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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60826201508958
네팔 뉴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네팔 관광청은 라수와 지역 보테 코시 강 인근에서 갑작스럽게 홍수가 발생해 외국인 291명과 네팔인 93명 등 384명이 실종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관광청이 발표한 수치는 10개 여행사에서 제공한 정보를 종합한 것으로, 실종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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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공업(共業)과 재난
현재 지구촌은 전쟁과 홍수, 대지진, 대형화재, 역병 등의 재난으로 뭇 생명체들이 평안하게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재난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요?
사람들은 흔히 지진과 홍수, 화재, 기근, 전염병 등을 자연현상으로 인식하며, 단지 자연환경이 파괴되면 그로 인해 재난이 발생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붓다나 예수 등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대각자들은 공통적으로 도덕의 타락에 의한 악행(악업)이 질병이나 재난을 초래한다고 하였습니다.
붓다 재세시에 인도 마가다국의 왕사성에서 심각한 역병(전염병)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부처님은 이 상황을 보고 “이것은 사람들의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인해 쌓인 共業의 과보”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선업(공덕)을 쌓은 자는 고통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음을 설했습니다.(잡아함경)
예수님 재세시에도 예루살렘 근처 실로암에 있는 망대(塔)가 붕괴하여 18명이 죽었는데, 예수는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누가복음 13장 5절 )
이와 같이 질병이나 사고사도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악업에 따른 인과응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데, 악업의 과보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을 위해 모든 대각자들은 공통적으로 악행을 금하고 선행을 권했습니다.
"모든 惡을 짓지 말고, 모든 善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생각(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다."[칠불통게]
석가모니 부처님은 『장아함경』 제3장 <도행경(道行經)> 에서 과거 인간 세상이 성하고(成), 머무르며(住), 파괴되고(壞), 멸망하는(空)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순환을 반복해왔음을 설했는데, 인간 세상이 파멸하는 말법시기에는 도둑질, 음행, 살생, 거짓말 등의 악업이 만연하여,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발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사람들이 함께 지은 악업(共業)의 결과로, 재난이나 전쟁 같은 집단적인 고통이 생깁니다.
이는 도덕적 타락 → 共業 → 집단 재앙의 고리로 설명되는 불교적 사회관으로 현실의 사회 문제, 전쟁, 재난, 전염병 등도 단순한 우연이 아닌, 모든 중생의 업력이 모여 만든 결과로 봅니다. 이는 개인의 도덕적 수행뿐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과 정화의 필요성도 함께 강조하는 사상입니다.
붓다는 사람이 생로병사를 반복하듯 우주와 인류 문명도 <成住壞空>을 반복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이론은《장아함경(長阿含經)》 등 초기 경전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붓다는《괴》의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세상이 壞의 시기가 될 때, 중생들은 탐욕이 많고 악을 행하며 선을 닦지 않게 된다. 이때 큰 바람이 일어나 대지를 태우고, 불이 삼천대천세계에 번진다. 불이 세상을 멸한 뒤엔 큰물이 솟구쳐 모든 것을 잠기게 하고, 물이 세상을 멸한 후에는 큰바람이 일어나 마침내 모든 것을 말려버린다. 불·물·바람 이 세 가지가 세상을 파괴한 뒤, 세상은 공(空)의 상태가 된다."
