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보도된 뉴스를 바탕으로 각색된 추리소설입니다.
강민준은 사무실 창가에 서서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갈냥이였다. 녀석은 무언가를 경계하듯 낮은 자세로 천천히 움직이다가, 문득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고양이, 아까부터 계속 저러고 있네요." 이수언이 서류철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뭘 저렇게 경계하는 걸까요."
"경계할 만하니까 경계하는 거겠지." 민준이 돌아서며 답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오늘 의뢰받은 사건, 자료는 다 읽었나?"
수언이 파일을 펼쳤다. "네. 세 개의 사안인데, 겉으로는 별개처럼 보이지만 의뢰인은 하나로 묶어달라고 하더군요. 첫째, 대통령의 훈련 축소 결정을 둘러싼 '평화체제' 발언. 둘째, 국방부 장관의 핵 보유량 추정 발언과 애매한 대비 태세. 셋째, 같은 장관의 병적기록부 논란."
"공통점은?"
"말과 기록의 불일치요." 수언이 짚었다. "세 사안 모두 화려한 언어가 앞서고, 그걸 뒷받침할 물증은 뒤에 숨어 있어요."
민준이 첫 번째 파일을 펼쳤다. "먼저 이 '평화체제' 발언부터. 훈련 축소가 대화 국면의 결단이라는 게 표면적 설명이야. 하지만—" 그는 지도를 꺼내 평택 기지와 미일 군사 협력 동선을 짚었다. "실제 움직임은 반대 방향을 가리켜. 신뢰를 강화하는 나라에게 이런 배치를 하지는 않지."
"그러니까 발언과 행동이 어긋난다는 거군요."
"어긋나는 게 아니라," 민준이 정정했다. "행동이 진짜 메시지야. 발언은 그걸 가리는 포장지고. 우리가 봐야 할 건 포장지가 아니라 내용물이지."
수언이 두 번째 파일로 넘어갔다. "장관의 핵무기 추정 발언은 더 노골적이에요. '80개에서 120개'라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서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죠. 그런데 정작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무장 같은 실질적 질문엔 답을 피했어요."
"거기서 이상한 점이 뭐지?"
수언이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대비한다는 말은 늘 하는데, 그 대비가 구체적으로 뭔지는 아무도 몰라요. 마치… 대비라는 단어 자체가 목적이 된 것 같아요. 실제 대비책이 아니라."
"정확해."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바로 우리가 늘 마주치는 구조야. 책임을 지는 주체가 없는 대신, 책임 있어 보이는 말투만 남는 구조."
이때 창밖에서 참새 몇 마리가 요란하게 지저귀며 날아올랐다. 수언이 시선을 돌렸다. "저것 좀 보세요. 뭔가에 놀란 것 같은데."
민준이 창가로 다가가 살폈다. "이단지가 저기 있네. 담장 밑에 숨어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어."
"숨는 이유가 있겠죠."
"그래. 완전히 숨지도, 완전히 나서지도 않는 저 어중간한 자세—" 민준이 세 번째 파일을 꺼내며 말했다. "이게 바로 병적기록부 사건의 핵심이야."
수언이 파일을 넘겼다. "장관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기록 공개 요구에는 '사실과 다르다'는 말만 반복했죠."
"부끄럼이 없다면 기록을 펼치면 그만이야." 민준이 파일을 탁 소리 나게 덮었다. "그런데 펼치지 않아. 이건 단순한 프라이버시 문제가 아니지. 공직자의 자격 검증이라는 공적 절차의 문제야."
수언이 세 사안을 나란히 펼쳐놓았다. "그러니까 선배님 말씀은, 이 세 사건의 진짜 범인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구조야." 민준이 말을 이었다. "언어가 증거를 대신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구조. 평화라는 단어 하나로 군사적 재배치의 실체를 가리고, 대비라는 단어 하나로 무결정의 무책임을 가리고, 부끄럼 없다는 말 한마디로 기록 공개 의무를 가리는 구조."
수언이 창밖의 갈냥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위장하지 않죠. 경계할 땐 경계하는 티가 나요. 그런데 사람은 말로 위장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봐야 할 건 항상 말이 아니라 기록이야." 민준이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에 범인은 없어. 대신 증상이 있지. 말이 앞서고 기록이 뒤처지는 증상. 그 증상을 방치하는 시스템 자체가 진짜 문제야."
수언이 보고서 첫 줄을 써 내려갔다.
본 사건에서 특정 개인의 위법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발언과 기록의 간극을 방치하는 구조, 그리고 그 간극을 언어로 메우려는 관행이 반복적으로 발견되었다. 이는 개별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검증 없는 수사(修辭)가 통용되는 제도적 공백의 문제다.
민준이 창밖을 다시 보았다. 갈냥이는 어느새 평상 위로 자리를 옮겨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더 이상 경계하지 않는, 편안한 자세였다.
"저 고양이는 안심할 이유가 생기면 몸을 펴. 우리 사회도 저래야 하는데." 민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증거로 안심시켜야지."
수언이 서류를 정리하며 답했다. "나뭇잎 한 장이면 될 일을, 왜 다들 그렇게 어렵게 만드는 걸까요."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파일을 덮고, 다음 사건을 기다리듯 창밖의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