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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10월 2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1002토] 위원회 격상보다 과기부 부활이 낫다
정부가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상설 행정위원회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을 바로 건드리지 못하고 문제를 에둘러 해결하려는 결정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군색하게 이런 형태의 상설위원회를 만드는 것보다 종전의 과학기술부를 부활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국과위를 (비상설)자문기구에서 (상설)행정위원회로 격상하려는 것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사실상 교육 분야의 일(제1차관 소관)에 매몰돼 과학기술 분야의 일(제2차관 소관)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 때문이다. 특히 지난 6월 나로호 2차 발사가 실패로 끝난 뒤 교과부가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자 과기부를 부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 있었다.
과기부는 1998년 종전의 과학기술처가 승격돼 만들어졌고, 그 중요성을 인식해 조직의 우두머리를 부총리급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명분 아래 과기부를 교육부에 합치면서 실질적 책임자가 부총리급에서 차관급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니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은 예산 배분에서부터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 수 없었고, 부처간의 사업 협력에서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겠다며 정부는 자문위를 행정위로 승격시키고 장관급 부위원장과 차관급 상임위원 2명을 두겠다고 밝혔다. 또 20여명 수준인 자문위원 대신 120명 정도의 전문가로 조직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행정위가 하는 일은 예산과 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이며 교과부는 기존 업무를 계속 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행정위가 출범할 경우 필요한 전문가들 대부분은 교과부 제2차관 산하 조직에서 충원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현재의 교과부에서 과학기술 관련 부서는 더욱 부실해질 게 뻔하다. 이런 딜레마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정권 초기에 내건 '작은 정부'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구상하는 상설행정위의 역할과 교과부의 제2차관 산하 조직을 묶어 제대로 된 부서를 만드는 것이 옳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1002토] 이산가족 상봉 합의, 남북관계 개선 돌파구로
남과 북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이달 30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와 금강산호텔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상봉 규모는 남과 북 각각 100가족씩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동안 상봉 장소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의 연계를 주장해온 북쪽은 “이번만큼은 조건 없이 금강산 면회소에서 상봉 행사를 열겠다”고 양보했다. 남쪽 역시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논의할 별도 접촉 요구에 “추후에 관계당국에서 논의하겠다”고 양보했다. 남북 양쪽이 인도적 견지에서 한발씩 양보해 합의에 이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일이다. 남쪽에만 60만~7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산가족이 있고, 그 대부분은 일흔이 넘었다. 정부 당국에 상봉을 신청하고도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사람이 벌써 4만여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남북이 정치적 이유로 상봉 문을 열어놨다 닫았다 하는 것은 비인도적인 일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규모도 대폭 늘리는 것이 반세기 넘게 이산의 아픔을 지닌 채 살아온 동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 점에서 정례화를 위한 적십자 본접촉을 하기로 합의한 것은 잘한 일이다. 추후 회담에서는 전임 정부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상봉이 갑작스레 중단됨으로써 이산가족들이 겪었을 크나큰 아픔을 고려해 상봉을 이전 수준 이상으로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남북 당국은 이번 합의를 2008년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최근의 천안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경색되기만 해왔던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근 후계체제 구축을 가시화한 당대표자회를 전후로 북한은 유화적 태도를 보여왔다. 억류하고 있던 미국인을 석방하고, 남북 군사접촉에 나서는가 하면,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먼저 제안한 것도 북한이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나라 밖에서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움직임들이 빨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협의는 새로운 권력틀을 짠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가늠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관광 재개를 위한 3대 조건이나 천안함 문제를 고집해 남북관계를 그르치지 말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앉아서 북한의 자멸을 기다리는 정책은 이제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20101002토] 병역 기피용 원정 출산에 불이익 주는 건 당연
법무부는 최근 외국에서 출생해 그 나라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신청한 남자 청소년 4명에 대해 병역을 면제받으려는 목적이 있다고 판단, 국적 포기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들 부모의 해외체류 기록으로 볼 때 부모가 외국에서 영주(永住)할 목적으로 체류하다가 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출산 전에 단기간 외국에 나가 '원정 출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는 원정 출산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풍조를 막기 위해 부모가 영주할 목적 없이 외국에 체류하던 중 태어난 남성은 병역 의무가 끝난 뒤에야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2005년 국적법을 바꿨다. 이번 조치는 그 첫 사례로 원정 출산을 노리는 일부 계층에 큰 경종이 될 것이다.
