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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이스라엘과 요셉 이스라엘이 하나가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막대기를 하나 가져다가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쓰고 또 하나에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쓰고 이것을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선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뜻은 히브리어 '벤'을 사용하여 혈통적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며 이스라엘 족속은 '바이트'를 사용하여 집, 다양하게 적용한 가족, 할 수 있는대로 크게 확장한 휘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요셉의 자녀들을 생각해보면 아빠는 유대인이지만 엄마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자녀들은 반만 유대인이다. 현대 유대인들은 모계 혈통을 따르기 때문에 아빠만 유대인인 요셉의 자녀들을 유대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들을 유다 이스라엘과 한 막대기로 합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이렇게 설명하셨다. 여러나라로 흩어진 이스라엘을 사방에서 모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고(알리야) 다시는 이들이 두 민족, 두 나라가 아닌 한민족이 되어 한 왕 아래에서 여호와의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게 되겠고 다윗 왕이 영원히 그들을 다스릴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요셉이 온 나라를 다스리고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그 아래에서 통치를 받았는데 그 의미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께서 온 나라에서 알리야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셉을 통해 이방인이 부계혈통으로 유대인이 되었고 또한 혈통적 유대인이 요셉을 통해 함께 같은 법(온전하진 않았지만 많은 부분 율법을 사용했을 것이다)으로 통치를 받은 것과 같이 예슈아를 통해 이방인의 피가 섞였지만 알리야한 유대인들과 혈통적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함께 통치될 것이라는 의미한다. 요셉으로 인해 실제 출애굽할 때 수많은 잡족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했다. 또한 부계혈통(여호와 아버지)을 통한 이방인이 예슈아를 통해 이스라엘에 속하게 되는 것도 포함한다. 이렇게 보면 여호와의 법도아래 유다와 요셉의 연합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과 같음을 볼 수 있다.(겔37:16-25)
2 혈통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자가 유대인이다
역사 속 유대인은 유대인 부모라면 누구나 유대인이었다. 기원전까지만 해도 부계를 우선시했다. 그러나 전쟁과 디아스포라를 거치면서 부계보다 모계를 우선시하게 됐다. 그래서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런저런 혈통이나 문화적인 유대인 정의와는 관계없이 3대나 경우에 따라 4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양측 부모 가운데 어느 한 편에라도 유대인 피가 흐르면 유대인으로 간주했고 집단수용소로 보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닙니다”라고 발버둥쳐도 소용없었다. 가령 할아버지 때부터 타종교로 개종했어도 유대인으로 보았다. 즉 유대교와 상관없이 모계든 부계든 혈통적 유대인을 찾아내 학살했다.
1950년 신생 이스라엘 의회에서 첫 번째로 통과한 법이 ‘귀환 법’이다. 이 법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이스라엘 땅을 밟는 즉시 시민권이 주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법을 통해 유입된 인구로 인해 이스라엘의 인구는 건국 이후 만 5년을 넘어서면서 배로 늘어났다.
그런데 다니엘 루훼이슨이라는 유대인이 시민권을 신청했는데 기각되었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는 자신이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유대인인데 어째서 시민권이 거절되었냐고 항의했다. 이 문제는 대법원까지 상고된 법정투쟁으로 이어졌으나 끝내 거절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이 법이 규정한 유대인의 정의는 혈통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유태인의 정체 - 혈통이냐 종교냐, 모계냐 부계냐 - https://naver.me/FOhVFG5X 참조
이를 통해 바울이 말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유대인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3 요셉의 역할을 하신 예슈아
바울은 우리가 과거에는 육체로 이방인이었고 무할례자들로서 예슈아와 상관없는 사람이었고 이스라엘이 아니었으며 언약도 소망도 하나님도 없는 자였지만 이제는 예슈아의 피로 하나되어 동일한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워져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진다. 물론 여기에 오해가 있어서 율법이 폐하여져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앞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나 성경적 관점과 맞지 않는다. 사실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원어로 보면 적개심이 폐하여졌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율법이 이방인들을 향해 적개심을 갖게 하는가? 만약 율법 자체가 문제라면 율법을 폐하면 이방인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 법도가 없는 이방인으로 하나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계획일까?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진리인 구원이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엇때문에 적개심이 생겼을까? 사실 율법이 아니라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이다. 즉 율법에 따라오는 사람이 세워놓은 법조문, 규례를 말한다. 율법을 지키려고 사람이 써놓은 세부규정들이다. 그 중에 하나는 이방인들과 함께 밥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법조문은 이방인들을 향해 적개심을 갖게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규례가 율법은 아니다 율법에 대한 사람의 해석으로 붙은 규례이다. 이러한 이방인에 향한 적개심을 제거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입교했다면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해서 반대할 이유도 없고 하나가 되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렇게 하나된 자들이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이 예언한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족속인 것이다.(엡2:11-21)
4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도시대에 회당모임이 끝나고 바울과 바나바를 따른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즉 이방인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전에는 이스라엘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유대교에 입교하여 유대교를 배우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들은 분명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샤밧에는 거의 온 도시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자 왔다고 쓰고 있다. 이로인해 유대인 무리들이 바울을 시기하여 반박하고 비방했다. 회당과 유대교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흥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당시 회당에는 혈통적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유대인 두 부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교에 입교하면 더이상 이방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대인이라고 불렀다(행13:43). 그래서 바울도 "너희가 전에는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엡2:11).
