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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상의 상관관계에 대한 소고
장기오
1, 문학과 영상의 동거, 그 오랜 역사
문학은 영상의 보고다.
80년대 ‘TV문학관’을 효시로 시작된 문학과 TV의 만남은 문학의 대중화와 TV드라마의 고급화 를 시도한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영화 쪽에서는 문학을 원전으로 한 소위 문예영화 가 한 바탕 붐을 일으키고 난 후이긴 하지만 그들 영화들은 ‘TV문학관’처럼 국민적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이를 계기로 문학과 영상의 생존방식과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영상과 문학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훑어볼 필요가 있다. 문학에서 가장 우월적 지위를 차지한 것은 시(詩)였다. 고대 그리스의 ꡔ일리아드 오디세이ꡕ 이래 시는 언제나 고급예술의 상징처럼 되어왔다. 그러나 틀에 박힌 시구(詩句), 지나친 감상주의, 난해한 언어의 나열, 대중적이 지 못한 구조 등으로 하여 시가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자 그 자리에 일상적인 어투로 재미있게 전 개되는 소설이 등장하면서 시를 밀어 낸 것이다. 루카치는 ꡔ소설의 이론ꡕ에서 현대를 “서사시가 사라진 소설의 시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설은 다만 현대시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불완전한 문학양식이며 총체성이 사라진 시대의 파편적 장르”라고 정의하면서 서사시는 이제 향수 의 형태로만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1)
이러한 소설의 시대는 상당기간 이어졌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동네 곳곳에 책 대여점이 있었 고 사람들은 거기서 재미있는 소설을 빌려 읽곤 했다.
우리의 조선조 시대에도 소위 정통문체와 패관문학(稗官文學)의 충돌이 있었다. 1792년 정조는 당시의 천주교 즉 서학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서학 때문에 크고 작은 옥사가 끊이지 않았지 만, 정조는 은근히 서학을 비호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조는 “사람들보다는 다만 그 책만 불사르라 (人其人 火其書)”고 하면서 온건정책을 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당시 서 학에 몰두하던 사람들 중에는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노론을 견제하기 위해 정조가 대항세력으로 키운 남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체제공, 정약용 등이 바로 그들이다.
정조는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소위 “문체반정”을 시도한다. 다시 말해 당시 노론 은 패관문학을 수용했는데 정조는 이러한 것을 일소하고 ꡔ시경ꡕ, ꡔ서경ꡕ, ꡔ주역ꡕ 등 고문의 문체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정조는 서학의 피해는 표면적인 것이지만 서학보다 더 위험하고 그릇된 이단은 ꡔ수호지ꡕ, ꡔ삼국지ꡕ같은 명(明), 청대(淸代)의 소설 즉 패관문학이라고 주장했다. 정조는 “문체는 세상의 풍속, 도덕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나쁜 문체는 사람 마음을 어지럽히고 올바른 학문에 귀의하지 못하게 한다. 서학은 올바른 학문이 서면 자연히 없어지지만 패관문체에 대한 탐닉은 사람들을 오랑캐와 금수로 타락시켜 인륜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논리를 폈다. 정조는 이 같은 논리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패관체로 상소를 올린 선비들에게는 과거도 못 보게 했다. 연암(燕巖) 박지원의 ꡔ열하일기ꡕ가 당시 대표적인 패관 소품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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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성곤, 문학과 영화(서울;민음사,1997), p.30
정조는 “문풍부진(文風不振), 사습퇴폐(士習頹廢)의 원인이 이놈에게 있다”고 대노하고 연암에게 소위 반성문을 쓰도록 했다. 그러나 연암 박지원은 “어쩌다 장독이나 덮고 문풍지나 때울 하찮은 글을 끌적거려 스스로 망치고 세상의 문풍을 그르쳤구나”고 한탄하면서 결코 반성문을 쓰지 않았 다고 전한다. 그 후 정조가 죽자 남인은 몰락하고 천주교 박해가 가일층 심해졌다. 이러한 기조는 이광수 등 신문학이 대두되면서 깨어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 문학은 소설의 시대였다.