時世壞時,衆生多貪欲,世間皆惡不修善道,時有大風起,焚燒大地,火遍三千大千世界。火壞已,復有大水出,沒於一切,水壞已,復有大風起,吹令乾燥。水風火三,壞世已訖,世間虛空。〈대본기경(大本起經)〉
이와같이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에 의한 악행이 대재난을 초래하는데, 인류의 문명과 우주의 성주괴공의 순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새로운 우주가 시작되며 순환을 반복해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붓다의 우주관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붓다는《디가니까야 차카바티 시하나다경 》과《미륵하생경》에서 佛法이 쇠퇴하고 사회가 타락에 빠질 때 미륵불이 출현하여 법(道)을 펼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汝等四大聲聞要不般涅槃,須吾法沒盡,然後乃當般涅槃。大迦葉亦不應般涅槃,要須彌勒出現世間.所以然者, 彌勒所化弟子盡是釋迦文弟子,由我遺化得盡有漏。」《불설미륵하생경(佛說彌勒下生經)
“너희 네 대성문은 반드시 반열반에 들지 말고, 나의 법이 다할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반열반에 들어야 한다. 대가섭 또한 반열반에 들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미륵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미륵이 교화할 제자들은 모두 석가모니의 제자들이며, 나의 남겨진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번뇌의 유루를 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석가모니의 불교가 쇠퇴하는 말법시기에 미륵부처의 출현으로 새로운 佛法이 널리 전해져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붓다는 미륵불에 대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분, 인간과 신의 스승, 자애로운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경뿐 아니라 성경에도 대동소이한 내용이 있는데,《 신약성경 마태복음 24 : 1 ~ 30 》의 기록을 보면 말세의 징조와 天主의 강림에 대한 제자들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당부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橄欖山)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묻기를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主)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迷惑)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不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늘나라의 복음(우주의 진리)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創世)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減)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減)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인자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리라.” (마 24:42, 44)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때도 그러하리라…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느니라.” (눅 17:26–27)
위 구절을 요약해보면 말세에는 사랑이 식고 不法이 극성하여 전쟁, 기근, 지진 등의 재난이 많이 발생하는데, 우주의 진리가 세계 각지에 널리 전파되고 나서 창세 이후 최고의 대재난이 닥쳐오는데, 그 환란을 감하지 않으면 모든 중생이 멸망하기 때문에 창세주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환란을 감하여 인류의 파멸은 면한다. 말세에는 재림예수를 자칭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므로 함부로 믿지 말고, 인자가 출현하니 깨어있으라. 핵심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이 붓다와 예수의 공통된 예언은 대재난이 있기 전에 미륵불(메시아)이 출현하여 사람들을 대재난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佛法(진리)을 널리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거짓 선지자와 진짜 대각자는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대각자는 반드시 2가지를 겸비해야만 하는데, 하나는 마음의 해탈(청정심)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의 해탈(깨달음, 開悟)입니다.
마음의 해탈이란 탐욕과 분노로 인한 일체의 번뇌가 소진되어 청정심을 회복한 상태를 말합니다. 지혜의 해탈이란 業에 의해 봉폐되었던 지혜가 다 열려서 우주 각 공간의 실상과 생명의 존재를 보고 우주의 진리를 원만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경지가 높은 진짜 대각자라면 마땅히 사람들의 심성이 선을 향하도록 이끄는 자비심뿐만 아니라, 우주의 元力 즉 창조력도 겸비해서 물질을 개변시키고 순수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신통 법력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혹자들은 하늘에 神이 있으면 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빨리 안 데려가는가? 라며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데, 질병이나 사고, 재난, 관재, 불행 등을 겪는게 바로 나쁜 짓의 결과임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우리 사람의 육안은 3차원 공간(空間)의 물질만 볼 수 있고, 3차원 공간의 것을 넘어선 것은 보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일부 고정관념을 형성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확실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눈에 보이는 육신이 진정한 자아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神佛들이 존재하는 하늘세계를 믿지 않고 미신이라며 배척하는 것 등입니다.
법륜대법 창시인 李洪志 대사님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이런 사상적인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천상의) 부처는 형상이 있지만, 그의 신체 구성은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조성된 것이며 역시 물질로 구성된 것이므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보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은 단지 가시광선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전체 스펙트럼에서 말하자면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본 일체는 다 빛이 비추어져 당신에게 보여준 것이므로 이 가시광선이 비추지 못한 것을 당신은 보아내지 못하는데 당신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재 미국에는 큰 천체 망원경이 많이 있어서 그것으로 많은 천체를 발견했는데, X선ㆍ감마선ㆍ적외선ㆍ자외선 등 가시광선 이외의 광선으로만 보여 이런 상태에서 겨우 관찰해 낼 수 있는데 그러면 당신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이 망원경이 발명되지 못했을 때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면 고집스러운 사람은 당신이 맹신한다고 말할 것이 아닌가?
