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하지 않는 비판정신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와 관련하여 다시 과학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을 향해 "선동이 아닌 과학으로 말하라"고 윽박지른다. 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선동일까. 이 경계선을 설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 바로 재현성(reproducibility)이라는 개념이다. 만일 어떤 연구자가 "물이 끓는 임계치는 100도"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고 치자. 이게 과학적 주장이 되려면 자신의 실험 방법과 계측 장비가 무엇인지 밝혀서 다른 사람도 다양한 실험으로 물이 100도에 끓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재현성이다.
재현할 수 없는 실험, 사이비 과학
2016년 과학저널 <네이처>는 논문을 수록한 1500명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논문의 70%가 다른 과학자에 의해 재현될 수 없는 실험이었다. 실험에 투입한 장비와 계측 조건이 자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온도를 재는 계측 장비를 수은 온도계가 아니라 레이저 온도계로 바꾸면 결과치가 판이하게 달랐다. 길이를 재는 데 줄자가 아니라 레이저 계측기를 이용해도 측정치는 판이하게 다르게 나왔다. 연구자마다 측정 장비가 달라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면 그건 과학적 결론이 아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측정 장비와 방법을 밝혀서 다른 사람도 유사한 결론을 내도록 안내해야 한다. 설문조사에서는 심지어 논문을 수록한 저자의 50%가 자신의 실험도 재현하지 못했다. 자신이 뭘 검증했는지도 밝히지 못하는 거다. 막대한 자금이 흘러 들어간 심리학과 생명공학 등에서 과학은 '재현의 위기'에 처했다는 충격적인 경고였다. 권위 있는 학술지조차 돈이 되는 연구, 획기적이거나 특이한 결론이 도출된 논문을 선호하다가 과학정신이 크게 오염되고 말았다. 어떤 연구가 학술지에 게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권위를 부여받게 되면 이는 과학과 거리가 멀다.
2022년 후쿠시마 제1원전 찾은 그로시 IAEA 사무총장. 지지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가 정당화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라는 권위다. 보수 언론은 마치 IAEA가 일본의 오염수 정화과정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기관이며, 이런 IAEA를 신뢰하지 못하면 무엇을 신뢰하겠느냐고 다그친다. 그게 바로 과학적 자세란다. 과연 그러한가. 지금 IAEA는 최종 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있어 얼마나 그 검증 과정을 투명하게 밝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발표된 IAEA의 4차, 5차 보고서에서는 오염수 정화의 전 과정은 "오직 일본 정부가 자체적으로 통제(self regulation)하며" IAEA는 단지 "기술적인 지원(assist) 역할만 하는 기관"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만일 오염수 투기가 심각한 환경 오염으로 문제도 되어도 IAEA는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다. IAEA는 검증을 책임지는 감리기관이나 인증기관이 아니고 단지 컨설턴트 역할만 한다.
"신뢰할 만하다"는 말의 함정
그런데 여당과 일부 언론들에게는 이런 IAEA가 오염수 정화를 검증하는 기관으로 둔갑하고 있으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지난 보고서에서도 IAEA는 일본의 오염수 정화과정을 "신뢰할 만하다"고 했다. 분명하게 정화과정의 과학성이 입증되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신뢰할 만하다'는 주관적 표현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일본의 오염수 정화과정에서 어떤 정화장비와 계측장비가 어떤 방법으로 사용되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며, 다른 실험자도 얼마든지 시료를 채취하여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과학이다. 그러나 일본이 모든 실험을 독점하면서 접근을 통제하는 이상 과학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오염수 정화에 대한 검증은 영원히 재현될 수 없다. 설령 IAEA라도 말이다. 게다가 '신뢰할 만하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나는 여태껏 꽤 신뢰할 만한 지인들로부터 숱하게 돈을 떼였다. 신뢰할 만하지 않았더라면 돈을 떼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만일 어떤 친구가 돈 빌려주기를 망설이는 나에게 "나를 신뢰하지 못하냐"며 섭섭하다고 하면 차마 인간관계상 거절 못하고 빌려주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돈은 떼이는 거다. IAEA는 일본을 "신뢰할 만하다"고 했지, 일본이 반드시 "돈을 갚는다"고 말한 적 없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IAEA를 "신뢰해야 한다"고 말을 바꾸더니, 더 나아가 "신뢰 안 할 거냐"고 거꾸로 야당을 윽박지른다. 오염수 처리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로 돌변하고 말았다. 물론 오염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안전할 수도 있다. 정작 두려운 것은 믿음을 강요하며 윽박지르는 비과학적 태도다. 과학의 권위가 특정한 세력, 특정한 기관에 의해 독점되면 사이비 과학으로 전락한다. 이제 과학은 권력의 무기로 전락하여 재앙의 가능성을 잉태하게 된다.
