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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내려오다가 포졸 한 사람이 유 도마가 지고 가던 보따리를 보더니
“저것도 필경 이 사람의 보따리일 게야.
만일 이 사람이 양인이고 보면 저 속에도 무슨 신기한 것이 있을 게야.“
하며 성큼성큼 다가서더니 보따리를 홱 잡아 뺏는다.
도마는 본시 힘도 세고 담력이 비범한 교우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무 핑계도 못 대고 힘 한 번 못 써보고
그대로 잡혀 가는 것이 분하기도 하여 기회만 있으면
주먹으로 몇 놈 때려눕히고 신부를 빼앗아 도망할 마음으로
머리를 푹 숙이고 이리 궁리 저리 궁리 하던 차에
포졸이 보따리를 잡아 뺏는 바람에 정신이 펄쩍 났다.
도마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험상스런 눈으로 포졸을 노려본다.
보따리는 좀체로 도마의 어깨에서 벗겨지질 않는다.
보따리를 잡아 뺏으려는 포졸은 아까 도마의 뺨을 때린 그 사람이다.
도마의 뻣뻣한 태도가 같잖다는 듯이
“이 자식, 냉큼 보따리를 벗어 놔라!”
하며 을러댄다.
숨소리만 씨근거리던 도마의 가슴이 드디어 폭발한다.
“이놈들, 난 너희들이 도적 잡으러 다니는 포졸들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너희들이 멀쩡한 도적놈들이구나. 이 놈,
왜 대낮에 대로상에서 남의 보따리를 뺏는 게냐? 이 멀쩡한 불한당 놈들!“
천둥 같은 호령과 함께 도마의 억센 손은 벼락치듯 그 놈의 따귀를 후려갈긴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그 놈의 상투를 붙잡고 휘휘 둘러 길가 개울 창에 틀어박는다.
옆에 있던 포졸이
“이놈, 사람 친다!”
하고 덤비다가 도마의 발길 한 번에 그 자리에 푹 고꾸라진다.
조금 떨어져 신부를 붙잡고 오던 포졸들이 이 광경을 보고
신부를 놓아 버리고 고함을 지르며 덤비는 것을 도마는
“오냐! 이 놈들, 너희도 다 같은 불한당 놈들 아니냐!”
소리를 치며 손에 잡히는 대로 메어박는다. 그러면서도 신부에게는
“어서 이런 기회에 내빼시오.”
하는 눈짓을 번개처럼 하였다.“
신부는 곧 알아듣고 줄달음질을 하여 도망가기 시작한다.
한 놈을 때려눕히면 먼저 쓰러진 놈이 일어나 덤비고,
이 놈을 메어박고 나면 다른 놈이 또 뒤에서 덤벼 한참 싸움이 부푸는 동안
신부는 팔매 두어 바탕쯤이나 달아났다.
그러나 조금 뒤에 이를 발견한 포졸 한 사람이
“저 양인 달아난다!”
외치는 바람에 모두들 정신이 펄쩍 난다.
그중 담력이 센 두 놈만 도마와 드잡이를 계속하고
다른 세 놈은 곧 신부를 추격하기로 한다.
신부는 방갓도 못 쓴 건 바람으로 논틀밭틀 할 것 없이 앞만 보고 내 뛴다.
포졸들은 비호처럼 그 뒤를 쫓는다.
선비의 몸으로, 게다가 움막 속에 숨어 바람 한 번 시원하게
쏘여보지 못하고 지내온 신부의 걸음은 놓아먹인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자라난 야인들의 걸음을 당할 리 없다.
신부와 포졸들의 사이는 점점 줄어든다.
뒤좇는 포졸들의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그들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까지 뒷덜미에 들린다.
신부는 더 달아날 용기도 없어 이제는 잡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뒤에서 떨그렁 하는 쇳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포졸들의 숨소리도 발자국 소리도 어느덧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차마 돌아볼 수 없어 기운 닿는 데까지는 뛰어보자 하고
죽을힘을 내어 얼마를 더 뛰다가 뒤에 따라오는 기색이 전연 없으므로
돌아다보니 추격하여 오던 포졸들은 멀리 떨어져 허리를 굽히고
제가끔 풀 섶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신부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허리를 더듬어 보니 돈꿰미가 없어졌다.
‘분명히 내가 차고 왔는데 웬일일까?’ 하고 다시 살피니
돈을 꿰었던 끈만 끊어진 채 남아 있고 돈은 다 빠져나갔다.
‘옳지, 저자들이 돈을 줍느라고 저러는구나!’
그제서야 포졸들이 추격을 중지한 이유를 깨달았다.
신부는 달음질을 그대로 계속하여 산으로 올랐다.
솔포기를 끼고 앉아 숨을 돌려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포졸들은
쫓아올 생각도 아니 하고 풀 섶에 흩어진 돈을 찾기에 골몰하여
땅만 들여다보며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얼마 후에는 다 주웠는지 한군데로 모여 무엇을 의논하던 모양이더니
무슨 잘못된 일이 있던지 말다툼이 시작되고, 뒤이어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다.
이것은 물론 주운 돈 때문일 것이다. 한 놈씩 번갈아가며 이리 자빠지고
저리 자빠지는 것이 솔포기 사이로 역연히 내다보인다.
얼마 후 그중 한 사람이 화목을 시킨 모양이어서 싸움이 그치더니
세 사람은 산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동간들 있는 데로 일제히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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