5 샤밧마다 회당에서 토라를 배운 이방인
베드로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동일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과연 구원의 기준이 같다고 여기는가? 만약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구원에 대해 성경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지자의 글에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4가지만 주의 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4가지만 말한 이유는 그외에 아무것도 지킬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러면 교회도 성경도 예배도 필요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구절에 "이는 예로부터 샤밧마다 회당에서 모세오경을 읽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토라를 샤밧마다 읽고 가르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입교자들에게는 4가지만 주의하게 하고 할례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통해 율법을 폐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이방인들이 샤밧마다 회당에 가서 토라를 배운 것을 알 수 있다. 이방인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법,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방법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토라를 준행하는 것이다.(행15:11-21)
6 육체의 할례가 구원을 결정짓지 못한다
아브람이 99세때 여호와께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과 함께 할례를 명하셨다.(창17:1)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복을 받고 천하 만민이 그 자손으로 인해 복을 받은 이유는 할례를 행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과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다.(창26:4) 즉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며 살았기 때문에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그 표증으로 주신 것이 할례이다. 즉 완전함의 표시이다. 만약 할례를 받아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다면, 13세에 할례를 받은 이스마엘은 유업을 얻었을 것이고 이삭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손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할례의 여부가 유업을 얻는 구원을 결정짓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할례를 명하시고 태어났을 때부터 할례를 받도록 하신 것은 육체의 할례로 시작하여 마음의 할례로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나 이스마엘은 그의 아들이 아닌 것이다.(롬9:7) 심지어 그 어미와 아들을 내쫒으라 하시며 유업이 없다고 말씀하셨다.(갈4:30) 이처럼 육체의 할례나 혈통으로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으로 믿음의 자손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은 육체의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의 할례까지 받아 온전해진다면 이방인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마음의 할례를 먼저 받고 육체의 할례로 완전해 지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이 받는 순서는 다르지만 결국 온전함은 동일하다. 육체의 할례를 받은 이스마엘은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해 유업을 얻지 못하고 쫒겨난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믿음으로 접붙여졌기 때문에 마음의 할례를 받아 순종하는 것이 육체의 할례를 받는 거보다 중요하다. 물론 여성 할례는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성이 받는 할례를 통해 가정을 건강하고 거룩하게 세우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도이다.
7 사도들이 할례당과 싸운 이유
할례를 강제가 아닌 자유로 결정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유대교 안으로 들어갔지만,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할례당의 가르침은 성경적이지 않았다. 이들은 율법(전통화된 교리도 율법이라 불렀다)을 말하면서도 할례받은 육체만 자랑하는 자들이었다(행15:1).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고 바울이 증언하고 있다(갈6:13).
그리고 순종이 없는 할례는 무할례와 같다. 여호와께서 할례를 명하신 이유는 결국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었다. 즉 육체의 할례를 행하는 진정한 목적은 마음의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이 육체의 할례를 재정하신 이유이다(신30:6). 그러므로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율법을 범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지만(의미가 있지만) 율법을 범하면 무할례와 같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할례의 여부가 아니라 순종의 여부가 중요하고 순종할 때 할례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즉 진정한 유대인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할례당의 잘못된 믿음과 가르침을 사도들이 반대하며 경고한 것이다. 그렇다고 할례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순종할 때 분명 할례는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다(롬2:23-28). 다만 할례를 행하면 구원이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전통을 지키는) 할례당의 가르침은 유대교에 입교한 수많은 이방인들을 미혹하여 전통의 종으로 삼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할 수 있으므로 그들을 경계한 것이다.
8 베드로의 가식을 책망하다
바울은 게바(베드로)를 책망했다. 이유는 야고보에게서 할례자들이 오는 것을 알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고 두려워 그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바울은 베드로의 가식적인 행동을 책망했다. 먹다가 물러난 것을 책망했다 왜냐하면 이방인과 함께 먹지 말라는 그들의 규례(전통) 때문에 할례자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함께 식사를 하다가 하지 않은 척 자리를 떠나는 것은 가식적인 행동이다. 어떤 이들은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돼지고기를 먹다가 그 자리를 피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회당에 오는 이방인들은 이미 유대교에 입교하여 토라를 배우는 자들이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은 척 해서 책망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다.(갈2:11-13)
9 유대인답게 살도록 가르쳤다
바울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았다고 책망하고 있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진리가 아니므로 돼지고기를 먹었다면 진리를 따라 행해서 책망했을 것이다. 이건 말도 안되고 성경적이지도 않다. 이 구절을 보며 돼지고기를 먹었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 유대인답게 살지 않아서 책망한 것이다. 베드로 자신이 유대인이면서 이방인처럼 진리를 따르지 않고 이방인들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는 이중성을 책망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이나 베드로나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답게 살도록 가르쳤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자로 이방인은 죄인으로 간주하고 있다.(갈2:14,15).
10 유대인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도록 어떻게 가르쳤을까? 도대체 유대인다운 삶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지만 문화도 창조하셨다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모두 토라이다. 즉 토라는 문화이다. 문화란 사상, 의상, 언어, 종교, 의례, 법이나 도덕 등의 규범, 가치관과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사회 전반적인 생활 양식’이다. 에드워드 베네트 타일러는 1871년 그의 사회 인류학 저서에서 ‘문화 또는 문명이란 제 민족의 양식을 고려할 때 한 사회의 구성원이 갖는 법, 도덕, 신념, 예술, 기타 여러 행동 양식을 총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 패션, 종교, 식습관, 명절 등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답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 도덕, 신념, 가치관, 생활 양식, 명절(절기) 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토라(율법)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가치관이며 의로운 행동 양식으로 온 이스라엘의 문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 속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문화로 살아가는 것은 창조물인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이것이 진정한 유대인이고 이스라엘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 된다.
바울이 말한 유대인처럼 사는 것은 계명을 폐하는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전통에 대한 지나친 열심을 후회했다 (갈1:14). 유대인처럼 사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의로운 법도대로 사는 것이다(롬7:12).
로마서 7: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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