즉 우리가 오늘날 말한 것처럼, 부처의 세계를 보았고 부처를 볼 수 있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다. 그의 눈은 분자로 구성되고 원자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원자 한 층의 입자로 구성된 일체를 볼 수 없다.
부처의 신체는 원자로 구성된 것으로 당신이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여 그들은 당신의 가시광선 범위 내에 있지 않다.”《캐나다 법회 설법 李洪志》
그렇다면 붓다와 예수께서 말씀하신 말법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환란을 넘기고 살 수 있을까?
이에 대해 李洪志 선생님께서 90년대 초반부터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히셨으므로 잘 읽어보시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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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아주 많은 예언가, 아주 많은 기공사, 아주 많은 종교 중에서 깨달음이 열린(開悟) 사람들이 인류사회 금세기 말에 나타날 이런저런 재난에 대해 아주 많이 말했으며, 심지어 인류는 곧 훼멸 될 그런 상태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그 예언가들이 한 말이다.
발생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답해 줄 수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내가 『전법륜』에서 말한 그 예와 마찬가지다. 썩은 사과 한 알, 지구는 이 방대한 우주 중에서 마치 우리가 보는 사과 한 알과 같은데, 그것은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사과 안의 매 분자는 마치 매 사람과도 같이 모두 이미 썩었다. 그렇다면 이 사과 그것을 없애 버리고, 던져 버리고,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인류사회, 그것의 도덕이 모두 그런 정도로 저하(低下)되었다면 신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마치 그 썩은 사과와 같아 그것을 없애 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신으로서는, 우리 여러분이 알다시피 특히 인류와 근접해 있는 이 한 층의 신, 그들은 사람에 대해 모두 慈悲한지라, 그들은 곧 사람을 구해내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썩은 사과 그것을 구해내려 하며, 당신이 이 썩은 사과를 버리려 하지 않고 방 안에 놓아두지만, 그것은 갈수록 더욱 썩어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당신이 그 깨끗한 방 안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사과 한 알을 놓았는데, 당신은 왜 그곳에 놓으려고 하는가? 기어코 그곳에 놓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우주도 마찬가지로, 이 지구가 이미 이런 모습으로 변했는데 그래도 그것을 훼멸시키지 말아야 하는가?! 어느 신이 그것을 훼멸하지 않는다면 그 신은 곧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신과 사람은 같지 않다. 그는 이 사과를 그의 가장 원시적인 입자에서부터 신선한 것으로 개변시켜 다시 신선한 사과로 만들 능력이 있다. 그의 구조를 개변시킨다면 그것은 좋은 사과로 변한다. 그럼 누가 그것을 버린다면 누가 곧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1억 명의 사람이 수련하고 있고 자신의 사상을 개변하고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고 착해지고 있으며, 진정하게 우주의 부동한 층차 표준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구, 그것을 폭발시킬 수 있겠는가? 훼멸시킬 수 있겠는가? 그 예언가가 말한 그러한 예언이 실현되겠는가?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
내가 말하건대 그 어떤 예언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의 예언이 더는 영험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는 오늘날 대법이 전해졌으며 인심(人心)은 되돌아 올라가고 급속하게 되돌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제 한 기자가 와서 나에게 물었다. 현재 1억의 사람들이 배우고 있고 게다가 이러한 추세는 아주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또한 더욱 많은 사람이 배우려 한다고 했다.
지금 1억이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을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 1억의 사람들 매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와서 배우도록 알려준다면 곧 2억이 될 것이다. 그 숫자는 순식간에 배로 늘어날 것이며, 대단히 크다. 사람마다 모두 착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며 자신의 도덕 표준을 제고한다면 인류사회를, 내가 든 그 예와 같이, 이 사과가 신선한 것으로 변했는데, 그 누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있겠는가?
