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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입이 즐거운 '보물섬'에
어서 오시다, 잡숫고 가시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더욱 관심 받는 남해
여행자들은 "남해에 가면 눈과 입이 즐겁다"고 한다. 아름다운 볼거리와 청정 먹거리가 많은 남해를 표현한 말이다. 남해에는 최근 영화 「국제시장」이 크게 흥행하면서 더욱 관심을 받고 있는 삼동면의 '독일마을'을 비롯해 잘 알려진 관광지가 많다.
하지만 남해의 볼거리에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관광지만 있지 않다. 청정바다에서 나는 수산물과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농산물은 웰빙 먹거리일 뿐만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눈과 입을 함께 즐겁게 하는 '보물섬' 남해의 싱싱한 농수산물을, 그것도 한자리에서 만나는 곳이 '남해전통시장'이다.
남해전통시장의 역사는 120여년이다. 장이 서기 시작한 때가 구한말쯤이니 재래시장의 역사로는 그리 긴 편은 아니다.
인구통계가 남아있는 1900년대부터 점점 증가하던 남해 인구가 1960년 대 중반에는 14만 명에 육박했으니 섬에서 나름 상권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었다. 산업화과정에서 남해 인구도 점차 줄어들긴 했으나 경제성장과 지역 간 활발한 교류의 영향으로 남해시장 또한 성장을 이어갔다.
그리고 1973년 하동 노량과 연결된 남해대교가 개통되고, 남해면이 1979년 읍으로 승격되면서 남해시장은 자연스럽게 군내 상권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시에 군내 다른 정기시장은 시장의 기능을 점차 잃어 남해 재래시장 상권은 사실상 남해전통시장만 남게 된다.
깨끗하고 정돈된 시장통 질서정연한 모습
한겨울에 찾은 남해전통시장은 장날에도 불구하고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농어촌지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역경제침체 등의 영향은 남해전통시장이라고 비켜갈 수 없는 듯하다. 하지만 상설시장인데다 남해군에 관광지와 청정 먹거리들이 많아 주말과 휴일에는 더 붐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재래시장의 모습이 다 비슷하지만 남해전통시장은 여느 시장에 비해 말끔한 느낌을 준다. 간선도로변과 접한 상가와 시장 주 출입구 두 곳에서 본 깨끗하고 정돈된 인상은 시장통에 들어서자 더욱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주 출입구 두 곳은 동서로 50m여의 길이로 시장통을 이어주고, 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100여m의 주 통로와 중간의 가로세로 보조통로가 바둑판 모양으로 곧게 연결된다. 그리고 통로를 따라 상가와 난전이 펼쳐진다.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 시가지 중심가에 자리한 남해전통시장은 5일장(2·7일장)으로 이어져 오던 정기시장 터에 1980년 새로운 시장건물이 준공되면서 점차 상설시장의 성격을 띠어갔다. 이후 시장은 2000년대 들어 전통시장 활성화사업이 순차적으로 추진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70년대엔 5일 장터 발 디딜 틈 없이 북적
"신발 팔아서 가족 모두 먹고살고, 2남 2녀 대학공부 다시켰어. 한 장소에서 한 가지 장사를 이렇게 오래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요새는 노느니 하고 있어."
옛날 재래시장 때부터 남해장에서 신발을 팔아오던 하진평(74) 어르신은 시장건물이 들어서면서부터 시장통 한가운데에 자리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 그 자리에서 '오동상회'라는 상호로 신발을 비롯해 우산 등 생활 잡화를 취급한다.
하 어르신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신발과 연을 맺었다고 한다. 도시에서 신발과 잡화를 떼와 남해장에서 팔던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부터다. 그 인연으로 한때 진주에 있는 '합동고무'에 들어가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니 60여년을 신발과 함께 해오는 셈이다. 부인 이옥례(69)씨는 "젊었을 때 남편이 장사하는 가게 옆 장터에서 아이를 업은 채 모시삼고, 길쌈하면서 살았던 게 엊그제 같다"고 말했다.
남해시장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노부부는 "남해 인구가 많고, 남해대교가 개통되던 때에는 넓은 장터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됐다"며 시장의 침체를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남해시장 위축의 원인으로 2003년 개통된 창선삼천포대교를 꼽고, 길이 꼬불꼬불하다고 해서 지역민들이 '멀미도로'라고 부르는 남해대교와 남해읍 간 도로 확장 및 직선화 공사가 완공되면 시장도 좀 더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했다.