자녀를 임신하면 미국·호주 같은 나라로 출국해 두세 달 머무르며 아이를 낳은 후 귀국하는 원정 출산이 유행한 지 오래됐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한국 국적을 가진 남성은 입대(入隊)할 나이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합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다. 원정 출산은 이를 노린 것이다.
앞으로는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사유가 아닌 애매한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은 정부 핵심 직책, 국회의원을 비롯한 주요 선출직을 아예 맡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런 조치로 당장은 피해자가 늘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병역 기피가 고위 공직자들의 필수 자격 요건처럼 돼 있는 요즘의 현실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혀를 깨물 듯한 결연한 자세로 원칙을 10년 정도 밀고 가야 병역 기피나 원정 출산 풍토가 사라질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01002토] 통독 20년… 분단 65년 한반도에 주는 교훈
내일이면 독일 통일 20주년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범세계적 해빙의 물결을 타지 못한 채 냉전의 마지막 고도로 남아 있다. 분단 65주년을 맞았지만 남북간 대치와 이질화는 외려 심화되고 있다. 천안함 참사와 북한의 3대 권력세습 공식화가 그 징표다. 분단의 상흔을 성공적으로 극복 중인 독일이 우리에게 단순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한국의 나침판이 돼야 한다.
통일 독일도 막대한 통일비용을 치르면서도 여태껏 적잖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양독 간 경제적 격차와 주민들 간의 이질적 정체성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 간 격차와 이질화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37.3대1로 벌어진 남북 간 소득격차는 오히려 작은 문제일 게다. 북한사회가 60여년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폐쇄회로에 갇히는 바람에 심화된 남북의 이질성은 통일 후에도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을 게 뻔하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야 되겠는가. 서독이 그랬듯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두 축으로 통일의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유무형의 통일비용을 다 합치더라도 통일로 인한 편익보다 적을 것이라는 적극적 사고가 긴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이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임은 분명하다. 북한은 그제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얼굴과 함께 당대표자회의 결정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 서문에서 ‘혁명적 마르크스-레닌주의 당’이란 문구를 삭제, ‘김일성의 당’으로 못박고 ‘김일성 조선’이란 표현을 추가했다. ‘김씨 왕조’의 후계자가 김정은임을 선포한 꼴이다. 세계적 조롱거리인 이런 세습쇼는 북측으로선 인민 생활과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개방, 비핵화 등은 뒷전일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이런 북을 상대로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북한이 시대역행적인 길을 걷더라도 퇴로마저 막고 압박하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처럼 ‘묻지마 지원’ 또한 북한정권의 퇴행을 부추기고 주민의 고통을 연장·가중시키는 일일 수도 있다. 이런 딜레마에 직면한 우리에게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가 최근 유용한 조언을 했다. 그는 “서독은 동독이 응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협력을 제안했다.”고 강조했다. 그 대신 동독의 체제변화와 개혁을 반드시 요구했다는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인도적 지원이나 경협에는 적극적으로 임하되 상응하는 개혁·개방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1002토] 채소류 물가 비상, 장기적 안정대책 서둘러야
식탁물가의 잣대인 신선식품 가격이 무려 40%가 넘는 폭등세를 보이는 등 물가비상이 걸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6% 올라 지난해 4월 3.6%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특히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5%나 상승했고 전월 대비로도 19.5%가 뛰었다. 상추는 전년 동월에 비해 233.6%,호박 219.9%,열무 205.6%,배추 118.9%,마늘 101.1%,파 102.9%,무 165.6%,시금치는 151.4%나 급등했다. 거의 모든 야채류가 최소 2~3배 올랐다는 얘기로 가히 '농산물 가격 쇼크'라고 할 만하다.
