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호국인물 변안열 장군
국방부 전쟁기념사업회는 고려말 홍건적과 왜구를 크게 물리친
변안열 장군을 2014년 '5월의 호국인물' 로 선정,발표했다.
불기2558('14)년 5월 8일 오후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관단체와 종중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장군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봉행되었다.
영상 첨추공파 20세 변용구 포교사
원본 동영상
https://youtu.be/T6BAC_m14-E
전쟁기념관은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를 크게 물리친 변안열(邊安烈) 장군을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변안열 장군은 1334년 심양후를 지낸 변량(邊凉)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충가(忠可), 호는 대은(大隱).
17세이던 1351년 원의 무과에 장원급제해 형부상서까지 올랐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배종해 고려로 들어와, 공민왕으로부터 원주를 본관으로 하사받아 원주 변씨의 시조가 됐다.
1361년 홍건적의 2차 침입 때 안주만호 안우(安祐)를 따라 홍건적을 격퇴하고 이듬해 개경을 수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예의판서·밀직부사·판밀직사사·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했다.
1376년에는 부령(扶寧)에 침입한 왜구를 대파해 그 공로로 문하찬성사에 올랐다.
이후에도 왜구의 침입이 그치지 않고 더욱 심해지자 장군은 1380년 양광 전라 경상 삼도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도순찰사 이성계와 함께 왜구를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처음에는 적군이 아군보다 10배나 많았으나 겨우 70여 명만이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도망쳤다. 이때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6~7일간이나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전해질 정도다. 말 1600여 필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병기를 포획했다.
1389년 대호군 김저(金佇)가 우왕의 부탁을 받고 이성계를 죽이려다 발각되어 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군은 이에 연루되어 한양에 유배되었고 결국 1390년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했다.
5월8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관단체와 종중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장군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