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사카이[堺]의 상인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밑에서 주요 관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 역시 히데요시를 섬겼으며
일본을 통일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수립하려 한 히데요시의 노력에 적극 참가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592년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의 부대는 조선 땅에 맨처음 상륙했다.
조선의 남부지방 대부분과
평양성까지 점령하는 등
처음에는 계속 승전하여 이름을 떨쳤으나
군대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세력을 확장하여
결국 조선의 동맹국이던 명나라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협상은 결론없이 1597년까지 끌었고
같은 해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 침략에 나섰다.
고니시의 부대는 처음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조선·중국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기 시작했는데,
그무렵 히데요시가 죽었으므로
그는 귀국하여 후계자 결정을 둘러싼 내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1600년 세키가하라[關原]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통치권이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가톨릭 신자였던 고니시와 그의 아버지는
일본의 예수회 보고서에 가장 뛰어나고 열성적인 신자로 언급되곤 하였다.
고니시가 참패의 수모를 당했으면서도
동료들이 예상했던 자결을 거부했던 것은
종교적인 믿음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