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티키타카] 스페인 대표 팀과 레알마드리드의 전성 시대를 지휘했던 토니 그란데(Toni Grande) 코치가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에 합류한 것은 스페인에서도 화제다. 그란데 코치는 화려한 이력서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있지만, 무대의 전면에 나서던 인물은 아니다. 그란데 코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스페인 대표 팀 전문가 미겔 앙헬 디아스(Miguel Angel Diaz) 카데나 코페 기자에게 물었다.
라디오 마르카에서 기자 일을 시작해 2004년부터 스페인 대표 팀과 레알마드리드를 전담취재 해온 미겔 앙헬 디아스 기자는 스페인 대표 팀의 성공 비결을 감독, 선수 및 내부 관계자와 밀도 있는 인터뷰로 집필한 ‘스페인 대표팀의 비밀’ 저자다.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의 자서전을 공동 집필한 기자이기도 하다. 미겔 앙헬 디아스 기자를 통해 그란데 코치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전한다.
◆ 토니 그란데, 박식하고 충실하며 직관적이다
축구계에서 선수와 감독의 이야기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려지지만, 숨은 조력자라 할 수 있는 코치들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대표 팀에 합류한 지도자들 가운데 역대 최고의 경력을 가진 토니 그란데의 ‘이력서’는 스페인 축구계에서도 유일하고 특별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우수하다.
토니 그란데는 레알마드리드에서 2000년과 2002년 두 차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뤘고, 2002년에는 클럽 축구 세계 챔피언이 됐다. 스페인 대표 팀에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 2012년에 유로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이 이력이, 한국 언론에서 토니 그란데를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이다.
그란데 코치를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미겔 앙헬 디아스 기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박식하고, 충실하며 직관적이다. 그리고 인간미를 갖췄다.” 축구 경기에서, 특히 벤치에서 포커스는 온통 감독에게 쏠린다. 그는 늘 포커스의 이면에 있던 2인자였다. 이번에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 신태용 감독의 조력자가 됐다.
그란데는 지난 9월에 만 70세 생일을 맞았다. 스페인에서 ‘늙은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에게, 축구가 새로운 기회를 줬다. 사실 그란데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TV로 지켜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페인의 어떤 방송사에서 해설자로 일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란데가 원했던 목적지는, 다시 운동복을 입고 지도자로 세 번째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란데는 그라운드를 집처럼 느꼈다.축구 선수들과 접촉하는 일을 좋아했다.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선수들이 좋은 심리 상태를 갖출 수 있도록 경계와 주의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해결책을 강구했다.
그란데는 거의 40년 가까이 축구 선수들과 접촉해왔다. 선수들 사이의 일을 처리하는 것은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선수들의 신뢰와 존경심을 쉽게 얻어내곤 했다. 이런 점은 요즘 세상에서 갖추기 쉽지 않다. 감독 입장에서는 특히 엄청난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그란데는 한국 나이로 칠순을 넘었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경직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개방적이다. 그란데는 축구 선수들을 믿었다. 장기 합숙이 선수들에게 좋지 않다고 여겼다. 스페인 대표 팀을 지휘하던 시절, 비센테와 토니는 같은 의견을 냈다. 선수들이 합숙 기간에 가족들과 만나거나, 때때로 자유로운 밤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방침을 밀어 붙였다.
그란데는 오늘날 선수들이 충분히 진지하고 프로정신을 갖춰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주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문제가 될 만한 일을 스스로 피할 거라고 생각했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토니 그란데의 레알 수석 코치 경력을 이끌었다.
◆ 레알 감독 될 뻔 했던 그란데, 델보스케와 의리를 지키다
그란데는 레알마드리드 선수로 뛸 때 비센테 델보스케와 세 경기를 함께 뛰었다. 출전 시간으로따지면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1978년에 축구 선수를 그만뒀다. 당시 축구 선수들의 급여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래서 12년 동안 스페인 정유 회사 CAMPSA의 사회 활동 부서에서 일하기도 했다.
처음 지도자의 일을 하게 됐을 때, 그란데는 천직이라고 느꼈다. 그란데는 레알마드리드 후베닐 팀의 감독을 맡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레알마드리드 2군 팀은카스티야를 이끌고 테르세라 디비시온(4부)과 세군다B 디비시온(3부)에서 감독 일을 했다.
1996년에 부임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마드리드의 집안 사람’인 그란데를 1군 팀 코치로 요청했다. 그 뒤로 유프 하인케스, 거스 히딩크, 존 토샥 등 외국인 감독들이 카펠로 감독과 마찬가지로 그란데 코치와 함께 일했다. 그리고 1999년, 델보스케 감독이 레알에 부임한 뒤로는 서로 헤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2003년, 라리가 우승을 이룬 뒤 레알마드리드는 델보스케 감독과 연장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쓰라린 결정이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당시 총괄 디렉터인 호르헤 발다노는 토니 그란데에게 레알 1군 감독직을 제안했다. 그 외 다른 코치진도 레알 1군 팀에 남아서 일해달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란데는 델보스케 감독의 오른팔로 일했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란데와 델보스케는 매우 성공적인 파트너였고, 깰 수 없는 관계였다.
토니는 비센테를 유일하게 자신의 대장으로 여겼다. 그의 허락을 받고서야 2005-06시즌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다시 레알 지휘봉을 잡았을 때 다시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라리가 우승을 해냈다.
스페인 대표 팀의 세부 전술 상당 부분을 그란데 코치가 구성했다.
