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시장 바닥에 만들어진 생선 좌판이 사각형의 성채처럼 보인다. 최민식의 〈휴먼 대표선집〉 중에서
바다내음, 생선 비린내, 시끌벅적한 난전 분위기,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행렬…. 생동감이 흘러 넘친다.
독특한 향기(냄새)와 소리, 풍광을 간직한 자갈치시장은
부산다운 공간 1번지이다.
■나를 키운 공간…삶의 현장 자갈치
사진작가 최민식의 주요 작품 무대는 자갈치다.
최민식이 1957년 일본에서 귀국해 지난 2월 타계할 때까지 56년 동안
그는 '자갈치 아지매'의 얼굴과 시장에 떠다니는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최민식을 가리켜 '자갈치 아저씨'라고 불렀다.
최민식은 카메라를 들고 어떤 날은 아침에, 또 어떤 날은 한낮에
시장 바닥을 걷고 또 걸으며 셔터를 눌렀다.
최민식이 또다른 자갈치 아저씨로 자리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우산도 귀한 시절, 비가 내리는 1965년 어느 날 비닐로 몸을 가린 자갈치 아지매가 생선 몇마리를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자는 다큐 사진의 거장인 최민식과 함께 자갈치에 선 결코 잊을 수
없는 '황홀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10년 3월, 당시 기자는 본지에 6개월간 연재된 '산복도로 리포트' 취재를 위해 최민식과 함께 감천문화마을을 찾을 예정이었다.
만날 장소를 정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수화기 너머로
"자갈치시장에서 만납시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당시 최민식은 여든 셋의 고령이었지만 10㎏이 넘는 카메라 가방을 멘 채 자갈치시장에 나타났다.
약속시간보다 훨씬 먼저 나와 시장을 한바퀴 돌면서 자갈치의 여기저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최민식의 영원한 촬영 현장인 자갈치에서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최민식의 작품 가운데 70%가량이 자갈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자갈치에 집착하는 특별한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자갈치는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자갈치시장에서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겸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비린내 물씬 나고 투박한 사투리가 뒤엉키는 자갈치는 우리 이웃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지요.
자갈치시장에서는 백화점 같은 곳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우리 이웃의 가식 없는 얼굴을 만날 수 있어요. 나는 자갈치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며, 나의 영원한 촬영 현장이자 마음의 고향입니다."
최민식에게 자갈치는 '인간가족' 탐구의 무대이자 '부산얼굴 찾기'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거장을 잊지 못하는 자갈치
자갈치시장 입구 시장국수 집 주인 김정태 씨가 식당 벽에 최민식의 작품을 걸어놓은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자갈치에서는 최민식을 기억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갈치시장 입구에서 '시장국수'라는 상호로 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멸치를 판매하는 김정태(67) 씨는 최민식을 잊지 못한다.
김 씨와 최민식의 '인연'은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 가족이 도망오다시피
부산으로 이사 왔어요. 마땅히 할일은 없고 식구들은 먹고 살아야했기에 이곳 자갈치시장에서 좌판을 열고 과일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자갈치에서 부모님 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카메라를 메고 자갈치에 나타나는 최 선생을 만났죠."
김 씨는 4년 전 노점을 청산하고 시장국수 가게를 열면서 식당 양쪽 벽면에 최민식의 사진 작품을 몇점 걸어놓고 있다.
김 씨는 "번듯한 가게를 하나 갖고 싶다는 꿈을 40여년 만에 이뤘습니다. 평소 좋아했던 최민식의 작품을 여러장 구해 벽면에 걸었죠.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작품을 알아보고 좋아하는 분들도 있어요."
자갈치시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성진(76) 씨도 최민식을 잊지 못하고 있다.
자갈치시장 내 부산어패류처리조합 관리과장으로 퇴직한 뒤 경비원이 된 이 씨는 자갈치에서 근무한 지 올해로 63년째다.
자갈치의 역사와 함께 한 이 씨는 "수십년 동안 자갈치시장을 찾는 최 선생을 뵙는 것이 하루 일과였죠. 어떤 날은 하루종일 자갈치를 거닐면서 다양한 자갈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자갈치시장 안이나 좌판에서 만난 자갈치 아지매들은 자갈치의 어제와 오늘을 가장 애잔하게,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인물로 최민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갈치 아지매들은 카메라를 든 '자갈치 아저씨' 최민식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슬퍼했다.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데…
지난달 31일 기자의 자갈치 현장 취재에는 최 선생의 장남 유도(60) 씨가 동행했다.
