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만과 베수비오산
이번에 여행할 도시는 캄파니아Campania의 주도이자 남부의 중심 도시인 나폴리입니다. 아름다운 나폴리 만에 자리잡고 있는 이
항구도시는 어떤 곳인지 둘러보도록 하죠
CLUB
SSC Napoli(Societa Sportiva Calcio Napoli)
1926년 창단된 나폴리 팀은 원래 1896년 영국인들이 만든 크리켓 팀에서 파생된 클럽입니다. 29-30시즌에 처음
세리에 A에 올랐고 62년과 76년에 코파 이탈리아Coppa Italia를 차지했지만 이 팀이 최전성기를 맞은 것은 역시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가 활동하던 80년대 중 후반이었죠. ‘축구의 신’으로 불리던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도 월드컵 우승을
안기는 등 활약했지만 클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라도나의 활약과 더불어 그냥 그런 정도의 팀이었던 나폴리는 세계 최고의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84년부터 91년까지 여덟 시즌을 뛰면서 마라도나는 나폴리에 두 번의 스쿠데토(86-87, 89-90시즌), 하나의 코파
이탈리아(86-87시즌), UEFA컵 우승(88-89시즌), 그리고 이탈리안 수퍼컵 우승(90-91시즌)을 안깁니다.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Supercoppa Italiana(이탈리안 수퍼컵) 우승컵을 든 디에고 마라도나.
나폴리의 영광의 나날들
마라도나가 떠난 90년대 팀은 서서히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나폴리는 97-98시즌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32년만에 세리에 B로 강등되었죠. 2000-2001시즌 잠깐 세리에 A로 복귀했지만 다시 세리에B로 떨어졌고, 지난 시즌
세리에 B에서도 하위권에 머물면서 이번 시즌을 세리에 C1에서 보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나폴리의 화려한 나날을
이끌던 마라도나 역시, 다들 아시겠지만 여러 가지 스캔들에 휩싸인 끝에 최근엔 마약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4만여명을 수용하는 나폴리의 홈구장 스타디오 산 파올로Stadio San Paolo. 나폴리 팀은 저지
색깔을 따라서 이탈리아 대표팀 별칭과 같은 아주리Azzurri란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나폴리 팀 저지의 색이 더 밝아 보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부릅니다.
NAPOLI
남부 최대의 도시 나폴리는 캄파니아Campania주의 주도이고 나폴리만Golfo di Napoli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다른 이탈리아 남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기원은 그리스계 식민도시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리스인들이 부르던 이름은
네아폴리스Neapolis(‘새로운 도시’라는 뜻)였습니다.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나폴리는 베수비오 화산volcano Vesuvio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고 이 화산은 보다 가까이 있는 다른 도시, 로마시대 번영하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파괴해버린 그 유명한 화산이죠.
나폴리항 뒤쪽으로 보이는 베수비오 산. 1,281미터의 이 활화산은 여러 차례 폭발을 일으켰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폼페이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파괴해버린 AD 79년 8월의 분화일 것입니다. 특히 이 참사는 소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박물지Historia Naturalis’로 유명한 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의 조카로 집정관을 지낸 인물입니다)의 기록으로 자세히 전해져 더욱 유명해졌죠.
그리스인들 이후에도, 항구로서의 위치와 조건이 워낙 좋은 곳이기 때문에 이 도시는 로마 시대에도 중요한 항구로서 번영을 누렸습니다.
로마 제국 이후에는 다른 남부 도시들에서 이야기한 대로, 나폴리 역시 비잔틴, 노르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시칠리아에 대해 얘기할 때 언급했지만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남부는 시칠리아와 함께 양 시칠리아 왕국을 이루고 있었죠.
나폴리 중심가에서 떨어진 구역에 있는 노르만 시대의 성 카스텔 델로보Castel
dell’Ovo(‘달걀의 성’이란 뜻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12세기에 지어진 이 성은 노르만과
호헨슈타우펜Hohenstaufen 지배하에서는 왕궁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군대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이 성이 지어지기 전에
이 곳엔 원래 로마 시대 장군인 마리우스Marius(BC 157~86)가 지었던 별장에서 비롯된 성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성에 서로마
최후의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가 폐위된 뒤 유폐되었다고 합니다.
교황과 황제 간 다툼 끝에 앙주Anjou(이탈리아에서는 Angioino라고 부르는데)가의 샤를이 시칠리아 왕국을 점령하여 샤를
1세Charles I로서 나폴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른바 시칠리아의 만종 사건으로 앙주 가는 시칠리아를 잃고 이탈리아 남부만을 지배하게
되어 나폴리 왕국으로 되었죠(1282년).
1443년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아라곤 가문의 알폰소 5세Alfonso V가 나폴리 왕국을 자신의 시칠리아 왕국에 합병하여 다시 양 시칠리아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앙주 가의 요새 카스텔 누오보Caste Nuovo(새로운 성). 이탈리아인들이 마스키오
안조이노Maschio Angioino라고 부르는 이 요새는 샤를 1세가 지은 13세기 건축물입니다. 앙주 가와 뒤를 이은 아라곤 왕들이 거처로
사용했으며 탑 가운데 보이는 승리의 아치는 15세기에 아라곤의 알폰소가 나폴리에 입성한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이 성은
15세기에 알폰소에 의해 많이 개조되었고, 따라서 현재의 모습은 대부분 아라곤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본 모습을 보여주는 오른쪽
사진에서는 성이 서 있는 피아차 무니치피오Piazza Municipio와 성의 평면 배치를 볼 수 있습니다.
