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관계론적 해석은 緣起 즉 空이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8)가 양자역학 방정식을 쓴 것은 스물다섯 살 때로,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주요 논문 세편을 썼을 때와 같은 나이였습니다. 하이젠베르크도 정말 아찔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방정식을 만듭니다. 어느 날 밤 코펜하겐 물리학 연구 소 뒤편 공원에 있던 그에게 직관이 찾아옵니다. 젊은 베르너는 생각에 잠겨 공원을 걷고 있습니다. 공원은 어둡습니다. 흐릿한 가로등 몇 개만 여기저기 작은 빛의 웅덩이를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빛의 방울들 사이에는 넓은 어둠의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갑자기 하이젠베르크는 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봅니다. 사실은 지나가고 있은 과정의 사람을 본 것이 아닙니다. 그가 본 것은 한 사람이 한 가로등 아래에서 나타난 뒤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이윽고 다른 가로등 아래에서 다시 나타나서는 또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한 빛의 웅덩이에서 다른 빛의 웅덩이로 건너가다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립니다. 하이젠베르크는 ‘당연히’ 그 남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로등 빛과 다른 가로등 빛 사이의 그 남자의 진짜 궤도를 상상으로 재구성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사람은 크고 무거운 물체이고, 크고 무거운 물체는 그냥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지는 않는데…
‘아! 이런 크고 무거운 물체들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 하지 않지, 하지만 전자에 관해서는 무엇을 알지?’ 그의 머릿속이 번쩍합니다. ‘만일 전자 같은 작은 물체에서는 이 ‘당연함’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면? 만일 실제로 전자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 할 수 있다면? 만일 원자의 스펙트럼 구조의 근저에 이러한 신비로운 ‘양자도약’이 있는 것이라면? 만일 다른 무언가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또 다른 상호작용을 할 때. 그 사이에 전자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있지 않은 거라면?....’
‘만일 전자가 다른 무언가와 상호작용할 때, 충돌할 때에만, 나타나는 무언가라면? 그리고 한 상호작용과 다른 상호작용 사이에는 그 어떤 정확한 위치도 갖지 않는다면? 만일 언제나 정확한 위치를 갖는다는 것은, 방금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밤 속으로 사라져버렸던 사람처럼 충분히 크고 무거운 물체에게만 있는 것이라면…?’
아마도 이십 대 때나 그런 망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것이 세계에 대한 이론이 된다고 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자연의 깊은 구조를 이런 식으로 남들보다 더 달 이해하려면, 어쩌면 우리도 이십 대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이 깨달았던 것이 이십 대였듯, 덴마크의 그날 밤 하이젠베르크도 그랬습니다. 어쩌면 서른이 넘고 나면 더 이상자신의 직관을 믿을 수 없는 것일지도…..
하이젠베르크는 흥분에 차서 집으로 돌아와 계산에 몰두합니다. 얼마 뒤 그는 당황스러운 이론을 들고 나타납니다. 그것은 입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기본적인 기술로서, 이 이론에서는 입자들의 위치는 모든 순간 기술되지 않고 오직 특정 순간의 위치만 기술되는 것이었습니다. 입자들이 다른 무언가와 상호작용하는 순간만 말입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의 두 번째 초석이자 가장 어려운 열쇠가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물의 관계적 양상입니다. 전자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할 때에만 존재합니다. 다른 무언가와 충돌할 때에 어떤 장소에서 물질화됩니다.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의 ‘양자도약’의 전자가 실재하게 되는 유일한 방식이죠. 하나의 전자는 한 상화작용에서 다른 상호작용으로의 도약들의 집합입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없다면 전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대상이 어떤 추상적 공간에 의해서 기술되고, 대상은 질량과 같은 변하지 않는 것 말고 그 자체 어떤 속성도 갖지 않습니다. 대상의 위치와 속도, 각운동량, 전위 등등은 다른 대상과 충돌할 때에는 실재성을 얻습니다. 정의되지 않는 것은 하이젠베르크가 이해했듯 그저 대상의 위치만이 아닙니다. 한 상호작용과 다른 상호작용 사이에는 대상의 그 어떤 변수도 정의되지 않습니다. 이론의 관계적 양상이 일반화된 것이죠.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p119~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