아버지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자갈치시장을 찾은 아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어렵게 입을 연 유도 씨는 "카메라 가방을 멘 아버지가 셔트를 누르는
모습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저만치서 금방이라도 걸어나올 것 같습니다."
최 선생이 1957년부터 병상에 눕기 전인 2012년 연말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았던 자갈치.
유도 씨는 애써 눈물을 참았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최민식이 매일 자갈치를 찾은 이유를 아들은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버지는 자갈치에 가면 삶의 고난에 굴하지 않는 희망을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탓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자갈치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죠.
어쩌면 자갈치는 아버지의 '일터'였습니다."
유도 씨가 털어놓은 일화 한토막.
"20여년 전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자갈치시장에서 찍은 사진을 추려 사진 전시회를 가졌는데, 전시장을 찾은
한 여고생이 생선 몇마리를 좌판에 내놓고 앉아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자갈치 아지매 사진을 보고 울면서 뛰어나갔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그 좌판의 자갈치 아지매가 여고생의 어머니였는데, 자갈치시장에서 장사한다는 말만 들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우연히 사진으로 확인하고 눈물을 쏟았던 것입니다."
가장 부산다운 공간으로 자리잡은 자갈치의 강렬한 이미지는 최민식이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갈치를 찾지 않은 사람들도 최민식의 자갈치 사진들을 통해 자갈치와 만났기 때문이다.
# 최민식 작품의 7할이 자갈치인데 그의 사진을 전시할 한 뼘 공간을 못내주나
'자갈치시장과 작가 최민식 선생의 동행은 불가능한가'.
가장 부산다운 공간인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이 전국적 명성을 이어가는 것을 단순히 대형 수산물 시장이라는 이유에서 찾는다면
2% 부족한 것이다.
1957년부터 자갈치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정직하게 기록한 최민식 선생.
최 선생의 작품으로 만나는 자갈치는 펄뜩이는 삶의 현장이다.
소녀의 등에 업힌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고 생선을 팔던 흰옷을 걷어올리고 비린내 나는 손을 뒤로 한 채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어머니, 좌판 한켠에서 배달된 짜장면을 아이에게 먹이는 자갈치 아지매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자갈치는 여느 수산물 시장에 불과했을 것이다.
최민식 선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자갈치.
그런 자갈치에서 현재 최 선생은 잊혀진 존재다.
기자는 지난달 24일과 31일 자갈치시장 안팎을 샅샅이 뒤졌지만
최 선생을 추억하는 공간을 만날 수 없었다.
푸대접을 넘어 완전 무시다.
그 무시의 증거는 자갈치시장 3층 어패류처리조합 사무실 옆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란 간판이 붙어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봤더니 사무실 안은 완전히 '탈의실' 수준이었다.
그 탈의실 벽면에 걸린 낯익은 두 장의 사진.
작가의 이름표기도 없이 〈자갈치 1959〉, 〈자갈치 1961〉이라는 연표만 붙어있었다.
최민식 선생의 작품이었다.
작품을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세계적 거장에 대한 무례다.
사진이 걸릴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갈치시장 1층과 2층은 판매시설로 이용된다.
3층은 각종 사무실과 마을기업홍보관, 전시실도 있다.
150㎡(약 50평)의 전시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이 전시실에 최민식 선생의 작품을 전시할 수 없을까.
자갈치시장을 관리하는 부산시설공단 자갈치사업소 최해관 소장은
"자갈치시장은 시설이 협소해 최민식 선생 갤러리가 들어설 공간이 없다.
전시실을 상설 전시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자갈치시장에서 최 선생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부산을 대표하는 공간이자 국제적 관광명소인 자갈치가 최민식을 품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는 없을까.
지하 2층 지상 7층 연면적 7856㎡ 규모의 자갈치시장에 최 선생을 위한 '한 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가.
56년 동안 최 선생의 작품무대였던 자갈치에 최 선생을 기억하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자갈치는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달아 비상하게 될텐데….
※ 공동기획: 재단법인 협성문화재단,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2006년 12월 현대식으로 단장해 문을 연 부산 자갈치시장 모습.
김동하기자kimd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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