산타 키아라Santa Chiara 수도원의 회랑. 14세기의 교회인 산타 키아라에는 앙주 왕가의
무덤들이 있어 유명합니다. 사진은 인접해 있는 수도원의 안뜰인데 보시는 바와 같이 화려한 색채의 마욜리카Majolica 타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타일의 그림은 전원 생활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산 로렌초 마조레San Lorenzo Maggiore의 고딕 양식 내부. 14세기에 건설된 이 프란체스코회 교회는
나폴리에는 드문(사실 이탈리아 전역에서도 그렇지만) 고딕 양식의 건물입니다. 앙주의 현자라고 불린 로베르Robert의 치세에 지어져서 프로방스
고딕 양식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현란한 장식으로 가득한 바로크 양식 건물들이 많은 나폴리 같은 도시에서 이렇게 간결하고 엄숙한 교회에 들어서면
무척 경건한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나폴리 왕궁인 팔라초 레알레Palazzo Reale.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가 에스파냐 왕족들을 위해 지은 이 17세기 건물은 그 후 더욱 확장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습니다. 동상들이 설치된 벽감이 있는
높은 기단 위에 반원형과 삼각형 페디먼트를 교대로 이고 있는 창문들이 늘어서서 단정하고 엄숙한 느낌을 주는 건물입니다. 이 궁전의 많은 부분이
현재는 국립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루카 파 프레스토Luca Fa Presto(‘빨리 그리는 루카’라는 뜻)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1632~1705)의 천장화 ‘유디트의 승리’(트레소로 예배당Capella del Tresoro, 산 마르티노 카르투지오회
수도원Certosa di San Martino, 나폴리, 1703~04). 루카 조르다노는 나폴리파라고 불리던 바로크 유파의 거장으로 그림
그리는 손이 빠르다고 해서 ‘파 프레스토’란 별명을 얻었죠.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이 천장화에서도 빠른 붓놀림을 느낄 수 있는데 그림의 주인공인 유디트는 하단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여인입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인데, 구약 외경에 나오는 여걸인 유디트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적진에 들어가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잠들게 한 후 머리를 베어 가지고 나옵니다.
아래쪽에서 보면 하늘이 뚫린 듯 그리는 것이 바로크 천장화의 특징인데 이 천장화도 같은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가운에 천사들이 빨려
들어가는 금빛 창공은 영광된 신의 나라를 암시하고 있죠.
18세기에 나폴리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이어 다시 부르봉 가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1860년 가리발디에게
정복되어 최종적으로 나폴리 왕국의 시대는 끝나고 이탈리아 통일 왕국의 일부가 되었죠.
플레비시토 광장(Piazza del Plebiscito)의 산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San
Francesco di Paola. 이 19세기 교회는 로마의 판테온을 연상시킵니다. 전면을 덮는 드럼과 넓은 돔, 삼각 페디먼트를 가진 주랑
현관이 둘의 유사성을 뚜렷이 하고 있죠. 한편 교회 양쪽에서 뻗어 나와 광장을 둘러싼 열주는 역시 로마 산 피에트로(Piazza di San
Pietro) 광장의 유명한 열주랑을 닮았습니다.
현재의 나폴리는 캄파니아 주의 주도이자 여전히 남부 최대의 도시입니다. 아름다운 나폴리만의 풍광과 근처의 이름난 섬들과
관광지들(카프리Capri, 이스키아Ischia, 소렌토Sorrento, 아말피 해안Costiera Amalfitana, 폼페이Pompei등)과
인접해 이탈리아 남부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부의 빈곤은 이 도시에도 영향을 미쳐 특히 부유하고 세련된 북부와 비교할 때 변두리
지역들은 다소 낙후되고 지저분해 보인다고 하는군요.
카프리의 아름다운 해안 마을. 로마시대부터 이 섬의 아름다움은 황제들이 별장을 만들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티베리우스가 많은 별장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죠. 나폴리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이 섬은 이런 명성 자자한 아름다움으로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지만, 그 유명세 만큼이나 ‘바가지 천국’이란 오명도 함게 얻고 있습니다.
캄파니아의 평야는 베수비오산으로부터 쌓인 화산재로 매우 비옥하고 예로부터 밀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밀 외에도 포도, 올리브가
많이 재배되죠. 그래서인지 나폴리는 특히 피자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탈리아 어디나 피자가 없는 곳은 없지만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에서 쌀을 이용한 리조토Risotto를 많이 먹는 것과 비교해 남부 지역은 파스타가 주를 이룹니다.
사진은 나폴리의 대표적인 피자인 피자 마르게리타Pizza Margherita 입니다.
얇은 빵 위에 토마토 소스와 모차렐라, 거기에 바실리코Basillico(흔히 ‘바질’이라 부르는 허브입니다) 잎을 놓아 토핑한 아주 간단한
피자인데 맛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지금도 군침이 도네요). 이 피자가 ‘마르게리타’란 이름을 얻은 것은 이탈리아 왕인 움베르토 1세Umberto
I의 왕비였던 마르게리타가 이 피자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유명한 나폴리 피자는 피자 나폴리타나Pizza
Napolitana라고 불리는 것인데 여기엔 안초비(우리나라의 멸치젓과 비슷한데 작은 생선을 염장한 것으로 남부에서 즐겨 먹습니다)가
들어갑니다.
나폴리의 두오모 산 제나로San Gennaro의 정면. 교회는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세워졌지만 이 파사드는 19세기나 다 되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교회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인 성 제나로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305년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순교당했다고 알려진 이 성인의 피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입니다. 작은 유리병에 담긴 이 피는 굳어
있는데 매년 세 차례씩 녹는 기적을 보인다고 합니다.
나폴리에는 이 외에도 유명한 국립 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Nazionale)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유물들, 그리고 파르네세Farnese 가문의 수집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항구도시 나폴리를 돌아 봤는데, 다음 칼럼에선 사르데냐Sardegna섬으로 가서 칼리아리Cagliari를 중심으로
이 섬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