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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예레미야(15)
제목 : 참을 수 없는 하나님의 분노
성경 : 렘 6:1~15
찬송 : 327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1009 낙양교회 수요예배
렘 6: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렘 6: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렘 6:3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렘 6: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 6:5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렘 6: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렘 6:7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렘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렘 6: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따듯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렘 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렘 6: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렘 6:12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6: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 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본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목장과도 같고, 모든 것이 풍부한 포도원과도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잘 돌보는 목자들이 있었고,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온갖 풍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입니다. 지도자와 백성들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탓에 준엄한 심판이 그 땅에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당시에는 유다의 지도자들, 곧 예언자와 제사장들이 탐욕과 거짓의 노예가 되어 도저히 ‘평화’(샬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평화를 외쳤습니다. 백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해 여호와의 말씀과 훈계를 무시했으며,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바른 길과 선한 길을 싫어했고, 예언자를 통해 선포되는 경고의 나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폭력과 탈취, 질병과 살상이 가득한 죄악의 도성이었고, 그 안에 뒤섞여 있는 불순물을 제거할 수 없는 버려진 은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악행을 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징벌이 어떤 형태로 이뤄질 것인지를 실제로 눈 앞에서 보는 듯한 생생한 표현으로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에서 피하라(1~8절)
6장에서는 먼저 베냐민 자손들을 향해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여기서 ‘베냐민 자손들’은 예레미야가 속한 베냐민 지파(1:1)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루살렘 사람들이나 유다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제 임박한 전쟁을 피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보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그들이게 주어집니다. 구체적으로 드고아에서 전쟁 경보의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위급 상황을 알리는 깃발을 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렘 6: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아모스의 고향인 드고아(암 1:1)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으로, 북방 군대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곳입니다. 드고아처럼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벧학게렘도 마찬가지입니다.
1절에서 이처럼 유다 백성의 죄악에 대한 재앙과 심판을 선포하신 여호와께서는 2~3절에서도 특이한 방식으로 예루살렘의 파멸을 예고합니다.
√렘 6: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렘 6:3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예루살렘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목장 이미지를 순식간에 군사적이고 파괴적인 전쟁터의 이미지로 바꿔 표현하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을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더 정확하게는 ‘딸 시온’)로 의인화시키는데, 이제 곧 목자들(이방 왕들)이 양떼(많은 병사들)를 몰고 쳐들어와 예루살렘 성읍 사방에 진을 칠 것이요, 아름답고 탐스러운 유다의 목장에서 병사들을 배불리 먹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곧 여호와께서 바벨론 연합군을 통해 딸 시온을 멸망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신 후에 곧바로 심판의 도구로 부르실 북방 군대를 향해 전투 준비를 명하십니다.
√렘 6: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 6:5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보통 군인들은 정오에는 너무 덥기 때문에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군대는 얼마나 정신없이 싸웠는지 금방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녁이 온 것을 아깝다고 하면서, 밤에 올라가서 요새를 헐자고 말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점을 쳐보니 예루살렘은 벌 받을 성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공격해도 좋다는 점괘가 나왔는데, 그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허락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렘 6: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바벨론 사람들은 흉벽을 쌓아서 공격하는 것을 개발해 냈습니다. 어떤 성이 있으면 그 성 밖에 더 높게 성을 쌓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성안으로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질 수 있고 군인들의 움직임도 볼 수 있으며 특히 사람들이 도망치는 것과 물자의 반입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북방 군대에게 전투 방식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는 이유는 예루살렘이 벌 받아 마땅하기 때문인데, 그곳은 온갖 압제로 가득한 성읍이요, 샘물이 솟구쳐 내는 것과 같이 온갖 죄악을 끊임없이 솟구쳐 낼 뿐만 아니라, 폭력과 탈취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질병과 성처로 가득한 성읍이 된 것입니다.
√렘 6:7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여호와께서는 다시금 예루살렘을 향해 명하시면서 그들이 예언자를 통해 주어지는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마음이 그들을 싫어할 것이고, 예루살렘을 아무도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만들고 말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렘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이 계속 죄 가운데 거한다면, 하나님이 바벨론 군대를 끌고 오셔서 직접 예루살렘을 파괴하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라면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그저 주어진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주님이 우리의 대적이 되실 수도 있다는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대화(9~12절)
√렘 6: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따듯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예레미야의 대화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심판의 도구가 될 북방 군대가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를 따듯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샅샅이 뒤져서 끌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포도를 딸 때는 이중의 단계로 땁니다. 우선 상품이 될 만한 좋은 것을 따서 시장에 팔고, 그 다음 상품 가치가 없는 것은 닥치는 대로 따서 술틀에 넣고 짜서 포도즙이나 포도주로 담그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포도는 이미 상품의 포도가 아니기 때문에 조심해서 딸 필요가 없고 닥치는 대로 따서 밟고 터트려 포도주를 담그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도 남김없이 부지런히 주워 담게 되는 것입니다.
고대의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아닙니다. 즉 돈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돈을 주겠다고 하면 그것으로 전쟁은 끝납니다. 그래서 이런 전쟁은 재산을 다 주면 집과 가정과 목숨은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될 만한 재산은 다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안 될 때에는 사람을 잡아서 포로로 팔게 되는데, 그 때는 가족이나 집이나 사람을 모두 잃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후자의 경우에 속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철저하게 죽이든지 잡아서 포로로 끌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포도 따는 사람이 포도 덩굴을 낱낱이 들추어 남아 있는 포도 열매를 찾아내는 것처럼 그가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예레미야는 부정적인 답변을 전제하는 질문을 던지며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대체 누구에게 전해서 듣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렘 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예레미야가 생각할 때 유다 백성은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탓에(4:4) 심판의 말씀을 아무리 진지하게 전해도 귀담아 듣지 않을뿐더러 심판의 말씀을 욕으로 알고서 거부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좌절과 낙심에 빠진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분노로 가득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렘 6: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터질 듯이 답답한 예레미야의 심정을 잘 알고 계신 여호와께서는 그의 질문과 불평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분노를 길거리의 아이들과 결혼한 지 얼만 되지 않은 남자와 여자 및 나이든 사람과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들까지 포로로 잡혀 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심판의 메시지는 12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서술됩니다.
√렘 6:12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의지는 확고부동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그들을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돌이킬 기회를 날려버린 어리석은 자들(13~15절)
√렘 6: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 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고침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선지자나 제사장들은 돈을 받고 싶은 욕심 때문에 병이 깊은 데도 쉽게 진단해 주었습니다.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한 죄인데도 그 위에 연고나 발라 주며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하면서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변하여 새로워질 수 없었고 죄도 고침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선지자들이나 제사장들이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가 먼저 그 말씀 앞에 찔림을 받아야 하고 그 말씀의 책망을 받아서 죄가 해결된 후에 다른 사람에게 그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말씀들이 자기를 저주하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부메랑’ 효과입니다.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말씀이 다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감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을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이나 야망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막으면 모두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 재미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 세상 재미를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사람의 죄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모든 것은 이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결코 이차적인 것들이 일차적인 것들을 몰아내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무슨 사업이 많이 필요하겠습니까? 결국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런 사업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은 모두 자기 탐욕을 채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거짓된 평강을 믿으며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다.”, “예루살렘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안일하게 살았습니다. 교회도 깨어 있지 않으면 안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 앞에 깨어 있어야 하고 사소한 죄라고 부끄러워해야 하고, 죄를 깨달았을 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라면 본문 말씀을 “충격과 공포”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적이 되실 수 있다는 경고 앞에 안일한 태도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범죄 했을 때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때로는 매를 드셔서라고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아버지의 그 사랑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