◆ 토니 그란데가 내린 역사적인 결정들
그란데는 벤치에서 매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코치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승 이력이나 추상적인 수식어 외에 그란데 코치의 능력을 설명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빼어난 기량을 갖췄으나 성격적인 문제로 오랫동안 고생했던 프랑스 공격수 니콜라 아넬카외 일이다. 어느 날 아넬카가 비디오 테이프를 팔에 끼고서 레알 훈련장에 나타났다. 그는 브라질에서 열린클럽월드컵 경기에서 골을 넣었는데, 그란데 코치가 라울 곤살레스가 골을 넣었을 때와 달리 자신의 득점에 기뻐하지 않았다면 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그란데는 아넬카의 골이 우연찮은 행운이 따라 들어가면서 놀랐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란데와 델보스케는 좋게 타일렀다. 그에게 비디오를 부회장에게 가져가서 얘기해보라고 얘기하며 일축했다. 단호하게 대응했고, 오해를 풀고자 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훈련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원만하게 갈등이 풀렸다. 아넬카는 다시 레알을 위해 활약 했고, 2000년 매우 중요했던 바이에른과 준결승전에서 팀을 결승으로 이끄는 골을 넣으며 기대에 부응했다. 그란데 코치는 소심하고 내향적이던 아넬카를 잘 다뤘던 일로 축구계에서 평판을 높였다.
2년 뒤, 또 한번 바이에른뮌헨과의 경기에 얽힌 일화가 있다. 레알은 8강에서 다시 바이에른을 만났다. 핵심 선수인 루이스 피구가 부상을 당한 상황. 델보스케 감독은 상대 풀백 리자라주의 오버래핑을 막을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그란데 코치가 고심 끝에 낸 아이디어는 카메룬 선수 제레미를 피구의 자리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그란데 코치의 아이디어로 바이에른전 선발 명단과 전략을 이야기하자, 몇몇 핵심 레알 선수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란데 코치가 직접 팀 내 핵심 선수 한 명에게 제레미를 투입하기로 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갖춘 핵심 선수는 “그러면 누가 결정적인 패스를 오늘 할 수 있는건가?”라며 따져 물었다. 그래도 최종 결정권은 코칭 스태프에 있었다. 제레미는 그날 밤 환상적인 슈팅으로 득점을 올려 그란데 코치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결과로 증명했다.
두 가지 사례에서,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선수들을 다루고, 결과를 냈다. 그란데 코치는 풍부한 경험과 특유의 지혜로 위기 상황에 번뜩이는 결정을 내렸다. 직관이 돋보인 사례도 있다. 2002-03시즌챔피언스리그 도르트문트와 2차 조별리그 4차전 경기다.
레알이 0-1로 지고 있던 때다. 경기 종료까지 몇 분 남지 않은 순간, 갑자기 그란데가 소리쳤다. “포르티요! 포르티요! 포르티요에게 나가라고 해!” 델보스케 감독은 주저 했다. “하지만 1분 밖에 남지 않았어. 교체를 하면 시간을 허비하게 될 거야.” 그란데 코치가 원한대로 결국 포르티요가 투입됐다. 포르티요는 첫 번째 터치로 골을 넣었다. 후반 추가 시간 2분에 나온 ‘극장 골’이었다.
그란데는 레알과 스페인에서 전략적 플레이를 준비하는 책임자였다. 델보스케와 논의해 누가 코너킥을 찰지, 페널티킥을 찰지도 결정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수비 대형도 그가 짰다.
그란데 코치가 무작정 자신의 의견만 앞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대화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선수들의 의견도 많이 듣는다.
일례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의 세트피스 전략이다. FC바르셀로나에 속한 스페인 대표 선수들이 코칭스태프에게 그들이 소속팀에서 하던 세트피스 방법을 제안했다. 흔쾌히 받아들였다. 독일과 준결승 경기에서 푸욜이 넣은 골은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제시한 전략으로 만든 것이다.
그란데는 승부차기 순서를 정하는 면에서도 육감을 갖고 있다. 긴장이 팽배하고 제한적인 상황일 때, 그는 믿음과 차분함이 필요할 때 번뜩였다. 유로2012 대회 당시 포르투갈과 4강전, 2013년 컨페드컵 이탈리아와 4강전에서 델보스케 감독은 “그란데 코치가 나보다 더 숙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별리그 탈락의 실패로 끝난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흔들리던 스페인을 다 잡은 인물이 그란데 코치다. 첫 두 경기 만에 당한 패배. 16강이 일찌감치 좌절되자 최종전을 앞둔 스페인 대표 팀은 규율을 잃고 방황했다. 델보스케 감독은 훈련 태도가 불성실했던 파브레가스의 주전 조끼를 후보 선수에게 주는 등 내부 혼란이 있었다.
그란데 코치는 그 중 한 명이던 제라르드 피케를 정신 차리게 했다. 팀 분위기를 회복시켰다. 스페인은 네덜란드, 칠레에 연패했으나 호주와 3차전 경기는 3-0으로 승리해 체면을 살리고 대회를 마쳤다. 유로2016 대회에서 결국 영광 재현에 실패했지만 ‘팀 델보스케’는 스페인축구협회의 신임을 받아 한 번의 메이저 대회를 더 치를 수 있었다.
오는 12월, 모스크바에서 월드컵 조추첨이 열린다. 한국과 스페인이 같은 조에 속한다면 토니 그란데, 하비 미냐노 코치에겐 아이러니한 운명이 될 것이다. 스페인 대표 팀 입장에서는 한국에게 가장 위험한 스파이를 보내준 셈이 된다.
물론, 두 팀이 같은 조에 들지 않는다면,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영입을 통해 강력한 응원군을 얻게 될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한국 대표팀을 러시아 월드컵에서 두 번째로 응원하는 팀으로 삼게 될 것이다. 그란데 코치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코치!”
글=미겔 앙헬 디아스(카데나 코페 기자), 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