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원 풍경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탓에 좀체 듣기 어려운 소리를 어디서 듣는다는 건 행운이고 즐거운 일이다. 오늘아침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런 기쁨을 안겨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개구리 울음소리인데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가 떼 창으로 우는 소리였다.
얼마나 반갑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반가워서 귀를 세우고 듣자니 금방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장소는 작은 호수가 있는 소공원으로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여느 때와 같이 그곳으로 나갔더니 예전과는 달리 출몰한 개구리들이 합창을 해대고 있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그때 그 소리를 들은 것은 아마도 찾아간 시간대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평소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 운동에 나선다. 오전에는 주로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외출을 못한다. 그런 생활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겨울을 지나면서 봄을 그리는 마음이 간절해졌는지 오늘따라 좀 일찍 나서고 싶었다. 전과달리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광경을 마주할 줄이야. 개구리들이 공원 속에 조성된 호수에서 일제히 합창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녀석들은 무리지어 헤엄을 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수둘레는 한 3백 미터 쯤 될까.
달리기에 알맞은 거리이다. 항상 다섯 바뀌 쯤 돌다가 주의에 있는 운동기구에 매달려 마무리를 하면 적당한 운동량이 된다. 되어서 몸에서 조금 발열이 일어나는 정도이다.
호수에서는 오후가 되면 분수대에서 물도 뿜는다. 그것을 보면 기분이 상쾌해 진다. 그 맛에 길 들어서 운동은 으레 오후에 나서는데 오늘은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오전에 나섰다가 횡재를 만난 것이다. 무슨 행운이 예시되었던 것일까. 호수 안에서 울려 퍼지는 개구리 합창소리는 어느 심포니 악단보다도 우렁차고 우아했다.
호수안의 개개의 악사들은 진지하게도 양 볼을 풍선처럼 부풀어 음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이 자전거를 타면서 순회하며 보자니 내가 가시거리에 나타나면 서서히 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서 행여 해코지라도 할까 싶은지 헤엄을 쳐 달아났다.
그만큼 은밀하게 나름의 몸을 숨기면서 음악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이런 그 광경에 한참을 빠져들었다. 이런 소리를 최근에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옛날에야 봄밤 물을 담아 놓은 들녘에 나가면 얼마나 지천으로 울어 댔던가. 너무나 흔히 듣던 소였다. 해서 당시는 듣기 좋은 소리로 쳐주지도 않았다.
채근담에도 오죽하면 ‘꾀꼬리 소리는 듣기 좋아도 개구리 소리는 싫어한다’고 했을까. 거기다가 춘와추선(春蛙秋蟬)이라고 해서 봄 개구리 소리와 가을 매미소리는 그저 시끄러울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 그런가. 몹시 귀하고 그리운 소리가 되었으니 반겨 맞으며 반색할 뿐이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애정이라고나 할까.
아닌게 아니라 우리주변에서 흔하던 것이 문득 사라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름밤이면 불꽃놀이를 하는듯한 반딧불이의 혼무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여름밤이면 솟적새 울울소리, 음습하면서도 귓청을 크게 울리던 부엉이 소리도 듣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는 심각한 환경오염문제도 있지만 급격한 도시화의 영향 탓도 크다. 이런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 가운데서도 얼마 떨어져있지 않는 곳에서는 도로를 확장하느라 불도저의 굉음소리가 그치지 않으니 얼마나 딴 세상을 사는 듯 하는 것인가. 바위를 뚫는 기계음을 듣자니 한 세기를 건너뛰어 어느 오지에 와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일까. 서식환경이 확보되어서 개구리가 모여들고 합창을 해주니 여간 반갑지 않다. 그리고 보니 건너쪽 한편에는 반가운 새도 한 마리 보인다. 백로가 바위에 올라앉아 있는데 이곳에다 잠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 아마도 다목적인 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늑한 곳에서 안전한 잠자리를 마련함과 동시에 먹이도 손쉽게 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닌게아니라 녀석이 호수위로 날아오르니 개구리 울음소리가 뚝 그친다. 자기의 정체를 숨기고 몸을 피하는 행동이 분명하다. 동료들이 많이 잡혀먹은 것을 이미 잘 아는 것 같다. 그러한 풍경에 이번에는 분수대 위로 손바닥 크기의 거북이 한 마리 나와 있다. 한낮에는 분수를 뿜고 있어 몰랐는데 이곳이 녀석이 쉬는 장소 같다. 햇살이 비치니 몸을 말리려는 것인지 한참을 보아도 미동이 없다.
그걸 보니 깨어진 생태계가 어느 정도 복원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안도가 된다. 이런 것들이 산다면 먹이가 될 미꾸라지나 다른 고기들도 분명 살고 있으리라. 도심속의 작은 공원은 사람의 허파구실을 해준다. 도시에 살면서 심신이 지치고 무력해진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신선함을 주는 것인가.
수목 속에서 잠깐 쉬거나 호수를 보면서 달리거나 걷는 것은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일이다. 거기에다 이곳은 선물처럼 개구리 울음소리까지 들려주니 나이 먹어 먼 곳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운동도 하면서 추억을 떠올리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성 싶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더욱 이 작은 공원을 아끼고 사랑할 것 같다. 나는 이 공원의 이름이 따로 없음을 생각하고 궁리 끝에 ‘개구리 공원’이라고 명명해 본다. 그러면서 앞으로 옛 추억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이 공원호수를 소개하며 개구리가 사는 사연과 만나볼 시간대를 은밀하게 알려줄까 한다.(2017)
첫댓글 참으로 요즘에는 개구리 보기도 힘들고 소리 듣는다는 것은 행운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여전히 봄이면 꽃이 피고 가지에 벌이 모여들지만, 개구리는 찾아볼 수 볼 수 없으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아늑한 추억 속에 빠져듭니다. 도시 근처에 그런 자연이 있다니 호기심이 갑니다.
좋은 구경하셨군요!~^^
한번 구경오시기 바랍니다. 아침 아홉시에서 10시사이에 오시면 개구리가 펼치는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구경할수 있읍니다.
모처럼 만난 개구리들의 합창이 선생님의 향수를 깨워드렸군요.
예전에는 벼논에서 김을 매다보면 발에 밟히는 것이 붕어였다고 했더니 둘째가 도무지 믿으려하지 않더군요.
벼가 익어갈 무렵이면 함께 누렇게 익은 메뚜기떼가 우수수 바람소리를 내며 달아나던 추억이며 반딧불이를 잡아 호롱불 삼아보았던 옛 일들이 선생님의 개구리 합창에 떼를 지어 몰려들고 있네요. '개구리공원'이라는 작명이 그 호수에 잘 어울릴 듯합니다.
의외의 반가운 광경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도심에서 이런 광경을 볼수 있다니 마치 세월을 되돌려 옛 전경속으로 들어선 기분이었습니다
개구리를 잘 보존하여 개구리 공원의 명소로 자리잡기를 바라봅니다
옛 자연의 소리가 생태계 파괴로인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듯합니다. 개구리공원이라 명할만큼 개구리 오케스트라가 장관인가 봅니다.
그날 아침의 개구리울음소리는 장관이었습니다. 모처럼 듣은 소리라 한껏 추억에 젖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