말했다.
“차이가 있지요. 꼬르따도와 라테는요.”
“이곳에 1979년에 심한 지진이 있었던 거 아세요? 바로 앞에 보이는 시키 타워는 그때 붕괴되었다가 다시 지은 겁니다. 그리고 17세기에 지어진 저 시계탑 또한 그 지진에 손상되었습니다. 바닥을 보면 새로운 석재를 사용하여 복구한 것입니다. 시계탑에 있는 날개 달린 사자상은 베네치아 상징의 부조물입니다.”
나는 엘레나에게 광장에 있는 삼각대 모양의 것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녀에게 삼각형 모양의 것을 보라고 말했다. 그것은 아래에 사각형의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삼각형 모양의 것이 있었는데 조그만 오벨리스크처럼 느껴졌다.
“저게 무엇인지 아시나요?”하고 엘레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수치의 기둥. 죄를 지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저곳에 묶어두고 모욕을 주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그리고 저 건물은 19세기에 12년간 나폴레옹 극장이라 불렸습니다. 발칸 최초의 극장이죠. 그때가 1806년이었고 지금은 호텔과 카지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엘레나라는 여자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엘레나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커피만 마셨다 누가 보면 싸워서 말이 없는 연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코토르의 대부분의 건물은 귀족들의 소유였습니다. 주로 베네치아인들이었죠. 그들이 이곳에서 물러나면서 남기고 간 것입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말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엘레나에게 이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녀도 그러자고 하였다. 커피숍을 나와 간 곳은 한 노란색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호텔 바르다르(Vardar)입니다. 마케도니아의 강 이름을 딴 것이죠. 그 강은 스코페로 흐른답니다.”
“여기를 한번 보세요.”
엘레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손짓으로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문의 부조를 보세요, 이 건물은 베스쿠차라는 궁전입니다. 그 말의 의미는 이곳 언어로 ‘집 없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또 그것은 이 건물을 지은 가문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자기 이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건물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스토쿠차라 불렀다고 합니다.”
나는 걸으면서 엘레나에게 계속 이야기하였다.
“이곳 코토르의 광장은 나름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광장은 이전에 밀가루 시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죠. 그래서 밀가루 광장이라 이야기하는데, 이곳에는 피마 궁전이 있습니다.
피마 궁전의 창은 각기 다른 색이었다. 그래서 더 운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이곳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궁전 중 하나입니다. 피마 궁전이라고 하는데 17세기에 건축하였고 베네치아의 피마 가문의 소유였습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 밀가루를 가져오는 곳이었는데 이곳 코토르에는 이밖에도 나무광장, 우유광장, 소금광장이라 불리는 광장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에 정육점 건물이 있는데 이것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라는군요. 12세기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문인데 문에 그려져 있는 문장에는 오리가 있습니다. 이곳 건물들의 문을 보면 어떤 것은 건물의 주 입구부분이 있고 또 어떤 것은 없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점령했을 때 게르만처럼 건물도 깔끔한 걸 원하면서 파사드 즉 건물의 입구를 만들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몰랐던 것이 하나 있죠. 이곳이 습도가 높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 트리폰 성당으로 갔다. 성당은 양쪽에 큰 두 개의 종탑이 있다. 왼쪽 종탑에는 809, 그리고 오른쪽 종탑에는 2009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이 성당에 대해 좀 아시나요?”
“네, 조금은요. 이 성당은 순교자 성 트리폰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809년에 완성되었고 1166년에 이스탄불에서 성 트리폰 유해를 가져와 안치하였지요. 이곳은 가톨릭과 정교회의 아주 중요한 유물입니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유해는 중동에서 베네치아의 상인이 사들였는데 그들은 유해를 베네치아로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곳 코토르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 날 떠날 생각이었죠. 하지만 다음 날 폭풍이 몰아쳐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날은 더 큰 폭풍우가 몰아치고 세 번째 되는 날은 배가 거의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죠. ‘이 유해가 이곳에 머무르기를 바라는구나! 그럼 이곳에 있어야겠네.’하고 말입니다. 이런 연유로 인해 유해가 이곳에 남게 되었다고 해요.
그 후 화재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습니다. 그리고 1667년과 1979년에 대지진으로 손상되었고, 그 후 보수작업으로 지금의 종탑이 완성되었는데 바로크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지요. 저기 두 종탑에 각각 쓰여있는 809와 2009라는 숫자는 이 성당이 처음 건립된 해와 마지막으로 보수 재건된 연도를 나타내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 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합니다.”
나는 엘레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추어치고는 발칸 역사에 관하여 너무나도 자세히 그리고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엘레나가 나에게 말하였다.
