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07~8] 어느 작업실의 하루~ 아놀드 베네트의 '열정적 소수'에 속하는 불쌍주의자 김갑수의 <지구위의 작업실> - 푸른숲 / 2009년 6월 - 을 읽었다.커피, 음악, 오디오가 전부인 그의 밀폐가 재미났다.
바둑 5급이 바둑 5단(아마 말고)의 기보를 읽는 심정이지만 이해불가 시인의 이해불가 시도 보고 좋다하면 그 뿐. 부럽다고? 그래. 부러워 해라!, 는 그의 '잘난 체'는 꿈이 유영하는 우주니 말이다. 일주일에 한 두번 작업실을 나와 집을 향한다는 그와 일주일에 한번 간신히 집을 나와 작업실로 향하는 나와의 사이 간극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그가 작업실을 권하는 멀쩡한 사람이 아닌 것일까. 38평 짜리 그의 밀폐된 에스프레소 커피와 클래식 음악을 상상한다. 솔직히 멋있다. 부러워 하라니 부러워도 한다. 그런데 나의 바람 쉬어가는 커피와 음악은? 그에게 커피는 한잔의 문학, 나아가 일상의 리추얼이고 클래식은 '삶은 늘 괴롭고 존재는 늘 고달프다'는 원점의 감회라 했다. 그의 키치적 욕망에 얼굴 화끈하지만 페이소스는 낯설지 않다. LP가 3만장? 그래 그중 10장은 나도 들어봤다구. 에스프레소? 나도 일주일에 두 잔 쯤은 내리거든. 오디오가 수억? 인켈의 30만원 짜리 전축 옛날 옛적 본가에 있었... 쳇! 혼신을 다해 밀폐를 빠져나온 시선. 노마드인 '나'의 반 평 남짓의 있다가도 없는 작업실에 머문다. 부럽다고? 그래 부러워해라.(라고 큰소리 빵빵 쳐야 하는데...) 그곳엔 고급의 일반인 서태구의 단정(端正)한 책 <47 빛깔의 일본>이 놓였고 재즈로 편곡된 Michael Jackson의 'Billie Jean'이 흐르고 이름도 긴 Maxim Mocha! Gold Mild Coffee Mix 를 위한 물이 끓고 있으니.
작업실의 외부.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밀폐를 이룬 김갑수의 작업실과 한판 붙고 싶다. 물론 하나마나한 객기지만 뭐 어때? 재밋잖아.
영역 표시도 해 놓았다. 누구처럼 쉬~를 해 놓을 순 없지. 그가 그랬다. '폼생폼사'라고!
고개 드니 하늘과 숲 사이 둔탁한 소리가 있다. 그가 그랬다. '나는 심플하다'라는 장욱진의 혀 꼬인 소리라고!
나의 작업실. 천성과 티끌세상의 인연도 없는 단정함에 대한 노력이 가상타. 신발 한쪽은 쓰러져 있었어야 했거늘. 과유불급! 작업실에서의 일과가 곧 리추얼이라는 김갑수는 바리스타 복장으로 약간 복잡한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제 모습에 흠뻑 취했는데 이를 본 아는 인간들의 반응은 그랬단다. 하나, 자빠진다. 둘, 엎어진다. 셋, 데굴데굴 구른다. 그래 하는 수 없이 혼자 고독 씹을 때만 긴 앞치마에 레이스 달린 셔츠, 두건형 모자 쓰고 커피 내린다지. 에스프레소는 멋으로 맛을 내는 일이라는 얼렁뚱땅과 함께.
바람 한점에 낙엽 둘, 나의 작업실은 쓸쓸하지 않다. 천리 먼 길 제 길 가려던 시절의 가을도 저만치 수줍어 기웃하는 겨울도 서로가 애틋할 뿐 욕심 내지 않고 무심한 시선으로만 주저한다.
그리고 이것. 김갑수의 철저한 고독과 그 끝의 껄떡한 공감과 대결할 무엇. 커피, 음악, 책에 더하여 나의 작업실엔 '공감'이 있다. 걷돌지 않는 맛있는 공감!(아~ 유치해!)
무언의 공감! 닮았다. 김갑수도 좋아할 듯.네게로 최승자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콜처럼 알콜에 엉기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 균처럼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밤이 길구나. 낙엽 소리, 빗소리...
아침, 가을비가 동무하잖다. 비에 젖은 작업실 창 밖이 소슬하다. 아니 그도 창 안인가. 그렇다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없다고 그러므로 김갑수의 작업실과 같은 듯 다르다고 해야겠다. 그에 비해 아직은 철이 한참 덜 든 탓이겠지.
