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 김선우
나는 너의 그늘을 베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너는 저만큼 가고.
나는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눈을 뜬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
해 지자 비가 내린다
바라는 것이 없어 더없이 가벼운 비.
잠시 겹쳐진 우리는
잠시의 기억만으로 퍽 괜찮다.
별의 운명은 흐르는 것인데
흐르던 것 중에 별 아닌 것들이 더러 별이 되기도 하는
이런 시간이 좋아.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있잖니, 몸이 사라지려 하니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알게 될 날이야.
축복해.
시집 『녹턴』(문학과지성사, 2016)
* 김선우(金宣佑) :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지, 2007)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2012) 『녹턴』(문지, 2016) 『내 따스한 유령들』(창비, 2021)과, 청소년 시집 『댄스, 푸른푸른』(창비교육, 2018) 『아무것도 안 하는 날』(단비, 2018),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창비, 2002) 『김선우의 사물들』(눌와, 2005 / 개정판, 단비, 2012 / 재개정판, 2021)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미루나무, 2007)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새움, 2007)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청림출판, 2011) 『부상당한 천사에게』(한겨레출판, 2016) 『사랑, 어쩌면 그게 전부』(21세기북스, 2017), 그리고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물의 연인들』 『발원: 요석 그리고 원효』 외에 다수의 시 해설서를 출간.
몸이 아프다. 몸살기가 완연하다. 축 늘어지고 힘이 없다. 땅속으로 점점 몸이 꺼져 가는 듯하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 오히려 아늑함을 느낀다. 그래서 좋다. 잠시 곡기를 끊은 빈 것의 느낌이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누워있는 것 같은 무념(無念)의 세계가 잠시 스쳐 지나간다. 산다는 일에 바라는 것이 사라져 몸만이 있고 정신은 날아가 버린 상태. 몸의 어느 부분이 쑤시고 오한으로 땀이 범벅이다. 베개며 이불이 흠뻑 젖어 있다.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함께 젖어준다.
어쩌면 몸살은 제 몸속의 분쟁일 것이다. 제힘에 겨운 무언가에 대한 저항일 것이다. 그래서 열을 낸다. 비명인 것이다. 밀려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쓰다 보니 오한이 들고 땀이 났던 거다. 몸살은 몸 안의 살기(殺氣)와 맞장을 뜨는 중. 그러는 사이 정신이 몸에게 처음으로 고백한다.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다. 라고.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이었다고. 놓아야 할 것과 놓기 싫은 것 사이에서 아플 수밖에 없었던 몸의 갈등… 부대낄 수밖에 없었던 몸살…
수필가 박모니카 / 경상매일신문 2021년 02월 14일
[한겨레]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 마주치는 스산한 풍경이 있다. 공원이나 산자락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등으로 나무를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치는 모습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시도 때도 없이 치고 흔들어대면 나무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작은 새 한 마리가 가지 끝에 앉아도 우듬지가 흔들리는 게 생명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스트레스 받는 나무로부터 좋은 기운이 나올 리 없으니 나무에 몸을 쿵쿵 부딪치는 이런 운동이 당사자들의 몸에 좋을 리도 없어 보인다.
연말이면 네온사인 전깃줄을 친친 감아 몸살을 앓는 나무들을 볼 때도 비슷한 스산함이 스쳐간다. 전자파 차단 기능이 있는 식물이니 컴퓨터나 티브이 옆에 두라고 권하는 '공기정화식물' 광고는 어떠한가. 전자파는 전자기기 자체의 안전성을 높여 차단시켜야 할 일이지, 살아 있는 식물을 전자파 막이로 써야 하나 생각할수록 서글프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똑같이 맑은 햇빛, 시원한 바람, 신선한 물이 필요한 존재다. 사무실 구석이나 복도에 방치된 채 시들어가는 대형 식물을 한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마주칠 때마다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살아 있는 것들은 살아 있음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가장 좋다. 그것이 아주 작은 생명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혹시나 '식물=수동적'이라는 도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오해다. 어떤 목숨도 수동적인 목숨은 없다. 모든 생명은 살고 싶어 하고 행복하게 존재하고 싶어 한다. 사람처럼.
김선우 시인·소설가 / 한겨레 2014. 7. 28. [김선우의 빨강] 살아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