인류사회의 발전, 우주 중의 일체 상태는 모두 신이 안배한 것이고 모두 법칙이 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서 나타나는 좋지 못한 상태는, 전쟁이나, 지진ㆍ홍수ㆍ유행병ㆍ전염병 등등과 기타 많고도 많은 자연재해를 포함하여, 사실 모두 목적이 있는 것으로 사람의 業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상은 신에 의해 지휘를 받는다. 사람은 여태껏 자신의 사상의 내원(來源)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어떻게 하고자 생각하여 그의 사상이 움직이기만 하면, 그의 이른바 영감(靈感)이 나올 때, 그는 갑작스레 그 무엇이 생각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사실 아주 많은 것이 그렇지 않다. 신은 인류사회의 일체를 단단히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이 우주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한 개체로서 그가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면 역시 사람의 이 사상을 보아야 한다. 그가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좋다, 내가 당신의 수련을 돕겠다.”라고 하고, 사람이 좋아지려고 하지 않으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라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곧 몹시 나쁘게 변한다. 그러나 인류사회 전체를 신이 통제한다. 그래서 사람이 좋아진다면 그는 곧 좋은 미래가 있고 밝은 앞날이 있을 것이다. 좋지 않다면 그에게 좋지 않은 미래가 있으며 암흑과 악업(惡業)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방금 나는 여러분의 수련을 말했다. 이 법을 말함에 한 단락을 끌어내어 말했다. 목적은 여러분에게 그를 소중히 여기라고 알려주려는 것이다. 오늘 1억의 사람이 배우고 있고 당신들은 이미 역사를 개변시켰다. 이는 기쁘지 않은가? 이는 위대하지 않은가? (박수)
그러나 아직도 아주 많은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아직도 나쁜 짓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비록 예언가들이 말한 그렇게 큰 재난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국부적인 지역은 여전히 몹시 좋지 않은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法이 없기 때문이다.
(출처 : 미국동부법회설법 李 洪 志 (1999년 3월 27~28일, 뉴욕에서))
"내가 오늘 전하는 것은 정법이며 나는 당신들에게 모두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 어떤 재난이 있다한들 상관이 있겠는가? 바로 이러하다. 만약 인류사회의, 광범위한 사람이 모두 좋게 변한다면 내가 말하건대 그에게는 재난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상 어떠한 일이든 우연한 것이 없으며,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어야 비로소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98년 유럽법회 설법)
"대규모적인 사람에게 업력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 곧 지진, 화재, 수재 심지어는 전염병과 전쟁이 나타날 수 있다."(출처 : 98년 유럽법회설법)
"세계상의 전쟁ㆍ역병(瘟疫)과 천재인화(天災人禍)가 왜 나타나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바로 사람에게 업력이 있기 때문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業을 소멸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장래에 더 아름다운 역사 시기에도 지구상에는 전쟁ㆍ역병과 천재인화가 존재할 것인데,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업을 소멸하게 해 주는 한 가지 방법이다.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은 육신의 사망과 고통을 통해 그의 업력을 없앨 수 있고, 후에 그가 다시 환생하면 업력이 없는데, 그의 생명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환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지은 業이 너무 커서 그의 생명의 본질에까지 미치게 되는데, 모두 훼멸될 것이다." (98년 스위스법회설법)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먼저 중국 신년을 맞아 여러분에게 인사드립니다!
설을 쇠면서 원래는 마땅히 여러분이 듣기 좋아하는 새해 덕담을 몇마디 해야 하는데, 내가 본 위험이 한 걸음 한 걸음 인류에게 바싹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뭇 신(神)・불(佛)이 나에게 신이 하고자 하는 말 몇마디를 세계중생에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구구절절 천기(天機)인바,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하여, 다시 사람들에게 구도 받을 기회를 주려 한다.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우주는 생성에서 말후(末後)까지 장구한 성(成)・주(住)・괴(壞)・멸(滅), 네 단계 과정을 거친다. 우주가 일단 최후 ‘멸(滅)’ 과정 중의 말후(末後)에 이르면, 우리가 생존하는 우주를 포함한 천체 중의 일체가 곧 한순간에 해체되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일체 생명이 모조리 소멸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단지 표면의 신체가 패괴 노화하는 것이고, 사람의 원신(元神)은 (진정한 자아는 죽지 않음) 다음 생으로 전생(轉生)한다. 우주에는 성(成)・주(住)・괴(壞)・멸(滅)이 있고, 사람에게는 생(生)・노(老)・병(病)・사(死)가 있는데, 이는 우주의 규율이다.