그러다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 영화가 등장했을 때 다른 분야의 예술인들은 한결같이 영화를 경멸했다. 완전한 형태의 독립된 예술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인들의 영화 에 대한 경멸은 대단했다. 영화가 다른 예술은 영상으로 재현하거나 그 형태를 모방하는 것은 가능 할지 몰라도 문학의 특성만큼은 침범할 수 없다고 공헌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순수문학을 상업 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표명했다.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보이지 않기에 상상력을 자극하 는 활자매체와는 달리 영상매체는 직접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들을 양산하 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2)
그러나 영상시대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히 영화와 제휴해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미국의 문학평론가인 레슬리 피들러(Leslic A Fiedler)는 1960년대에 이미 “문학이 영상매체와 경 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답적이고 귀족적인 스스로의 패각(貝殼)에서 벗어나 영상매체가 갖고 있 는 대중적인 요소들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상매체의 상업적 속성과 대량복제 로 인한 문제점을 경계하면서도 소설 역시 대량복제에 의한 상업주의적 속성이 있음을 솔직히 시 인했다. 그에 의하면 소설은 원래 귀족들을 위한 시(詩)와는 달리 대중들을 상대로 시작되었기 때 문에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들처럼 스스로 귀족화, 고급화하는 것은 소설 장르의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3)
반면 영화는 초창기부터 그 소재를 문학에서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1930대에 들어서서는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와 손을 잡기 시작했다. 월리엄 포그너는 시나리오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피츠제날드는 아예 할리우드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ꡔ킬리만자로의 눈ꡕ, ꡔ노인과 바다ꡕ, ꡔ무기여 잘 있거라ꡕ, ꡔ누구를 위하여 종 을 울리나ꡕ 등의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진, 영화와는 아주 인연이 깊은 작가이다.
그 후 미국은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영화화되어 영화와 문학의 밀월시대를 열어갔다. 찰스 디킨스 의 ꡔ위대한 유산ꡕ, 살롯 브론테의 ꡔ제인 에어ꡕ, 에밀리 브론테의 ꡔ폭풍의 언덕ꡕ, 토마스 하디의 ꡔ테스ꡕ 같은 작품을 비롯해 최근에는 에밀 졸라의 ꡔ제르미날ꡕ, 대니얼 대이루스의 ꡔ라스트 모히 칸ꡕ, 나다니엘 호손의 ꡔ주홍글씨ꡕ같은 작품들도 선보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의 마크 세크너(Mark Shechner) 교수는 “할리우드는 소설의 보물섬이다. 영화는 소설의 파괴자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자다. 더 나아가 미국 현대소설의 건강은 전적으로 영화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은 적어도 부차적 판권을 사용하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작가를 나열하면 그야말로 문인 사전이 된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도 원작소설의 최초의 각색이 『춘향전』이라고는 하지만 고전이 아닌 문학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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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의 책, p.6
3) 위의 책, p.18
써 각색이 본격화된 것은 6.25 이후다. 최초의 소설 각색이 채만식의 ꡔ탁류ꡕ, 정비석의 ꡔ자유부 인ꡕ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ꡔ자유부인ꡕ은 당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원작자와 법학교 수간의 윤리논쟁까지 불러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제소설들이 속속 영화화되었다. 그 중 문제 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이범선 원작의 ꡔ오발탄ꡕ을 비롯해 주요섭의 ꡔ사랑 손님과 어머니ꡕ 등 을 꼽을 수 있다. 그 이후 흑백에서 컬러로 들어서면서 일제시대에 나온 단편은 물론이고 해방 이후 대표적인 작가인 황순원, 김동리, 선우휘, 강신재, 홍성원, 손창섭, 박경리 등의 소설들이 영 화화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문예영화의 봄을 타고 거의 모든 문학작품들이 영화화되었고 또 영화화된 작품마다 문 예영화라는 미명 아래 크고 작은 각종 상을 휩쓸기까지 했다. 한국영화가 문예영화의 콤플렉스에 서 벗어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학작품의 영화화가 국산영화의 수준을 높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오리지널 극 본의 빈곤을 초래하는 역효과도 나타났다. 그 후 TV의 등장이나 컴퓨터의 대량보급은 새로운 인 식과 상상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끌어갔다.