'3자의 고장'에 새롭게 떠오르는 모시음식
남해는 유자(柚子)와 치자(梔子)·비자(榧子)가 많다고 해서 '삼자(三子)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남해 유자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지역 특산물이다. 치자 꽃은 남해의 군화(郡花)이고, 비자는 군목(郡木)이기도 하다.
더불어 남해는 예부터 고급 여름옷의 재료인 모시로도 유명했다. 지금은 남해에서 모시 삼는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모시풀의 잎을 재료로 한 건강 먹거리를 만들어 식도락가들을 남해전통시장으로 불러들이는 '설천죽집'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주인공은 오수완(62)·박희숙(60) 부부. 남해군 설천면 출신인 오씨는 도회지에서 살다 지난 2012년 남해전통시장에서 콩죽과 팥죽, 칼국수를 주 메뉴로 한 설천죽집을 열었다. 그러다 모시 잎을 갈아 넣은 '모시잎콩죽'과 '모시잎칼국수'가 인기를 얻으면서 이젠 모시 잎 전문 음식점으로 진화 중이다.
오씨는 고향인 설천면 옥동부락에서 모시를 직접 재배해 모시 잎을 조달한다. '모시잎칼국수'가 방송을 타면서 전국에서 관심을 보이자 오씨는 가게 상호도 '모시한상'으로 바꾸고, 모시를 재료로 한 '모시찐빵'과 남해 특산물 치자와 유자를 곁들인 '치유찐빵'을 최근 개발하는 등 사업 확장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수산물시장과 주변 식당 외지인 발길 잦아
유자와 마늘, 겨울철 해풍을 맞고 자란 시금치 등이 남해의 특산물이지만, 남해전통시장에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은 곳은 아무래도 수산물시장이다. 설대목이 다가와서인지 반건조 생선과 건어물이 펼쳐진 가게 앞이 좀 더 붐빈다.
활어코너와 생선을 음식 재료로 하는 인근 식당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식당에서는 활어코너에서 떠온 회를 양념값만 내고 먹을 수도 있다. 이런 식당이 시장통 안과 주변에 10여 곳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시장통 북쪽 모서리에서 '봉정식당'이라는 간판을 달고 20여 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오문자(63)씨는 남해전통시장의 '홍보대사'다. 지역신문을 비롯해 각종 언론에 보도된 기사가 식당 벽면을 온통 장식하고 있다. 그중엔 오씨가 투고한 글들도 많다. 오씨는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멀리서도 맛집을 찾아오는 시대"라며 남해의 싱싱한 제철 생선과 청정 농산물을 자랑했다.
"시장이 재래시장에서 전통시장으로, 그리고 생활시장, 첨단시장으로 진화한다"고 설명하는 오씨는 "젊은 사람들은 나이든 상인들보다 더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많다"며 "젊은이들이 시장에서 많이 창업할 수 있도록 전통시장 지원예산을 이들에게 많이 가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전통시장 정책에 대해 나름의 의견도 제시했다.
특산물에 '남해'를 입힌다
문화관광형시장 사업 추진
남해전통시장은 지난해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문화관광형시장'에 선정돼 시장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2월 홍준표 도지사의 남해군 순방 때 상인회 등 시장 상인들의 건의를 받은 경남도가 중기청에 선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결과 '창원상남시장'과 함께 '2014년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공모'에 선정돼 3년 간 7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는다.
이후 '남해전통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이 설치돼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단은 우선 시장과 주변 관광지를 연결한 관광지도를 담은 '남해 알찬하루 투어'라는 홍보팸플릿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이 팸플릿의 지도에 표시된 관광지 3곳 이상에서 스탬프를 찍어오면 온누리상품권 5000원 권을 증정한다.
조영혁 육성사업단장은 "계절별로 선보이는 생선과 마늘·시금치 등 싱싱한 농수산물을 비롯해 유자와 치자, 독일맥주와 소시지, 물메기탕과 멸치쌈밥, 고사리 비빔밥과 모시콩죽 등에 '남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더욱 빛을 발한다"며 "올해부터 본격 시작되는 '시장에 문화와 이야기를 입히는 사업'을 통해 스토리가 풍부한 시장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최춘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