神에게도 이 과정이 있지만, 단지 장구할 뿐이고, 더욱 큰 신은 더욱 장구하다. 그들의 생사에는 고통이 없고, 아울러 과정이 모두 명확해 마치 겉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생명은 일반적인 정황에서는 사망하지 않는다.
만약 우주(宇宙)・천체(天體)가 성・주・괴・멸의 최후 단계에서 해체되면, 생명이 전생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일체 생명과 물체가 전부 존재하지 않으며, 먼지가 되어 모두 공(空)으로 돌아간다. 현재 인간세상은 바로 성・주・괴・멸에서 ‘멸’의 최후 과정을 거치고 있다.
말후(末後)의 일체가 모두 좋지 않게 변했기 때문에 비로소 멸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현재의 사회는 비로소 이렇게 어지럽다. 사람이 선념(善念)이 없고, 난잡한 성관념, 변태심리, 마약이 범람하고, 신을 믿지 않는 등 어지러운 현상이 한꺼번에 발생하는데, 이는 천체 말후(末後)의 필연이며, 바로 이 시기가 되었다!
창세주는 뭇 신과 수많은 선량하고 아름다운 생명과 천체 중의 그런 아름다운 조화(造化)를 소중히 여겼기에, ‘괴(壞)’의 초기에 일부 신을 이끌고 천체의 가장 바깥층[법계외(法界外)라고 통칭함], 신이 없는 곳에 와서 지구를 만들었다.
지구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상응한 천체 구조가 있어 생명과 생물이 순환하는 한 체계를 형성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창세주는 지구 밖에 하나의 큰 범위를 만들었는데, 뭇 신은 ‘삼계(三界)’라고 불렀다.
말후(末後) 구도될 때가 아니면 아무리 높은 신이라도 창세주의 동의 없이는 마음대로 삼계에 드나들 수 없다. 삼계 범위 내에는 세 개의 대계(大界)가 있는데, 인류를 포함한 지상의 중생이 있는 이 층을 ‘욕계(慾界)’라 하고, 욕계 위의 제2계를 ‘색계(色界)’라 하며, 한 층 더 위의 제3계를 ‘무색계(無色界)’라고 한다.
일계(一界)가 일계(一界)보다 높고 아름답지만 모두 법계(法界)나 법계 위에 있는 천국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인류가 흔히 말하는 하늘은, 사실 삼계 내 색계와 무색계의 하늘이다. 매 한 계(界)에는 모두 10층 하늘이 있어서, 3계 내에는 3계 자체를 더하여 모두 33층 하늘이 있다.
사람은 욕계에 있는데, 이는 최저층이고 환경도 가장 열악하다. 인생은 고달프고 짧은데,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 세상에는 바른 이치(正理)가 없고 우주 중에서 사람의 이치는 반대로 된 것이다. (신이 사람에게 말한 법리는 제외한다) 예를 들어 승자가 왕이고・병사로 천하를 다투며・강자가 영웅인 등등은, 신의 눈에는 모두 바른 이치가 아니며 모두 죽이고 빼앗아 온 것이다.
우주와 신은 이렇지 않지만, 사람 여기서는 오히려 필수이고 가능한데, 이것이 인간계(人界)의 이치이다. 우주의 이치와 대조하면 ‘반리(反理)’이기 때문에 회천(回天)하려면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닦아(修)’야 비로소 된다. 일부 사람은 남보다 잘 지내면 매우 좋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사람이 이 계(界)에서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고, 사실 모두 우주의 쓰레기더미에서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
삼계는 천체 우주의 가장 외층(外層)에 건립되었는데, 여기는 분자・원자 등 가장 낮고・가장 거칠고・가장 더러운 입자로 조성된 것이다. 신의 눈에는 여기가 바로 우주의 쓰레기를 배출하는 곳이다. 그래서 신은 분자 이 한층 입자를 흙으로 보고, 가장 층이 낮은 곳으로 여기는데, 이것이 바로 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의 원래 뜻인바, 사실 바로 분자로 구성된 이 한층 물질로 사람을 만들었다.