TV의 경우 1978년 ꡔKBS무대ꡕ란 이름으로 소설의 영상화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후 ꡔ문예극장ꡕ 으로 그 맥을 계승하다 1980년 ꡔTV문학관ꡕ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문예드라마 시대를 열어갔다.
김동리의 ꡔ을화(乙火)ꡕ를 시작으로 무려 277편, ꡔ드라마초대석ꡕ이란 이름으로 24편, ꡔTV문예극 장ꡕ으로 16편, ꡔ신TV문학관ꡕ으로 14편 등 무려 332편 가량의 문학작품이 영상화되었다. 그 중 방송작가의 오리지널 극본은 단지 14편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원작으로 팔리지 않는 소 설이 이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문학에서 정통적인 소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젊고 감각적인 신세대 소설가들이 등장하면서 『토지』나『태백산맥』 같은 도도한 서사구조를 추구하는 본격적인 소설대신 인간내면의 고통과 갈등 을 추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설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으로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그 계기를 『소설 동 의보감』에서 찾는다. 『소설 동의보감』은 방송작가 고 이은성씨가 70년대 『집념』이라는 이름으로 방송한 허준의 일대기를 소설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 소설은 소설적인 문체가 아닌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영상적인 문체로 쓰여져
비주얼한 젊은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이 소설이 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이를 계기로 비슷한 류(類)의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통속적이고 흥미위주의 의사(擬似)역사소설들이 홍수를 이루었다. 이러한 기류에 대해 문학계 일각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문학은 죽었다. 이미지가 활보한다. 문자시대의 조종은 울리고 『소설 동의 보감』이 채택한 드라마적인 기술(記述)방식을 소설의 방법론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제안론이 나오고 “영화 같은 소설”을 써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4)
이런 이기류 속에서 영화 『서편제』가 히트하자 그 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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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문재,‘대중을향한문학, 대중을찾는문학“문학정신(서울;문학정신사, 1993),p.52
았던 소설 『서편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하면 『축제』는 처음부터
아예 영화용으로 쓰여진 소설이었다. 그러자 모든 문학작품들이 TV드라 마나 영화의 대상이 되었고 좋은 작품은 출간되기가 무섭게 TV나 영화에 팔 려 나갔다. 또 히트한 영화나 TV드라마가 다시 소설로 씌어져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더 이상 문학은 문학의 범주 안에서만 안주할 수가 없었다.
1980년대 『TV문학관』을 효시로 시작된 소설의 TV드라마화는 삶을 탐구 하는 시각을 넓혀주고, 풍부한 상상력과 서정성으로 인해 지식층의 호응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영상을 염두에 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드라마틱하지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여기에 방송작가들이 극적 구조를 추 가, 한동안 문학작품의 드라마화가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한국 TV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고무적인 기류에도 불구하고 방송작가들의 작가의식의 부족 과 TV의 천박성으로 영상문학의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문학 에 비해 열등한 문화라는 기존의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지 못했다. 몇몇 의 식 있는 방송작가들은 문학작품의 각색을 마다하고 독자적인 작품을 고집하 고 있지만 작품의 깊이를 추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TV가 끝없이 풀어야 할 숙제인 시청률에 매달려 삶을 심오하게 탐구하기보다는 말초적인 자극과 해프닝으로 시청자 눈길잡기에만 급급했다.
그리하여 재미만 있다면 만화, 외국TV드라마까지 각색, 방송함으로써 전통 적인 문학성으로 회귀하려는 지난 80년대의 노력에 쐐기를 박았다. 문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80년대에는 정기 편성이었지만 지금은 가끔 방송의 공공 성이 제기되거나, 혹은 지나치게 시청률 경쟁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제기 될 때마다 일종의 반성의 성격으로 부정기적으로 제작, 방송되곤 한다.
