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없고 지식만 있는 사회가 ‘대구지하철 참사’낳아
남에게 베푼적이 없는 사람은 화두 제대로 들기 힘들어
“다른해에 비해 눈이 많이 왔습니다.” 지난 12일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를 찾은 일행에게 주지 지명(之鳴)스님은 “법주사는 4계절 가운데 겨울과 가을이 특히 좋다”면서 “예로부터 ‘달빛 가득히 만산(滿山)으로 돌아온다’는 조사스님의 시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었다”며 따뜻한 녹차를 권했다. 범어사 강원과 동국대 불교학과를 마친 지명스님은 전통교학과 현대불교학에 두루 밝은 학승(學僧)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대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명스님은 절집의 고유한 분위기를 익히는 한편 현대 학문에도 뒤짐이 없다. 저서로〈중국불교선사상 연구〉〈하이데거와 히사마쓰시니치의 무사상 비교〉〈만공의 선사상연구〉등이 있다. 삼배의 예를 올리고 지명스님에게 우리 시대 중생들의 ‘살림살이’는 어떠해야 하는지 갈 길을 물었다.
“보통 지혜라고 하면 내면적으로 깨달아 얻는 것을 가리키고, 지식은 밖으로 얻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 역시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닙니다. 지혜와 지식의 궁극적인 차이는 ‘중생의 목숨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에게 이익을 주는 깨달음이 바른 지혜입니다. 남을 죽이고 해치는 것은 분명 깨달음도 아니고, 지혜도 아닙니다.”
“마음이 불변하면 곧 승자”
남을 배려(配慮)하는 풍토가 땅 끝으로 떨어져 버린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중생들에게 던지는 지명스님의 이 말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얼마 전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 역시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배려하지 않는 ‘사람’과 ‘세태(世態)’의 반영임을 떠올릴 때 남을 해치지 않고 배려하는 지혜의 중요성은 이 시대의 소중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이어 지명스님은 견(見)과 관(觀)을 예로 들어 다시 한번 ‘중생을 살리는 지혜’에 대해 설명했다. “견은 그냥 보는 것이고, 관은 중생을 살리는 깨달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견이 외형적인 것만을 살핀다면, 관은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죠. 때문에 견보다는 관에서 지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가 ‘냉혹한 승부의 세계’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러나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기 마련. 수행하고 정진하는데도 이 같은 이분법(二分法)의 논리가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있는 것이 불교계의 현실이다. 과연 스님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명스님의 답변이다. “그동안 나는 논리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논쟁을 통해 ‘이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논리만을 갖고 이야기하거나 어떤 일에 대처하다보면 처음에는 이치에 따라 점잖게 말하고 쟁론(爭論)을 벌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일단 이기고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격론을 벌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서로 감정이 개입되어 모두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경계(境界)를 넘어섰다고 한다. “논쟁에 있어서 진정한 승리는 어떤 순간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겉으로 이겼더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패자이고, 비록 외형적으로는 졌더라고 마음이 불변하면 곧 승자입니다.” 때문에 요즘에는 어쩌다 논쟁을 벌이는 일이 생기더라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지명스님은 밝혔다. “진정하게 이기는 것은 토론과 쟁론에서 상대를 제압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의견을 달리한다 하더라도 중생을 살리는 말과 중생의 마음을 이해하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참된 승리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떻게 구체화해야 합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空), 불성(佛性), 일체개공(一切皆空),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등이 그것입니다. 이 같은 가르침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비록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고 하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지만 모든 생명은 하나같이 소중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생에게는 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방생(放生)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중생을 살리고,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이 방생입니다. 그렇기에 방생이 곧 부처님의 길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불법이고 불교입니다.”
지명스님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종단 주요소임을 지냈다. 서울 청룡암 주지와 의왕 청계사 주지를 통해 포교현장에서 불자들과 직접 만났다. 또 두 차례에 걸쳐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고, 총무원 기획실장 소임을 보면서 한국불교의 적통(嫡統)을 계승한 조계종의 ‘실체(實體)’를 누구보다 상세히 알고 있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포교일선과 종단요직을 거친 스님은 어떤 해법을 갖고 있을까. 지명스님은 무엇보다 신심(信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방생’은 ‘마음방생’으로 가야
“불교 교양대학도 많이 늘고, 종단에서 포교사 자격증을 받는 인재도 예전에 비해 증가했으니 포교는 잘 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과연 불교 교양대학을 마치고 ‘자격증’을 받은 분들이 지속적으로 신심을 갖고 신행생활을 하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불교는 논리적인 것만을 잘 따지거나 교리를 잘 안다고 해서 제대로 아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과연 스스로 바른 삶을 통해서 불법을 알리고 포교를 하고 있는지가 먼저입니다.”
-스님께서는 방생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시는데요.
“방생은 상징적으로 물고기나 새를 놓아주는 방생과 생활 속에서 실제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주는 생활방생(生活放生)이 있습니다. 불자들은 이 두 가지 방생을 다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물고기와 새를 놓아주는 것은 생태계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으니 상징적으로 만 하고 방생기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방생은 어려운 이웃을 물질적으로 돕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곧 마음방생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마음방생은 중생을 살리는 방생으로 지혜를 통해 생명의 삶을 복 돋아 주는 것입니다. 일체중생 모두를 아끼고 배려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부처이고 보살입니다.”
지명스님에게 법주사의 새해 종무계획을 들었다. 지난해 청동대불 개금불사를 원만히 회향한 법주사는 현재 대웅보전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내후년 정도는 돼야 끝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스님들이 노후를 편히 보낼 수 있는 건물을 신축할 방침이다. 법주사가 산에 있는 만큼 위치와 역할에 맞는 포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력도 세워놓고 있다.
“사찰을 찾는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해주는 것이 포교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는 지명스님은 “자비로움이 곧 부드러움”이라면서 “지혜는 중생을 살리는 깨달음이고, 자비는 중생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혜와 자비를 잘 구현할 때 한국불교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다시 한번 방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생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걸인을 보면 도움을 주고, 죽은 생명을 보면 두 손 모아 정성스럽게 천도하고, 또 음식을 먹을 때는 ‘방생합시다’하면서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법주사=이성수 기자 3Dsoolee@ibulgyo.com">soolee@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3Dcooljoo@ibulgyo.com">cooljoo@ibulgyo.com
/ 법주사는
신라 의신스님 창건
서기 553년 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義信)스님이 창건한 도량이다. 의신 스님이 불법을 구하기 위해 지금의 인도인 천축국(天竺國)을 다녀온 후 경전을 구해와서 속리산에 들어와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法)이 편히 머물수 있는 도량이라는 뜻에서 절 이름이 ‘법주사’가 되었다. 법주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륵도량(彌勒道場)이다. 신라 혜공왕 때 진표(眞表)스님과 영심(永深)스님에 의해 발현됐다. 경내에는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련지(石蓮池),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의상 등 국보와 보물이 다수 있다. 법주사는 진표, 영심 스님이 주석한 이후 도생(導生), 자정(慈淨), 신미(信眉), 수미(守眉), 일선(一禪), 각성(覺性), 희언(熙彦) 스님 등의 고승들이 법통을 계승했다. |
첫댓글 지명스님이 가까운 청계사에 계실 때 자주 찾아뵙고 불교공부 좀 해 볼려고 마음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청유님! 항상 고맙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오대산 순례 함께 하여 불교카페들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하면 더 좋을텐데 어찌 안될까요? ...()...
저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합니다만...시간이 허락지 않네요...언제라도 시간 되는데로...한번 뵐까요?...(데이트 신청...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