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 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서사시인이 있고, 서정시인이 있으며, 그 다음에는 이름뿐인 삼류 시인들이 있다. 서사시인은 장중하고 울림이 큰 문체로 전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시인이고, 서정시인은 자기 자신의 구원을 통해 만인들의 심금을 사로잡는 시인이며, 그리고 이름뿐인 삼류 시인들은 시인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며, 영혼이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호머와 단테와도 같은 서사시인은 매우 드물고, 보들레르와 랭보와도 같은 서정시인은 매우 많으며----비교적 드물지 않으며----, 이름뿐인 삼류 시인들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그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다.
윤동주 시인은 서정시인이며, 자아의 완성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자아의 형성사가 세계의 발전사와 그 보조를 맞추고, 따라서 이처럼 피눈물 나는 수행의 모습은 대 서정시인의 그것과도 똑같다. 시인은 순교자이고, 고행자이며, 그의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삶은 예술품 그 자체와도 같다. 시는 시인의 예술품이고, 예술품은 시인의 얼굴과도 같다. 순교, 혹은 고행의 과정은 애정과 혐오, 혹은 자기 사랑과 자기 학대의 왕복운동과도 같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은 국보급 [자화상]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할 최고급의 서정시라고 할 수가 있다.
한 사나이는 이상적인‘나’일 수도 있고, 한 사나이는 현실적인‘나’일 수도 있고, 우물 밖의‘나’는 그‘나’를 비판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심판관으로서의‘나’일 수도 있다. 산모퉁이 외딴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쳐지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다. 가을은 맑고 청아하고, 가을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오곡백과의 계절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물 속의 한 사나이는 그만큼 초라하고 볼품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고귀하고 위대한 서정시인이라는 월계관을 쓰지 못하고, 이미 자포자기했거나 반쯤은 전의를 상실한 존재에 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정시인은 인간 중의 인간이며, 그는 자기 자신의 언어의 소유권을 통해서 전체 인류를 지배하는 문화적 영웅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서정시인의 길은 멀고 험하며, 서정시인의 길은 이미 그 실체가 없거나 불가능한 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고귀하고 위대한 이상에 비추어 보면, 우물 속의‘나’는 더없이 비천하고 초라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애정과 자기 사랑은 중단없는 전진을 좋아하고, 혐오와 자기 학대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이나 패배와의 관련이 있다.
모든 꿈은 불가능한 꿈이고, 불가능한 꿈은 애정과 혐오, 혹은 자기 사랑과 자기 학대 사이를 왕복운동하게 한다. 따라서“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여워”지는데, 왜냐하면 그 이상은 다만 이상일뿐, 결코 현실화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열 번, 백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초라한 사나이는 초라한 사나이일 뿐, 나의 이상적인 존재일 수가 없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라는 시구는 애정과 혐오, 혹은 자기 사랑과 자기 학대의 진수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도 고행자이고, 순교자도 고행자이다. 고행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이며, 이 고행의 언어는 만국의 공통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중에는 폭풍을 몰고 오는 말도 있고, 말 중에는 소리가 되지 못한 말도 있다. 폭풍을 몰고 오는 말은 가짜 혁명의 말일 수도 있고, 소리가 되지 못한 말이 진짜 혁명의 말이 될 수도 있다. 혁명은 새로운 언어이며, 혁명은 새로운 세계이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의 언어는 조용조용하고 소리가 되지 못한 독백의 언어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이처럼 전면적인 반성과 성찰의 언어가 만인들의 심금을 사로잡고 더욱더 넓고 크게, 멀리 멀리 퍼져나간다.
자화상이 자화상을 짓밟고, 자화상이 자화상의 목을 비틀며, 자화상이 자화상의 최종 단계에서 그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보인다.
아름답고 멋진 자화상이며, 국보급의 자화상이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야 할 최고급의 서정시이다.
나와 한국 대통령의 차이는‘사상가 대 유치원생’의 차이보다도 더 크다. 나는 대한민국을 세계 일등국가로 인도할 수 있다. 공영방송에서 내가 전국민을 상대로 강연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만 준다면 내 능력을 만천하에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