그러나 문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일종의 ‘드라마의 전범(典範)’이라는 말 은 아니지만 문학이 갖고 있는 예술성과 진지함을 TV드라마에 접목시켜 TV드라마의 격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지금의 소설문학은 과거의 시가 그랬듯이 엄청난 독자를 영화나 TV에 빼앗기고 있다. 사람들 은 서점에 가는 대신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마치 책을 고르듯 비디오 테이프를 고르며, 주말저녁 에는 책 대신 주말연속극에 몰두한다. 그래서 이제 소설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화 같은 소설, 시나리오와 흡사한 소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마이클 크라이톤(Michael Crichton)의 소설 ꡔ쥬라기공원ꡕ은 마치 영화대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데이비드 코프(David Koepp)에 의해 해체되어 영화용 대본으로 재구성되 었다. 이것은 어떤 소설도―그것이 설사 영상적인 문법으로 쓰여졌다 하더라도―곧바로 영화대 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 아무리 영화대본처럼 보이는 소설이라 할지라도 소설과 시나리오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일부 젊은 작가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문체의 소설을 쓰고 있다. 은 희경, 공지영 등의 작품은 영상을 보는 듯하다. 이청준의 소설 ꡔ서편제ꡕ는 영화화 이후에 더 유 명해진 소설이고 그 이후 더 많이 팔린 소설이다. ꡔ축제ꡕ는 아예 영화를 위해 소설로 먼저 쓰였 다. 이런 영화용 소설을 “스튜디오 소설”이라고 한다.
이 스튜디오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 토마스 해리스(Thomas Harris)의 ꡔ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ꡕ이다. 5)
그러나 소설의 영상화가 곧 작품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원작을 왜곡시킨 경우도 있고, 또 원작보다 훨씬 잘 만든 경우도 있다. 문순태의 『철죽꽃』은 방송후 원작자의 항의가 이어 졌고 이문열의 『영웅시대』는 원작의 주제를 훼손시켰다고 불평했으며 이균영은 아예 영 상화 자체를 반대해 원작을 방송사에 팔지를 않았다.
또 소설의 영화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색에 대해 못 마땅해 하는 연출가들도 있고 아 예 각색 자체를 하지 않는 극작가들도 있다. 소설가 김이연은 “천 매가 넘는 소설은 모두 증발해 버리고 심하면 작가의 이름만 남는 경우도 있다면서 구태여 영화는 소설을 영상화했다는 장신구 가 필요한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ꡔ내 사랑 히로시마(Hiroshima Mon Amour)ꡕ의 감독 알랭 레 네(Alain Resnais)는 “나는 소설을 각색한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식사를 데 워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6) 국내에서도 절대로 각 색을 하지 않는 작가들이 몇 있다. 각색을 아무리 잘해도 그 공은 원작자에게 돌아가고 만다는 것 이다.
또 원작보다 잘 만든 영화로서 시어도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의 소설 ꡔ아메리카의 비 극ꡕ 을 각색한 ꡔ젊은이의 양지ꡕ, 캔 키지의 ꡔ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ꡕ, 밀란 쿤테라의 ꡔ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ꡕ을 영화화한 ꡔ프라하의 봄ꡕ 등을 꼽을 수 있다. 7)
TV에서도 황석영의 ꡔ삼포 가는 길ꡕ, 김동리의 ꡔ등신불ꡕ, 이문열의 ꡔ금시조ꡕ 김주영의 『홍어』 등이 잘 만든 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영상의 등장으로 소설이 그 우월적 자리를 빼앗긴 건 사실이 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까지는 그 영향력까지 감소된 건 결코 아니며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와 영상의 관계는 어떠한가? 시와 영상은 언뜻 이질적 요소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시와 영상을 넘나드는 말 중에는 “시네 포엠(cine poem)”과 “포에틱 필름(poetic film)”이라는 말이 있다. 8) 각각 “영화적인 시”, “시적인 영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장르들이 그 동안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해 생소하기는 하지만, 영상매체의 다양한 발전이 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할 분야임에는 틀림없다.
“시네 포엠”은 영화적인 기법을 시에 끌어들인 독특한 감각적인 시를 일컫는다. 이런 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대다. 이 시네 포엠이 지향하는 문예사조는 다다이즘 혹은 초현실주의다.