기본적 먹을거리인 채소류 가격 급등은 바로 서민들의 가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비춰 보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김장철을 맞아 무 배추 등의 수요가 급증하면 농산물 물가대란이 일어나지나 않을 지 걱정이다. ?i
정부는 "일시적으로 기후와 작황이 안 좋아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 물가가 크게 뛰었다"면서 "이달 중순부터 제철 채소가 나오면 물가가 서서히 내려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봄철 저온현상에 여름 폭염, 폭우와 태풍 등의 영향이 컸다는 해석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무,배추에 대한 긴급할당관세를 추진하고 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해 무,배추를 중국에서 직수입해 수급 및 가격 안정을 시도할 방침이라고 한다. 또 농협 계약재배물량 확대, 월동 배추 조기 출하 등을 통해 공급 물량 확대를 통한 수급 안정을 도모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 기후가 급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불규칙한 날씨로 인한 농산물 작황 악화와 그에 따른 신선식품 가격 고공행진이 상시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기적인 수급안정책도 필요하지만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물가안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가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주문이지만 시장경쟁 촉진,농산물 유통구조 개혁과 직거래 장터 활성화, 품종개량, 소비자 감시 강화 등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물론 지난 7월 기준금리 인상 후 8~9월 연속 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이 이달에 기준금리를 다시 올리면 인플레이션 압력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물가상승은 신선식품 공급부족이 주 요인이라는 점에서 금리정책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 금리결정에는 또 글로벌 경기와 국내 경기가 동시에 둔화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 또한 크다.
거듭 강조하지만 기후 변화와 신선식품 가격 급등은 이제 하나의 현상으로 고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대두되고 있다. 단순한 물가 차원을 넘어 안정적인 먹을거리 확보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구조적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1002토] 김장 채소가격 안정이 급선무
배추 등 채소류를 비롯한 일부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식탁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이상기후로 공급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신선식품물가지수는 통계작성 이후 처음으로 45.5%나 폭등했고 그 영향으로 소비자물가지수는 3.6%나 뛰어 8개월 만에 3%대로 높아졌다.
배추 등 일부 신선채소류 가격은 말 그대로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상추ㆍ호박ㆍ열무는 지난해 9월에 비해 2~3배씩 뛴 것은 물론 한달 전에 비해서도 배 이상이나 올랐다. 장바구니물가가 급등하면서 가격을 올리는 음식점들이 늘어나고 있고 식품업체들도 가격인상을 서두르고 있어 물가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사정이 다급해지자 정부는 중국산 배추와 무 150톤을 긴급 수입하고 농협 계약재배물량 확대, 월동배추 조기출하 등 대책추진에 나섰다. 정부는 "이상기온과 병충해에 따른 공급부족 사태는 새 물량이 출하되는 이달 중순이면 풀릴 것"이라며 중국산이 들어오면 수급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김장철을 앞둔 시점이어서 불안감은 쉬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급등한 배추 가격에 놀란 주부들은 10월 말 이후 나오는 김장배추 가격도 폭등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일기가 불순했던 탓에 배추뿐 아니라 고추ㆍ마늘ㆍ파 등의 작황마저 좋지 않아 양념류 가격도 크게 뛰었다. 중장기 대책보다 김장채소 가격 안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시설재배, 계약재배면적 확대, 산지ㆍ소비지 저온저장시설 확충, 물류 전문화 등 중장기 수급안정대책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농산물 파동이 있을 때마다 되풀이돼온 대책들이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추진돼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있는 만큼 이상기후에 강한 품종 개발과 기술지도를 통한 생산성 향상, 채소류 저장능력 확충 등 다각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직거래 활성화를 통해 산지와 소비자가격 차를 줄이는 등 농산물유통구조 개선 노력도 강화돼야 한다.