일본 3경의 하나인 마츠시마(松島)를 찾은 타와라보우(田原坊), 그 형용불가의 절경에 말 문 막혀 최고의 찬사를 읊었다지.마츠시마여 / 아아 마츠시마여 / 마츠시마여 여명의 성긴 숲, 절정의 고요에 눈물겨운 사내도 어설픈 하이쿠 흉내 한 수.가을비 촉촉 / 지구위 작업실에 / 정적도 깊어 그랬거나 저랬거나 봉래풍악 원화동천의 금강(金剛)을 노래한 조선 시인의 무언의 절창엔 비할 바 없다. 금강을 온전히 노래할 자신이 없다며 아예 산에 들지 않겠노라 각오한 시인의 심사만이 전설되었을 뿐.
나는 맥심 모카 커피믹스. 동행은 맥심 블랙 커피믹스. 겨울 품은 모카에 비추인 우주는 가을이 섧고 가을 남은 블랙에 비추인 우주는 겨울이 설렌다. 그렇게 가을이 간다. 그렇게 겨울이 온다.
*******뒤돌아 보니 바람 처럼 흔적 없어 아쉽지만 고수는 바람에도 흔적 있다는 것을 안다니 이젠 남은 것은 과연 나의 몫. 30년 작업실 역사의 갑수옹을 쫓을 밖에.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첫댓글 가을비가 촉촉합니다. 겨울 올테지요. 모두들 마음 편안하고 따뜻하게 겨울 맞으입시더^^
감사합니다.
입동의 아침이었지요. 그러나 너무 포근하여... 가을의 마지막 불꽃 같은 찰나의 축제에... 따뜻하게 겨울 맞으세요^^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우남선생의 금정산... 도 잘 보고 있구요... 다음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신가요^^ 우남할아버지... 무심코 걷던 길을 그리 이어주신지라 저도 요사이 자주 들여다 보며 어느 길을 또 걸어볼까 생각하곤 한답니다^^
그래도 7년넘게 홈오디오의 세계에 빠져 살아서 김갑수씨는 시인보다는 오디오파일이 친숙합니다. 윤광준의 소리의 황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리스닝룸이 김갑수씨의 감상실이고 그사람의 귀에서 시작되죠. ^^ 아주 편협된 사고중에서 인문학을 좋아하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끌림이 있습니다.
윤광준...굿바이 클래식... 시인의 스승이랄까요. 그의 배반이 서늘한 압박이었을텐데 개의치 않고 여전히 클래식아~ 오디오야~ 하는 김갑수의 지독한 매몰이 솔직히 부럽네요. 이곳엔 산비장이님 같은 저로선 문외한인 오디오 분야의 박학다식도 여럿 계실텐데 책을 통해서나마 그들의 아픔이랄까(빠지면 헤어나기 쉽지않은, 돈 먹는 기계를 아껴야 하는^^;) 쪼매 접해 보았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계절의 바뀜을 옷가게 쇼윈도가 아닌 산중에서 접했을 그 시간들이 좋아 보입니다. ^^
표현이 근사합니다^^ 쇼윈도도 나쁘다 하겠습니까만 숲은 한 뼘 더 신실하게 보여주는것 같습니다~
팬다님의 작업실이 훨씬 보기 좋고.. 가지런한 등산화가 좀 더 인간적이라 생각이 들어요... / 그런데.. 자꾸만 후기 내용들이 어려워 지네요..ㅋ 팬다님과 케빈황님 후기는 항상 서번번씩 다시보게 되요..^^
가지런한 등산화... 많진 않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좀 유치하지요^^ 한편으론 이 나이에도 저리 유치할 수 있음이 다행이다도 싶긴 합니다만.... 책의 감상이 과하였던가 봅니다. 제 지적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시인의 작업실에 푹 빠져서리...
팬다 님만의 조용한 나들이...작업실로의 출근(?)ㅎ...정말 너무나도 단아하네요...손에 익은 집안 살림살이처럼...ㅋ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커피믹스...흔히 3박자 커피...혹은 다방커피라고 한다죠??? 팬다 님이 쓰시니 어디 남미 커피농장 커피같아요...ㅋ 비빔밥...비스켓과 커피 한 잔...참으로 '똑'소리 나네요...갑자기...양푼을 감추구 싶다는...ㅠㅠ
김갑수를 만나시면 맥심 커피믹스의 존재에 대한 공감도 깊어지실 듯 합니다^^ 뭐 우리도 나름 우리만의 우주에서 유영하고 있는 것이니 즐거운 인생입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