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민속다백과사전 -한국민속신앙
동해안 중부 지역에서 광인(狂人),
즉 미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하는 무속제의.
* 역사
인간은 재화(災禍)를 면하고 복을 얻기 위하여 신에게 제사하고 기원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예측할수 없는 일이 신의 뜻에 의하여 좌우되고,
질병이나 사망 등의 불행이 초래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신을 위하고 달래거나 막고 쫓는 방법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대부분의 굿은 공물을 접대해 귀신을 환대하고 공경함으로써 노여움을 풀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귀신이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물질이나
색채· 냄새 등 주력으로 귀신을 쫓거나 칼·낫·도끼·완력 등 물리적 위협을 가해
축귀(逐鬼)하는 방법도 있다.
가시가 돋친 엄나무 가지를 대문에 걸어두거나,
경면주사(鏡面朱砂)로 부적을 써서 잡귀를 예방한다.
복숭아나무도 잡귀를 쫓는 주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동도지(東桃枝), 즉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는 잡귀를 쫓고 액을 막는 데 사용한다.
복숭아나무로 귀신을 쫓는 것은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 송(宋)의 범엽(范曄,398~445)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의 기록에도 나타난다.
복숭아 가지로 열병 환자의 침소를 휘둘러 악귀를 퇴산시키고 병을 낫도록 했다.
또한복숭아나무 가지 주부(呪符)를 문 앞에 걸어 놓아 악귀가 접근하지 못하게 했고,
복숭아나무 가지를꺾어 분묘(墳墓) 선정지나 건축 예정지에 꽂아 놓아 악귀를 퇴치하였다.
조선 순조 때 한양의 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의하면 섣달 그믐밤[除夕]에
관상감에서는 대궐 뜰에 귀신을 쫓는 의식인 대나(大儺) 행사를 할 때 악공 10명이 복숭아나무로 만든
귀신 쫓는 부적인 도열(桃茢)을 잡고 따르는 내용이 있다.
동해안에서 행해지는 광인굿은 귀신을 달래기보다 위협을 가하여 쫓는 방법을 통해 축귀하는
굿이다.
내용
동해안 중부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 굿에서는없는 ‘광인굿’이 있다.
‘축구[축귀(逐鬼)]’ 또는 ‘광인퇴치굿’으로도 불리는 광인굿은 귀신에 의해 정신이상자가 된 사람에게서
귀신을 떼어내는 굿이다.
광인굿은 굿의 규모에 따라 개인집의 오구굿을 마치고 이어서 축귀의식을 하는 것과
따로 독립하여 축구를 하는 것이 있다. 따로 독립하여 축구를 할 경우 의례에 필요한
허재비·도끼·작두·칼·낫 등을 모두 갖춰야 한다.
이처럼 광인굿에 필요한 도구를 모두 갖춰서 굿을 한다고 하여 ‘가진축구’라고도 한다.
김태곤이 1976년에 김석출에게서 파악한 광인굿은 부정굿-골매기서낭굿-조상굿-처낭굿-
도수풀이-제반굿-거리굿-작두타기-여처낭굿으로 진행된다고 하였고, 송동숙·사화선·김장
길에 의하면 부정굿-골매기굿-조상굿-가진축구풀이(귀신확인, 천도 또는 축귀)-거리굿 또는
부정굿-골매기서낭굿-조상굿-세존굿-대감장군굿(군웅장수굿)-성주굿-가짜(칼·도끼·낫·불
등으로 잡귀를 위협하여 몰아내는 굿거리)-초망자굿-거리굿의 절차로 진행된다고 한다.
제보자에 따라 굿거리가 가감되는 것은 굿의 규모와 귀신의 존재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광인굿은 동해안 중부 지역에서 남무들에 의해 연행되었다.
광인굿을 잘한 남무로는 제갈성도(송동숙의 의부), 변성문(변난호의 큰아버지), 김석출, 송동숙 등이 있었다.
광인굿은 동해안의 큰무당에 의해 작두를 타고 축귀의식을 하는 유일한 굿이다.
지역사례
현재 광인굿은 거의 행하지 않기 때문에광인굿의 사례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
광인굿은 2004년 6월 21일 경북 울진 후포의 도곡영신산당에서 행해진 것이 마지막이다.
광인굿은 굿의 성격상 참여관찰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1976년에 김석출이 제보한
광인굿의 절차를 통해 굿의 사례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미친 환자의 집에서 환자를 안정 또는 감금을 한 다음 무당을 불러 굿을 할 준비를 한다.
무당은 짚으로 실제 사람 크기 정도의 허재비(허수아비)를 4개 만든다.
그리고 마당에 말뚝을 박아 기둥을 세워 널빤지로 약 3m 높이의 당을 맨다.
이렇게 만든 널빤지 위에다 허재비 4개에 각각 사람의 얼굴을 종이에 그려 붙이고
흰 두루마기를 입힌다음 머리에 검정 갓을 씌워서 세워 놓는다.
이렇게 당을 매고 허재비를 올려 세워 놓는 것을 ‘사처낭맨다’라고 한다.
굿 준비가 끝나면 무당은 저녁을 먹고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마당에는 모닥불을 피워 놓고 4처낭을 맨 아래에 굿상을 차린 다음 밤 8시경부터 굿을 시작한다.