이 시기의 초현실주의 시인 중에 앙드레 브르통, 블레즈 상드라르(B. Cendrars) 등이 시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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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성곤, 문학과 영화(서울;민음사 ,1997), p.20
6) 로버트 리차드슨, 문학과 영화, 이형식 옮김(서울; 동문선, 2000), p.24
7) 김성곤, 문학과 영화(서울;민음사,1997), p.23
8) 송희복, “시인의 피, 오르페우스의 유언” 현대시 5월호(서울;한국문연, 1995), P.27
과감하게 시나리오적인 기법을 도입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이 “시네 포엠”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도 상드라르다. 동양에서는 시나리오의 문학운동을 전개한 일본의 키타가와(北川冬彦) 등이 이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9) 한국에서는 “달. 포도. 잎사 귀”의 시인 장만영이 여기에 속한다.
“시네 포엠”이 영상적 이미지의 실험적인 시라면 “포에틱 필름”은 시적인 이미지를 구체화한 “전위적인 예술영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 오늘날에는 리듬, 구도, 상징적 영상과 음향을 중요 시하는 영화나, 영혼이나 영감 등 약간 비현실적인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전위영화 계열”을 지칭 하는 개념으로 널리 쓰인다. 또 “포에틱 필름”은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와, 잘 짜여진 극영화에 반 하여 일어난 뉴 아메리카 시네마 운동의 과정에서 생겨났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메카스(J. Mekas)다. 이 운동의 뿌리는 실은 1920년대의 프랑스 의 “포토 제닉(photogenic)” 파에 두고 있다. 루이 델륙의 영화이론에서 비롯된 이 말은, 요즘은 미인대회 같은 데서 사진발 잘 받는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지만, “사진적 영혼” 즉 카메라 의 차갑고 냉정한 금속성의 객관성으로부터 영상을 독립시켜 주관적, 정신적, 영혼적 기호를 강 조한 영화 특유의 혼합적 미학으로 설정된 개념이다. 10)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이 영화의 기술적 형식과 리듬을 강조했다면 포토제닉파는 내면적 리듬의 영상미학을 추구함으로써 영화를 예술적 지위로 격상시켰다. 시와 영화의 결합은 1930년 대 후반을 지배한 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르렀다. 장 르누아르(J. Renor), 줄리앙 뒤비비에(J. Duvivier) 등이 가세한 시적 리얼리즘은 미장센(mise-en-scene), 딥 포커스 (deep forcus) 등의 영화언어를 개척했고 내용 면에서는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에도 그 영 향을 미쳤다.
그러나 1950년 이래 이러한 사조가 시들해진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장콕드(J. Cocteau)다. 그는 ꡔ시인의 피(1930년)ꡕ, ꡔ미녀와 야수(1946년)ꡕ, ꡔ오르페의 유언(1960 년)ꡕ등을 만든 천재였다. 스탠리 카우프만은 “잉그마르 베르히만,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등이 영화를 소설과 시의 영역이었 던 은밀한 내면이나 무의식의 영역까지 확대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가장 시적인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일생동안 단 일곱 편의 영화만을 만든 감독이다. 그의 영화 는 철저히 비(非)상업주의적 영화여서 일반인의 호응을 받지 못할 만큼 지루하고 난해하며 또 그럴 만큼 진지하고 심각하다. 영화 ꡔ희생(The Sacrifice)ꡕ은 마른나무에도 매일 물을 주면 꽃 을 피울 수 있다는, 인간의 절망에서 희망의 빛을 찾으려는 작가정신과 기독교적 희생정신이 배 어 있는 감독의 유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세워진 집, 그 곁에 심어진 죽은 나무의 생성과 부활, 자연과의 친화력을 암시하는 바닷가 등을 적절히 화면에 배치해 시적인 분 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영상매체에 있어서 시적 효과는 생략되거나 절제된 대사, 실험적인 영상, 아름다운 화면구성 못지 않게 감독이나 연출자의 사상, 신념, 인생관, 인간에 대한 시선 등을 통해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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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위의 글, p.31
10) 위의 글, p.33
이런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서사적인 스토리 전개에 구애받지 않고 고도의 시적 상징 성에 의존하는 형태가 많다.