유통과정에서 담합과 중간상인들의 농간을 차단하기 위한 도매시장법인 및 시장도매인지정제도를 등록제로 전환하고 시장도매인제도를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 내일/홍권희(논설위원)-20101002토] G20 조정능력 시험 받을 한국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한국의 국제 리더십뿐 아니라 G20의 미래도 시험대에 함께 오른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한 G20이 위기 극복 이후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 EU와 미국의 양보 이끌어내야
G20의 존재가치는 국제 경제협력 논의에 개도국의 참여를 늘렸다는 점에 있다. 그동안 국제기구를 주도해온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양보가 앞으로 더 필요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사 24석 중 9석을 차지한 EU는 2석을 개도국에 양보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이달 말까지 EU의 자율 조정이 성과를 내야 한다. EU는 IMF의 쿼터 약 30% 중 5%포인트 이상을 양보해 중국 등의 발언권을 높여주라는 요구도 받았다. 수세에 몰린 EU는 미국을 향해 “IMF에서 행사하는 사실상의 거부권을 반납하라”고 반격했다. 한국은 미국과 EU 양측에 한발씩 물러서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격변기 ‘개도국 대표주자’로서의 숙명이다.
G20이 역할을 키우려면 회원국 이외의 초청 기준부터 정비할 필요가 있다. G20에도 EU 국가들이 너무 많이 참여한다. 한국은 서울회의에 옵서버로 5개국을 초청하면서 단골인 네덜란드를 빼고 유엔과 G20의 연결 역을 맡은 싱가포르를 포함시켰다.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 문제가 한국 주도로 서울회의 의제에 추가됐다. 금융안전망은 갑작스러운 외환 부족의 공포로부터 개도국을 보호해주자는 것이다. 외환위기에 대비하느라 달러를 쌓아두는 낭비도 줄일 수 있다. 개발은 개도국들이 개발전략을 짜고 실행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종전처럼 선진국들이 개도국에 약속한 원조의 일부만 지원하고 생색을 낸다면 지구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어렵다.
일부 선진국은 “안전망이 가동되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초래할 수 있다”거나 “개발 성과가 나기까지 할 일이 산더미”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금주 초 동아일보사, 한국개발연구원(KDI),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서울 코엑스에서 공동 주최한 ‘G20 서울국제심포지엄’에서 조모 콰메 순다람 유엔 사무차장보 등 각국 전문가 대부분은 개발 지원의 중요성에 동의했다.
G20의 핵심 의제들이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에 묻혀버릴 수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특정 국가의 환율 문제를 G20에서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환율 논란이 불가피하다면 한국은 보호주의를 유발하는 환율전쟁을 중단하라고 양국 모두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글로벌 경기침체기에 보호주의 장벽을 더는 쌓지 말자”고 각국을 설득해 약속을 받아냈다.
* 의제,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다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4차 G20 정상회의 선언문에 ‘서울’이 22차례 언급됐다. IMF 쿼터 개혁 등 각 분야의 개편 논의를 서울에서 합의 또는 마무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동휘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서울회의는 의제가 지나치게 많아 모두 성과를 보이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일부 과제는 내년 프랑스와 2012년 멕시코 회의로 넘겨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욕심을 너무 부려서는 안 된다.
서울회의는 의제별 성과와 함께 G20의 정통성을 보강하고 논의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G20은 누가 선출하지는 않았지만 권한을 가진 정상들이 밀착 협의한다는 점에서도 정통성을 인정받는다. 세계 192개국이 참여한 유엔과 파워를 반영한 선진 7개국(G7)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한 논의구조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다. G20이 G7보다 지구촌 난제들을 더 잘 풀면 위기관리위원회에서 글로벌조정위원회로 역할을 키울 수 있다.
[중앙일보 칼럼-노트북을 열며/정용환(홍콩특파원)-20101002토] 위안화로 강남 아파트를 산다면
며칠 전 홍콩과 인접한 선전(深?)에서 택시를 탔다. 수중에 위안화가 없어 환율보다 조금 높게 쳐 홍콩달러를 내밀었다가 퇴짜맞았다. 기사는 위안화를 고집했다. 100홍콩달러의 가치가 86위안밖에 안 돼 계산할 때마다 복잡하고 받는 쪽도 성가시게 여긴다는 게 이유였다. 2000년대 초엔 100홍콩달러를 주면 130위안 가까이 바꿔줬다. 계산이 복잡하긴 마찬가지였을 텐데 홍콩달러를 받으면 히죽댔던 그때의 택시 운전사가 아니었다.