뭇 신이 사람을 만든 것은 창세주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부동(不同)한 신에게 자신의 모습에 따라 부동한 형상의 사람을 만들게 했다. 그래서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등의 인종이 있는데, 이는 단지 외형이 다른 것이고 내재한 생명은 창세주가 준 것이기에 모두 같은 가치관을 가진다. 창세주가 신에게 사람을 만들라고 한 목적은 말후(末後)에 뭇 신을 포함한 천우(天宇)의 중생을 구도할 때 쓰기 위해서다.
그럼 왜 창세주는 뭇 신에게 이렇게 저열한 환경에서 인류를 만들라고 하였는가? 왜냐하면 여기가 우주의 가장 낮은 층, 가장 고생스러운 곳이기 때문인데, 고생스러워야 비로소 수련할 수 있고 고생스러워야 비로소 죄업을 없앨 수 있어서다. 고생 속에서 사람이 여전히 선량함을 유지할 수 있고 또 은혜에 감사할 줄 알며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것이 바로 자신을 제고하는 것이다.
아울러 구도는 아래에서 위로 하는 과정이어서, 반드시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생명이 여기서 사는 것이 고생스럽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익의 충돌도 있을 것이며, 열악한 자연환경, 사람이 생존을 위해 노심초사(勞思勞力)해야 하는 등등등등이 모두 생명에게 제고하고・소업(消業)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고생이 죄업을 없애줄 수 있음은 틀림없는 것이고, 고통과 갈등 속에서 사람이 여전히 선량함을 유지하면 공덕을 쌓을 수 있고 이로써 생명은 향상(提升)을 얻을 수 있다.
근대에 이르러 창세주가 인체(人體)를 이용해 우주중생을 구하려 할 때, 인체 중의 원래 생명 대다수는 ‘신(神)’이 전생(轉生)한 사람으로 대체되었다. 왜냐하면 인체가 고생 중에서 죄업을 없앨 수 있고, 동시에 바른 이치(正理)가 없는 중에서 신이 말한 바른 이치(正理)를 지키며, 선량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생명이 제고되기 때문이다. 말후(末後)는 이미 도래했고, 삼계는 천문(天門)이 이미 열렸으며, 창세주는 이미 이런 사람을 선택해 구도하고 있다.
천체우주는 성주괴(成住壞) 과정 중에서 일체가 모두 순정(純淨)하지 않게 되었고, 모두 처음 만들었을 때만 못하게 되어, 비로소 ‘멸(滅)’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천체 중의 일체가 모두 망가졌고, 중생은 모두 처음만큼 그렇게 좋지 않게 되었으며, 생명도 모두 순정하지 않게 되었고, 모두 죄업이 있게 되었기에, 멸망하게 된 것이다. 종교 중에서는 이런 죄를 ‘원죄(原罪)’라고 한다.
천체우주(天宇)를 구원하기 위해, 창세주는 뭇 신(神)・뭇 주(主)에게 하세(下世)하게 하여 이 환경 중에서 사람이 되어 고생을 겪고・제고하고・죄를 없애고, 자신을 다시 만들어 천국으로 돌아오게 하려 했다. (창세주가 사람을 구함과 동시에 우주를 다시 만들기 때문에)
새로운 천체우주(新天宇)는 절대적으로 순정하고 아름다운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선념(善念)을 유지할 수 있고, 현대 관념의 충격에 직면하여 사람이 전통 관념을 견지할 수 있고, 무신론・진화론의 충격 속에서 신을 여전히 믿을 수 있으면, 이런 사람은 구도되어 천국으로 돌아가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일체 어지러운 상태(亂象)는 신이 최후로 안배한 것이다. 목적은 중생의 구도 여부를 고험하고, 동시에 고생은 또 그 과정에서 죄업을 없앨 수 있는바, 일체가 사람을 천국세계로 구도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 사람은 사회적 성취를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다. 인생에서 분투하고・죽기 살기로 싸우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획득(獲取)하는데, 이것은 사람을 나쁘게 만들 뿐이다.