양로원을 몰래 빠져 나와 그들의 고향을 찾아가는 한 쌍의 남녀노인의 고단한 삶을 그린 로드무 비 스타일의 ꡔ자연의 아이들ꡕ은 단순한 앵글이지만 노년의 삶을 통해 생의 허무, 황량한 벌판이 나 풍경 속에 담긴 관조 등으로 하여 마치 우울하고 슬픈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하다. 전후 폐허의 상 실감 속에서 소리 없이 피어나는 인간애와 사랑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눈을 통해 그린 르네 끄레망(Rene Clement) 감독의 ꡔ금지된 장난(Forbidden Game)ꡕ 역시 감미로운 주제곡과 더불어 아름다운 영상으로 가득찬 필름으로 쓴 한 편의 시다.
또한 클로드 를로슈 감독의 ꡔ남과 여ꡕ는 반려자의 죽음으로 상처 입은 남녀의 고독과 방황을 산 문적인 설명이 아니라 시적인 영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누크 에메가 아이를 데리고 해변 을 산책하는 장면을 롱 테이크(long take) 기법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빗속을 운전해 여자를 뒤쫓아가는 장 루이 트랑트리앙의 모습, 감미로운 주제곡을 배경으로 빗물을 쓸어내리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자동차의 와이퍼, 두 남녀가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플랫폼 장 면 등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영화다. 특히 모노크롬 기법을 적절히 사용해 컬러가 주 는 화려함을 절제하고 고적(孤寂)하고 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그 외 로버트 레드포드의 ꡔ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ꡕ이나, ꡔ황금연못(On Golden Pond)ꡕ같은 영화도 이런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배용균 감독의 ꡔ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 닭은ꡕ은 존재의 허망(虛妄)과 생의 관조 그리고 슬픈 숙명의 노래를 필름 위에 썼다. 절제된 대사, 램브란트적인 명암으로 처리한 음영 깊은 화면, 물, 바람, 새, 나뭇잎의 흔들림, 다비의 아름다운 불꽃 등은 신경림의 시 “갈대”를 연상시킨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TV에서도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신경림의 “농무(農舞)” 등이 드라마화 되었지 만 시의 분위기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2, 드라마의 역사
70년대의 드라마는 신파였다. 성질 고약한 시어머니 밑에서 착하기 그지없는 며느리가 철없고 방탕하기 짝이 없는 서방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순애보적인 사랑이야기가 주였다. 『여로』『아씨』등이 바로 그러했다. 당시는 TV가 흔 치 않던 시절이라 도시사람들은 다방에 앉아 커피에다 날계란 하나 넣은 평소 보다 2배나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시골사람들은 TV수상기가 있는 집에 온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 혀를 차면서 눈물을 흐리면서 드라마를 감상했다. 그러 다 사람들은 문득 언제까지 이런 감상적인 신파극을 봐야하는가에 대해 회의 를 나타내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코믹드라마였다. 『달동네』,『야 곰례 야』같은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은 벨도 없이 TV앞에서 낄 낄거렸다. 그러다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방송의 통폐합이 추진되고 컬러방송 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한 것이『TV문학관』이었다. 이 드라마의 공과는 이미 서술한 바다. 이 프로를 시작으로 한국 TV드라마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 으며 이때부터 드라마에 영화적인 제작방식이 도입되었다. 매주 한 편씩 한국 대표소설을 각색 방송해 당시 TV에 상당한 활력을 주었고 예술성을 갈망 하 던 시청자의 호응과 사랑을 받았다. 이 프로는 단번에 TV드라마의 대표프로 로 자리잡았고 그런 기조는 약 5년 이상 계속되었다. 그러다 시청자들의 기호 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왕릉일가』가 선 보이면서였다. 사람 들은 갑자기 TV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 기 시작했다. 그 이후 코믹 드라마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그 절정을 이룬 것은 『사랑은 뭐 길래』였다. 그런 프로의 맥을 이룬 것은 시트 콤이었고 로 맨틱 코미디였다. 이 로맨틱 코미디가 젊은 스타들과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 와 결합해 나타난 것이 바로 트랜디(trendy) 드라마였다.
지겹게 계속된 이 경향은 신분상승을 주제로 한 만화같은 환타지성 멜로로 , 혹은 혼전 동거, 동성애, 주부들의 바람피우기 등등의 사회금기에 대한 도전으 로 나타나고 있다.