굿은 먼저 부정을 없애는 부정굿을 하고, 마을의 당신(堂神)인 골매기굿을 한다.
그 다음에 제주집의 조상굿을 하고 처낭굿을 한다.
그 후에는귀신을 풀어먹이는 도수풀이를 하고 제물을 헤쳐서 정리하는 제반굿을 한다.
그런 다음 거리굿을하고는 화랭이(남자무당)가 올라가 작두를 탄다.
선반 위에 사각 말통에 쌀을 담아놓고 그 위에 작두를 나란히 얹어서 화랭이가 맨발로 작두에 올라간다.
화랭이는 낫 2개, 식칼 2개, 도끼 2개, 놀이칼 2개를 양손에 갈라 쥐고 춤을 추면서 무가를 부른다.
이때 작두를 타는 화랭이가 발을 다치게 되면 정성이 부족하고 부정이 들었다 하여 목욕재계를 하고
다시 기도한 뒤 작두를 탄다. 그래도 발을 다치게 되면 다른 화랭이로 바꿔서 작두를 탄다.
작두타기가 끝나면 여처낭굿을 한다.
여처낭은 매우 무서운 여귀(女鬼)이다.
여처낭굿은 작두를 타던 화랭이가 문 밖에서 여복(女服)으로 갈아입은 뒤
종이로 여귀의 얼굴을 그려서 얼굴에 쓰고, 짚으로 만든 아이를 업고 슬프게 울면서 문 안으로 들어선다.
이것은 여처낭 귀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여처낭은 광인에게 병을 준 귀신으로,마당에 세워 놓은 4처낭에게 들켜서 오도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항복해 4처낭 앞으로 들어오는것이다. 즉 4처낭은 남처낭으로, 이 4처낭이 사방을 막고 서 있어서 여처낭이
달아날 데가 없기 때문이다.
여처낭은 등에 업고 있는 아이를 내려 안고 젖을 주는 흉내를 내며 당맨 위의 4처낭을 보고 울면서 하소연한다.
여처낭이 배도 고프고 젖도 나지 않아 애가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무악을 반주하는 화랭이들이
“귀신아! 귀신아! 귀신아!” 하고 세 번 부르면 여처낭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4처낭을 향해 차례로 절을 하고는
다시 주저앉아 운다.
화랭이들이 “귀신아!” 하고 부르는 세 번째 소리에 여처낭은 “예” 하고 대답한다.
화랭이들이 “네가 어떤 귀신인데 밤중에 아(아이)를 안고 이리 청승맞게 울고 있노?” 하면
여처낭은 “예, 내가 다른 귀신이 아니오라 예귀[女鬼]옛사젠[女使者]데 이집 ○○○한테 밤낮으루 병을주고
아침 저녁을 잘 뜯어먹고 있었는데 오늘은 4처낭님한테 다 들켜 갈데 올데 없어 오늘 이레 울고 있임니더.
갈데 올데도 없을뿐더러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이 어린 자식 데리고 갈데 올데없고, 오늘 4처낭 앞에 내 목심(목숨)을 바치게 되니 그래 내 신세를 생각해서
울고 있임니더”라고 대답한다.
화랭이들이 “그러믄 오늘 밥과 떡과 술과 니노자(路資) 돈꺼정 많이 줄 테니 환자 미친 증세를 전부 걷어
옥도끼에 목을 끊어 돌아가겠느냐?”고 물으니 여처낭이 “예, 돌아가겠심더”라고 말한다.
다시 화랭이들이 “니 줄나코 헤논 밥이 당 밑에 많이 있으니 니 한 대로 먹고 가거라” 하니
여처낭은“예” 하고 대답하고는 당 밑에 놓은 밥 앞으로 다가가 화랭이들 쪽을 향해 밥먹는 흉내를 낸다.
여처낭이 “내 밥 묵는데” 하자 화랭이들이 “오많이 무거라”하고 부추긴다.
여처낭이 밥과 반찬을 한 줌에 긁어 입이 터지도록 우겨넣다가 사래가 걸려 “캑 캑. 밥 다 묵고 간데이” 하며
떠나려 하자 화랭이들이 “다시는 병 넣지 말고 니 갈 데로가거라” 하면서 쫓아낸다.
여처낭은 “내 간데이,내 간데이” 하며 겁먹은 몸짓으로 뒷걸음질하여문 밖으로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화랭이들은 “어이 여루 귀신아. 옥도끼로 목을 쳐 불에 화살 보내자”를 세 번 반복한다.
화랭이들이 당 위에 있는 4처낭 허재비를 내려다가 모닥불에 태우고는 광인굿을 마친다.
현재는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굿을 하기 보다 병원의 치료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광인굿은 거의 연행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後漢書, 洌陽歲時記,
한국무속연구(김태곤, 집문당, 1981),
굿놀이(정병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5,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
소, 1991),
한국민속대사전 1(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한국민속문화대사전 상(김용덕, 도서출판 창솔, 2004),
연행예술로서 동해안 굿의 변화양상과 변화요인(윤동환, 안동대학교 석사학
위논문, 1999),
동해안 굿의 전승과 변화(윤동환,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