위안화 가치가 치솟으면서 홍콩에선 집집마다 위안화 예금통장 한두 개는 꿰차는 게 유행이다. 위안화 절상까지 겨냥한 재테크다. 홍콩의 위안화 예금 잔액은 매월 10% 이상 증가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다. 대접 받는 위안화는 지하 자금시장을 통해 들어와 고공행진하고 있는 홍콩의 부동산 시장을 받친다. 올해 상반기 홍콩의 부동산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전 시세를 회복했다.
위안화 가치의 적정성 여부를 따지며 미국과 중국이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위안화는 야금야금 국제화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 내 무역 결제 허용 지역을 넓히고 동남아 국가들에 이어 한국 등으로 대상 국가를 확대하고 있다. 위안화 펀드 상품에 이어 채권 시장의 빗장마저 풀었다. 이제 외국 중앙은행과 금융회사가 중국 채권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무역 결제로 쌓이는 위안화를 굴릴 수 있도록 규제를 푼 것이다. 위안화 보유 욕구를 키워 유통량을 늘리려는 노림수다.
중국의 야심찬 행보에 동남아가 먼저 화답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이 최근 위안화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급물살을 타고 있는 위안화 국제화 흐름에서 기회를 잡고 싶어 홍콩은 몸이 달아 있다. 차세대 성장엔진인 위안화 국제 거래를 놓치고는 미래가 없다는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요즘 홍콩 금융가에선 ‘홍콩달러의 위안화화(化)’라는 말이 화두다. ‘홍콩의 법정화폐를 위안화로 바꾸자’는 말인데 중국 경제의 활력을 최대한 끌어당기기 위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문제는 통화 주권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홍콩의 금융통화 정책이 중국 인민은행에 종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회냐 위험이냐’를 놓고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지난해 한·중 교역량이 1400억 달러에 달하고 대중(對中) 무역 의존도가 20%를 넘었는데, 한국이라고 이런 딜레마를 비켜가란 법 없다. 중국이 주저 없이 힘을 과시하며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가쿠열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고 ‘독도가 동해에 있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댜오위다오는 정치 문제였다. 위안화는 경제 문제다. 돈은 수익률을 좇는다. 민족도 국가도 다음 문제다. 위안화 무역 결제 비중이 늘어가고 대중 경제 의존도가 심화되면 홍콩처럼 돈값 나가는 위안화로 강남 아파트를 사고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 증시·부동산에 위안화가 풀리고 우리의 금리 결정에 그들의 입김이 작용하는 날이 올까 두렵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1002토] 양배추 김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 프랑스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낭비의 대명사로 불리며 프랑스혁명을 재촉했다. ‘빵 대신 케이크’라는 말은 그녀가 세상물정과 민생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널리 회자된다. 어느 신하가 가뭄으로 국민들이 먹을 빵이 없다고 말하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대뜸 그와 같이 대꾸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실은 루이14세 부인의 말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춘궁기라서 국민들이 굶고 있다”고 진언하자 “쌀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 않나”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한국 물정을 잘 몰랐던 대통령 부인의 말이라는 설도 있고, 빵이 아니라 고기를 먹으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쌀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말은 원래 중국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이 황당한 발언의 주인공은 서진(西晉)의 혜제(惠帝) 사마충이다. 그는 중국의 3대 바보 황제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힌다.
사마충은 바보 중 바보였지만 황실 내부 세력다툼의 결과로 황제가 됐다. 그가 얼마나 덜떨어졌는지 이런 이야기가 내려온다. 어느 날 개구리 울음이 들려오자 사마충이 정색하고 물었다. “저 개구리들이 지금 공적(公的)으로 우는가, 사적으로 우는가?” 신하가 답했다. “궁궐에서 우는 것은 공적이고, 들에서 우는 것은 사적입니다.” 우문현답인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둘 다 웃기는 우문우답이다. 한번은 가뭄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이 속출했다. 신하가 이를 보고하자 바보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쌀이 없으면 고기라도 먹어야지, 어째서 굶어 죽는단 말이오?”