80년대의 드라마의 과부하와 그 반동으로 나타난 90년대의 드라마의 탈사회 성과 그에 따른 경박성은 어쩌면 TV문화의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 러나 드라마를 오직 작품성으로만 평가했던 80년대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트 랜디 드라마는 드라마 조수주의(嘲笑主義)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 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3, 맺는 말
문학과 영상은 많은 유사점이 있지만 엄연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문학, 연극, 사진 등 다양한 예술을 기초로 하는 영상은 독자적인 체제를 갖추 고 있으며 문학처럼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 그 성패가 결정 나는 매체가 아니 라 카메라 조명 음악 편집 등 여러 사람들이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결국은 연출자의 예술적 재능과 연관되어 있다. TV의 대부분의 기법은 영화에서 비 롯 되었고 영화는 소련의 몽타주이론에서부터 프랑스의 인상주의, 독일의 표현 주의, 이태리의 네오 리얼리즘 등 다양한 모색을 통해 발전해 왔다.
이러한 영상의 발전은 영화나 TV가 소재를 문학 쪽에서 찾음으로써 문학과 의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지는 이미 오래다.
모든 문화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는 없다. 서로 서로 닮아가면서 발전한다. 문학은 TV에서 이미지를 차용하고 TV는 문학에서 서사적 구조를 배운다.
이런 현상은 독서인구의 확대도 가져왔다. 그러나 매체의 발달은 소설이 시를 밀어내고 주류문화로 자라 잡듯, TV는 소설을 변방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TV 도 인터넷 등 첨단 매체에 점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문화는 대중의 관심이 멀어질 때 비로소 반성도 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간 다. TV가 위세를 부리고 모든 문화를 잠식할 때 문학은 문학이 갈 길이 무엇 인가를 고민했다. 지금 TV도 그런 고민을 할 때이다. 안방에서 위성방송으로 세계의 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휴대폰으로도 드라마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多매체 多채널 시대를 만나 정통적인 TV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 문학도 인터넷 소설 등과 같은 대중문학과 정통문학으로 극명 하게 갈리는 경향이 있듯이 작금의 TV는 극심한 혼란을 꺾고는 있지만 멀지 않아 문학의 그것 모양으로 이분화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다.
지난 세대가 지식과 정보를 책에서 찾았다면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들이 살아가는 지식과 정보를 인터넷 등 영상매체에서 찾는다. 이런 풍조는 책 을 멀리하는 풍조를 만들고, 깊은 지식보다는 얄팍한 지식에 매달린다.
“셰익스피어, 램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 될 것이다” 라고 아벨 강스는 예언했 지만 11) 오늘날의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나 베토벤의 생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찾으려 하지 않을 때 사회는 TV의 고전적의 역할을 되새기며 문학을 영상화 시켜고 정통적인 문화의 향기와 의미를 지속적으로 일깨워주는 노력을 해야 한 다.
대중의 기호란 매우 구체적이고 확실하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최대원리는 다 수결이고 문화적 민주주의에서의 주인은 대중이다 이른 바 문화의 그레삼 법칙 이다. TV는 한 때 바그너가 꿈꾸었던 언어와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예 술이긴 하지만 아우라의 상실을 가져온다. 대중이 원하는 것보다는 대중에게 필요한 것도 주는 TV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문학과 TV의 만남을 통해 이루 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소설이 뜨고 그것을 원작으로 한 TV드라마가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문학을 원전으로 한 드라마들도 함께 공존하는 바람직 한 사회를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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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영채, “문화산업의 논리와 소설의 자리” 소설과 사상(서울;고려원,1994) 여름호, P.246.
첫댓글 잘 읽고 유익했습니다. 유한근 선생님께서 영상시라고 하는 게 '소설과 영상' 위의 논문과 관계성이 깊은 것인지요?
마음님, 잘 보셨습니다. 현재보담 가까운 미래엔...제 생각엔 인쇄 매체가 영상매체와 공존하면서 좀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합니다. 영상매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담근질해온 인쇄 매체를 늘 업고 가겠기에...동문서답이 된 건 아닌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