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무도회
유병덕
2015harrison21@naver.com
손끝이 스칠 때마다 아프다. 장마 끝이라 농막 주변이 풀로 무성했다. 급한 마음에 장갑을 끼지 않고 풀을 깎다가 가시에 찔렸다. 자세히 보니 부드러운 풀 사이에 가시가 숨어 있다. 꾸지뽕나무 뿌리를 따라 어린 가시가 늘어서 있다. 피부에 박힌 가시는 만지면 만질수록 깊숙이 살을 파고 들어간다. 손에서 피가 흐르고 찔린 자리가 욱신거려서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환자가 많아서 한나절은 기다린 듯하다.
박힌 가시를 보며 상념에 젖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수없이 가시에 찔린다. 가시는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눈에 보이는 가시는 뽑아내면 쉽게 아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는 좀처럼 빼낼 수 없다.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찔린 상처는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괴롭게 한다. 때로는 얽히고설킨 모든 인연을 끊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적도 있다. 혹시, 세상이 가시 무도회장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직에 있을 때 병원을 가까이했던 일이 머리에 스친다. 지방의료원을 관리하고 감독하느라 품격 없이 가시를 자주 드러냈다. 정부에서는 의료원의 경영수지를 개선하라고 줄곧 다그쳤다. 의료 장비를 지원해 주고 시책 사업비를 보조 해주는데 경영 적자를 내냐며 호된 질책이다. 나도 모르게 돋아난 가시는 원장을 겨누고 있다. 경영 계획서를 내라 하고 적자를 내면 계약을 해지하겠노라고 엄포까지 놓는다. 사실 무리한 요구다. 의료원은 민간 병원과 다르게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병원이다. 적자가 늘어나고 채무가 쌓여서 어쩔 수 없이 끔찍한 가시를 내밀었다. 그러는 사이에 여러 의사원장이 손들고 나갔다.
새로 임용한 원장의 표정이 밝지 않다. 임용 시 경영 적자를 개선하라는 무거운 짐을 지운 탓이다. 그는 진료 의사들과 마찰을 빚는다. 성과를 올리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어서다. 그러나 공공병원은 과잉진료를 할 수 없다.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기 위하여 만든 병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업 수입은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한다. 궁여지책으로 의업 외 수입을 늘리느라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주차장을 유료화하여 적자를 메우려다가 사달이 난다.
“원장 물러나라.”
노조는 처우 개선하라며 진료를 거부한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채 거리로 나가서 가시 무도회를 열면 마음 약한 의사원장은 버티지 못하고 물러난다. 그 파도는 쓰나미처럼 밀려서 내게 닥친다.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몫이다. 시민의 불편을 막으려고 전전긍긍하며 현장으로 달린다. 원장 아닌 원장 노릇 하며 진료 의사와 노조 간부를 설득하고 달래느라 숱한 날밤을 지새웠다.
노조가 가시 무도회를 열고 나면 병원이 휘청거린다. 외래환자가 줄고 입원환자가 빠져나가는 사이에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병원의 주인은 보이지 않고 사공뿐이다. 여기저기 자문 끝에 전문경영인을 임용하니 의사협회서 난리다. 자리를 빼앗겼다고 마구 찔러 댄다. 나도 모르게 가시가 돋아나서 ‘의사는 의사답게 전문적으로 진료하면 되고 전문경영인은 경영인답게 수준 높은 의료진을 꾸려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라며 단칼에 끊어버렸다. 위에서는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의료원의 모든 걸 책임지라며 끔찍한 가시를 목에 겨누었다. 의료원을 살리기 위하여 본의 아니게 품격 없이 가시 무도회에서 춤추던 일들이 부끄럽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간호사가 방문을 열며 들어가란다. 의사가 잠시 손바닥을 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이다.
“꾸지뽕 가시가 많이 박혔군요.”
그는 꾸지뽕나무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어린나무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온몸에 가시를 둘러싸고 있는데, 조심하지 않았다며 나무란다. 예리한 핀셋으로 가시를 한참 파내더니 독이 많은 어린 꾸지뽕나무를 조심하라는 당부다. 한마디 덧붙인다. 오래된 꾸지뽕나무는 가시가 없단다. 웬만한 공격은 이겨낼 수 있어서 가시를 모두 내려놓았단다. 농막에 돌아와서 꾸지뽕나무를 들여다보니 굵어진 줄기는 세월을 입은 흔적만 우툴두툴하고 가시는 보이지 않는다. 가지 끝에만 몇 개의 가시를 달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볼썽사나운 가시로 많은 이를 아프게 했다. 나의 돈바른 성격 탓에 수많은 이들과 부딪쳤지만, 그러함에도 모든 이들이 이해하고 품어주었다. 이제 오래된 꾸지뽕나무처럼 가시를 내려놓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이가 켜켜이 쌓여감에도 아직 가시가 남아 있다. 관용이나 너그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옹졸하기만 한 나를 본다. 마음이 슬거워지고 싶은데.
첫댓글 유병덕 수필가님의 작품 '가시 무도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