“저기 종탑을 보세요. 날개 달린 사자상, 저게 무엇인지 아세요?”
“저것은 베네치아의 상징이죠. 베네치아는 발칸 반도의 역사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지요. 오스만 투르크 만큼이나 말입니다. 우리가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방을 가게 되면 베네치아의 영향이 이 지역에서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나왔던 나라들이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가보면 오스만 투르크의 문화가 이곳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도 알게 되겠죠.”
“그리고 저 건물은 공문서 보관 건물입니다. 원래 여기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건물은 교회 소속 건물인데 임차를 한 사람이 어떻게 임차료를 내야 할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교회 측에서는 임차료를 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4킬로그램의 막시판[일종의 단단한 설탕과 견과류를 넣은 돌체 종류인데 그 당시 워낙 비싸 같은 무게의 금과 가격이 같았다]을 달라고 하였답니다.”
엘레나가 말하였다.
“모든 유적에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듣는 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도 쉽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뒤편 왼쪽에 보이는 게 무엇인지 아시죠. 성인 유물 보관소입니다. 그리고 교구가 있고, 바로 이 건물이 그레고리 궁입니다. 이 궁은 15-17세기의 것인데 아름다운 고딕 창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치원으로 사용되었던 적도 있답니다. 여담이지만 이 나라는 공산주의 시절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많이 달랐답니다. 폴란드, 헝가리, 중국, 북한 등과 말입니다. 공산주의였지만 강한 사회주의에 가까웠고 어디든 여행 허가 없이 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박물관 광장이라 불리는 곳을 거쳐 그레카 광장으로 갔다.
내가 엘레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이곳의 광장의 이름들이 재미나죠. 밀가루 광장, 박물관 광장, 그리스 광장, 무기 광장 등…..17세기에 슬로베니아의 무역상이었다. 사르고리나 가문이 이곳에 와서 제일 큰 저택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마지막 후손이 그 저택을 코토르에 기증하였답니다. 그 후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앞의 광장은 박물관 광장이라고 불린 겁니다. 그리고 그레카 광장은 그리스 광장이라는 의미인데 그 앞에 두 개의 교회가 있죠. 하나는 성 루카에 봉헌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 니콜라우스에게 봉헌된 것입니다.”
루카 성당은 작았고 니콜라우스 성당은 컸다. 그래서인지 대비되어 보였다.
“성 루카 성당은 11세기에 지어진 것입니다. 성 루카는 모든 예술가들의 성인이죠. 이 성당은 원래 18세기까지 가톨릭 성당이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와 베네치아 전쟁 때 정교도들이 이곳에 왔는데 기도할 곳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측에서 장소를 내준 것이지요. 백 년 후에는 같이 공존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좀 큰 성 니콜라우스 교회는 20세기에 지어진 교회입니다. 니콜라우스 성인은 이곳에서 어린이, 뱃사람 그리고 여행자들의 성인입니다.”
엘레나와 나는 슈코다르라 불리는 코토르의 큰 하천이 있는 북문으로 갔다. 이 하천은 겨울철에만 물이 많다고 한다. 초록빛의 물과 거대한 바위산이 이 하천을 보다 인상 깊게 만드는 것 같았다. 원래 북문은 이전에는 없었다고 한다.
“여기 성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라고 엘레나에게 말했다.
“17세기에 오스만 투르크의 해적들이 이곳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성벽 안으로 쳐들어오려고 열흘 동안이나 시도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군요. 거의 모든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였지만 이곳 코토르를 정복하는 데는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엘레나에게 손짓하며 가리켰다. “저기 지그재그로 된 길 보이시죠? 저 길이 옛날에 유일하게 몬테네그로와 지중해를 연결하던 길입니다. 19세기 말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몬테네그로까지 다른 큰 길을 내었는데 지금까지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서른 두 개의 굽이가 있답니다.”
엘레나가 나에게 이리 와보라고 하였다.
우리는 성벽 지도를 보았다. 지도에는 세 가지 색으로 길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 지도에는 길이 파란색과 노란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 색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세요?”
“글쎄요?”하고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길은 쉬운 길을 나타내고 노란색으로 표시된 길은 좀 더 가파른 길, 그리고 빨간색은 가장 힘든 길입니다.”
엘레나와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곳은
14세기 중반, 1362년에 세워진 약국이었다. 약국에서는 키릴문자와 라틴문자를 함께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나무 광장이었다. 나무 광장은 나무를 팔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었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 시계탑이 있는 코토르 메인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성곽을 나왔다. 호텔이 있는 부드바로 가기 위함이었다. 왔던 시간만큼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내일 우리는 크로아티아로 출발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