하세하여 사람이 된 것은 죄업을 없애기 위한 것이고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온 것은 구도되기 위함이고, 창세주가 천국세계로 구도해 줌을 기다리기 위해 사람이 된 것이다. 기다리는 중에서 생생세세 모두 공덕(功德)을 쌓고 있는 이것이 또한 사람이 윤회전생(輪迴轉生) 하는 목적이고, 세상이 어지러운(亂世) 것은 중생을 성취케 하려 함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하여 신에게 도움을 빌 때 만족을 얻지 못하자 신을 미워하기 시작하여 반신(反神)의 지경에 이르는데, 심지어는 마도(魔道)에 빠져 새로운 죄업을 짓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속히 돌아와 신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뉘우쳐야 구원받을 수 있다.
사실 인생의 일체가, 응당 얻어야 할 것과 얻지 못할 것이, 모두 이전 생(生)・이전 세(世)에 잘하고 못한 것이 조성한 다음 생・다음 세의 인과로서, 이전 세에 쌓은 복덕(福德)이 많고 적음에 따라 이번 세 또는 다음 세의 복분(福分)이 많고 적음이 결정된다.
복덕이 많으면, 다음 세에 복덕을 높은 벼슬과 많은 녹봉으로 바꿀 수 있고, 여러 가지 재물 복분 등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 가정의 행복 여부, 심지어 자녀가 어떠할지도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며, 어떤 사람은 고위관리가 되고 어떤 사람은 돌아갈 집도 없는 근본 원인이지, 공산사당(共產邪黨)이 선전하는 빈부균등이라는 식의 마귀의 말이 아니다.
우주는 공평한 것으로, 생명은 잘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갚아야 한다. 이번 생(生)에 갚지 못하면 다음 생에 갚아야 하는데, 이는 절대적인 우주의 법칙이다! 천(天)・지(地)・신(神)・창세주는 중생에게 자비(慈悲)하다. 천(天)・지(地)・인(人)・신(神)이 모두 창세주가 만든 것으로, 어떤 생명에게는 잘해주고 어떤 생명에게는 잘해주지 않는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인과응보, 이것이 인생에 복이 있고 복이 없는 근본 원인이다.
득과 실의 표현이 현실에서는 사회의 정상적인 표현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생명이 스스로 조성한 원인에 따른 결과이다. 그러나 있음과 없음, 득과 실은 인류사회의 표현에서 인류사회의 상황에 부합하기 때문에,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당신 생활의 빈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선함을 유지하고, 하늘을 공경하며, 신을 공경하고, 남을 기꺼이 도와야 한다. 그러면 복덕이 쌓이고 내세에 복을 받는다.
중국의 옛 노인들은 늘 이번 생에 좀 고생스럽다 하여 하늘과 땅을 원망하지 말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덕을 많이 쌓으면 다음 생에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전생에 좋은 일을 하지 않고 복덕을 쌓지 못하면, 당신이 신에게 도움을 청해도 소용이 없다.
우주에는 우주의 법칙이 있으며, 신 역시 따라야 한다. 신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신도 벌을 받는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신이 다 해줘야 하는가? 조건은 당신이 반드시 전세에 쌓은 복덕이 있어야 하고, 복덕으로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우주의 법리로 결정된 것이어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는 복덕을 쌓는 근본 목적이 아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복덕을 많이 쌓음은, 자신이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닦는 데 쓰려는 것이 가장 관건이지, 인생의 일시적인 한 세(世)의 행복으로 바꾸기 위함이 아니다!
사부 李洪志
임인(壬寅)년 섣달 29일
2023년 1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