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15
나쁜 것이 좋게 보일 때 / 김영주 목사
1. 서론
우리나라 도로에는 2천1백45만 대의 차량이 질주합니다. 2010년 한 해에만 22만6천여 건의 교통사고로 35만여 명이 부상하고 5천5백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나라 도로 위에서는 매일 15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경찰청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로 6만5천여 명이 사망하고 3백5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일생 동안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칠 확률이 50퍼센트가 넘는다는 것이죠.
또 연간 자살자 수는 2007년 1만 2174명을 넘어섰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루 33명이 자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건 사고가 많은 중에,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날개로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어떤 상황에 있든지 평안하고, 어떤 결정할 때 좋은 결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안 되는 사람, 안 풀리는 사람, 망하는 사람들 특징은 잘 나가다가 결정할 때 어리석은 결정을 해서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예화) 과거 우리나라에 D전선이라는 기업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삼성 보다 현금 보유율도 높았습니다. 최대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회장 사후, 사업을 확장하려고, 쇠퇴해가는 외국 회사에 주식투자하다 망했습니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투자했습니다. 그때 주변에서, 저 회사는 전망이 어둡다, 기울고 있는 회사다 해서 말렸는데 안 듣고 투자했습니다. 부사장과 아들들이 투자를 강행해서 망해버렸습니다. 어떤 변리사가 그랬습니다. 과거 잘 되던 회사들 중 10년 내 제조업의 93%가 문 닫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10년 간 6700개 회사 중 다 문 닫고 360개 정도가 생존했습니다. 과거, D전선이 망한 것은 ‘결정’을 잘못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이 손을 떼시면 이상하게 ‘안 될 것’, ‘나쁜 것’인데도, ‘잘 될 것’, ‘성공할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분별력이 생겨서 안 될 것은 안 되게 보고, 잘 될 것은 잘 되게 봅니다. 그래서 바른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떠나시면 시력에 문제가 생겨 잘될 것, 못될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 보고, 잘 못 결정해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통계를 보면 하루에 사람이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을 하는 횟수가 활동적인 사람의 경우 700회 정도 되고, 비활동적인 사람의 경우 400회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결정 속에서 잘못하면 ‘인생을 망치는 결정’을 하게 되고, 잘 하면 ‘성공적인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이 순간의 결정이 우리 인생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이런 매 순간 순간의 결정에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연약하기에 5분 앞의 일을 모릅니다. 장래 일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면 바로 재앙이 오거나, 저주, 끔찍한 사고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할 때 잘못 결정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망할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저건 아닌데..’ 하는데도 꼭 그 길을 선택하고 고집스럽게 밀어부치는 사람들을 보면 걱정됩니다.
2. 솔로몬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징계하시는데 두 가지로 징계를 하십니다.
① 대적을 일으키십니다.
대적을 일으켜 솔로몬이 대적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근심, 걱정, 염려로 마음 편할 날이 없게 하십니다. 특별히 사람에게 당하게 하십니다. 르손, 하닷, 여로보암이 들고 일어나 대적합니다.
② 나라를 둘로 나누십니다.
사울-다윗-솔로몬까지는 이스라엘이 하나였으나, 솔로몬 이후 나라가 둘로 찢어져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나누어져야 하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한 약속 때문에 솔로몬 시대에는 나누지 않고,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뉘게 하셨습니다. 나라가 나뉘어졌다는 말은 통치 영역이 좁아졌다는 말이요, 영향력이 축소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우리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듭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지속될 때 우리의 영향력도 넓어집니다. 정말 어떤 사람은 신앙적인 영향력이 자꾸 늘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인, 가정, 주변, 지역, 아시아, 세계까지 점점 늘어납니다. 자신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갈수록 영향력이 축소되고 겨우 자기 신앙 유지하기도 급급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움의 손을 거두면 우리 인생은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향력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판단 미스’입니다. 중요한 결정에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바로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3. 본문
(왕상12:1~5)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가 나옵니다.
1“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아직 왕 됨을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잘만 하면 르호보암이 계속해서 통치하게 됩니다. 이들의 요구가 4~5절에 나옵니다.
4“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르호보암의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더 돌아올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4. 르호보암의 결정
1)먼저 의논했습니다.
①(6~7절) “6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7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 이 의견만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젊은 신하의 의견도 듣고 싶었습니다.
②(8~11절) 8“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9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1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두 가지 의견이 대립되면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2)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물어 보면 됩니다.
르호보암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왜 물어보지 않았을까요?
평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니 묻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물었다면 좋은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요, 좋은 것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르호보암은 왜 사람에게는 물으면서 하나님께는 묻지 않았을까 의문입니다.
3) 잘못된 선택(13~14절)
르호보암은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젊은 신하들의 의견을 따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휘어잡으려고 했습니다.
13“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사라은 섬겨야지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동식물은 지배하고, 다스리라 했지만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없습니다. 사람은 섬겨야지 다스리려하면 안 됩니다. 여기 이 선택에서 르호보암이 무너집니다. 나라가 둘로 나눠지고, 분단의 역사가 진행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면 ‘결정할 때’ 잘 못합니다.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삼하 17:1~14, 23)
--> 압살롬이 반란할 때, 최고의 전략가 아히도벨이 그에게 붙었습니다. 마치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붙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다윗은 끝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친구 후새가 항복하고 압살롬에게 들어가 전략을 내세웁니다. 아히도벨의 전략 즉 후새의 전략이 맞섰습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이 10배 낫습니다. 그대로 하면 다윗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아히도벨의 전략보다 후새의 전략이 더 좋다고 믿고 그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히도벨은 자살하고 압살롬은 결정적으로 패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손을 거두시면 좋은 것이 나쁘게 보이고, 나쁜 것이 좋게 보입니다. 그래서 판단착오, 실수, 바보 같은 결정을 하게 됩니다.
5.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솔로몬의 범죄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초지일관 성실하고 신실하게 머물렀다면 말년에 이렇게 징계 받고, 비참하고,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축복, 승리, 멋지고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이뤄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 돌리자, 하나님도 은혜의 손을 거두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막이 우리를 떠나면 우리는 인생의 실패자, 패배자, 낙오자가 될 뿐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하자 그가 다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솔로몬을 배반한 것입니다. 돌이킬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마지막 기회인 아히야가 예언했을 때 돌이키고 회개했다면 이렇게 초라한 말년은 안 되었을 것입니다.
(15절)“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하나님이 손 떼면 왜 이렇게 됩니까?
①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②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우리의 생각, 판단, 감정도 밝아지고, 보는 것이 맑아지고, 선명해집니다. 뿌옇지 않고 투명해 지기에 결정할 때 잘합니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③하나님이 떠나시면 어리석음이 더 강화됩니다.
(엡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빛이 떠나면 어둠이 극성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는 둔함과 어리석음입니다. 나쁜 것이 좋게 보입니다. 좋은 것이 나쁘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있으면 분별력이 생기고, 지혜가 생겨서 결정할 때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모셨기에 빛이요, 빛이 있기에 빛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면 비록 현재는 어둡고, 힘들더라도, 앞으로 우리의 가는 길에 어둠이 걷히고, 빛이 비취고, 고난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