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라고 했던가. 백의의 어머니들은 모두 그랬다. 어진 어머니요 착한 아내였다. 효부요, 효녀의 전형이었으며 자식 교육의 모범을 보였다. ‘나를 닮아라’가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다. 이만한 교육 모범이 또 어디 있으랴. 자식들 교육에 이만한 실천
모델이 또 어디 있으랴. 현명한 ‘아내상’을 제시했고, 율곡과 같은 자식을 길러낸 어머니이면서 친정 모친에게 극진했던 효녀의 전형을 보인 신사임당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강릉땅 계신 모친(母親) 홀로 두고 서울 간 길
고개 돌려 친정집 보니 말문 막혀 사무친데
흰 구름 청산(靑山)을 휘돌며 저문 해를 재촉하구나.
慈親鶴髮在臨瀛 身向長安獨去情
자친학발재임영 신향장안독거정
回首北村時一望 白雲飛下暮山靑
회수북촌시일망 백운비하모산청
【한자와 어구】
慈親: 어머님/ 鶴髮: 늙으신 몸, 학처럼 흰머리/ 在臨瀛: 임영(강릉의 옛이름)에 계시는데/ 身: 자신, 시인/ 向長安: 서울로 향한다/ 獨去情: 홀로 가는 정 / 回首: 머리를 돌려서/ 北村: 북촌(어머님이 사시는 마을)/ 時一望: 때때로 본다/ 白雲飛下: 흰구름이 아래로 날리다/ 暮山靑: (날이)저문 산을 푸르게.
‘어머님 향하여 흘리는 이 눈물은’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 사임당(師任堂) 신인선(申仁善`1504~1551)은 문장가요 화가다.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다. 48세를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상징적인 인물로 추앙을 받는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어머님의 늙으신 몸 임영 땅에 계시는데 / 이 몸은 홀로 남편 따라 서울로 간다네 / 고개 돌려 가끔씩 북촌을 바라보니 / 흰 구름 아래로 청산만이 저물어가는구나’라는 시상이다.
부모님께 극진하게 효도하는 것은 우리 윤리의 기본이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는 1천여 년 동안 이것은 국민윤리의 기본이었다. 주자학의 기본이 효행이었고, 바이블 격인 ‘사서삼경’에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그 바탕의 주종(主從)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 선현들이 쓴 시문에 효성을 주제로 한 시문이 상당한 양을 차지한다.
이런 사회 도덕적인 바탕 위에 시인은 삼부(三婦)의 덕(德)을 고루 갖춘 상징적인 여성상이었으니 부모와 지아비 그리고 자식에 대한 정성이 남달랐다. 거기에다 시문과 서화에도 능통했다. 위 시문에서도 남편을 따라 친정 강릉(임영)을 떠나 한양으로 향하는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읊는 그의 애절한 효심이 잘 나타나 있다.
화자는 잿마루에서 이따금 고향 마을(북촌)을 굽어보는 무거운 발길에 청산이 저물어 가고 있음을 탄식하며 애틋한 효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만큼의 효심이 있었기에 남편에 대한 내조, 자식에 대한 교육이 남달랐을 것은 분명하다.
신사임당=우리나라 최고 고액권인 5만원권의 도안 인물로 선정될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연산군 때인 1504년 외가인 강원도 강릉 북평촌(현재 강릉시 죽헌동)에서 다섯 딸 중의 둘째로 태어났다. 서울 사람인 아버지 신명화는 고려 건국공신인 신숭겸의 후손으로 벼슬에 뜻을 두지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당호를 사임당이라고 지은 것은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로, 뛰어난 부덕을 갖추었다는 태임(太任)을 본받는 뜻이 담겨 있다.
신사임당은 1522년인 19세 때 덕수 이씨 가문의 이원수와 결혼, 셋째 아들 율곡 이이 등 모두 4남 3녀를 낳아 길렀다. 아들 이이 덕분에 정경부인에 증직됐다. 작품으로 시(詩)에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 ‘사친’(思親) 등이 있고, 그림에 ‘자리도’(紫鯉圖), ‘산수도’(山水圖), ‘초충도’(草蟲圖) 등이 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