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정약전이 흑산도에 미친 영향은···[休]
◆힐링과 단절을 품은 '흑산도'
한글로 된 성가 만들고 섬 주민들에 포교 활동 천주교 스며들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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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성당은 섬에서 구하기 쉬운 몽돌로 지어졌다.
흑산도는 가톨릭 신자가 25%에 달할 정도로 유독 천주교세가 강한 지역이다. 그 출발은 정약전(1758~1816)이다. 정약전은 흑산도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자 배교자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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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유배문화공원에 세워진 정약전 조형물.
정약전은 ‘황사영 백서사건’이 발단이 돼 흑산도로 유배된 뒤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목포성당 주임 신부였던 드예 신부가 흑산도 사목방문 후 뮈텔 주교에게 제출한 ‘사목보고서(1902년 6월 6일)’에 잘 드러나 있다. 이에 따르면 사리 주민 박인수는 흑산도의 유일한 천주교 신자로 기록돼 있는데 그는 다름 아니라 정약전이 유배 시절 머물던 집주인이다. 그가 천주교로 입교한 데는 정약전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목보고서에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한국어 성가의 가사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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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성당은 흑산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성당 부지는 과거 시신을 매장하던 곳으로 초장(草葬)골로 불리던 곳이다. 사진은 흑산항에서 바라본 흑산성당.
흑산도에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정약전 사후 130여 년 만이다. 지난 1956년 심리에 이어 1957년 사리에 공소가 건립됐고 목포 산정동성당은 제20대 주임인 브라질 신부를 파견해 1958년 흑산면 진리에 흑산성당을 건립했다.
예리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흑산성당은 흑산도 천주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섬에 천주교가 전파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자 주변 몽돌을 자재로 사용해 지어져 건축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곳으로 2019년 등록문화재 제75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흑산성당의 볼거리인 피정의 집은 성당 옆에 자리한 지상 5층, 지하 2층의 흑산도 최고층 건물이다. 진리 공소 시절 신자들이 기부한 부지로 1990년대 부동산 특조법에 따라 국가에 귀속됐다가 경매에 부쳐지는 과정에서 부지에 들어선 호텔과 함께 매입됐다. 광주대교구는 호텔을 피정의 집이자 흑산도 관광객들을 위한 쉼터로 개방하고 있으며 박상선 흑산성당 주임 신부는 흑산문화관광호텔 사장을 겸하고 있다. 지금도 흑산성당 신부는 부속 섬 다물도·오리·장고·홍도 등 6개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공소를 배를 타고 돌며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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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문화관광호텔은 흑산성당 피정의 집이자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호텔에서는 지역 특산품인 삭힌 홍어를 맛볼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2OZI99ALJ
첫댓글 역사를알았더라면 흑산도에 갔을 때
자세히 둘러 보고 머물다 올걸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