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28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뜻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서론: 가능성의 환상과 심판의 현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아갑니다.
마치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거래가 성립될 수 있는 접촉점이나, 혹은 내가 노력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잠재력이 내 안에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많은 설교와 신앙생활의 모습이 이러한 인간의 자기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힘', '복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 수 있는 믿음과 행위'를 우리 안에 심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대할 로마서의 말씀은 이러한 인간 중심의 가능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파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거래'의 관계가 아닌 근본적으로 '심판주와 죄인'의 대립 관계로 조명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란 원래 '관역(과녁)에서 벗어남', '실패함'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도덕적 실수를 넘어, 하나님의 절대적 의의 기준에서 근본적으로 빗나간 존재를 뜻하며, 인간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의 뜻에 도달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선언합니다.
심판주와 죄인의 관계에서 가능성이나 거래가 있을 수 있습니까?
만약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가능성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심판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 가능성을 계발시키려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신 것은 인간에게는 의에 도달할 전적인 불가능성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판주와 죄인의 관계를 철저히 인정할 때, 로마서 8장 28절의 깊은 복음적인 의미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론
1. 현실과 신앙의 차원에서 본 왜곡된 해석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현대 교회는 이 말씀을 인간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해석합니다.
즉, '지금 내게 닥친 고통, 어려움, 힘든 일들이 (합력하여) 결국 나에게 (선, 즉 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고난을 '더 큰 복을 받기 위한 예비 과정'으로 인내하라는 메시지가 주를 이룹니다.
문제는 성도들이 이 해석 때문에 당장 눈앞의 고통을 '내가 견뎌내야 할 숙제'나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고난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내가 믿음이 부족한가?', '내가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나?' 하고 자신의 가능성 없음이 아닌, '노력 부족'을 자책하며 더 많은 행위에 매달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 신앙의 모습은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의 행위에 가능성을 두고 있는 불완전한 신앙입니다.
2. 복음적인 해석: 합력의 주체와 선의 본질
심판주와 죄인이라는 관계에서 이 말씀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28절이 말하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주체는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에게 다가올 복이 아닙니다.
합력의 주체는 성경 전체의 문맥과 로마서 8장의 흐름(성령의 탄식과 기도, 하나님의 뜻)을 볼 때, 이 합력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삼위일체의 사역을 말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선의 본질인 이 선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 복이나 형통이 아닙니다.
문맥적으로 로마서 8장 전체가 말하는 궁극적인 선, 즉 '우리 몸의 구속' (23절),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 하심' (29절)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의 구속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28절의 바른 해석은 이렇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죄인)에게는, 인간의 가능성이나 행위와 상관없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확고한 뜻(구속) 안에서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이 선은 하늘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몫이며,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본론
1. 성령의 사역: 가능성 없음의 증거
앞서 로마서 8장 26-27절에서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친히 탄식하며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연약함은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라, '의에 대해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 즉, '죄인 됨'을 의미합니다.
만약 인간에게 가능성이 있었다면, 성령님은 그 가능성을 도우시고 계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의 가능성 없음 때문에 탄식하시고 (우리의 죄인 됨을 아시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은 성령의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나의 가능성이나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라는 복음의 핵심을 선포합니다.
2. 신앙의 본질은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는 믿음
로마서는 믿음을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즉, 모든 가능성을 포기한 상태가 곧 참된 믿음의 자리입니다.
마 17:20 (겨자씨 믿음)의 바른 이해
: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이것은 '내가' 믿음을 크게 가져서 산을 옮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전적인 무력함을 상징합니다.
즉, 나에게는 산을 옮길 힘이 전혀 없으나, 나 외의 다른 분(예수님)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믿음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아무리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마 26:33-35)라고 베드로처럼 외쳐도, 예수님은 우리의 가능성을 부인하십니다.
믿음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루시는 분이 따로 계심을 그대로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결론 및 삶의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뭘 할까요?'라고 묻는 것조차 죄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전적인 죄인입니다.
우리의 썩어져 가는 몸은 우리의 가능성 없음의 증거물입니다.
: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나의 신앙생활에서 '나의 가능성'을 붙잡고 있었던 모든 부분을 회개하십시오.
내가 열심히 기도해야 하나님이 움직이신다고 믿었던 생각,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착각했던 행위,
고난이 올 때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를 넘어, '이것이 결국 나에게 복이 될 것이다'라며 나의 유익을 중심에 두었던 모든 이기적인 신앙관을 내려놓으십시오.
: 신자는 이루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이루어짐을 믿는 자입니다.
'내가 뭘 해보겠다'는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라는 고백만으로 나아가십시오.
이것이 십자가의 열매인 자기 부인입니다.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속은 하나님의 확실한 뜻과 사역에 의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몫은 오직 나는 죽어야 할 죄인임을 알고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믿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가능성을 포기하지 못한 결과)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다 이루셨고 앞으로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참된 평안과 감사를 누리며 살아가십시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의 선언입니다.
그 은혜 속에서 참된 신자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