과학의 무기화, 전체주의 심리학
이게 바로 과학의 권위를 짓밟는 전체주의 심리학이다. 과학의 권위에 짓눌려, 시민은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수동적 객체로 전락하는 과정은 전체주의 작동 방식이다. 과거 나치의 우생학, 볼셰비키의 정신분석학이 바로 사이비 과학이다. 이런 사이비 과학은 국가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 1986년 4월의 어느 날에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억하자. 사건 초기에 방사능 계측 오류, 허위 보고, 사건 은폐가 이어졌다. 사태가 악화되자 체르노빌 수습 비용은 소련 국가 전체의 예산에 맞먹는 규모로 치솟았다. 이는 소련 공산당과 국가의 실패로 이어져 5년 8개월 후 소련은 망했다.
다만 뜻밖의 성과가 있었다.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던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소련 스스로 이 재앙을 극복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체르노빌을 서방에 공개하며 국제사회가 협력하여 이 재앙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역사는 체르노빌 수습을 위한 국제협력이 철의 장막을 넘어 냉전을 종식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과학과 협력의 정신이 냉전을 종식시켰다.
반면 2011년 일본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직후에도 외국의 원조와 지원을 모두 거절하며 오직 일본의 통제하에서만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입장으로 불신을 자초했다. 지금도 모든 과정은 오직 일본만 통제하고 있다. 단지 교묘한 외교술로 미국을 설득하여 오염수 투기를 성사시켰을 뿐이다. 지금 일본의 오염수 처리 과정을 보면 구소련 당시의 고르바초프식 국제협력의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만일 일본이 국제사회에 사태 수습을 위한 협력적 방식의 해법을 제시하였더라면 신냉전으로 일컬어지는 동아시아에 평화와 협력의 기회가 창출되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편협한 주권 논리에 갇혀 지난 12년을 폐쇄적인 처리 방식으로 일관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오염수 투기로 이어지게 된 배경이다.
지난 2월 2일 촬영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내에 오염수를 저장해 놓은 저장 탱크들 모습. 2023.6.20. 연합뉴스
게다가 일본은 원자력 마피아의 천국이다. 히로세 다카시 씨는 30여년 동안 철저한 현장 조사와 광범위한 자료를 토대로 일본 정부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해온 반핵평화운동가다. 그는 오래 전부터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사고를 경고해서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을 비판하며 강연 활동을 하던 그는 2016년 11월에 정의당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과학의 비판적 정신에 투철한 지성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식사 중에 그는 자신이 원전 마피아의 공공의 적이 되면서 심지어 "살해 위협을 여러 번 느꼈다"고 털어 놓았다. 문득 민주국가 일본이 그렇게까지 야만적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일본은 원전 마피아의 나라라서 자신의 신변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에 섬뜩했다. 그런 일본의 손을 윤 대통령이 잡는 순간, 우리는 과학의 정신을 배반한 대가를 뼈아프게 치러야 할지 모른다.
재앙을 막는 힘, 시민의 비판지성
과학의 위기는 우리에게 비판적 성찰을 촉구한다. 지난 팬데믹 시기에 우리는 백신의 효용성이라는 맹신에 사로잡혔다. 2021년에 노르웨이 의사협회는 백신 효용성을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의사에게는 면허를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독일과 아이슬란드는 유럽에서도 70% 이상의 최고 접종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유럽 통계청은 놀라운 통계치를 발표했다. 팬데믹 기간 중에 유럽에서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두 나라의 초과사망률(정상 사망 비율을 초과하는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거다. 높은 사망자 비율과 백신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아서 그간 우리의 믿음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런 뒤늦은 발견은 독성이 강한 백신을 보다 사려 깊게 사용하라는 일종의 주의를 촉구한다. 우리는 어느새 백신 접종 이후 건강이 악화되거나 사망한 이들에게 의도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며, 그 통계는 지금도 은폐되고 있다. 백신을 믿지 말자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 믿음의 반증 사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소위 절대적 이론이라는 건 없다. 모든 이론과 주장은 반증의 사례를 남겨둘 여지가 있고, 과학은 항상 그 가능성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에서 나온다. 하물며 실험 데이터조차 공개하지 않는 오만한 국가권력이야말로 과학의 적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비판의 정신을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건 앞으로 큰 재앙의 전조가 된다.
2017년 8월 10일 성주 사드 기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현장확인이 예정된 가운데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정부의 전자파 측정 등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8.10.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정부는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가 "휴대폰의 53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서도 극초단파 레이더의 출력값과 출력 조건이 공개되지 않고 단지 결과치만 명기되어 있다. 이런 게 바로 사이비 과학이다. 이런 환경영향평가는 신뢰가 아닌 불신을 자초하는 행태이지만 보수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 괴담'을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라고 윽박지른다. 상식적으로 초강력 극초단파가 휴대폰보다 안전하다는 식의 주장은 그 실험 데이터가 검증되기 전에는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위험한 주장이다. 우리나라 환경영향평가법은 해당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공청회와 검증 과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식의 발표가 가능한지가 의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방식으로 과학을 소비하게 되면 앞으로 정부는 과학의 권위를 독점하여 시민을 통제하는 데 과학을 무기로 삼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 파시즘이다. 그들의 과학은 실상 과학이 아니라 주술에 불과하다. 정부와 여당이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도 선동이며 괴담이라며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오만한 행태를 보이는 그것이 바로 전체주의다. 우리에게 유일한 무기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정신으로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의 집단지성이어야 한다. 굴복하지 않는 비판정신이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