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울며 마속을 참하다)
제갈량의 촉군은,
장안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통로인
‘가정’이라는 곳에서 사마의와
장합이 이끄는 위나라 대군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제갈량은 촉군 본대가 전열을 정비하는 동안
‘가정’에서 위나라 대군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줄
장수가 필요했으며 그래서 선택된 장수가
‘마속’과 ‘왕평’이라는 장수였다
제갈량은 약2만명의 병력을 내주어
마속을 대장으로, 왕평을 부장으로 삼아
가정을 지키게 하며 마속에게 절대로
산 위가 아닌, 산 아래에 진을 구축하라 당부한다
그러나, ‘마속’은 전공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제갈량의 당부를 무시하고 산 위에 진을 치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전선을 둘러본 마속의 논리,
‘낮은곳에 있는 자 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가 유리하다.
산 위에 진을 치고 있다가
일제히 공격하면 승리할 것이다’
병법의 기본을 따르는 거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하는데 말이다.
산맥과 이어진 산줄기 위에서야
병사들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식수도 확보하고 지형상으로도
아래에 위치한 적군을 상대로
일제히 공격하면 승산이 충분히 있겠지만.
마속이 진을 친 그곳은 길 한복판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그곳은 병사들이 마실 식수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역으로 포위당할 경우
전멸당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이를 알고 있던 위나라군 장수 ‘장합’은,
바위산으로 이어지던 물 줄기를 원천 차단하고
촉군을 고립시키던 상황이었다
위나라가 대군이라고 해도 정예병사 수천명만 길목에
배치하면 쉽게 뚫지 못하고 시간을 벌어줄수 있었던만큼
그곳 바위산은 병력을 배치하고 진을 구축하는게 아닌
적들의 동태를 살피는 관측 장소 정도로만 이용했어야 했다...
부장으로 임명된 왕평은 승상(제갈량)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냐며 마속에게 불응해 일부 군사들만
데리고 산 아래 길목에 진을 구축했으나
대군을 상대 하기에는 역 부족 이었다
결국 순조롭게 진행되던 1차북벌은
가정에서 위나라군에 패배하며 결국 실패로 끝이난다
제갈량은 그토록 아끼며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던
마속을 항명죄로 눈물을 흘리며 참수 해야 했다
여기서 유래된 이야기가 泣斬馬謖 (읍참마속)이다
유비가 임종 전에, 이릉대전 패배 직후
제갈량 에게 남긴 여러 유언들중 한가지이다.
“마속은 교만하기 짝이없으니 중요한 임무는 절대 맡기지말라”
다른건 몰라도 유비의 사람보는 눈은
제갈량 마저도 감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