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민정 씨는 남달랐습니다.
민정 씨는 인사를 잘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교수님께는 물론이고
학교 식당 아주머니들께
학교 앞 커피숍 직원들께도 인사했습니다.
방학이면 민정 씨를 볼 수 없었습니다.
복지순례를 간다느니 농촌사회사업을 한다느니, 한두 달 씩 사라졌습니다.
졸업 후가 막연했던
저 포함 여느 동기들과는 달리
민정 씨는 졸업 후 하고자 하는 일을 담담히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사회사업하고 싶어요.
뭐래? 가벼이 흘려 들었던, 그저 낭만으로 치부했던 그 말이
학창시절 내내 민정 씨가 정성으로 빚어냈던 꿈이었습니다.
그 옆에 저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사회사업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그런 기업형 복지 재단에 들어갈 생각이었습니다.
아니면 공공기관 입사 시험을 준비했겠지요.
돈을 많이 주거나 명예가 있는 곳이 좋아보였습니다.
그런 사람이었고 지금도 별 다를 게 없는 사람입니다.
대학 3학년 겨울, 민정 씨가 산에 가자고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진지했습니다.
공부가 재밌다고 했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아이처럼 웃었습니다.
서로 인사하며 포옹했습니다.
낯간지러운 말을 두 눈 마주보며 잘도 하는 겁니다.
본질을 나누기 위해 걷어내야할 껍데기 같은 말들을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민정 씨가 제게 그런 사람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민정 씨가 했던 활동들을 소개했습니다.
나에게 광산지역사회사엄팀을 소개했고 또 나를 그리로 보낼때
민정 씨는 내게 한 가지 당부했습니다.
'활동 끝날 때까지 전화하지 마세요. 집중하세요.'
광산지역사회사업팀 활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곧 졸업했고 광산지역사회사업팀 실무자로 취직했습니다.
월급이 80만원이었습니다.
민정 씨와 결혼했습니다.
이제 민정 씨와 함께 일하고 싶었습니다.
민정 씨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민정 씨의 꿈, 시골사회사업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호숫가마을을 소개한 사람이 민정 씨입니다.
호숫가마을도서관에서 먼저 일한 사람도 민정 씨지요.
저는 호숫가마을 이웃들에게 도서관에서 일해도 될지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 이웃들도 민정 씨가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호숫가마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도서관 운영을 인계 받는 과정에서 저는 어쩔 수 없이 행정적으로 대표와 관장이 되었습니다.
민정 씨는 호숫가도서관의 정식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정식 노동자 맞습니다.
민정 씨는 호숫가도서관 근로자 건강보험을 가입했습니다.
국민 연금도 호숫가도서관 직장 가입자예요.
나는 무보수로 일하고 민정씨에게 월급 주기.
이와 같은 삶의 형태는 둘이 함께 일하기로 한 때부터 계획했던 것입나다.
먹고 사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하게 얻은 직함이지 제가 원해서 관장이 된 게 아닙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관장을 민정씨에게 넘기려고 준비했는데 민정 씨가 거절했습니다.
도서관을 시작할 때부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해야 할 때 늘 서로 상의합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민정 씨는 제가 가장 존경하고 의지하는 동료입니다.
민정 씨는 저를 돕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모님 아닙니다.
제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 아닙니다.
제 사회사업 보조 아닙니다.
부부이면서 동료 사이, 서로 희생하는 바 없지 않겠고
한국 사회 여성으로서 더 헌신하는 바 없지 않겠으나
민정 씨를
그저 제 아내로만,
자기 뜻 없이 제 결정에 순종하는,
그러다 쓰러지기도 하는,
한 인격체를 그저 수동적 객체로 폄훼하는 듯한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싸구려 환원주의, 답을 정해놓고 판단하고
전근대적이고 여성차별적인 잣대로
가십거리인냥 감히 민정 씨를...
지향하는 바가 같아 함께 일하고 있으나
민정 씨는 민정 씨의 삶을 살고 저는 제 삶을 삽니다.
때가 되면, 필요하면 각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제가 도서관 일을 그만 두고 싶습니다.
민정 씨가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회사업가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
민정이 후배
민정이 친구...
로 알았는데
최선웅 선생 자신이 또 한 사람의 동료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소중한
우리의 동료 사회사업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민정이 남편으로 보(려)는 마음이 좀 있기는 하지만요. (최 관장이 좀 서운할라나?)
박시현 선생도 그렇게 생각할 걸요.
Anchoring Bias라고나 할까요....
김 동무가 무슨 돈이 있어 80만원씩이나 주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