이명박 대통령의 양배추 김치 발언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배추값이 비싸니 내 식탁에는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배추도 배추 뺨치게 비싸니 이는 말이 안 된다. 대통령의 충정은 알겠지만, 국민들의 실정은 모르는 발언이라고 하겠다. 어떤 이는 “쌀 대신 고기 먹으라는 격”이라며 열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배추든 양배추든 정색하고 따지기는 좀 그렇다. 앞서 든 ‘개구리 문답’처럼 입에 담으면 둘 다 우스워지는 코미디일 뿐이니 말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세상사는 이야기/김별아(소설가)-20101002토] 놀아야 산다!
해를 넘겨 동네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요가 교실에 참가하노라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용자층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게 확연히 눈에 띈다. 그러다 이번 분기에는 수강료 절반을 감면받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마침내 일반 수강생 수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수업이 고즈넉하니 소일하는 분위기인 것도 아니다. 그분들에 비하면 젊디젊다 못해 어리다고 취급받는 40대의 나도 따라하기 벅찰 만큼 과격한 동작들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그럼에도 힘들다는 불평 하나 없이 난해한 자세를 척척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면 노인이라는 말이 무색한 동급생들에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제 더 이상 고령화사회는 미래형이 아니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력을 뽐내는 60ㆍ70대를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80ㆍ90대까지 사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예부터 장수는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취할 수 있는 부귀와 달리 하늘이 정해주는 것으로 치부되며 오복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다. 그러니 이토록 넘치는 수복(壽福)의 시대가 도래했음에 기뻐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조기퇴직, 경기불황, 물가상승 등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의식과 함께 길어진 노후에 대한 불안으로 장수를 축복이 아닌 `공포`로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런 셈으로 따져 인생의 반 고비를 겨우 넘은 나의 동년배들은 만날 때마다 사춘기 청소년들인 양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진지하게 토론하기도 한다.
물론 인생의 3대 불행 중 하나가 노년에 돈이 없는 것이라니 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하기로는 최우선이다. 하지만 한정된 돈에 비해 무한정한 시간 속에서 인생 후반기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도 만만찮게 중요하다. 자식들의 보호와 지원을 기대하기보다는 자립적으로 삶을 꾸려야 하는 `홀몸노인 100만명 시대`. OECD 가입 국가들의 평균보다 2배가 높은 자살률 중에서도 날로 비중을 더해가는 노인 자살률을 고려할 때 남아있는 나날에 무엇으로 건강과 삶의 질을 지킬 것인가.
그리하여 요즘 부쩍 귀에 드는 단어가 바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다. 역사가 하위징아가 주창한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 문화ㆍ예술적 유희의 인간을 가리키는데, 하위징아는 놀이에 따르고 승복하며 놀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을 빛나게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살률만큼이나 일하는 시간으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 사회는 지금껏 노는 것을 죄악시했고, 그 결과로 `공휴증(恐休症)`이라는 신종 질환을 낳기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쉬고 노는 것이 두려워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부귀빈천에 상관없이 공평한 일생은 즐겁게 살기엔 턱없이 짧지만 권태롭기엔 너무도 길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잘 놀아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삶을 헤쳐 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바야흐로 제2의 삶을 위해 잊었던 꿈과 미뤄둔 놀이를 되찾아야 할 때다. 도저히 밥벌이가 될 수 없을 듯해 포기해 버린 글쓰기, 어린 시절 잠시 배우다가 흐지부지 중단했던 악기, 언젠가 꼭 한 번 추고 싶었던 열정의 춤, 시간이 나고 여유가 생기면 해보리라 남몰래 마음먹었던 그림, 사진, 연극 등등….
무엇이라도 미뤄두었던 꿈과 소망을 되찾아 즐기는 사이 돈과 명예가 아닌 가치, 잃어버리거나 잊어 버렸던 자신을 찾는 진정한 삶의 가치를 얻게 된다. 누군가 서투름을 탓하고 주책없다 할까봐 두려워할 필요 없다. 아니, 서투르고 주책없으면 좀 어떤가. 생의 시작에서 우리는 다 같이 뒤뚱거리고 넘어지며 발자국마다 낯설고 새로운 걸음마부터 배웠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